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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응답하다

ARTNOW

예술은 지속적이며 끈기 있는 시위다. 벨기에 브뤼셀에 근거지를 둔 보고시앙 재단의 설립자이자 유럽의 대표 페이트런인 장 보고시앙은 “예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대답이다. 오늘날에는 더더욱”이라고 말한다. 언어를 초월한 소통이 가능한 예술을 통해 동서양 문화 간 대화를 도모하는 장 보고시앙 회장은 페이트런으로서 어떤 인본주의적 메시지를 세상에 알리려 하는 걸까?

“세 번의 이스라엘·아랍 전쟁, 그리고 17년간 내전을 겪은 우리 가족은 동쪽에서 왔고, 서쪽에서 살고 있다. 나는 나를 이 세상의 시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반은 벨기에인이고 반은 레바논인인데, 내 뿌리에는 아르메니아인 혈통도 있다.” 장 보고시앙(Jean Boghossian) 회장은 보고시앙 재단(Boghossian Foundation) 설립 배경을 이 말로 대신했다.
다양한 문화의 중간 지점에 있다는 이유로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침략을 당한 국가 아르메니아에서 태어난 그가 1992년 동생 알베르 보고시앙과 함께 설립한 보고시앙 재단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도 예술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인류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방법을 제시해온 비영리 문화기관이다. 1989년부터 15년간 아르메니아, 시리아, 레바논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고, 그들이 가능성을 펼쳐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게 기여해온 장 보고시앙 회장.
“우리는 인도주의적 관점을 초월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인본주의적 접근을 제안한다”는 비전에 근거해 2006년 동서양의 미술가, 음악가, 철학자들이 한데 모이는 예술의 집합지로 빌라 앙팽(Villa Empain)을 오픈해 재단의 발전을 이뤘다. 브뤼셀의 빌라 앙팽 같은 ‘민주적 소통 공간’을 중동과 레바논, 극동 지역에도 만들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는 보고시앙 재단의 설립자이자 대표로서, 페이트런이자 작가로서, 그리고 컬렉터로서 여러 정체성을 바탕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동서양의 예술가, 음악가, 철학자들이 한데 모이는 열린 문화의 장, 빌라 앙팽

보고시앙 재단을 설립한 장 보고시앙 회장과 동생 알베르 보고시앙, 재단의 제너럴 매니저 루마 살라메 / Jean Boghossian, Louma Salame, Albert Boghossian ⓒ Boghossian Foundation-Villa Empain,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1992년 보고시앙 재단을 설립한 이후 어떤 방식으로 동서양의 교류를 도모해오셨나요?
보고시앙 재단의 여러 목적 중 하나는 유소년 교육과 발달에 기여하기 위함입니다. 1989년부터 15년간 보고시앙 재단은 아르메니아, 시리아, 레바논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생활 개선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들이 잠재력을 펼쳐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랐거든요. 우리는 사회적·교육적 프로젝트를 기획해 제공했어요. 아르메니아공화국 대통령상, 굴벤키안 재단의 후원으로 베이루트의 메스로비안 학교에서 진행한 요리와 경영 프로그램 등이 그것이죠.

매년 보고시앙 재단상을 통해 젊은 예술가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현대미술계에 떠오르는 재능 있는 작가들을 후원하는 것이 페이트런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젊은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미술 신은 아주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곳이에요. 그들을 후원하는 게 중요한 이유는 오늘날의 젊은 예술가가 내일의 예술 풍경을 만들어나가는 주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재정적 지원과 더불어 빌라 앙팽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어요. 작가들은 그곳에서 다른 예술가와 교류하며 창의성을 발전시킬 수 있죠.

브뤼셀의 ‘빌라 앙팽’이라는 멋진 장소는 어떻게 구하나요?
오랫동안 재단의 심장이 될 만한 집을 찾고 있었어요. 조직을 수용하는 동시에 예술기관이 되어야 했죠. 뉴욕의 뮤지엄 프릭 컬렉션(Frick Collection)이 제가 생각한 모델이었어요. 빌라 앙팽은 브뤼셀의 아르데코 건축양식으로 지은 고풍스러운 건물입니다. 하지만 처음 그곳을 봤을 때 곳곳이 파손된 상태라 전면 개조하기로 했죠. 대규모 작업이었지만 1975년 레바논 내전에서 도망쳐온 우리 가족을 환영해준 벨기에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이 건물을 복원해 다시 벨기에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빌라 앙팽에서 전시 말고 다른 행사를 기획하기도 하나요?
철학과 역사에 대한 콘퍼런스를 열기도 합니다. 동서양의 관계를 비롯해 세계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철학과 역사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거든요. 이번 단색화 전시에선 ‘한국은 어떻게 근대화되었나’라는 콘퍼런스를 함께 진행했는데, 이를 통해 브뤼셀 시민이 남북한의 역사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Work of Jean Boghossian ⓒ Boghossian Foundation?Villa Empain,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Jean Boghossian Profile Image ⓒ Boghossian Foundation?Villa Empain,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창조성과 결부된 일을 하는 것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과 같다”고 한 장 보고시앙 회장은 작가로서 연기, 불꽃, 캔버스, 종이, 폴리스티렌 등 다양한 매체에 도전하는 실험적인 작업을 해왔다.

빌라 앙팽은 리노베이션 공사를 거쳐 보고시앙 파운데이션으로 거듭났다.

보고시앙 재단의 대표이자 디렉터로서 가장 의미 있고 기억에 남는 전시는 무엇인가요?
‘동양과 서양의 대화’라는 주제로 열린 < Turbulences >와 < La Route Bleue >전, 그리고 한국의 모노크롬을 선보인 ‘단색화’ 전시도 매우 반응이 좋았어요.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당신은 아르메니아 파빌리온의 주요 후원자였고 한국의 단색화전을 국제갤러리와 함께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4월 24일까지 빌라 앙팽에서 <과정이 형태가 될 때: 단색화와 한국 추상미술>전이 열렸습니다. 이렇듯 단색화에 애정을 보이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한국을 여행하던 당시 친구의 소개로 단색화를 접했습니다. 표현의 반복, 순수한 색감, 그것이 어우러진 조화로움이 좋았습니다. 바로 반했죠. 침착한 붓질에 숨은 정치적 의미의 힘이 느껴졌고, 단색화가 1970년대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문맥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도 감동했습니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국가관 부문 황금사자상을 아르메니아 파빌리온이 수상하는 걸 보면서 예술에서 소통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보고시앙 재단은 세상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고 있나요?
빌라 앙팽이 가장 좋은 예입니다. 그곳은 세상에 열려 있어요. 1년 내내 언제든 방문해 작가는 물론 일반 대중도 우리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죠. 이번 단색화전도 그래요. 전시는 굉장히 성공적이었어요. 그 덕분에 새로운 대중을 만났고, 그들은 보고시앙 재단이 추구하는 가치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단색화전과 함께 준비한 콘퍼런스, 전통 오스만 음악 콘서트, 시리아 난민을 후원하기 위한 전시 등 각 행사는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였고, 이를 통해 우리의 목적인 ‘문화 간 대화’를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아르메니아 파빌리온에서는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 예술가들이 던진 가슴 아픈 질문도 많았어요. 시리아, 레바논, 이집트, 터키, 아르헨티나, 이란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예술가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중 니나 카차두리안(Nina Katchadourian) 작가는 아르메니아 혈통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 “당신의 모국어는 무엇인가?”, “몇 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나?” 같은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같은 질문을 당신에게도 하고 싶군요.
저는 아르메니아어를 조금밖에 못합니다. 할아버지께서 1915년 제노사이드를 피해 시리아로 이주하셨거든요. 불행히도 많은 디아스포라 아르메니아인은 정착해 사는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가 사라지더라도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는 자신이 사는 나라와 관계가 있는 것이지만 정체성은 자신의 뿌리와 관계가 있으니까요. 참고로 제 모국어는 아랍어고 프랑스어와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할 수 있습니다.

작가로도 활동하는 장 보고시앙 회장의 작품 / Work of Jean Boghossian ⓒ Boghossian Foundation-Villa Empain,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보고시앙 재단은 1992년 설립한 보고시앙 재단상을 통해 매년 미술, 디자인, 사진 분야의 젊은 작가 3인을 선정해왔다. 이들은 빌라 앙팽에서 레지던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독특한 제스처의 아이들과 남녀를 그린 ‘죽음의 초상’ 시리즈로 2016년 보고시앙 재단상을 수상한 이는 레바논 출신의 젊은 회화 작가 할라 아제딘(Hala Azzeddine)이다. / The 2016 Boghossian Foundation Prize for Painting Hala Azzeddine ⓒ Boghossian Foundation?Villa Empain,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최근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개인적으로 컬렉션한 장 보고시앙 회장이 이끄는 보고시앙 재단 빌라 앙팽에서 올해 개최한 전시 <과정이 형태가 될 때: 단색화와 한국 추상미술>. 장 보고시앙 회장은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위성 전시로 국제갤러리와 함께 단색화전을 공동 개최하기도 했다. / Installation View of When Process becomes Form:Dansaekhwa and Korean abstraction 2016 ⓒ Boghossian Foundation ?Villa Empain,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뚜렷한 메시지, 예술과의 연관성, 예술을 위한 예술뿐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위한 예술을 표방하는 보고시앙 재단의 심장, 빌라 앙팽에서는 미술 전시뿐 아니라 철학과 역사에 대한 콘퍼런스를 열기도 한다. / Fondation Boghossian – Villa Empain ⓒ Boghossian Foundation ?Villa Empain,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아르메니아 혈통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사실이 당신의 인생과 예술관에 영향을 끼쳤나요?
아르메니아의 언어와 전통, 교회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아르메니아는 매우 건조하고 척박한 땅이에요.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사람들은 인내심과 근면성실함을 배우죠. 또한 아르메니아인은 정직하고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알며 장인정신을 존중합니다. 기술도 뛰어나 훌륭한 보석 세공인, 예술가, 드레스메이커도 있죠. 지리적으로 여러 문화의 중간 지대에 있어 수세기 동안 수많은 침략을 당한 것도 아르메니아 문화가 풍요로운 이유입니다.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작품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혹시 컬렉팅의 기준이 있나요?
컬렉터로서 나름의 기준을 갖고 엄격히 따지는 것만큼 자신의 감정을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내면의 소리를 들어요. 마음을 따르는 거죠. 결과적으로 제 컬렉션은 구성성이 있으면서 철저하고, 어떤 면에서는 절충적이기도 합니다.

처음에 구입한 작품 그리고 최근에 수집한 작품은 뭔가요?
첫 컬렉션은 보석과 관련이 있어요. 앤티크 보석, 천연 진주, 다이아몬드, 까르띠에와 쇼메, 라리크 같은 신화적 가문의 브로치나 목걸이 같은 거죠. 역사성이 있는 진품 아르데코 보물과 회중시계, 버클 같은 것도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수집한 건 빅토르 바사렐리, 장 뒤뷔페, 로버트 베리, 주세페 페노네, 다니엘 뷔랑 등의 작품입니다

재단의 컬렉션과 개인 컬렉션은 어떻게 다른가요?
동생 알베르와 저는 각각의 컬렉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알베르는 저와 달리 중동 예술에 관심이 많죠. 우리 둘 다 컬렉션을 재단에 기증할 예정이라는 건 공통점이겠군요.

페이트런이면서 동시에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 끊임없이 탐색하는 과정이 예술이지만 결코 완벽한 답을 찾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작품 활동에서 기대하는 것도 그 부분입니다. 저는 다양한 매체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연기, 불꽃, 캔버스, 종이에 이어 지금은 폴리스티렌에 도전하고 있죠.

2012년 영은미술관에서 작품을 발표하고 그 이듬해에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 초대되어 다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한국 문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뭔가요?
한국엔 훌륭한 장인이 많습니다. 청자와 서예, 한지 등 1000년 넘게 이어온 지혜가 있죠. 저도 작품에 한지를 이용하는데, 매우 흥미롭습니다. 남한과 북한을 모두 여행했는데 문화와 전통, 고대미술이 서로 너무나 닮아 흥미로웠고, 정치적 이유로 서로를 적대시한다는 것이 매우 슬펐습니다.

재단의 향후 계획이나 프로그램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나요?
설립 이후 5년이 지나 보고시앙 재단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재단을 이끌어가는 것은 예술감독 아사드 라자(Asad Raza)와 총매니저 루마 살라메(Louma Salame)입니다. 보고시앙 재단은 예술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대화를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빌라 앙팽의 최종 목적은 빌라에 생기를 불어넣어 작품 창작과 전시, 그 활기찬 과정이 펼쳐지는 공간을 만드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중동에 빌딩을 짓고 있어요. 레바논에도 건립 계획이 있고요. 한국도 물론 안 될 이유는 없겠죠?

1970년대에 가공한 재료의 다양한 물성을 시험한 하종현 작가의 ‘Untitled’로 캔버스에 철조망을 묶었다. 하종현, Untitled 72-C, Barbed wire on panel, 120×240cm, 1972 / Courtesy The George Economou Collection, Photo copyright ⓒ Jeremy Haik,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장남미(프리랜서) 사진 제공 보고시앙 문화재단, 국제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