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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ow Must Go On

ARTNOW

패션쇼장은 새로운 의상을 가장 처음 선보이는 무대다. 마치 황홀경에 들어선듯 예술적인 요소로 가득한 이곳에 당신을 초대한다.

현대적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막스마라 쇼장

1/ Under Construction
조금은 엉성한, 어쩌면 너저분한 이 공간이 정말 새 옷을 선보이기에 마땅한 걸까? 모스키노의 컬렉션 테마 ‘허영의 소각(Falo delle vanita)’은 그 의문을 해소하는 키워드였다. 책과 예술 작품, 가구와 의상을 몽땅 태워버린 르네상스 시대 한가운데의 풍경을 쇼장에 옮겨놓은 것. 시대를 짐작할 수 있는 벨벳 소파와 샹들리에를 지저분하게 배치하고, 카펫을 불규칙적으로 겹친 캣워크 사이로 모델이 걸어 나왔다. 가죽 재킷과 로고 티셔츠, 데님 쇼츠와 큼직한 벨트에 이르는 브랜드의 시그너처 아이템이 신선하게 느껴진 데에는 도리어 정돈되지 않은 공간이 한몫했다. 한편 막스마라의 2016년 F/W 컬렉션 골격을 이룬 것은 나탈리아 콘차로바(Natalia Goncharova), 이름가르트 코인(Irmgard Keun), 하나 회흐(Hannah Hoch)를 비롯한 여성 아티스트다. 이들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다다이즘과 모더니즘 열풍으로 베를린을 격동하게 한 주인공이다. 가지각색 패턴의 벽지가 붙고 뜯긴 벽면과 금속 계단 설치물, 그 틈으로 비비드한 컬러 코트와 점프슈트를 입은 모델이 배회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물결로 가득한 당시의 에너지와 현대적 감각으로 무장한 스타일링이 더없이 돋보인 순간이었다. 어덤은 샹들리에, 앤티크 가구와 주전자를 포함한 소품을 늘어놓고 영국식 초현실주의를 보여주는 공간을 연출하고자 했다. 정교한 바이어스 컷 드레스와 우아한 프린지 스커트 자락이 가볍게 흔들릴 때, 전체적으로 무게감이 느껴지는 쇼장은 의상 한 벌 한 벌을 부각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니 이제 ‘미완성의 완벽한 공간’이라는 단어는 전혀 역설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밖에.

파리 그랑 팔레를 대형 살롱으로 바꾼 샤넬

생 로랑 쿠튀르 살롱에서 벌인 은밀한 쇼

2/ Salon Prive
불과 몇 시즌 전 패션 하우스가 경쟁하듯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세트장을 만드는 데 집중한 적이 있다. 초대장을 든 이들은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순식간에 패션 판타지에 몰입할 수 있었고, 그 임팩트는 환상적인 의상만큼 강렬했다. 하지만 몇몇 디자이너가 추구하는 미학은 여기에서 벗어난 듯하다. 2016년 F/W 시즌 패션쇼장은 아늑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오로지 의상에만 집중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으니까. 샤넬은 ‘모두가 맨 앞줄에서 쇼를 볼 수 있다면!’이라는 발상에서 시작해 ‘front row only’를 주제로 컬렉션을 완성했다. 파리 그랑 팔레를 수십 년 전 가브리엘 샤넬의 살롱에 방문한 듯한 분위기로 연출하기 위해 3000여 개의 의자가 미로처럼 놓였고, 관객 모두 코앞에서 클래식한 의상을 감상할 수 있었다. 에디 슬리먼이 지휘한 생 로랑의 마지막 컬렉션은 조금 더 은밀하게 선보였다. 대리석과 금박 처리한 가구, 15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샹들리에가 천장을 채운 하우스의 쿠튀르 살롱을 처음으로 대중에게 개방한 것. 이곳에 초대받은 100여 명의 이름을 음각 처리한 메탈 플레이트를 올린 의자가 채워질 즈음, 쇼가 시작됐다. 배경음악은 없었다. 오직 룩의 번호를 호명하는 낮은 목소리, 모델이 둥근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구두 소리, 카메라 셔터 소리가 살롱을 메웠을 뿐. 안도 다다오의 명상 정원(Meditation Garden)으로 분한 파리의 유네스코 빌딩은 어떤가. 로에베의 수장 조나단 앤더슨은 이곳을 각종 아트 피스와 화분, 액자로 가득 채웠는데, 도리어 정돈된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그뿐 아니라 각기 다른 컬러와 질감의 소파, 쿠션과 의자로 우리를 초대한 미우미우의 컬렉션 쇼장까지 본다면, 소수만이 모여 친밀하게 교류하던 살롱이 2016년 새롭게 탄생했음을 직감할 수 있다. 그리고 살롱에 도착한 우리는 머지않아 의상을 향한 완벽한 스포트라이트를 제대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몽클레르 감므 루즈의 우아한 설원

돌체 앤 가바나의 동화 같은 순간

3/ Fashion Tale
그럼에도 동화는 계속된다. 패션이 지닌 무한한 잠재력과 상상력은 그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밑바탕이고. 루이 비통의 2016년 F/W 컬렉션 쇼가 열리던 날,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에는 큐브와 돔,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물이 들어섰다. 각각의 구조물 내부는 하우스 트렁크 프레임의 골격을 완성하는 포플러나무, 20만 개의 유리 조각과 35톤에 달하는 염색 자갈로 가득 채웠다.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미래의 고고학’, 그러니까 미래를 발굴하겠다는 근사한 의지가 돋보이는 컬렉션을 준비했다. 이들이 구현한 새로운 공간은 고대의 유적지 혹은 게임 그래픽 화면을 보는 듯했고, 현대와 그 이후를 아우르는 스타일을 제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톰 브라운은 100년 전 워싱턴 스퀘어 가든의 모습을 쇼장에 옮겨왔다. 물론 그답게 조금은 음산한 모습으로 말이다. 생각해보면, 버튼다운 슈트와 셔츠는 100년 전에도 엄연히 존재한 복식이 아닌가. 그리고 톰 브라운은 그 클래식한 룩을 신선하게 변모시키는 데 여념이 없는 디자이너다. 기존과 전혀 다른 소재, 길이와 실루엣으로 완성한 파격적인 의상을 입은 남녀가 오래된 정원을 산책하는 모습만으로도 기묘한 스토리가 그려지는 것은 당연지사. 몽클레르 감므 루즈는 눈으로 뒤덮인 설산의 풍경을 재현했다. 거대한 얼음 조각 사이사이를 걷는 모델의 장식적 의상이 더욱 눈부시게 보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돌체 앤 가바나는 판타지를 한 번 더 비틀고 꼬았다. 백설공주와 알라딘, 신데렐라와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떠올리게 하는 소품으로 구석구석을 채운 이유는? 새로운 시대의 동화 속 주인공이 사랑을 현대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분명 모든 여성이 눈여겨볼 만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오직 패션 세계에서만 만날 수 있는 꿈같은 이야기다.

에디터 한상은 (hans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