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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화산이 주는 축복, 가고시마

LIFESTYLE

활화산으로 유명한 가고시마에 화산만 있는 건 아니다. 우뚝 솟은 산맥을 중심으로 트레킹 코스가 잘 발달했고, ‘동양의 나폴리’라 불릴 정도로 수려한 자연경관과 연중 따뜻한 기후가 골프 투어를 즐기는 관광객의 발길을 이끈다. 곳곳에서 즐길 수 있는 천연 온천도 가고시마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낯선 도시에 대한 두려움이 금세 애정으로 변하는 곳, 일본 가고시마로 떠난다.

가고시마의 상징으로 불리는 활화산 사쿠라지마. 하루에도 3~4번씩 수증기를 내뿜으며 분화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나 다음 주에 가고시마로 떠나”라고 말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가고시마? 거기가 어디야?” 가고시마는 일본을 구성하는 4개의 열도 중 가장 남쪽 섬인 규슈에서도 남단에 위치한 현이다. 한마디로 일본 열도 중 남쪽 끝에 위치한 도시다. 일본에서 가장 활발하게 분화 중인 화산섬 사쿠라지마가 있는 뜨거운 땅. 그 덕분에 곳곳에서 천연 온천이 용출해 요즘 같은 날씨에는 온천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볼거리, 즐길 거리에 맛있는 먹거리까지 있다면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된다. 가고시마는 일본 최고의 고구마 산지로 무려 300종이 넘는 고구마 빵과 과자 등을 맛볼 수 있으며 특히 고구마 소주가 별미로 유명하다.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도 가고시마를 찾는 이유 중 하나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1시간 20분이면 가고시마 공항에 도착한다. 가깝지만 먼 도시, 가고시마와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한 여정이 펼쳐진다.

1 5개의 봉우리가 이어진 기리시마 연산은 다양한 형태의 분화구로 장관을 연출한다.  2, 3 녹음이 드리워진 센간엔과 그 뒤로 분화 중인 사쿠라지마

센간엔에서 바라본 사쿠라지마
에도 시대인 1658년 가고시마의 터줏대감 시마즈 미쓰히사가 조성한 정원, 센간엔은 1만5000평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로 사쿠라지마의 그림 같은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또 다른 명소다. 하늘 높이 치솟은 나무와 낮게 깔린 잔디, 화사한 꽃이 흐드러지게 핀 이곳을 산책하다 보면 고즈넉한 분위기에 매료돼 마음까지 차분해진다. 산책하다 허기가 지면 센간엔 안의 식당에서 돼지고기를 켜켜이 쌓아 바삭하게 튀겨낸 돈가스를 주문해보자. 고구마를 먹고 자란 흑돼지로 만든 이 돈가스는 두툼한 속살과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식당 창문으로 사쿠라지마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운이 좋다면 연기를 뿜으며 분화하는 장관을 보며 식사하는 이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기리시마
공항에서 빠져나와 1시간여 외곽을 달리던 버스가 안개를 뚫고 기리시마(Kirishima) 시에 진입했다. ‘안개의 섬’이란 뜻의 기리시마는 자욱한 안개에 휩싸인 산봉우리가 마치 바다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 일본에는 약 30여 개의 국립공원이 있고 규슈만 해도 6개의 국립공원이 있는데 그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기리시마 긴코만 국립공원의 에비노 고원으로 향했다. 에비노 고원은 5개의 봉우리로 이어진 기리시마 연산의 한가운데라고 할 수 있다. 해발 1200m에 위치한 에비노 고원까지 올라가는 길은 설악산의 비경을 감상하며 굽이굽이 올라가던 한계령이 떠오를 만큼 친숙한 풍경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눈앞에 낯선 장면이 펼쳐졌다.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온천수의 하얀 수증기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창문 틈으로는 유황 특유의 매캐한 냄새가 폴폴 풍겼다. 기리시마 온천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유황 온천으로 일본 근대화의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사카모토 료마가 신혼여행을 위해 찾은 곳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뿔이 높게 솟은 수사슴이 산기슭에서 뛰놀고 다정한 노부부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음을 옮기는 모습까지, 생각 없이 셔터를 눌러도 멋진 작품이 되는 이 길을 따라 15분 정도 올라갔다. 에비노 고원에 다다르니 고도차를 이기지 못해 순간 귀가 먹먹했지만 진한 가을 향이 느껴지는 억새의 황금빛 물결에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애잔한 교향곡을 연주하듯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 뒤로 에비노 고원을 집어삼킬 듯 거대한 산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리시마 연산 최고봉인 가라쿠니다케다. 맑은 날엔 꼭대기에 오르면 저 멀리 우리 땅까지 보인다는 가라쿠니다케의 위엄에 입이 떡 벌어졌다.

그 웅장한 자연을 배경으로 고원 입구에 위치한 에코 뮤지엄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기리시마 연산을 사진, 영상, 모형 등으로 알기 쉽게 소개하는 작은 박물관이다. 사진과 영상을 통해 벚꽃과 철쭉이 흐드러지게 핀 봄과 눈꽃으로 뒤덮인 겨울 산의 모습까지, 변화무쌍한 기리시마 연산의 사계절을 감상했다. 특히 기리시마 연산은 사시사철 트레킹을 즐기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아름다운 산길을 따라 천천히 걷고 싶다면 에코 뮤지엄에 들러 트레킹 정보를 받아봐도 좋겠다. 박물관을 둘러본 후 밖으로 나오니 100m가량 늘어진 야외 족욕탕에서 너나없이 바지를 걷어 올린 채 발을 담그고 있었다. 화산 활동으로 인한 지열 때문일까, 마치 계곡처럼 졸졸 흐르는 따뜻한 물은 족욕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조심스레 두 발을 담그고 지그시 눈을 감으니 먼 길을 떠나온 긴장과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1, 2 지란 사무라이 마을의 민속 가옥.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사무라이 마을은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3 자연과 신사가 어우러진 고즈넉한 센간엔 풍경

가고시마의 작은 교토, 지란 사무라이 마을
18세기부터 19세기 초, 사무라이들이 모여 살았다는 지란 마을에 가기 위해 가고시마 시내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40분 정도 달렸다. 머리를 틀어 올리고 허리춤에 날렵한 칼을 찬 사무라이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달리 그들이 살았던 마을은 조용하고 아담하다. 자로 잰 듯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저택들은 그 옛날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높은 담장을 둘렀다. 하지만 높은 담장 안에 교토에서 데려온 정원사가 잘 가꾼 아기자기한 정원이 있어 반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강한 기상이 느껴지는 무사들의 저택과 일본 특유의 잘 정돈된 정원이 어우러져 운치 있는 풍경을 자아낸다.

사쿠라지마가 토해낸 뜨거운 날숨 속을 걷다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었다. 뜨거운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하루에 3~4번, 1년에 1000번 가까이 분화한다는 사쿠라지마(Sakurajima)의 모습을. 이 활화산은 원래 가고시마 만 위에 떠 있는 섬이었으나 1914년 다이쇼 대분화 때 흘러나온 용암으로 육지와 연결되어 지금의 모습을 형성했다. 섬에는 50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가고시마 시가지에서 바다를 두고 불과 4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페리를 타고 바다를 가로질러 섬에 닿는 데 15분이면 충분하다. 사람은 물론 자동차와 버스까지 실을 정도로 거대한 페리는 24시간 운항해 사쿠라지마 주민의 다리 역할을 톡톡히 한다. 특히 페리 안에서 명물로 꼽히는 ‘쓰키미 우동’을 맛보는 소소한 재미를 놓치지 말자. 하루에 자그마치 1300그릇 이상 팔린다는 이 우동은 쫄깃한 면발과 구수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우동 한 그릇을 후루룩 비우고 나니 금세 선착장에 도착했다.

페리에서 내려 10분 거리에 있는 사쿠라지마 비지터 센터를 찾았다. 그곳에서 영상으로 화산이 분화하는 생생한 모습과 그 역사를 접했다. 붉은 용암이 무서운 속도로 흘러내리는 장면을 보니 학창 시절 과학 시간에 배운 마그마의 원리가 떠올랐다. 발을 딛고 있는 이 지표면 아래 뜨겁게 달궈진 마그마가 있다니. 발바닥이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마그마가 수차례 터져 산의 모양을 바꾸었고, 또 언제 폭발해 용암으로 변할지 모르는데도 이곳은 숲이 울창했다. 신비롭게도 자연은 화산재와 가스 등 분연으로 인해 척박해진 땅에서도 초록의 생명을 다시 틔워냈다. 나무의 녹음이 드리워진 그곳에서 자연의 강인한 에너지를 느꼈다.

사쿠라지마에서 현재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미나미다케 분화구를 360도 파노라마로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유노히라 전망대다. 해발 373m 높이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분화구는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와 깊이를 자랑한다. 분화구 앞이라 거센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모래바람을 방불케 하는 화산재가 이내 시야를 흐려놓았다.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없을까? 관광객의 우려 섞인 생각과 달리 이곳 사람들은 활화산을 바로 옆에 두고도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탁월한 방재 시스템을 갖춰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아간다. 화산재 속에서도 꿋꿋하게 잘 자라는 고구마, 무, 귤 등을 재배하면서 말이다. 또한 지하 1000m에서 끓어오르는 물로 즐기는 마그마 온천, 해변의 모래를 파고 그 속에 발을 담그는 모래 족욕 등 화산이 주는 선물을 누리며 살아간다.

1 사라쿠에서 즐기는 천연 검은 모래 찜질 온천  2 에비노 고원으로 올라가는 길, 곳곳에서 용출되는 온천수의 수증기  3 가고시마는 온천뿐 아니라 족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4 가고시마 시내와 사쿠라지마를 잇는 페리

이부스키, 온천의 낭만 지수를 높이다
출장의 피로가 쌓였을 때쯤 온천의 명소, 이부스키(Ibusuki)로 향했다. 유황 온천뿐 아니라 모래 온천, 바다 온천, 진흙 온천, 삼림 온천 등 다양한 온천이 밀집해 있어 온천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여행지다.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천연 검은 모래 찜질 온천을 즐기기 위해 해안가에 위치한 ‘사라쿠’로 향했다. 가고시마 방언으로 ‘산책하다’라는 뜻의 사라쿠는 이부스키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모래찜질 회관이다. 근처 호텔이나 료칸에서 즐기는 모래찜질은 인공적인 열로 모래를 데우는 방식이지만, 이곳에서는 천연 온천의 열로 데운 모래에 입욕하기 때문에 더욱 이색적인 찜질을 경험할 수 있다. 친절하게 한국어로 적어놓은 입구 게시판에는 모래찜질 온천이 특히 여성에게 좋다고 쓰여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그 효과를 직접 체험하기 위해 유카타로 갈아입고 서둘러 바닷가로 나섰다. 바다 앞에 펼쳐진 검은 모래를 밟기만 해도 뜨끈뜨끈한 열이 몸속 깊이 파고들었다. 따뜻한 모래 위에 눕자마자 직원이 다가와 얼굴을 제외한 몸 전체를 모래로 덮어주었다. 아궁이로 불을 땐 온돌방에 누운 듯 노곤하고 나른한 기분이랄까. 땀이 잘 나지 않는 체질이라도 이마에 땀이 맺히기까진 고작 10분, 전신이 화끈거리기까지 15분이면 충분하다. 한바탕 땀을 흘리고 나니 푹 자고 일어난 듯 개운함이 느껴졌다. 여행의 고단함으로 칙칙하던 피부가 맑아진 것도 모래찜질로 얻은 수확 중 하나다. 이러니 300년 전, 불치병에 시달리던 사람이 마법의 모래로 병을 치유했다는 이부스키 전설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쌀쌀한 가을에 찾아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다시 이 도시가 생각날 것 같다. 한적하지만 뜨거운 열정을 품은 가고시마가.

Travel Tip
대한항공은 동계 시즌이 시작되는 10월 27일부터 일본 가고시마 노선을 주 3회에서 4회 증편, 주 7회 매일 운항한다. 출발편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8시 55분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오전 10시 30분 가고시마 국제공항에 도착하며 귀국편은 오전 11시 40분 그곳에서 출발해 오후 1시 25분 인천국제공항에 닿는다(단, 일요일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오후 1시 30분 출발, 가고시마 국제공항에서 오후 4시 15분 출발하는 일정이다). 문의http://kr.koreanair.com

에디터 문지영 (jymoon@noblesse.com)
취재 협조 대한항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