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티머시의 미술관 백배 즐기기
흔히 미국의 3대 미술관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을 꼽는다. 그러나 단순한 수치만으로 미술관 순위를 매기는 것만큼 의미 없는 일이 또 있을까. 워싱턴 국립박물관의 회화만 해도 메트로폴리탄에 뒤지지 않고,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인상주의 컬렉션은 시카고와 보스턴 미술관에 버금간다. “중요한 건 얼마나 큰 미술관에 다녀왔느냐보다 미술관 안 소장품을 얼마나 제대로 즐겼느냐”라고 필라델피아 미술관 관장 티머시 럽은 말한다.
티머시 럽(Timothy Rub) 필라델피아 미술관 관장은 11월 5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 큐레이터 워크숍을 기념하기 위한 국제회의 연단에 올라 다음과 같이 포문을 열었다. “몇 년 전 제 동료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20세기가 컬렉션 형성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그 뛰어난 소장품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고. 컬렉션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 박물관의 역할이고, 새로운 관람객 유치와 교육이라는 미술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 미술관이 어떻게 컬렉션을 활용할지 고민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였습니다.” 페기 구겐하임이 살아생전 “20세기는 이미 우리에게 충분히 많은 천재를 선사했다. 이제는 창작의 시대가 아니라 수집의 시대다. 우리에겐 우리가 가진 위대한 보물을 보존해 대중에게 보여줄 의무가 있다”라고 말한 건 유명하지만, 그녀가 주장한 수집의 시대도 티머시 럽의 말에 따르면 지난 지 한참이다.
버몬트 미들베리 대학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하고 뉴욕 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미술사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티머시 럽은 졸업 후 1983년부터 5년간 뉴욕 시에 있는 쿠퍼휴잇 미술관에서 연구원이자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그의 연구를 통해 수많은 전시를 기획했고, 카탈로그를 개발했다. 당시 신시내티 미술관에서 그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기획한 <페트라: 스톤의 잃어버린 도시>전은 미술계에 막 자리 잡기 시작한 티머시 럽의 활약을 예고하는 전초전 같은 역할을 했다. 그의 나이 30대 초반의 일이었다.
그는 1991년,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뉴햄프셔 하노버에 위치한 다트머스 대학교 후드 미술관에서 처음 관장 직함을 달았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신시내티 미술관 관장,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클리블랜드 미술관 관장을 역임하는 동안 미술관 전시와 프로그램을 확장하고 미술관의 주요 건물을 개·보수했을 뿐 아니라 주요 컬렉션의 재설치를 관리·감독했습니다. 관장이 해야 할 일이 생각보다 많죠? 이것 말고도 미술관의 중점 프로젝트로 꼽히는 기금 모금 캠페인을 책임지고 미술관 컬렉션을 세계 각국에 순회 전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죠.” 미술관 구석구석 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그는 일당 백의 기세로 일해왔다. 그러나 본 편은 2009년 필라델피아 미술관(Philadelphia Museum of Art, PMA)에 부임하면서부터.
빽빽한 가로수가 즐비한 벤저민 프랭클린 파크웨이에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선 PMA는 미국 미술관의 전형적 표상이다. 미국 탄생 100주년을 기념, 1876년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모양의 신고전주의 대리석 건축물을 지어 설립됐다. 미국의 7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이곳은 한국실을 포함한 200개가 넘는 갤러리에 총 30만 점이 넘는 영구 컬렉션이 들어 있다. “특히 미국 컬렉션은 현존하는 최고 수준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식민지 시대와 연방 시대 아미시파와 셰이커 교도의 공예품, 필라델피아 초기 은세공품, 19세기 필라델피아 화가 토머스 이킨스의 유명한 회화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죠. 현대미술 컬렉션으로는 피카소와 달리, 미로, 데쿠닝, 플록의 작품과 세계 최대 규모의 마르셀 뒤샹 컬렉션을 자랑할 만해요. 뒤샹의 작품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는 1954년 설치한 곳에 그대로 있습니다.” 이래도 여전히 PMA가 낯설고 멀게 느껴진다면 영화 <록키>를 떠올려보자. 실베스타 스텔론이 아침마다 복싱 훈련을 위해 ‘슉슉’ 소리를 내며 조깅을 하다 제일 마지막에 뛰어 올라가는 계단이 바로 PMA의 메인 계단이다. 계단 끝에 오른 록키가 이윽고 뒤를 돌아보고 두 손을 높이 치켜드는 순간 카메라가 비추는 곳은 PMA 앞으로 드넓게 펼쳐진 필라델피아 다운타운. 로댕 미술관과 프랭클린 과학박물관 등 손을 뻗는 곳 어디라도 예술이 닿는 필라델피아에서 온 티머시 럽과 마주 앉았다.
1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메인 계단. 영화 <록키>에서 실베스타 스텔론이 조깅하던 그 계단이다.
2 Ceremonial Teahouse: Sunkaraku (Evanescent Joys) Designed by Ogi Rodo, Japanese, 1863-1941, Japanese c. 1917 Wood, bamboo, stone, metal, rush, plaster, paper, ceramic, fabric and mulberry bast cord. Purchased with Museum funds, 1928.
한국에서 ‘관장’이란 타이틀은 우아하게 전시를 관람하거나 작가들 만나기를 잠시 포기한 채 복잡한 행정 업무와 끊임없는 회의를 소화해내야 하는 직책입니다. 미국의 상황은 어떤가요? 서울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으로 소화한 스케줄이 궁금해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시아 미술관에 다녀왔어요. 아시아와 그 외 나라들 간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의 상호 연관성을 탐구하는 미술관인데, 그곳의 디렉터를 만나 앞으로 함께할 프로젝트에 대해 회의를 했거든요. 저 역시 그곳의 보드 멤버이기도 하고요. 나파밸리에도 미팅이 있어 다녀왔는데, 아주 환상적이었어요. 거기서 바로 서울로 출발해 어제 저녁에 도착했습니다.
아직 호텔 근처 갤러리와 새롭게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가보지 못하셨겠네요? 네. 아마도 못 갈 것 같아요. 서울관이 위치한 장소가 역사적으로 많은 의미를 지닌 곳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컬렉션도 훌륭하다고 들어서 꼭 가보고 싶었는데, 내일 시드니로 떠나야 해서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겠네요. 지난 2월 PMA와 국립중앙박물관의 교류전으로 열린 <미국 미술 300년, Art Across America> 순회전이 막 시드니에 도착해서 오프닝에 참석해야 하거든요.
그 전시는 서울에서도 흥행했어요. 신대륙 발견부터 오늘날의 미술에 이르는 미국 미술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였죠. 독립 혁명기 워싱턴 초상화부터 앤디 워홀의 재클린 케네디 초상화 연작 시리즈 ‘재키’까지 다양한 작품이 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전시를 위해 우리 미술관을 비롯해 LA 카운티 미술관과 휴스턴 미술관, 테라 미국미술재단에서 걸작을 많이 보냈어요. 찰스 윌슨 필이라는 화가가 미국 독립 투쟁기인 1772년에 그린 캔버스 유화 ‘캐드월러더 가족’과 토머스 에이킨스, 존 싱글턴, 잭슨 플록에 이르기까지 미국 미술이라 부를 수 있는 회화와 공예품 168점이 한자리에 걸렸죠.
미국에서도 미국 예술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형 전시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미국에서는 미술관끼리 이런 자연스러운 협업을 자주 진행하나요? 앞에서도 강조했듯 이제 미술관들은 컬렉션 확장에 전념하기보다 이미 구축한 컬렉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성화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내년 3월부터 5월까지 미국 내 조선왕조 미술품을 조망하는 특별전 <조선왕조의 미술>을 기획하고 있어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 중심이 될 예정이죠. 이런 프로젝트는 한국 문화의 범위와 특성, 성과를 미국인에게 전달하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한국 도자기나 회화, 금속공예품의 소규모 상설전도 좋지만 중요한 한국 미술 전시에 우리의 시간과 자원을 쏟는 노력은 꼭 필요합니다. 휴스턴 미술관과 LA 카운티 미술관과 협력해 순회전 형식으로 치르려고 해요.
그 전시에서는 어떤 것을 보여주실 예정인가요? 조선왕조의 왕실 가마와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택한 조선시대의 불교 생존 방법 등 다양한 주제에 초점을 맞추려고 해요.
한국인으로서 문득 부끄러워지네요. 미국인보다, 또는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보다 어쩌면 우리의 전통미술에 더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국인만 해도 자국의 전통 예술에 경외 어린 시선을 보내곤 하는데, 유독 한국인은 자국의 전통 예술에 대해 인색한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서양 미술만 좋아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미국인은 물론 PMA를 찾는 해외 방문객들이 한국 미술에 많은 관심이 있다고 봅니다. PMA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 참여도만 봐도 알 수 있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국보급 한국 유물에도 관심이 많아요. 한국에서만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 같네요.
필라델피아에 기증한 한국 최초의 유물은 뭔가요?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고 20여 년이 지난 1903년, PMA에 15세기 국화 문양 분청사기 접시를 기증했습니다. 우리 미술관 최초의 한국 유물이죠. 현재 우리가 소장한 한국 미술품은 300점이 넘어요.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최대는 아닐지라도) 한국 미술 컬렉션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PMA는 한국인 큐레이터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국가별로 큐레이터를 다 둘 수는 없을 텐데, PMA 내에서 한국 미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06년 한국 미술 전담 큐레이터를 채용한 후 그 자리가 영구직이 되었죠. 이건 미국 내 미술관에서도 굉장히 드문 케이스입니다. 미술사를 공부한 우현수 큐레이터가 7년째 그 자리를 담당하고 있죠. 그녀는 한국 미술 소장품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중요한 유물을 입수하고 정기적으로 유물을 교체할 뿐 아니라 새로운 기증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죠.
PMA의 유럽 미술 컬렉션 중 우리가 알 만한 작품으로 뭐가 있을까요? 반 고흐의 ‘해바라기’나 세잔의 ‘대수욕도’, 에드가르 드가의 ‘발레 수업’, 르누아르의 초기 작품 ‘르그랑 양의 초상’, 브란쿠시의 대리석 조각 ‘키스’ 등이 있습니다. 유럽 인상파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컬렉션을 기증받아 특히 인상파의 작품이 유명하죠.
그러고 보니 지난 2009년에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모네에서 피카소까지> 전시가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전이었네요.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세잔, 고흐, 피카소, 고갱, 루소 등 사실주의 작가부터 인상주의, 아방가르드, 미국의 근·현대 미술까지 총망라한 걸로 기억해요. 네. 모든 작품이 훌륭하지만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아끼는 건 클로드 모네의 만년 작과 카미유 피사로의 작품, 피카소의 작품입니다.
1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유럽 갤러리 전경
2 Pillared Temple Hall Made in Madurai, Tamil Nadu, India, c. 1550 Granitic stone
3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전경
4 Horse and Man Armor German, 1507 (horse armor) and c.1505 (man armor)w Made in Nuremberg, Germany Horse Armor: Etched and partially blued and gilded steel, brass, leather, textiles Man Armor: Etched and partially blued and gilded steel, leather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모두 미술사학을 전공했는데, 미술에 대한 호기심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건가요? 가족의 영향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시작은 음악이었어요. 아버지는 피아노와 오르간을 수준급으로 연주했어요. 아버지 곁에서 바이올린을 배웠죠. 음악을 연주하는 것도, 남의 연주를 듣는 것도 참 좋아했어요. 아,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했고요. 음악 속에 있을 때면 뭔가 성취감을 얻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가족들은 제가 음악을 공부할 거라고 기대했죠.
그런데 어떻게 미술을 하게 됐나요? 자라면서 서서히 사진에 관심이 생겼어요. 그러면서 시각적 기능을 하는 예술, 즉 비주얼 아트에 관심이 쏠렸죠. 그런데 제가 워낙 독서는 물론 글 쓰는 것도 좋아하다 보니 미술 중에서도 미술사를 공부하게 됐습니다.
미술사를 전공하고도 미술관 밖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평론가가 될 수도 있고. 어떻게 졸업 후 지금까지 한 번도 미술관을 떠나지 않은 건가요? 뉴욕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바로 미술관에서 일하기 시작했는데 미술관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공공장소에서 대중과 함께 미술을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죠. 예술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 때론 아시아 미술을, 때론 미국 미술을, 때론 조각을, 회화를 소개하는 것이 20대의 제겐 기이하고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그래서 아주 빠르게 적응했고, 직업에 만족하며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2009년 필라델피아 미술관 관장으로 취임했을 때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상황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이 점을 아셔야 해요. 2009년에 PMA에서 관장을 뽑은 이유는 그전 관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에요. 무려 25년을 PMA를 이끌어온 분이었죠. 그분은 최고의 관장이었고 누가 뭐래도 PMA를 대표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새로 부임한 제가 명심해야 할 건 두 가지였어요. PMA는 이미 너무 많은 걸 갖추고 소유한 미술관입니다. 천혜의 주변 환경, 높은 퀄리티의 컬렉션, 헌신적이고 똑똑한 직원 등. 제가 해야 할 일은 PMA의 이런 특성을 잘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에게 아주 쉽게 ‘변화의 바람’을 기대하죠. 하지만 전 변화보다 조화가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조화를 이룬 다음 과정은 뭐였나요? 2009년은 우리 모두 세계가 직면한 경제적 위기를 경험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안에서 어떻게 미술관을 공고히 유지할지 고민했습니다. 예산은 늘 한정되어 있지만 그 안에서 ‘미술관의 발전’을 생각해야 했죠. 미래의 잠재 관람객인 어린아이들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고심했고, 연령과 직종을 세분화한 미술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노후된 미술관을 어떻게 레노베이션할지 고민하는 것도 제 몫이었습니다. 부임 후 지금까지 수년간 미술관 전시 사업을 재정비했고, 미술관의 7개 주요 건물을 보수하고 작품을 재설치했습니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클리블랜드 미술관 관장을 역임하면서 미술관의 중점 프로젝트인 기금 모금 캠페인 총책임을 맡기도 하셨습니다. 미술관 관장 자리는 이처럼 펀드레이징 같은 행정 지원부터 전시의 큐레이팅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뭔가요? 매일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펀드레이징도 어렵지만 늘 변화하기 위해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하는 점이 힘듭니다. 미술관 보드 멤버, 비평가, 후원가, 정치가 등 많은 사람을 만나 미술관 발전을 위해 협조를 구하고 설득합니다. 사람과 좋은 관계를 쌓으려면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죠. 그 신뢰는 결국 미술관에서 나옵니다. 전시의 질, 관람객의 수, 훌륭한 연구 성과, 지역 주민과의 올바른 소통 등이 바탕이 될 때 그제야 미술관이 잘 돌아갑니다.
필라델피아가 조금씩 쇠퇴기를 걷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 쇠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인구 면에서 보면 오히려 증가 추세에 있죠. 동부 지역은 이미 1960~1970년대에 경제 위기를 겪고 그것을 잘 극복해왔습니다. 나는 필라델피아가 지금 매우 좋은 시기를 맞았다고 생각해요. 뉴욕과 보스턴, 시카고처럼 시민의 교육 수준이 매우 높고 창의적인 도시죠. PMA가 문화적으로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어요. 지난 10년간 연평균 8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는데, 앞으로 5년 내에 연평균 100만 명의 관람객이 찾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연평균 관람객 80만 명은 미국에서 어느 정도 수준인가요? 관광지에 있는 LA 카운티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에 비하면 적지만 다른 지역의 미술관보다는 많은 편입니다.
라이벌로 생각하는 미술관이 있나요? 보스턴 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LA 카운티 미술관, 휴스턴 미술관, 세인트루이스 미술관 등 우리보다 크고 작은 미술관이 모두 라이벌이라면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다들 고유의 컬렉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랭킹을 매기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일 사이사이에 주어지는 2%의 개인 시간에는 무엇을 하나요? 전 손 쓰는 일을 좋아해요. 그래서 쉬는 날엔 집에 머물며 고장 난 물건을 고치고, 보수할 곳이 있으면 집 안 곳곳을 손보기도 하죠. 그리고 집 밖에서 말을 많이 하기 때문에 퇴근해 집에 들어가는 동시에 가족들에게 ‘no talking’이라 말하고, 혼자 독서를 합니다. 제겐 독서가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거든요.
마지막으로 미술계에 몸담길 잘했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인가요? 전시를 기획하고 큐레이팅하며 컬렉션을 선정하고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즉 미술관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퍼포먼스를 경험할 때 이 직업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