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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NOW

앨릭스 카츠는 1927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1950년대부터 줄곧 초상화를 그렸다. 뉴욕 한복판에서 작업하며 온갖 미술 사조를 경험했지만, 끝까지 독자적 회화 세계를 고수해 현재 가장 뉴욕적인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진짜 뉴요커이자 시대의 어른인 그가 전하는 어떤 예술 세계.

Alex Katz앨릭스 카츠

Walking, Oil on canvas, 213.4×152.4cm, 2010
ⓒ David Balicki

Elizabeth, Oil on linen, 243.8×304.8cm, 2010
ⓒ David Balicki

예술품 경매 사이트 ‘아트시(Artsy.com)’는 지난해에 살아 있는 작가 중 최고의 10인을 꼽았다. 그중 대표 작가로 앨릭스 카츠의 이름이 대두됐다. 한국 나이로 올해 90세. 시니컬한 뉴욕 말씨를 쓰는 이 노화가는 오늘도 꿋꿋이 초상화를 그린다. 그는 지난 60여 년간 추상 표현과 색면 회화, 팝아트 등의 미술 사조를 경험했지만, 기존 초상화의 틀을 버리고 거대한 크기로 확대한 화면과 화면 분할 등의 기법으로 개성적인 인물 회화를 발전시켰다. 인물을 그릴 때 세밀한 부분을 과감히 생략하고, 두드러지는 특징만 잡아 단순화해서 대상을 객관적으로 표현한다. 많은 이가 “트렌디하다” 말하는 것도 이 때문. 그런 그의 작품을 오는 7월 중순까지 서울 더페이지갤러리를 통해 소개한다. 초상화와 풍경화를 비롯한 최근작 30여 점을 볼 수 있는 개인전이다. 독특한 색채로 삶의 한 순간을 영원히 정지시키는 초상화를 만나고 싶다면 꼭 한번 들러보자.

Vivien in Black Hat, Lithograph on paper, 72×101cm, 2010
ⓒ David Balicki

제한된 범위의 풍부한 색채 표현으로 이전에 없던 초상화를 그리는 앨릭스 카츠
ⓒ David Balicki

언제 처음 미술 공부를 하셨나요? ‘앨릭스 카츠’가 탄생한 그 시작이 궁금합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진부한 대답일지 모르겠지만 그림을 계속 그려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지금의 저를 만든 셈이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뉴욕에 있는 쿠퍼유니언 미술학교에 갔고, 이후 스코히건 조각학교에 다녔습니다.

옛 기사를 보니, 30대 이후 자주 유럽에 다녀왔습니다. 스코히건 조각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첫 개인전(1954년)을 연 후 한창 작품 활동에 재미를 붙인 시기였죠. 혹시 당시의 유럽 여행이 당신 안에서 뭔가를 움직이게 했나요?
사실 전 35세까지 한 번도 유럽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처음 프랑스에 갔을 때 루브르 박물관을 먼저 찾았죠. 거기 있는 작품들의 크기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나 크고 화려한지 촌놈처럼 빠져들었죠. 제가 파리에 가기 전 동료 작가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이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지금까진 우리 작품이 크다고 느꼈겠지만, 곧 놀라 자빠질걸.” 쉽게 말해 제 작품에 ‘대작’이 많은 건 당시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얘기입니다만, 전 첫 전시 이후 점점 작품의 크기를 키워왔습니다. 첫 개인전 당시 누군가 제게 “사람과 사물을 그리는 건 별로 가치가 없다”고 말해서였죠. 오기가 발동했는지, 전 그 이후 신념처럼 더 큰 초상화를 그려왔죠.

여하튼 당신은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와 1960년대의 팝아트 미술 사조를 온몸으로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자신만의 화풍을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았죠.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팝아트만 놓고 보면 전 그것에 일절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휩쓸릴 일도 없었죠. 예부터 저는 제 삶에서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렸습니다. 하지만 팝아트는 그렇지 않았죠. 팝아트는 그 주제가 삶이 아닌 복제(카피)에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초상화를 많이 그리는 탓에 당신의 작업은 대부분 모델을 필요로 합니다. 혹시 모델을 선택하는 자신만의 기준이 있나요?
전 오랜 시간 아내인 아다(Ada)와 아들 빈센트(Vincent), 그리고 뉴욕에 사는 여러 예술가 친구와 동료, 선후배를 그렸습니다. 이따금 뉴욕 교외에 사는 사람들도 그렸죠. 그들 모두 저와 가까운 사람으로, 성질이 그리 모질지 않다는 게 특징입니다.

모델 중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 건 어떤 ‘본능’ 같은 거겠죠?
네, 그런 셈이죠.

말이 나온 김에 부인 아다 얘기를 좀 해보죠. 그녀는 50여 년간 당신 작품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미술사를 보면 한 명의 작가에게 이렇게 오랫동안 관심을 받은 모델도 드물죠. 이에 대해 한 말씀 해주세요.
아다를 처음 만난 건 오래전 제 전시 오프닝에서였습니다. 그녀는 저와 함께 전시를 연 작가의 친구였죠. 그때 아다는 제가 이전까지 줄곧 그리고자 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과학자임에도 예술에 조예가 깊었죠. 잘 아시겠지만 그녀는 지난 50여 년 동안 저를 위해 포즈를 취해줬습니다. 어느 해부터 흰 머리가 눈에 띄게 늘었지만 짙은 눈동자와 이집트 왕비 네페르티티를 닮은 당당함은 젊은 날의 모습 그대로죠. 언젠가 평론가 어빙 샌들러가 제가 그린 아내 그림을 보고 한마디 하더군요. “여인, 아내, 엄마, 뮤즈, 모델, 능란한 안주인”이라고.

Nude 1, Oil on canvas, 213.4×152.4cm, 2009
ⓒ David Balicki

Yellow Flags, Wood cut on paper, 51.4×75.9cm, 2013
ⓒ David Balicki

당신의 작품 중엔 피사체가 중앙에 있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또 팔이나 머리가 잘리는 등 인물을 네모 칸 안에 억지로 구겨 넣은 듯한 인상을 주는 작품도 많죠.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건 제가 1960년대 초의 미국 TV 방송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미국 방송은 공격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여러 동작과 사진을 일부러 잘라 구겨 넣었죠. 결과적으로(회화 작품에서) 인물의 끝부분을 자르는 기법은 훨씬 에너지 넘치는 느낌을 전합니다.

프레이밍만으로 모종의 드라마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군요?
네, 그렇습니다.

한편 당신 작품엔 시간의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 듯합니다. 배경도 주로 단색이고, 색이 들어간 작품도 배경은 시간을 알 수 없는 몽환적인 느낌이죠. 개인적 생각입니다만, 작품에 빛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요, 제 작품이 그렇게 보이나요?(웃음) 전 사실 나름 작품 속 빛을 아주 특별하게 표현합니다. 이는 시간과도 관련이 깊죠. 전 아침에 자주 해변에 나가고, 오후엔 그 빛을 그리기 위해 집에 돌아옵니다. 아침의 해변은 아주 노랗고 독특해 금세 색이 변하죠. 저는 그렇게 금방 사라지는 빛을 그림 속에 잡아두기 위해 애씁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애를 쓰시는’지요?
‘프린터’처럼 그린다고 할까요? 오늘이 지구의 마지막 날인 양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죠. 하나를 그리면서 빨리 다음 그림을 그리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요. 그래서 아무리 큰 작품도 하루에서 이틀이면 완성하죠. 사람이든 풍경이든 대상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거기서 잡아낸 이미지를 그리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오래전 인상파 화가들이 작품에 포착한 빛은 겹겹이 칠한 조금은 ‘느린 빛’입니다. 하지만 제 작품 속 빛은 그 반대죠. 참고로 전 사진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실물을 보고 스케치하는 데 도가 텄습니다.

몇몇 평론가는 당신의 작품이 시네마스코프(와이드스크린 방식에 따른 대형 영화)와 광고 간판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당신도 한 인터뷰에서 옛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고요. 이 얘길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예전의 어떤 영화에서 대체 무엇을 본 건지요?
교외나 시골을 배경으로 한 미국의 1930~1940년대 영화를 말합니다. 실제로도 전 아내와 결혼하기 전 데이트 장소로 극장을 자주 찾았죠. 우린 서부영화를 특히 좋아했습니다. 전 그 영화들이 사용한 광각렌즈와 인물이 말하고 옷 입는 법, 사랑과 행복, 범죄와 처벌의 개념에 흥미를 느꼈죠. 당시 제가 느낀 감정이 제 작품에 여전히 드러납니다. 당시 영화의 특징인 넓은 화면에도 매료됐는데, 그건 회화 감상으론 쉽게 느낄 수 없는 감정으로 시각의 틀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에 가까웠죠. 그런 점도 분명 제게 영감을 줬어요.

이전의 한 인터뷰에서 “나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단순한 모습을 그리지만, 그 안에 누구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복잡성을 담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이 ‘복잡성’이라는 건 하나하나의 작품에 대체로 어떻게 표현되나요?
현대의 광고 포스터나 그래픽 등에 등장하는 인물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클로즈업된 단조로운 형태와 밝은 색을 띱니다. 이런 걸 미술계에선 추상과 구상, 전통과 아방가르드를 결합한 새로운 회화 기법이라고 하죠. 한데 전 이런 장르를 1950년대부터 구현했습니다. 그걸 만들어내는 방법은 결코 쉽지 않았죠. 흔히 사람들은 제 작품 속 인물이 감정을 노출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또한 하나의 명확한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얼굴의 세밀함은 생략하지만, 풍부한 색감으로 내면을 드러내는 이치죠. 그 때문에 전 제 작품이 풍기는 어떤 가벼움 속에 ‘작은 꿈틀거림’이 담겨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결코 단순하지 않죠.

당신은 오랫동안 현대미술의 중심인 뉴욕에 살고 있습니다. 또 그곳의 많은 평론가와 컬렉터가 당신 작품을 “트렌디하다”고 평하죠. 이런 평가가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나요?
제가 그림에 담고자 하는 건 전형적인 미국인입니다. 현대인의 허무한 일상을 강한 안색이 아닌 밝은 색으로 표현하죠. 거창한 철학은 없습니다. 그냥 그릴 뿐이죠. 제가 트렌디하다고요? 글쎄요.

Blue Moon, Oil on masonite, 30×23cm, 2000
ⓒ David Balicki

Trees, Oil on board, 24.1×19.1cm, 2006
ⓒ David Balicki

알릭스 카츠
1927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 출생. 1950년대 이래 인물초상을 주로 그리며 가장 뉴욕적인 화가로 자리매김 했다. 자신의 영원한 뮤즈인 아내 아다(Ada)와 아들 빈센트(Vincent), 친구들과 동료 예술가들은 함께 숨쉬며 삶을 공유한 그의 모델이다. 전통적 초상화이면서 추상표현주의 회화처럼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그의 작품은, 단순하고 과감한 화면 구성과 대담한 채색, 절제된 분위기가 특징이다. 또 작품 속 인물들은 감정을 노출시키지 않고 드러냄과 감춤을 자유자재로 구사, 풍부한 색채 속에서 현대적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Black Dress Yvonne, Screenprint on Saunders Waterford 425gsm paper, 203×76cm, 2015
ⓒ David Balicki

Vincent, Oil on board, 40.6×30.5cm, 2004
ⓒ David Balicki

Kym, Serigraph and woodcut, 68.5×82.5cm, 2011
ⓒ David Balicki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제공 더페이지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