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으로 말하는 디자인
건축에서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모양을 내는 것? 아니면 옆집보다 내 집이 더 멋스러워 보이는 것? 젊은 건축가 그룹 SoA가 생각하는 건축에서의 디자인은 바로 사회적 코디네이터의 역할이다.
SoA의 이치훈, 이재원, 강예린 소장
바람이 불면 사방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났다. 바닥 곳곳에 놓인 발로 만든 깔판 위에 누우면 고소한 나무 향기가 올라왔고, 머리 위에선 고집스럽게 짠 갈대발 천장이 한여름의 햇빛을 툭툭 쳐냈다. 요철 모양으로 물결치듯 이어진 갈대발 지붕 아래 머문 시간. 그런데 이런 것도 ‘건축적’ 경험이라 해야 하나? 이는 지난해 여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당에 설치한 SoA(Society of Architecture)의 ‘지붕 감각’ 아래서 느낀 감정이다. ‘2015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에 선정돼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인 SoA의 이 작품은 지난해에 서울 북촌 마을의 또 다른 볼거리였다.
SoA는 2010년 이치훈과 강예린이 설립한 건축사 사무소다. 여기에 2014년 이재원이 합류하면서 지금의 3인 체제를 갖추었다. 서양의 많은 대형 건축설계 사무소가 그렇듯, 이들도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건축가 그룹을 지향한다. 힘을 모아야 하는 공동 프로젝트와 각자 관심을 둔 개별 프로젝트를 병행한다. 일하는 스타일도 제각각 다른데 강예린 소장이 직관적이라면, 이재원 소장은 분석적이고, 이치훈 소장은 의외의 아이디어로 작업의 방향을 순식간에 틀어버리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사실 미술계에선 그리 낯선 이름이 아니다. 사무소 설립 이듬해부터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2012년엔 이탈리아 국립 현대미술관 전시 등으로 이름을 알렸다. 또 2013년부터 최근까지 안양석수도서관의 가구 디자인 프로젝트와 함께 서울시립미술관의 <피스마이너스원> 전시에서 공간 디자인을 소개했고, 몇몇 무용가와 함께 건축과 무용을 결합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전국의 가볼 만한 동네 도서관을 소개한 <도서관 산책자>(2012년)라는 책을 내기도(강예린과 이치훈 소장) 했는데, 이 책은 지금도 몇몇 커뮤니티에서 건축학도와 책벌레들에게 추천하는 ‘명저’다.
모든 건축가 집단이 그렇겠지만, 이들은 그간 몇몇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 문화적 저변과 사회 지리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아왔다. 또 설계도를 그리고 집을 짓는 일에만 집중하기보다 건축과 공간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 등 전방위에 걸친 활동을 해왔다. 솔직히 말해 ‘전시’와 ‘디자인’이란 단어가 한 건축사 사무소의 지난 몇 년간 활동에 이렇게까지 많이 ‘침투’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모든 게 건축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괜찮지 않을까요? 또 매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방법론이나 생각이 개입하게 마련인데, ‘언어’가 고정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런 일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이치훈 소장의 말엔 이들이 프로젝트를 대하는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건축가는 사회적 조건이라는 제약 아래 최대한 다양한 설계로 여러 삶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SoA는 ‘건축의 사회(Society of Architecture)’의 약자다. 사회적 조건을 대면하고 이를 건축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지은 이름이다. 이들은 도시와 건축의 물리적 공간 형태를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구조와 체계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그 때문인지 이들은 지난 몇 년간 사회적 조건을 대면하고 이를 건축으로 풀어내는 데 최적의 조건인 마을의 도서관 건축에 집중해왔다. “도서관은 아주 매력적인 공간이에요. 각 시대마다 그 성격이 변해왔죠. 오래전엔 학자들이 기거하는 공간이었고,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만 해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었죠. 최근엔 시민이 그 동네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로 변했고요. 사회적 맥락에 따라 변화하는 속성이 도서관의 가장 큰 매력이죠.” 강예린 소장의 말이다.
서울 남가좌동에 위치한 다세대주택 ‘토끼집’ / ⓒ 신경섭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의 <미묘한 삼각관계>전에서 선보인 SoA의 공간디자인 / ⓒ 신경섭
이들은 그간 눈에 보이는 질료의 이면, 건축이 다루고 대면해야 하는 더 중한 일에 주목해왔다. 비대하고 복잡하며 자유로운 현대 도시의 삶을 이루는 조건, 그것에 대한 비판적 문화 분석을 통해 도시와 건축에 접근해왔다. 한 예로 2013년 서울 남가좌동에 지은 이들의 ‘토끼집’을 살펴보자. 급격한 사회 변화로 4인 가족에서 1인 가구 체제로 주거 형태가 바뀌어가는 현시대상을 반영한 토끼집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소규모 주택 임대 서비스를 표방한다. SoA는 이를 통해 여러 개의 방을 한 층에 구겨 넣는 다세대주택의 기존 틀에서 벗어나, 천장을 높이고 원래 있던 담장을 제거하는 등 주거 공간의 다양화에 힘썼다. “오랜 시간 건축에 요구돼온 조건이라는 게 있어요. 안정적 구조라든지 디자인적 요소라든지 여러 가지가 존재하죠. 하지만 우리가 고민하는 건 이런 거예요. 정녕 ‘그것’에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죠.” 이치훈 소장의 말이다.
SoA는 지난 몇 년간 앞서 말한 대로 다양한 도서관 프로젝트(안양석수도서관의 가구 디자인 프로젝트와 성 평등 정책 전문 도서관 ‘여기’의 공간 디자인 등)에 참여했다. 도서관이 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공공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도서관에 실제로 어떤 사람이 모이고, 누가 무슨 프로그램에 참여하는지 등 도서관의 물리적 구성 외에도 도서관을 실제 움직이는 인적 구성을 깊이 있게 관찰하며 지금도 여러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쉽게 말하면 ‘사회적 코디네이터’로서 건축가의 역할을 실천하는 것. “사람이 들어가 있을 수 있는 걸 짓는 것만이 건축가의 역할은 아니라고 봐요. 건축은 문화의 텍스트로 작용해야 하죠. 들어가 사는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도 건축이지만, 건축은 책이나 전시 등 콘텐츠의 측면도 지니고 있으니까요.” 강예린 소장의 말이다.
건축과 예술 그리고 ‘전형적이지 않아’ 더 어려운 도서관 건축 등에 집중하는 SoA의 활동엔 분명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매번 새로운 분야를 공부해야 하고, 시행착오도 겪는 건 당연지사. 그럼에도 이들은 건축의 변화 없이 인류의 환경 개선은 불가능하다고 믿으며, 사회와 건축 그리고 다양한 예술 활동에 힘쓰면서 더 나은 삶을 그려나가고 있다. 2014년 경기도 안양시의 5개 버스 정류장에 전시한 공공 예술 프로젝트 ‘세 도시 이야기’에서 우리의 신도시가 얼마나 규격화된 거주 형태를 강요하는지 보여주는가 하면, 지난해에 문을 연 경남 창녕의 우포자연도서관을 통해 지역사회 안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건축을 선보이기도 했다. “건축은 사회와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어요. 결국 그럴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사람들에게 뭔가 하나라도 나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건축을 하고 싶어요.” 이재원 소장의 말이다.
건축은 사회를 반영한다. 과거에도 건축은 시대를 담으려 노력했고, 미래를 제시하려는 노력을 이어왔다. 현대인의 삶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건축에 담고자 하는 SoA의 노력이 앞으로 더 확장됐으면 한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보라(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