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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ssence of Dior

BEAUTY

파리의 대표적인 박물관 그랑 팔레. 수많은 전시와 쇼를 펼친 장소지만, 올가을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러운 향으로 그랑 팔레가 물들 예정이다. 디올 하우스 역사상 최초로 공개하는 미스 디올 전시회를 <노블레스>가 미리 엿보았다.

1 디올 룩 스케치  2 초창기 미스 디올 향수 캠페인  3 1947년 무슈 디올이 발표한 뉴 룩 컬렉션  4 하운즈투스 패턴의 미스 디올 패키지  5 최초의 미스 디올 향수

미스 디올,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전설
11월 12일부터 24일까지 그랑 팔레에서 열리는 전시회의 주제는 바로 디올을 대표하는 향수, 미스 디올이다. 하지만 단순한 향수 전시회라고 생각하면 오산. 무슈 디올의 첫 향수, 미스 디올은 향수를 넘어 디올 하우스의 정신을 담은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가녀린 몸매와 당당하고 도도한 몸짓, 파리지엔 특유의 무심함과 공주 같은 우아함이 묘하게 어우러져 눈부시게 빛나는 미스 디올은 사실 무슈 디올의 여동생 카트린 디올에게 영감을 얻은 것. 1947년 12월, 무슈 디올은 자신의 첫 번째 컬렉션을 앞두고 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줄 ‘사랑의 향기가 나는 향수’를 만들었다. 이 멋진 향수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던 중, 모델 미트자 브리카르가 자신의 살롱을 찾은 카트린을 ‘미스 디올’이라고 부른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의 첫 번째 향수 ‘미스 디올’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 당시 향수와는 전혀 다른, 세련되고 우아한 젊은 여성을 떠올리게 하는 시프레 노트의 미스 디올은 파리의 모든 살롱과 댄스파티, 그리고 사교계에 처음 데뷔하는 여성에게 없어선 안 될 향수로 대중의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미스 디올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보틀을 장식한 리본과 하운즈투스 패턴일 것이다. 하지만 최초의 미스 디올은 여성의 우아한 곡선미를 연상시키는 패키지에 담아 선보였다는 사실. 지금의 전설적인 보틀 디자인으로 바뀐 것은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다. 무슈 디올은 버티클 컬렉션을 준비하며 클래식한 기존 보틀에서 벗어나 하운즈투스를 새긴 슈트처럼 깔끔하게 재단한 새로운 미스 디올을 선보였다. 여기에 디올 하우스의 가장 강렬한 코드 중 하나인 보타이에서 영감을 얻은 리본을 장식해 지금과 유사한 미스 디올 보틀이 탄생하게 되었다.
미스 디올은 그 시대의 젊은 여성을 대변하며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하지만 언제나 디올의 영혼을 잃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오늘날 디올의 퍼퓨머 크리에이터 프랑수아 드마쉬가 선보이는 미스 디올 역시 우아하면서도 활기차고, 매혹적이며 풍부한 향으로 여전히 미스 디올의 매력을 선사하고 있다.

6 미스 디올 패키지 스케치  7 미스 디올의 첫 번째 광고 일러스트  8 무슈 디올의 초상화  9 디올 쿠튀르 드레스를 입은 모델들  10 2013년에 출시한 미스 디올 오 드 투왈렛  11 미스 디올의 상징적인 리본 문양

그랑 팔레에서 만나는 미스 디올
그랑 팔레 쿠브르 갤러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디자이너이자 조향사였던 무슈 디올의 사진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어 파리 몽테뉴 거리 30번지에 위치한 디올 쿠튀르 하우스를 떠올리게 하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무슈 디올의 삶과 그의 작품에 관한 다양한 아카이브를 만날 수 있다. ‘그랑빌에서 그라스까지, 무슈 디올의 정원과 집’, ‘1947 미스 디올, 첫 패션쇼를 장식한 향수’, ‘몽테뉴 거리 30번지의 여성들’, ‘미스 디올과 스타들’, ‘라프 시몬스의 미스 디올’ 등 다양한 주제와 함께 이를 대표하는 귀한 사진과 원본 문서 그리고 디올의 오트 쿠튀르 드레스 등이 전시장을 풍요롭게 채운다.
이번 전시회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현대 여성 작가와 미스 디올의 컬래버레이션이다. 전시회를 준비하며 디올은 지난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스 디올을 현대로 이끌고자 전 세계 젊은 여성 아티스트를 초청해 이들이 자유롭게 예술적 표현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향의 구성과 보틀의 실루엣, 미스 디올의 뮤즈 그리고 역사 등 미스 디올의 특징적인 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15개의 컨템퍼러리 작품은 그 작품을 탄생하게 도와준 다양한 미스 디올 레퍼런스와 함께 나란히 전시할 예정이다.

디올과의 컬래버레이션 전시를 앞둔 작가 이불

미스 디올이 선택한 그녀
디올의 대표적 향수, 미스 디올이 전 세계 15명의 젊은 여성 아티스트를 그랑 팔레 파리로 초대했다. 미스 디올의 부름을 받은 유일한 한국 작가 이불을 성북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디올과의 컬래버레이션 전시를 한 달여 앞둔 그녀는 시험을 앞둔 여고생처럼 긴장감을 보이다가 딸을 시집보낸 엄마처럼 품 떠난 작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서울 시내지만 내비게이션에도 잡히지 않는 성북동의 꼬부랑길. 작가에게 받은 약도에 의지해 꼭대기에 이르자 그림 같은 작업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길 끝에 자리한 이불의 작업실은 작가에게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는 곳답게 운치 있고 근사했다. 그런데 작업실 문을 연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으로 넘쳐날 것 같던 그녀의 작업실은 휑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걸어다닐 수 없을 만큼 천장부터 바닥까지 작품으로 꽉 차 있었어요. 신작들을 보여드릴 수 없어 아쉽네요.” 그도 그럴 것이, 9월 파리의 갤러리 타데우스 로팍에서 열리는 전을 비롯해 10월 5일부터 내년 6월 9일까지 무담 룩셈부르크에서 개최하는 대규모 개인전, 그리고 11월 12일 미스 디올과의 컬래버레이션 전시 까지, 올 하반기 유럽 각지에서 선보일 전시 준비로 작업실에서 밤낮없이 파묻혀 지냈다. 보통 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3년의 시간을 쏟는데, 이런 예술혼과 열정이 그녀를 세계적 작가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일찍이 세계 미술계에서 한국 미술의 자존심을 세우며 눈에 띄는 활동을 해온 작가 이불은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이후 2002년 뉴욕 뉴 뮤지엄, 2004년 시드니 현대미술관 등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지난해에는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로 도쿄 모리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개최해 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국제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한국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이불의 이름이 선두에 오른다. 매 전시마다 ‘역시 이불이다’라는 말이 나올 만큼 새로운 작품을 선보여온 작가 이불. 자식과도 같은 작품들을 프랑스와 룩셈부르크로 떠나보내고 막 한숨 돌린 그녀와 마주 앉았다.

1,2 그랑 팔레 파리에 전시될 이불의 미러 작품  3 미스 디올의 뮤즈 나탈리 포트먼  4 디올 뉴 룩 컬렉션 스케치

미스 디올의 15명 작가로 선정됐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지난해 초 큐레이터 에르베 미카엘로프(Herve Mikaeloff)에게 미스 디올의 전시 제안을 받았어요. 그간 명품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탁월한 기획 능력을 인정받아온 큐레이터 미카엘로프는 201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아제르바이잔 파빌리온 책임자로 선정된 인물입니다. 작가로서 함께 일해보고 싶은 능력 있는 큐레이터인 데다 15인에 선정된 여성 작가도 각자의 위치에서 최고의 작업을 펼쳐온 이들이라 저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어요.
미스 디올에서 받은 영감을 어떤 식으로 작품에 녹여냈나요? 이번 전시 주제인 ‘향수’에 포커스를 맞추고 작품 구상에 몰두했습니다. 1차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향의 은유적 표현 방식을 찾았고, 더 나아가 향을 매개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평소 해온 작업 방식과 디올과의 컬래버레이션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개인전과 이번 컬래버레이션 같은 그룹전은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가장 큰 차이점은 스트레스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인데, 이번 컬래버레이션 전시는 좋은 의미에서 스트레스를 줬어요. 그룹전의 경우 일정한 스케줄과 룰 안에서 정해진 마감 기한까지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매우 큽니다. 혼자 작업할 땐 작품이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수정하고 만들기를 반복할 수 있어요. 이것이 제 작업 방식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처음 의도한 것과 전혀 다른 작품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협업은 여러 작가와 긍정의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때로 큰 자극이 되곤 합니다.
웅장한 유리 지붕의 그랑 팔레 파리에 전시될 당신의 미러 작품이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이번 작품을 감상할 때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아시다시피 그랑 팔레의 전시 공간은 굉장히 크고 넓어요. 높이 4~5m, 지름 3m의 제 작품도 작아 보일 정도죠. 통유리를 통해 그곳에 햇살이 비추면 미러 작품이 반짝이며 아름다운 빛을 낼 거예요.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은 관람객이 참여하는 작품입니다. 작품 내부에 거울 조각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그 안에 들어가보면 실제보다 공간이 크게 느껴집니다. 작품은 한 명씩 감상하게 되어 있는데, 직접 보면 무한대의 상이 눈앞에 나타나 만감이 교차할 거예요. 천장에 매달린 크리스털과 메탈 구조의 작품 밑으로 관람자의 두 다리만 살짝 보입니다. 밖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다른 관람객은 어떤 공간일지 상상하게 되죠. 저는 작품 구상 단계에 많은 시간을 쏟는 편인데, 이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2년 정도 걸렸어요.
피카소는 도라 마르에게 영감을 얻어 눈물을 흘리는 모습까지 작품으로 표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처럼 예술가에겐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가 있기 마련인데, 미스 디올의 뮤즈인 배우 나탈리 포트먼이 이번 작업의 뮤즈였다고 들었습니다. 그녀의 어떤 점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나요? 뮤즈에게서 어떤 것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다만 ‘최초의 기폭제’일 뿐이죠. 그녀의 강인함을 상상하며 자연스럽게 사고를 발전시키고 제 나름의 방식으로 이미지를 표출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간혹 주제와 상관없는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지만요. 제 작품에서 뮤즈를 찾아 주제를 읽으려는 건 의미 없는 일일 수 있어요.
1997년 뉴욕 모마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화엄’이라는 생선 작품을 선보이며 서구에 이불 작가의 이름을 각인시켰습니다. 생선 썩는 냄새 때문에 전시가 중단되는 해프닝을 겪으며 예술가로서 더욱 주목받고 입지를 굳히게 됐는데요. 어떻게 냄새까지 전시할 생각을 한 건가요? 당시엔 뭔가에 관심이 생기면 극단까지 몰고 가 제 생각을 표현하곤 했어요. 그 과정이 즐거우면서 한편으론 거대한 의문, 심연에 부딪히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들었죠.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화엄’인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몰입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998년에 선보인 ‘사이보그’는 당신을 스타 작가로 만들고, 대가라는 칭호를 얻게 해준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성의 인체에 대한 관심과 여성성에 대한 불완전하고 일그러진 시선이 작품에 반영된 것 같습니다. 작품에 페미니즘적 해석이 짙게 깔려 있는데, 페미니즘에 대한 탐구를 거듭하는 이유가 있나요? 주변에서 말하는 ‘대가’라는 표현은 여전히 부끄럽고 부담스럽습니다. 지나고 보면 제 작품은 부끄럽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작품에 대해선 뭐라고 할 말이 없어요. 다만 작업 초기에 페미니즘으로 관심이 확장된 것은 사실입니다.
전위적 퍼포먼스나 페미니즘적 색채가 강한 초기 작품들이 메시지를 직접 보여준다면, 최근에는 복잡하고 주제를 읽어내기 힘든 작품을 주로 선보이는 것 같습니다. 20여 년 동안 당신의 작품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천천히 변해왔으며 퍼포먼스, 설치, 드로잉 등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었습니다. 초기의 작품과 현재의 작품이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시나요? 제 작품을 살펴보면 제 삶과 궤적을 같이합니다. 작품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에요. 제가 걸어온 삶과 제 안의 무의식이 뒤섞여 표출되는 거죠. 그때마다 제가 고민하고 관심을 가진 것이 작품에 녹아 있기 때문에 작품을 통해 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사이보그’나 ‘나의 거대한 서사시’는 완전히 다른 작품처럼 보일지 몰라도 당시의 제 관심사가 한껏 드러난 작품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 역사적 사건 등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 페미니즘적으로, 또는 제게 영향을 준 영화나 건축물로 표출되면서 작업 방식도 달라지는 거죠. 간혹 시대의 화두와 맞아떨어지기도 하고요.
1989년 전라로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낙태의 고통을 연기한 퍼포먼스로 ‘여전사’, ‘한국 미술 최전위 작가’라는 화려하고 강렬한 수식어가 따라붙었습니다. 그간 다양한 스펙트럼을 선보이며 ‘위대한 미술가는 남성’이라는 편견도 불식시켰고요. 달리 불렸으면 하는 수식어가 있나요? 제게 꼭 맞는 수식어를 찾았다면 직업을 바꿨겠죠.(웃음) 주위에서 부르는 온갖 수식어는 제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해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면 되는 거지, 어떻게 불러주든 관심 없어요. 저는 그냥 이불입니다.

에디터 서혜원 심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