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총보다 강하다
예기치 못한 테러와 폭력으로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예술은 어떻게 위로를 건네는가. 테러 이후 파리 곳곳에서 총보다 강한 예술의 힘을 느낄 수 있다.
테러가 벌어진 다음 날,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모인 군중과 파리의 평화를 상징하는 문양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거리로 나온 사람들
레퓌블리크 광장에 작품으로 등장한, 테러 극복을 위한 메시지
프랑스인에게 2015년 11월 13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129명의 무고한 생명이 무자비한 총에 희생된 날이자, 고귀한 이념을 지키고 폭력에 무릎 꿇지 않기 위해 프랑스 국민이 하나 된 날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테러는 연말을 앞두고 새해맞이 준비를 하던 프랑스인에게 큰 상처가 됐다. 프랑스는 테러 발발 이틀 후 ‘전쟁 상태’를 선포했고,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단체 ‘이슬람국가(IS)’의 수도인 시리아의 락까에 전투기를 파견해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습이 이 세상의 테러와 증오를 없앨 수 있을까? ‘눈에는 눈’으로 대응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눈을 멀게 할 뿐이다. 인도의 철학자 간디는 “증오와 폭력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문화와 이성이다”라고 했다.
테러로 인해 공연과 미술 행사가 취소되는 등 문화계도 직접적 피해를 입었다(세계 최대 규모의 사진 아트 페어인 아트 파리는 13일 오프닝 이후 문을 닫았다). 프랑스는 문화의 중요성을 그 어느 나라보다 잘 알고 있기에 이번 위기를 극복할 여러 대안 중 ‘문화’에 큰 비중을 뒀다. 공습 며칠 뒤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 플뢰르 펠르랭은 이번 테러로 피해를 입은 문화계를 지원하기 위해 400만 유로(약 52억 원)의 예산을 추가 배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녀는 “향후 예산을 점차 더 늘릴 것이다. 이는 예술가를 보호하고 테러로 인해 행사가 취소되거나 관람객이 현저히 줄어든 문화 예술계를 지원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라고 밝혔고, “프랑스는 다시 춤을 출 것이고, 노래할 것이며, 문화는 계속 자랑스럽고 자유롭게 우리에게 남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테러가 일어난 지역은 파리에서도 예술 분야 종사자가 많이 사는, 늘 창조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로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구역이었다. 129명의 희생자 중 일러스트레이터와 디자이너, 트렌디한 레스토랑 오너 등 열심히 활동하며 밝은 미래를 꿈꾼 젊은이가 많았기에 더욱 안타까움이 컸다. 파리 에포님 갤러리(Galerie Eponyme) 소속의 젊은 작가 알방 드뉘(Alban Denuit)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늘 삶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지곤 했어요. 우리가 보지 않거나 볼 수 없는 것에서 항상 가치 있는 무언가를 찾고자 했죠.” 알방 드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보르도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의 가치 있는 것을 탐구하며 창작에 몰두해온 한 예술가의 허무한 죽음은 프랑스 사회에 큰 손실로 남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전 세계에서 슬픔에 빠진 파리를 위로하는 마음을 프랑스로 보내왔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분야의 모든 이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중에서도 특히 문화 예술을 통한 위로는 인간 본연의 순수한 마음을 일깨우며 넓고 깊게 퍼져나갔다. 테러 다음 날 한 무명 연주자는 자신의 피아노를 가지고 나와 바타클랑 극장 앞에서 존 레넌의 ‘이매진’을 연주했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묵묵히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유튜브 등의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퍼지며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독일 출신 피아니스트 다비데 마르텔로(Davide Martello)로 밝혀졌다. 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은 <푸치니> 공연 개막에 앞서 전 단원이 프랑스의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합창했다. U2의 보노와 마돈나 등 여러 뮤지션도 노래와 음악으로 프랑스를 위로하며 폭력에 대항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7m 높이의 장대에 희생자 129명의 이름을 적은 로르 마르나의 작품 ‘A memorial to all the victims of the Paris terrorist attacks on November 13th 2015’
시각예술 분야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한 건 소위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로 불리는 거리의 작가였다. 이들은 ‘파리를 위한 스프레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평소 즐겨 사용하는 스프레이로 거리 곳곳에 희생자를 기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테러가 일어난 곳에서 멀지 않은 레퓌블리크 광장에는 그림 팀(Grim Team)이 만든 ‘Fluctuat Nec Mergitur’라는 대형 슬로건이 등장했다. 이는 ‘풍랑에 흔들릴지언정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테러 후에도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국민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또한 J3와 모요시(Moyoshi)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두 작가는 테러가 일어난 곳에서 멀지 않은 리카르 거리에 색색의 분필로 아름다운 그림을 남겼다. 그리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작가는 역시 테러의 현장인 카리용 바와 르 프티 캉보주 레스토랑이 있는 비샤 거리에 촛불을 들고 하트 모양의 눈물을 흘리는 소녀를 그렸으며, 많은 이들이 SNS를 통해 이를 공유했다. 일러스트레이터 장 줄리앙(Jean-Jullian)은 평화를 상징하는 검은색의 동그란 문양 가운데에 에펠탑을 그려 넣고 ‘Peace for Paris’라고 적었는데, 이 역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전 세계인이 공유했다.
한편 남프랑스 작가 로르 마르나(Laure Marnas)는 7m 높이의 장대에 희생자 129명의 이름을 적은 리본을 달았다. 그녀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테러 이후 작가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이 작업을 했어요. 리본에 희생자들의 이름을 새기고 이를 장대에 묶어 바닷가에 설치했죠. 사람들이 아픔의 역사를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세상의 아름다움과 평화에 대한 염원을 감동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프랑스 평론가협회 회장 라파엘 퀴르(Raphael Cuir)는 이 시대 예술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테러가 일어난 이후 공연장에 가면 두려움이 엄습해요. 하지만 나는 여전히 공연을 보러 갑니다. 두려움에 동요하지 않고 지금껏 살아온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하고, 이는 이 시대 예술가들이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어떤 두려움 앞에서도 문화와 표현의 자유를 지켜야 합니다. 예술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느냐고요? 그렇다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예술이 없는 세상은 구할 만한 가치가 없는 세상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작가 로베르 필루의 말이 생각납니다. ‘예술은 우리의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한.”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글 최선희(아트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