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방 사이, 예술은 확장된다
젊은 예술가와 신생 갤러리가 런던의 어마어마한 부동산 가격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실험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있다. 그 변화가 일으킨 영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동력을 소개한다.
‘콘도’를 위해 사우서드 리드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전경 / Courtesy of the Southard Reid Gallery
영국 현대미술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성공을 거둔 대형 갤러리는 지금까지도 세계 미술계를 움직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실력을 인정받은 중견 예술가를 발굴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영국의 아트 마켓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데 크게 공헌했지만, 반면에 새로운 시도를 하는 젊은 예술가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런던의 중심부에 대형 갤러리가 매년 분점을 내는 반면, 신생 갤러리는 점차 런던의 외곽으로 물러나는 추세다. 어마어마한 집세 때문에 스튜디오를 잃은 예술가들이 런던을 떠나고 있다. 신생 갤러리와 예술가는 이제 서서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있다.
‘아트 룸스’에 특별 게스트로 초대된 태국 작가 위틴 찬사타붓(Wuttin Chansataboot)의 ‘Chameleon’s CORE’
‘콘도’ 프로젝트에 참여한 코라크릿 아루나논드차이(Korakrit Arunanondchai)의 비디오 영상 작품 ‘Painting with History in a Room Filled with People with Funny Names 3’의 스틸 컷 / Courtesy of the Artists
‘콘도’와 ‘아트 룸스’, 장소와 시간의 확장
‘콘도(Condo)’(1월 16일~2월 13일)와 ‘아트 룸스(Art Rooms)’(1월 23일~25일)는 새로운 형식의 흥미로운 갤러리 협업 전시 프로그램이다. 런던의 소규모 신생 갤러리와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신진 예술가가 직면한 몇 가지 문제를 타파하는 실행 가능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콘도는 런던에 있는 8개의 신생 갤러리가 세계 각국의 24개 갤러리와 공동으로 전시를 여는 프로그램이다. 24개 갤러리가 마치 런던을 방문한 관광객처럼 시내의 갤러리를 숙박 장소로 삼고 전시를 펼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런던의 사우서드 리드(Southard Reid) 갤러리는 암스테르담의 제닌 호플란트(Jeanine Hofland) 갤러리와 로마의 프루타(Frutta) 갤러리를, 로데오(Rodeo)는 뉴욕의 캘리쿤 파인 아츠(Callicoon Fine Arts)를, 추데이스(Chewday’s) 갤러리는 베를린의 크라우파 투스카니 차이들러(Kraupa-Tuskany Zeidler) 갤러리를 초대해 전시를 열고 있다.
런던 갤러리의 이런 일반 상식을 뛰어넘는 협업 전시를 통해 관람객은 낯선 장소에서 뜻밖의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신진 작가와 갤러리는 런던에 번잡한 절차 없이 자연스럽게 작품을 소개할 수 있다.
아트 룸스는 런던의 4성급 럭셔리 호텔인 멜리아 화이트 하우스(Melia White House) 호텔 방 70개에서 열리는 호텔 아트 페어다. 33개국에서 선정한 80명이 넘는 작가의 작품을 호텔 방에서 소개했다. <선데이 텔레그래프(The Sunday Telegraph)>의 미술평론가 앨러스테어 스마트(Alastair Smart)를 비롯해 갤러리스트 카시아 모라프스카(Kasia Morawska), 큐레이터 디에고 졸리티(Diego Giolitti) 등의 전문가가 주최한 행사로, 가장 큰 매력은 전시에서 소개하는 모든 작가가 특정 갤러리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적 작가라는 데에 있다. 런던의 아트 신이 더욱 풍성해지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프로젝트다.
‘그린 룸스’ 내부는 폴크의 첫 홈웨어 라인으로 꾸며진다.
‘아트 룸스’의 메인 홍보 이미지로 사용한 미켈레 톰볼리니(Michele Tombolini)의 작품 ‘무제’ / ⓒ 2015 Michele Tombolini
‘그린 룸스’, 예술가를 위한 특별한 호텔
오는 5월 런던 북쪽에 있는 우드그린(Wood Green)에 예술가들을 위한 첫 호텔이 문을 연다. 호텔 그린 룸스(The Green Rooms)는 단지 숙박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예술가와 창조적 작업을 하는 업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대안 공간이다. 리허설과 전시, 예술영화 상영과 소규모 연극 공연, 예술가들이 리드하는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호텔 그린 룸스는 1920년대 아르데코 양식이 고스란히 남은 건물을 개조했다. 예술가를 위한 호텔이라는 컨셉에 걸맞게 내부 인테리어와 콘텐츠도 특별하다. 소호 하우스(Soho House)의 섬세한 디자인을 실현한 건축가 그룹 소다(Soda)가 인테리어를 맡았고, 각 방은 런던을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 폴크(Folk)의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으로 장식한다. 폴크의 첫 홈웨어 라인을 그린 룸스를 통해 소개하는 것이다. 또 혹스턴 호텔(The Hoxton Hotel) 창업자이자 럭셔리 호텔 컨셉을 처음 도입한 호텔리어 커트 브레든벡(Kurt Bredenbeck)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많은 예술가와 예술 사업 종사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린 룸스의 매력은 특별한 이곳이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비영리 재단이 운영해 가격은 합리적이고(1일 숙박, 더블 룸 45파운드), 예술가를 위한 호텔을 표방하지만 일반인도 언제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벌써 런던을 대표하는 서머싯 하우스(Somerset House), 로열 코트 극장(The Royal Court Theatre)과 제휴를 맺어 이곳에서 전시나 공연을 선보이는 예술가가 그린 룸스에 묵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런던의 새로운 변화는 작년 말 터너상 수상자로 젊은 건축가 그룹 어셈블이 지목되면서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예술을 매개체로 낙후한 동네를 활기차고 매력적인 삶의 보금자리로 만든 그들은 예술을 가장 기본적 가치이자 최종적 목표인 사람에게 내려놓았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어셈블을 비롯해 런던의 아트 신은 예술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을 깨며 새로운 변화를 모색 중이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글 양혜숙(기호리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