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죽박죽 패러다임
54만 년 전의 호모에렉투스부터 바둑 기사 이세돌까지. ‘강아지란 무엇인가?’부터 ‘모두 산속으로 돌아가 명상하자’는 레베카 코스타까지. 인간과 인공지능, 예술과 기술, 기계의 한계와 기술의 신비성, 예술로서 그나마 괜찮은 삶, 이 모든 것에 대한 농담 혹은 조언.
서진석 x 김대식
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1999년 국내 최초의 대안 공간인 ‘대안공간 루프’를 열어 국내의 젊은 작가 지망생이 작가로서 나아갈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했다. 쿤스트할레 뒤셀도르프, 센트럴 이스탄불, 카사아시아, ZKM 등 해외의 미술 문화 공간에서 전시를 기획했고, <150 아시아 현대미술 작가>, <예술과 자본> 등의 책을 기획 및 출판했다.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과 교수, 건명원 과학 분야 운영위원. 뇌과학과 뇌공학, 인공지능 등을 연구하고 있다. 고작 1.5kg, 아무리 해부해도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두뇌를 통해 철학, 문학, 역사 등 뇌과학과 인간의 존재 이유를 풀어내고 있다. <김대식의 빅 퀘스천>, <이상한 나라의 뇌과학> 등의 책을 냈다.
인공지능이 예술을?
김대식(이하 김)/ 인공지능이라는 분야는 사실 50년 전에 생겼지만, 그간 별 진전이 없었어요. 불과 3~4년 전만 해도 기계가 강아지랑 고양이를 구별 못했죠. 근데 알고 보니 이런 문제가 있는 거였어요. 기계에 세상을 오직 기호 체제로만 설명하려 한 거죠. ‘강아지란 무엇인가?’ 이렇게요. 그 많은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건 있어요. ‘언어의 해상도는 인식의 해상도보다 훨씬 낮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지식과 개념을 기계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서진석(이하 서)/ 오랫동안 착각을 했네요.
김/ 그렇죠. 우린 사과를 보고 ‘빨갛다’고 하지만, 빨간색에도 복잡한 패턴과 색이 있잖아요. 근데 기계의 ‘빨간 사과’라는 말만으로 서로 이해했다고 착각한 거죠. 한 예로 김연아 선수한테 우리가“ 어떻게 피겨스케이팅을 그리 잘하세요?”라고 물으면, 김연아 선수도 잘 설명하지 못할 거예요. ‘연습을 많이 했다’, ‘계속 넘어졌다’라고 하는 게 사실 답은 아니죠. 그 답은 김연아 선수의 팔다리에 있는 수천만 개의 힘줄에 있어요. 힘줄 7번, 9번, 11번을 이때 잡아당기며 어쩌고저쩌고 이렇게.
서/ 어쨌든 앞으론 인공지능이 세상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 거라고 보시는거죠?
김/ 그렇죠. 재미있는 게, 몇 년 전 새로 나온 패러다임이 ‘기계한테도 사람처럼 똑같이 학습을 시키자’라는 ‘딥 러닝(deep learning)’이에요. 인간의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것처럼 기계에 경험을 주입하는 거죠. 생각해보면 우리도 어릴 적 부모에게 ‘강아지란 무엇인가?’라는 걸 배운 적은 없거든요. 그 경험을 통해 얻은 거죠. 근데 이 방법이 최근 3~4년 사이 자리잡아 인공지능 기능이 엄청난 발전을 했어요.
서/ 노동력의 해방뿐 아니라 창작 행위까지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도 있겠네요.
김/ 애초에 체스나 수학, 게임 룰 같은 건 기호 체제로 설명할 수 있었어요. 근데 아름다움과 정의로움, 강아지, 고양이 같은 건 설명이 안 됐거든요. 근데 그게 가능하다는 거죠.
서/ 과학의 발달이 산업혁명 이후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켰는데, 이제 과학 발달로 노동력의 해방뿐 아니라 창작 행위까지 가능한 날이 오겠어요. 이건 기계가 인간처럼 될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얘기네요.
김/ 기계의 인공지능은 데이터화할 수 있는 걸 기반으로 창작이 가능할 거예요. 앞으로 우리가 예술적 표현을 지적으로 한다면 데이터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기계 또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겠죠. 기계도 인간처럼 지적인 활동을 하는 거죠. 앞으로 우린 지적인 활동만으로는 기계하고 경쟁할 수 없게 될 거예요. 그 때문에 전 21세기가 다시 한 번 예술계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시기라고 봐요. 19세기에 현실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진 기술이 등장하고 아카데미 미술이 다 망한 뒤 어찌 보면 지금의 현대예술로 연결된건데, 그런 과정이 다시 한 번 올 수 있다는 얘기죠.
서/ 오히려 예술가의 포지션이 더 굳건해지는 걸까요?
김/ 네. 저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봐요. 지금까지 예술에선 기술을 도구로 많이 사용했죠. 표현을 하기 위해서. 그런데 도구적 행위, 그러니까 창작에서 기술을 도구로 사용하는 건 아마도 기계가 인공지능으로도 충분히 자동화할 수 있는 일일 거예요. 자동화할 수 있다는 건 대량생산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고요. 그럼 지적 노동이 대량생산화하는 거죠. 그러나 기계가 할 수 없는 게 있어요. 기계는 인간이 아니에요. 아마 ‘인간같이’ 지적인 행동을 하는 ‘척’은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인간에겐 지적인 면이 실체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죠. 사실 인간은 말도 안되는 ‘삽질’도 많이 하거든요. 사랑도 하고, 후회도 하고, 진화에 얽매이기도 하고, 부모와의 관계도 있고, 막장 드라마도 있고, 비효율적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의 또 다른 경쟁력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기계는 사랑에 대한 책을 수만 권 읽고 온갖 데이터를 습득한다 해도 사랑을 할 순 없을 거예요.
서/ 전 이런 얘기가 나오면 떠오르는 게 하나 있어요. 우리랑 관계없는 100년이나 200년 후 얘기겠지만 기계는 점점 인간다워지고, 인간은 점점 기계처럼 변한다면 종국엔 둘이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죠. 요새 자주 나오는 ‘트랜스휴머니즘’ 같은 거요.
김/ 미래 인간 말이죠. 기계하고 융합된. 점점 복잡해지는.
서/ 근데 우리가 이야기하는 가정은 사실 다 이원론적인 거거든요. 기계랑 인간이 분리된 상황의 이야기죠. 한데 하나의 얘기로 보면 이런 것도 있어요. 예전에 조지프 A. 테인터(Joseph A. Tainter) 같은 고고학자는 인간 공동체가 점점 복잡해지는 이유를 고도화된 조직이 문제 해결에 더 유리하기 때문(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이라고 봤더라고요. 근데 결국 그 복잡성을 해결하지 못해 인류는 멸망하고, 또다시 단순한 인류가 등장하고, 이게 계속 반복된다고요. 한 예로 20세기 초 대공황이 왔을 때 미국 정부에서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그게 20여 페이지밖에 안 됐대요. 근데 지난 리먼 사태 때 미국 정부가 또다시 비슷한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그땐 300페이지가 넘었다고요.
김/ 어찌 됐든 복잡해지긴 했죠.
서/ 근데 그 복잡함을 해결할 방법이 있긴 해요.
김/ 그게 뭔데요?
서/ 그냥 레베카 코스타(Rebecca Costa)처럼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자, 거기서 명상하며 자연이 준 해결책인 통찰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 같은.
김/ 그건 아니겠죠. 설마, 그건 아니죠.(웃음)

인공지능 시대의 예술과 삶에 관한 다양한 담론을 늘어놓는 서진석(왼쪽)과 김대식(오른쪽)
인간을 관찰하는 기계
서/ 예전에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란 주제로 카이스트랑 예술가 몇몇이 모여 협업 비슷한 걸 한 적이 있어요. 결국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실패로 끝났지만요. 예술가들은 기술자에게 말도 안 되는 걸 요구했고, 기술자들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느냐 타박하다 그냥 엎어졌죠. 근데 당시 프로젝트도 그랬고, 전 기계나 기술 자체가 지금 예술계에서 어디까지 왔는지, 기계가 지식 노동, 더 나아가 창작 행위까지 대신할 수 있을까 하는 주제에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게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문제도요.
김/ 전 앞으로 10년 안에 인공지능 기계가 상당히 지적인, 우리가 창의적 행위라 부르는 걸 시작할 거라고 봐요. 그런데 이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인간이 인간 외의 것을 ‘대상’이라 칭한 지 대략 1만5000년 됐어요. 그때부터 갑을 관계가 정해진 거죠. 다시 말해 물체나 기계는 인간의 입장에선 그냥 대상이었다는 얘기예요. 그런데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이 관계가 약간 애매모호해지기 시작할 거예요.
서/ 사람과의 관계가요?
김/ 네. 기계가 사람을 관찰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미술관에서 기계가 저편의 관람객을 보고 저 여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추측하거나, 그녀가 느끼는 감정 자체를 작품으로까지 표현할 수 있다는 거죠. 심지어 세상을 인간과 비슷하게 인식하고 지각하는, 자아 비슷한 걸 가진 녀석이라면, 인간의 생각과 녀석의 생각을 융합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재미있는 게 나올 것 같긴 해요.
서/ 미디어 아트 쪽에서는 현재 어느 정도 기계와의 조합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과거엔 기계 매체를 수단으로만 활용했지만, 결국 기계랑 인간이 아예 합쳐진 것 같은 작업이죠. 일본의 마나베 다이토(Daito Manabe) 같은 경우 자기 얼굴에 저주파와 전기 센서를 부착해 일그러진 근육으로 퍼포먼스나 공연을 하고 있어요.
김/ 아, 사실 작년에 구글에서 아주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하나 나왔어요. ‘딥 드림(Deep Dream)’이라고, 기계가 물체를 인식하는 데서 끝내는 게 아니라 인식한 걸로 왜곡까지 시키는 거예요. 말하자면 창작을 하는 거죠. 우리가 구름을 보고 구름이라 느끼며 ‘저건 양 같다. 저건 곰 같다’는 식으로 묘사하는 걸 그 프로그램이 하는 거죠.
서/ 묘사가 가능해요?
김/ 우리가 기대하지 못한 새로운 걸 만들어내요. 예를 들어 프로그램에 고흐나 렘브란트의 그림을 학습시키면, 얼마 뒤 고흐와 렘브란트 화풍의 보편성을 보여줘요. 그다음 우리가 가진 사진이나 동영상 혹은 광화문 사진을 프로그램에 넣으면 고흐나 렘브란트풍으로 바꿔줍니다. 그럼 거기에 이런 제목을 달 수 있겠죠. ‘고흐가 광화문을 본다면’. 말하자면 기존에 존재한 걸 왜곡시킨 후 그걸로 다시 창의적 행위를 하는 거죠.
서/ 그거 재미있겠는데요. 그걸로 이런 걸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정연두나 서도호, 함경아 같은 우리나라 대표 작가 몇 명의 모든 작품 데이터를 넣고, 그 작가의 아바타적 창작 작품을 하나씩 만들게 하는 거예요. 거기에 ‘정연두의 데이터로 만든 작품’, ‘함경아의 데이터로 만든 작품’ 같은 제목을 달아 전시도 열고요.
김/ 그럴 수 있겠죠.
서/ 그걸 담론화해 세미나까지 열면 재미있겠네요.
김/ 근데 이런 게 있어요. 그런 작품이 나오면 그때부터 작가들은 자신의 인공지능 아바타하고 경쟁해야 해요. 그것도 평생.
서/ 재미있겠네요.(웃음)
김/ ‘나’라는 자아는 내적 존재인데, 이게 외적으로 프로젝션되면, 결국 ‘말하는’ 내 아바타하고 싸우게 되는 거잖아요. 이를테면 서도호 작가의 아바타 프로그램이 새로 작품을 만들었어요. 근데 자세히 보니 서도호 작가가 언젠가 실제로 생각한 작품인 거예요. 그럼 서도호 작가는 지는 거죠.
서/ 자아를 외부로 프로젝션한다?
김/ 네. 그것과 싸우는데 내가 그것과 똑같이 한다면, 내 안에 있는 자아와 내 히스토리에 나는 여전히 갇혀 사는 사람이 되는 거죠. 새로운 걸 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경쟁에서 이기려면 작가는 자기 내면이 만들어낸 결과물하고 다른 걸 만들 수 있어야 해요. 그게 진정한 창의성이죠.
서/ 작가들은 재미있게 생각할 것 같은데요.
김/ 그렇죠? 제프 쿤스 같은 경우는 정말 그 프로그램이 뭔가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서/ 그러게요.(웃음) 근데 그건 그렇고, 구글에서 곧 이세돌 기사랑 바둑 대결을 한다 하죠?
김/ 올 3월에 알파고(AlphaGo)라는 프로그램이랑 12억 원의 상금이 걸린 대결을 하죠. 알파고는 지난해에 이미 유럽 바둑 챔피언인 중국계 프로 기사 판후이랑 대국해 5승 무패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냈죠. 바둑 기사들의 판단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한 경우인데, 이 또한 인공지능의 대단한 발전이죠.
서/ 그러고 보면 바둑은 체스와 달리 예술의 창작 행위랑 흡사한 것 같아요.
김/ 그럼요. 체스는 무식하게 계산으로도 풀 수 있는 문제니까요. 바둑은 게임에서 있을 수 있는 조합의 수가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다고 하잖아요.
서/ 만약 이세돌 기사가 지면 어떻게 되는 거죠?
김/ 제가 볼 때 아마 올해는 아주 쉽게 이세돌 기사가 이길 것 같아요. 구글은 실제로 게임에서 진다 해도 결국 이기는 거죠. 그 게임을 함으로써 이세돌 9단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구글은 세계 최고의 바둑 비법을 12억 원을 주고 사는 거죠. 거저인 셈이에요. 하지만 그 게임을 2년 후 다시 한다면 아마 그땐 이세돌 기사가 질지 몰라요. 2년간 이세돌 기사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알파고도 분명 학습을 할 테니까요. 사람은 발전해도 선형으로밖에 할 수 없는데, 기계는 다르죠.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할 테니.
예술이라는 미스터리
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19세기에 서양인이 한국에 와서 찍은 사진을 종종 보잖아요. 전 거기서 항상 두 가지를 느껴요. 첫 번째는 나라가 정말 지저분했구나. 두 번째는 사람들 눈이 너무 흐리멍덩하구나.
서/ 눈이 어떤데요?
김/ 눈이 초롱초롱하지 않아요. 죄다 머슴에다 종일 밭에 나가 일하고, 늘 무거운 가마를 끌고 다니니 피곤해서 당연히 눈이 게슴츠레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인류의 역사를 보면 그건 어디나 비슷해요. 19세기 유럽도 똑같죠.
서/ 그렇겠죠.
김/ 근데 예술가들의 눈은 달라요. 활기가 있죠. 결국 제가 바라는 사회도 그런 거예요. 그 초롱초롱한 눈빛이 점점 많아지는 사회죠.
서/ 국가가 예술을 지원해야 한다고 보세요?
김/ 물론이죠. 그 문제에 대한 답은 간단해요. 예술이 곧 문화이자 문명이니 그래야 하죠. 인간은 밥만 먹고 살 수 없거든요. 밥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건 인간의 조건을 만드는 필수 조건이지, 필요조건이나 충분조건은 절대 아니라는 거죠. 밥만 먹고 문화가 없으면 사람은 그냥 밥 많이 먹는 동물일 뿐이잖아요.
서/ 맞아요. 지금은 시대적 흐름도 그렇죠. 과거엔 종교가 인간의 정서나 욕망에 관한 욕구를 채워줬고, 20세기엔 이데올로기가 채워줬죠. 21세기엔 문화가 채워준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예술과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고. 앞으로 문제는 지금의 기술 사회가 예술가들과 어떻게 융합해 보다 나은 문화적 상황을 만드느냐, 이런 거겠죠.
김/ 어쨌든 전 예술에서 창작 활동의 미스터리는 끝까지 가져갔으면 해요. 굳이 신전까지 세워가며 그걸 숭배할 필요는 없겠지만요. 재작년에 인도네시아 자바에서 발견한, 54만 년 전 호모에렉투스가 사용했다는 조개껍데기 얘기 아세요? 거기 새겨진 무늬를 인류의 첫 예술 작품이라고 하잖아요. 도구 전에 패턴, 즉 ‘예술’이 있었다는 말이죠. 패턴을 기능적으로 필요 없는 거라고 본다면, 사실 인간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예술을 시작한 거예요. 그게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전 그게 앞으로도 약간의 미스터리로 계속 남았으면 좋겠어요.
서/ 저도 그 생각은 같아요. 예술의 아름다움 앞에서 욕망만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괜찮은 삶을 살게 될 거라고 봐요.
김/ 어쨌든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같은 사람도 미술관을 현대사회의 교회라고 말하잖아요. 무신론자를 위한 교회. 미술관은 우리가 먹고사는 일상의 삶에 뭔가 플러스 알파가 되는 역할을 해요. 우리가 런던이나 파리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렇죠.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 종일 미술관만 다녀도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서/ 그렇죠. 미술관이 있기 때문이죠.
김/ 한국은 여전히 미술관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많아진다면 사람들의 생활이 분명 더 풍요로워지긴 할 거예요.
에디터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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