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매년 같은 계획을 세울까
12월 31일과 1월 1일, 두 날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과거와 연결되지 않는 미래가 없듯, 새로운 계획 세우기에 앞서 지나간 해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가 아닐까.

어느새 2017년이다. 새해를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신년에는 꼭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올해는 살을 좀 뺐으면 좋겠다, 영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서 해외여행 가서 빛을 봤으면 좋겠다 등등…. 금연, 금주도 매년 등장하는 단골 아이템이다. 상식적으로는 매년 세운 계획을 제대로 달성했다면 다음 해의 결심에 그 항목이 다시 나타나면 안 된다. 이미 작년에 시작한 금연에 성공했다면 올해 또 금연 계획을 세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매년 거의 똑같은 새해 계획을 세우고 설날이 지나면 이를 잊어버린다. 그리고 다음 해에 같은 일을 반복한다. 왜 그럴까? 일단 ‘신년’의 기원을 찾아 우리가 왜 매년 새해에 달성하고 싶은 계획을 반복해 세우고 꼭 이루겠다고 맹세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현대 달력의 기원은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사람들은 땅에 막대기를 꽂아놓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해의 그림자 길이로 시간을 쟀다. 하루 중 그림자가 가장 짧은 때를 정오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차츰 매일 정오에 생기는 그림자의 길이도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오의 그림자는 날씨가 추워질수록 길어지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도로 짧아졌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은 막대기 그림자가 가장 짧거나 긴 지점을 주목해 이것을 동지(winter solstice)와 하지(summer solstice)라고 불렀다. 동지와 하지를 다시 반으로 나누면 그 중간 지점에 밤과 낮의 길이가 똑같은 날이 1년에 두 번씩 온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을 춘분(spring equinox)과 추분(autumn equinox)으로 정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의 후예인 페르시아인은 여름과 겨울이 왜 오는지 그 이유를 신화로 설명했다. 열기와 빛을 주관하는 태양신과 밤의 어둠을 주관하는 신이 하늘에서 쉬지 않고 거대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점점 해가 짧아지는 현상은 태양이 어둠과의 거대하고 영원한 전투에서 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말하면 겨울이 지난다고 반드시 봄이 온다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하고, 태양신과 어둠의 신이 벌이는 전쟁에서 태양신의 세력이 어둠의 신에게 패배하면 영원히 겨울만 지속되어 인간의 문명은 패망할 것이라고 믿었다. 거대한 제단을 짓고 종교의식을 치러 태양신에게 힘을 실어줘야 따뜻한 봄이 다시 온다고 했다. 그래서 페르시아인은 춘분이 오고 다시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태양신의 기세가 높아져 세계가 새로운 태양의 시기를 맞는 것이라며 축제를 벌였다. 이들은 춘분을 ‘새롭다’를 뜻하는 단어 ‘Now’와 날 또는 해를 뜻하는 ‘Ruz’를 붙여 노우루즈, 즉 ‘새로운 해’라고 불렀다. 이날은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와인을 마시며 따뜻한 날이 돌아온 것을 자축했다. 한편으론 어둠의 무리가 완전히 멸망한 것이 아니라 잠시 기세가 꺾인 것이어서 다시 힘을 축적하면 언제든지 반격해올 것이라며 불안했고, 그런 탓에 일시적 즐거움이지만 일단은 마음껏 즐겼다. 그들에겐 새해가 왔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즐겁고 다행스럽고 기쁜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 한 해가 가버렸네”라며 회한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봄을 불러냈다”며 기뻐하는 문화였다. 이들에게 새해는 새로운 계획을 다짐하는 날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마 이런 긍정적 사고는 정신 건강에 상당히 좋았을 거다. 메소포타미아의 달력은 고대 그리스를 통해 지중해 연안으로 퍼졌다. 고대 지중해 연안의 달력은 농사를 위한 것으로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하는 춘분에서 시작해 추수기까지만 있었다. 오늘날 영어로 12월을 뜻하는 ‘December’의 ‘Decem’이 ‘12’가 아니라 ‘10’을 뜻하는 라틴어인 것도 여기서 연유한다. 그래서 이들의 시간은 농사를 짓지 않는 시기에는 아예 멈추어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지 않는 기간을 고대 그리스인은 ‘Kalend’라고 불렀는데 오늘날 달력을 뜻하는 단어 ‘Calendar’의 어원이다. 고대 로마의 농촌 역시 춘분, 즉 오늘날의 달력으로 3월 15일경이 새해였다. 이날부터 농사를 시작했기 때문. 고대 로마의 농민들은 새해가 되면 그해를 위한 다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해를 청산했다. 수많은 미신을 믿은 로마인은 그 전년에 자신이 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부정 타서 신년의 농사를 망칠지도 모른다는 점을 가장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들은 지푸라기로 사람 형상을 만들어 이 집 저 집 들고 다니며 부정 타는 행동을 하는 일종의 연극을 했다. 그렇게 동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부정적 기운을 그 인형에 담고는 불 붙여 태워버렸다. 이는 그동안의 액운을 모두 태워버리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프랑스 리옹에 위치한 갈로로망 박물관이 소장 중인 1-2세기 유물로 추정되는 책력
로마 후기에 시작해 중세를 거치면서 각 달에 여러 그리스 로마 신의 이름을 딴 ‘January(야누스, 주피터의 다른 이름)’, ‘March(마르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시간이 정지되는 기간이 사라졌다. 그렇게 1년은 12개월, 365일이라는 오늘날의 시스템으로 서서히 정리되어 갔다. 그러면서 인간은 신화적 시간이 아닌 수학적 시간 속에 살게 되었고, 달력은 공백이 없는 쳇바퀴가 되었다. 12월 31일은 휴식 기간 없이 바로 다음 해 1월 1일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이 새로운 시간관은 로마가 거대 제국으로 발전해 농사보다 지중해와 인도양 무역이 경제적으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결과다. 겨울이 와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시간에도 로마제국을 핏줄처럼 이어놓은 포장도로를 타국의 토산품을 실은 마차가 달리고, 인도의 후추와 황금, 중국의 비단을 실은 배들이 지중해를 가로질렀기 때문에 겨울에도 시간이 멈추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람의 리듬은 자연의 리듬과 분리되었다. 로마시대에 시작된 지중해 중심의 무역은 고대에 인도양과 연결되고, 중세에는 북해와 연결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서아프리카 무역 시스템이, 16세기에는 남중국해 무역 시스템이, 18세기에는 아메리카 대륙이, 19세기에는 태평양 제도가 세계의 경제권에 편입되면서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 세계 곳곳을 다녀본 범선 선장들의 기록 덕에 세계지도의 정확도도 높아졌다. 더 이상 자연은 신비와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탐구와 실험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만만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인류는 더 이상 봄이 왔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즐거운 메소포타미아인의 행복에 동참할 수 없었고, 액운을 쫓아야 새해의 밀농사가 잘된다고 믿은 로마인의 순진한 생각에도 동의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새해를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매년 새로운 기술과 경제 발전이 점점 나은 세상을 만들어줄 거라는 근대와 현대의 시대정신에 맞추어 내년의 ‘나’는 오늘날의 ‘나’보다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매년 신년 계획을 새로 짠다.
메소포타미아인과 로마인에게 1년의 시간은 추수로 끝나고 농사가 시작되는 춘분까지 멈춰 있었다. 그 정지된 시간 속에서 그들은 아마 잠자면서 영양을 축적하는 얼어붙은 땅처럼 휴면하면서 지나간 나쁜 생각과 기운을 씻어내고 말끔한 마음으로 새로운 해를 맞았을 것이다.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신년 계획이 아니라 이런 시계와 달력의 지배를 받지 않는 정지된 시간이 아닐까? 고대 로마인은 새해를 계획하는 것보다 작년을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처럼 우리 역시 1년 동안 쌓인 온갖 아픔과 불만, 가족이나 친구들과 못다 한 말과 그동안 쌓인 악감정을 모두 지푸라기 인형에 모아 태워버린다면 따로 신년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새해는 새로운 땅처럼 다가오지 않을까.
에디터 서재희(jay@noblesse.com)
글 조승연(세계 문화 전문가) 사진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