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영감을 찾는 여정
디뮤지엄에서 한국 최초로 개최하는 토머스 헤더윅의 전시를 앞두고, <노블레스>가 런던에 자리한 그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그곳에서 확인한 것은 한 명의 스타 디자이너가 아니라, 협업으로 완성한 견고한 세계다.
천장에 설치한 거대한 창문을 통해 빛이 드라마틱하게 쏟아지고 그 아래에는 흥미로운 오브제가 가득하다. 이곳은 바로 세계 디자인계를 리드하는 헤더윅 스튜디오(Heatherwick Studio)의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곳. 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이 이끄는 헤더윅 스튜디오는 런던에서도 늘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역동적인 지역, 킹스크로스에 위치한다. 미래를 가늠하게 하는 헤더윅 스튜디오의 디자인은 오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영국의 디자인 유산을 그대로 계승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토머스 헤더윅은 자신의 멘토이자 전설적 디자이너인 테런스 콘랜(Terence Conran) 경에게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란 찬사를 얻었고, 영국 여왕에게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디자인을 분류하는 기존의 방식을 과감히 무너뜨리고 가구, 패션, 건축, 도시계획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창의적 작업을 하고 있다. 6월 16일부터 10월 23일까지 서울 디뮤지엄에서 개최하는 <헤더윅 스튜디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발상>전을 앞두고 런던 스튜디오에서 토머스 헤더윅을 인터뷰하며 아이디어가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하는지 엿보았다.
360도로 회전하는 ‘스펀 체어’. 서울 디뮤지엄 전시에서도 만날 수 있다.
드디어 한국에서 첫 전시를 개최한다. 어떤 전시가 될지 궁금하다. 헤더윅 스튜디오의 20여 년간 여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다. 크게 ‘생각하고, 만들고, 이야기한다(thinking, making, storytelling)’는 세 가지 주제로 전시를 구성했다. 한국 관람객이 헤더윅 스튜디오의 실험정신과 과거에 바탕을 둔 공예 문화, 참신한 영국 디자인을 느끼고 감상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전시를 기획한 왕립 미술원의 건축 부문 수석 큐레이터, 케이트 구드윈(Kate Goodwin)이 직접 선택한 스튜디오의 작품부터 내가 대학 시절에 만든 작품, 어린 시절에 만든 크리스마스카드까지 전시한다. 마치 누군가가 내 빨랫감을 보는 것 같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큐레이터는 완벽하지 않은 상태의 스케치나 모형의 오리지널리티를 관람객에게 보여주길 원했다. 이번 전시가 스튜디오의 변화 과정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와 우리 팀에게도 매우 뜻깊은 전시다.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만든 특별한 작품도 있다고 들었다. 20개의 스펀 체어(Spun Chair)로 설치 작품을 만들었다.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는 의자에 관람객이 직접 앉아볼 수 있도록 디자인했고, 앉은 후에는 돌려볼 수도 있다. 의자에서 일어났을 때는 마치 마법처럼 스스로 돌고 있는 의자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작품을 체험한 관람객이 의자의 디자인 과정에 대한 궁금증을 갖길 바란다.
당신을 수식하는 말을 간단히 정의할 수가 없다. ‘디자이너’나 ‘건축가’ 같은 하나의 직업으로는 토머스 헤더윅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2세기 전, 세상이 이렇게 세분화되지 않았을 때는 한 사람이 많은 일을 도맡아 했다. 이를테면 증기차를 디자인한 사람이 가장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길을 찾아 선로를 만들었고, 기차의 기술력에 따라 쉬어가는 역을 정했다. 그런데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개개인의 역할이 단순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협업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고 있다. 나는 내 타이틀보다 프로젝트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들은 명확히 규정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아이러니한 사실은 우리의 작업 과정은 어떤 카테고리를 정해두지 않을 때 더 좋은 디자인이 나온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디자인이란 곧 함께 하는 작업을 말하나? 가장 좋은 아이디어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나온다. 질문을 들었을 때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을 떠올린다. 질문에 답하는 순간이 우리가 변화하는 순간이며 아이디어는 그 속에서 나온다. 그러니 팀 작업은 결국 서로의 ‘직관의 수확(Harvesting of intuition)’이라 표현하고 싶다. 사람들은 ‘아이디어 스케치’에 과도한 환상을 품는 경향이 있다. 한 명의 천재 디자이너가 짠하고 떠오른 아이디어에 따라 창의적인 무언가를 내놓는 그런 환상 말이다. 하지만 디자인을 하는 과정은 오히려 그 반대다.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프로젝트가 실현될 수 있다는 믿음과 팀원들 사이의 신뢰다.
유럽의 저명한 암 연구 센터 세인트 제임스의 새로운 캠퍼스 ‘마지스 요크셔(Maggie’s Yorkshire)’ 디자인 모형
런던 킹스크로스에 위치한 헤더윅 스튜디오에 전시한 다양한 오브젝트의 일부
공동 작업인 헤더윅 스튜디오의 디자인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각 프로젝트는 마치 하나의 여행과 같다. 우리는 여러 각도에서 프로젝트를 바라보며 의견을 조율하는데,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아이디어와 가장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아이디어에 똑같은 비중을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가능성이 낮은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선택할 아이디어에 더 많은 증거와 확신을 부여하기 때문에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창조적 작업을 목표로 하는 팀원들과 일하면서 일반적 방식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종종 스튜디오에서 팀을 디자인하는 것이 프로젝트를 디자인하는 것보다 힘들다는 생각도 든다.(웃음)
아이디어를 찾는 헤더윅 스튜디오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나?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서 회의하지 않는다. 리뷰를 위한 ‘핀업(pin-up)’ 과정을 진행하는데, 벽에 아이디어를 붙여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다. 이 과정을 많게는 60번 이상 계속할 때도 있다.
헤더윅 스튜디오의 팀원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무척 궁금해진다. 총 180여 명의 구성원이 20개 정도의 팀을 꾸려 운영한다. 우리의 프로젝트가 도시계획과 밀접한 작업이 많아 건축과 관련된 멤버가 많다. 물론 나와 같은 3D 디자인 쪽 경력을 쌓은 구성원도 있다. 실은 각자의 백그라운드보다 그들의 태도나 성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살아온 많은 시간 중 2년에서 4년 정도 전문 지식을 습득한 시간만으로 그 사람을 정의하는 것은 모순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의 작업은 문제를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태도를 갖추고 함께 일할 준비가 된 사람들을 선호한다.
지금 헤더윅 스튜디오에서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아부다비의 알 파야 공원(Al Fayah Park), 런던의 가든 브리지(Garden Bridge), 구글의 마운틴 뷰 캠퍼스(Google Mountain View Campus) 등 최근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주요 프로젝트는 도시 고유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지키는 작업이다. 아마도 현재 가장 중요한 도시문제는 바로 주거 공간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는 도시의 주거 공간을 디자인하면서 단순한 주택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이어주며 영감을 주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감옥 같은 공간도 디자인해보고 싶다. 영국 감옥을 예로 들어보면 감옥에 갔다 온 범죄자는 가기 전보다 더 나쁜 영향을 많이 받아 나오는데, 감옥을 또 다른 교육 장소로 보고 그에 맞는 디자인을 하면 좋을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도 새롭고 근사한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 싶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글 양혜숙(기호리서처) 사진 Rei 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