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시대에 즈음하여
글이 필요한 사람은 해마다 줄어든다는데, 말이 필요한 사람들은 꾸준히 늘어난다.
요즘 베스트셀러 1위는 혜민 스님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이다. 대단한 통찰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보편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잠언으로 가득한 책이다. “힘들어하는 나를 저항하지 말고 괜찮다고 오늘 그냥 허락해보세요” 같은 착한 문장이 페이지마다 들어 있다. 2위는 지난해 서점가를 그야말로 휩쓸다시피 한 <미움 받을 용기>다. 청년과 철학자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운 이 책은 두 인물의 대화를 옮기는 구성을 취해 아들러 심리학을 설명한다. 압도적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이 두 권의 책에는 공통점이 있다. 글이긴 하나 말의 형식을 빌리고 있다는 것이다. 두 책 모두 ‘읽고 있다’는 느낌보다 ‘듣고 있다’는 느낌에 가깝다.
현재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은 글의 시대를 살아왔을 것이다. 말보다는 글을 잘 읽고 쓰는 방법을 우선으로 배웠고, “침묵은 금이다” 같은 말을 들으며 컸다(물론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에게 침묵은 결코 금이 아니다). 말은 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기 일쑤였고, 말 잘하는 사람을 두고 “입만 살았다”며 비꼬는 일이 빈번했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입이 살아 있는 사람은 그 자체로 엄청난 능력자다. 소위 ‘토크 콘서트’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강연의 호황이 그 증거다. 강연을 듣는 일이 문화생활의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한 지는 꽤 오래됐다. 크고 작은 강연회가 지금 이 순간에도 열리고 있다. 시장이 커지다 보니 김제동과 김미경 같은 스타 강연자가 생겨났고, 연예인은 물론이고 지식인들까지 너나없이 강연에 뛰어들었다. 왜? 돈이 되니까. 몸값이 비싼 강사들은 강연 한 번에 수백만 원이 우습다. 무명의 강사들도 자기만의 콘텐츠가 있으면 자본 없이 강연료를 벌 수 있다. 그건 그만큼 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말이 글보다 효율적이다
최근까지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을 맡아온 건 문자였다. 말은 뱉는 즉시 사라지기에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 있어야만 소통에 참여할 수 있다. 반면 문자는 말의 한계, 즉 시공간의 제약을 없앨 수 있다. 문자를 통해 개인적 학습이 가능했고, 그 지식이 멀리까지 퍼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왜 다시 말의 시대가 왔는가. 우선 방송과 인터넷의 등장으로 말의 약점인 시공간의 제약을 극복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현대인의 생활 패턴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예전보다 훨씬 바빠졌고, 훨씬 많은 정보에 노출돼 있다. 과거처럼 한정된 정보를 여유 있게 음미할 시간이 없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찾아내고, 취사선택하는 것이 이 시대에 더 어울리는 지식 습득 방식이다. 빠르고,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라는 점에서 말은 글보다 훨씬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미디어와 대화하라>의 저자인 미디어생태학자 임상훈은 말했다. “현대사회는 정보의 홍수입니다. 텍스트로 대량의 정보를 접하는 것은 그 내용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죠.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한 것만 빠르게 습득하길 원합니다. 광명 이케아 매장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쇼룸을 봐야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안에 들어가면 그들이 제시한 동선에 따라 움직여야 하죠. 텍스트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이와 비슷합니다. 핵심만 보고 싶은데, 그 핵심을 보기 위해 너무 긴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말은 중간에 개입할 수 있고, 질문할 수도 있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같은 내용을 이해하는 데 글보다 적은 시간이 걸립니다.”
2000년대 중반 네이버의 ‘지식인’이 부흥한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그 전까지는 질문이 있어도 그 답을 들려줄 대상이 마땅치 않았다. 인터넷 검색 역시 길고 딱딱한 전문 지식 위주였다. 하지만 누구나 질문할 수 있고 누구나 답할 수 있는 지식인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마치 옆집 형이 설명해주는 것처럼 생생하고 친근한 정보였다. 그렇다고 그 지식이 수준 낮은 것도 아니었다. 커뮤니케이션의 장에 참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좀 더 드러나게 됐을 뿐. 지식의 문턱이 낮아진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는 지금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우리가 문자를 가장 자주 접하는 것은 인터넷 기사를 통해서다. 하지만 기사를 공들여 읽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기사는 대충 읽고 댓글을 먼저 읽는 사람이 태반이다. 동영상의 위세는 어떤가. 미국 최대의 소셜 미디어 ‘버즈피드’는 텍스트보다 1분 내외의 짧은 동영상 제작에 더 공을 들인다. 그래야 사람들이 반응하기 때문이다. ‘읽는’ 행위보다 ‘보다’와 ‘듣다’가 더 중요한 행위가 된 셈이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개탄하기도 한다. 수준 높은 텍스트를 소비하는 것이 미덕이던 과거에 비해 ‘대중의 수준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미디어생태학자 임상훈은 말했다. “예전에는 많이 배운 사람, 글을 잘 읽고 쓰는 사람이 기득권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같은 ‘말의 시대’를 두고 대중의 질적 하락 운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한 달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이 세상의 주목을 받으니까요. 하지만 대중의 수준이 낮아진 것이 아닙니다. 대중이 선호하는 정보의 종류가 달라진 것뿐이죠. 요즘 사람들은 당장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삶의 지혜란 전문 지식과 큰 상관이 없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명성이 없는 사람도 각자 나름의 영역에서 삶의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누구나 자신이 가진 삶의 지혜를 나눌 수 있게 됐는데 말은 글보다 훨씬 접근성이 높습니다. 말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그렇다면 말의 다음은 뭘까? 과학자들은 글과 말 없이도 의사소통이 가능한 시대가 올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소위 사물인터넷이라 불리는 것이다. 사물 인터넷은 사람이 굳이 의사를 표현하지 않아도 기계가 알아서 모든 것을 해주는 시스템이다. 예컨대 출근 전 교통사고로 도로가 막힌다는 뉴스를 접한 스마트폰은 스스로 알람을 평소보다 30분 일찍 울린다. 교통사고가 난 차는 알아서 사고를 분석하고 근처 구급차를 부른다. 굳이 약 먹을 시간을 기록해 두지 않아도 알아서 시간을 알려주는 제품, 심장박동 수를 분석해 심장의 상태를 의사에게 바로 전달하는 제품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 궁금하다. 글과 말이 없는 필요 없는 시대를 살게 될지도 모를 우리의 후손은 과연 행복할까? 아,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다. 이 글은 과연 몇 명이나 읽을까?
에디터 이기원 (lkw@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