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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안정제

LIFESTYLE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작가 김병수를 만나 ‘마음의 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울과 불안이 만연한 시대, 우리를 위로하는 안정제는 무엇일까?

 

2000년대 초반부터 작사가로, 라디오 음악 작가로 활동해 온 ‘생선’은 몇 권의 에세이, 소설로 꽤 두터운 팬층을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그에겐 우울증, 공황장애라는 마음의 병이 있었다. 그는 치료를 위해 7년 동안 매달 한두 번씩 정신과 의사를 만났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얼마 전 불안과 우울, 공황을 주제로 각자의 이야기와 진료실 밖에서의 진솔한 스토리를 담은 에세이 <당신이라는 안정제>를 펴냈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병수가 이 책의 주인공 ‘당신’이다. 그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서울아산병원 스트레스클리닉에서 환자를 만나고 있으며 2012년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를 시작으로 <사모님 우울증>, <버텨낼 권리>, <마음의 사생활> 등의 책을 써왔다. 그가 처음부터 정신과 의사가 되고자 한 것은 아니다. 지금이야 의대생이 가장 선호하는 전공 중 하나가 정신과라지만 그가 학교를 졸업하던 16년 전만 해도 인기 분야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글 쓰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한 그는 의대에 들어갔지만 인문학에 대한 갈증이 있어 인간의 내면과 관련 있는 정신과 전공의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의 진료실을 찾는 이들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내과적 원인은 없지만 밤마다 잠을 못 이루거나, 소화가 안 되거나, 가슴이 답답한 스트레스·신경성 질환을 앓는 이들이다. 20~30대의 젊은 층부터 40대 주부, 50~60대의 성공한 사업가 등 각계각층의 환자는 상실의 경험, 대인 관계로 인한 상처, 실직, 과도한 업무로 인한 극심한 부담감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환자들은 상담과 몇 가지 검사를 통해 임상 진단을 받고 그와 함께 해결책을 찾는데, 상당수가 일시적 현상을 필요 이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는 그들에게 “당신은 병리적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에 있으며 그 정도 괴로움은 당연한 것이다”라고 알려준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어느 정도의 오작동은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것이 그의 의견. 그것을 나쁘다고 잘못 해석하고 파고드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우울증과 불안증은 만성입니다. 스트레스가 모두 해소되어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죠. 어느 정도 불안하더라도 건강한 삶을 사는 데 큰 문제는 없어요. 불안과 행복은 공존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실 ‘정상’의 기준은 상당히 모호하다. 그 기준이 쉽게 변동되기도 하고 객관적 설명이 가능한 명확한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다. MRI나 조직 검사가 통하지 않는 정신적 질병을 치료할 때 그 애매모호한 기준을 판단하는 그의 방식이 궁금했다. 누군가에겐 식음을 전폐할 만큼 힘든 사건일 텐데 ‘이 또한 지나간다’고 진단하는 것이 옳은 판단일까? 그는 “환자의 삶을 상상하면서 병의 정도를 헤아린다”고 말한다. 배우자를 잃은 50대 남성인 경우 부인과 어떤 관계였고, 두 사람의 주말은 어땠으며,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상상하다 보면 그 슬픔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그는 우리가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상상력 결핍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단편적이고 갇혀 있는 사람은 오해와 상처를 불러일으키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여러 가지 경우를 고려해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며,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 현실적 고통을 완화한다는 것.
그런데 현시대는 왜 이토록 마음의 질병이 만연한 걸까?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이유는? “경쟁, 성과, 이윤에 치우친 사회에서 행복을 찾기란 쉽지 않아요.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사회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체념, 즉 ‘이럴 때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과 함께 모든 것을 개인의 의지로 해결하려는 반작용에서 비롯하죠. 아무리 폐활량이 좋은 물고기라도 흐린 물에선 오래 살 수 없는 것처럼 개인과 사회가 동시에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해나가야 해요.”
그는 마음 건강의 핵심으로 규칙적인 생활, 가벼운 운동, 매일 30분 이상 햇빛 쬐기, 건강한 식단 등 삶의 기본 조건을 꼽는다. 이것을 간과한다면 아무리 약을 먹고 치료를 받고, 사회가 변한다 해도 소용없다. 물론 기본을 지킬 수 있으면 좋겠지만 못 지키는 사람이 더 많다.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 귀가하면 운동할 시간적 여유는 물론 기력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럼에도 처음엔 억지로라도 하라고 조언한다. 그의 대표 저서 <사모님 우울증>의 주요 독자인 ‘우울한 아내’, ‘외로운 어머니’에게 건네는 팁은 이렇다. “제발 매일 아침 일어나면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기초 화장을 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으세요!” 그는 남편과 자녀의 아침을 챙기고 내보낸 뒤 소파에 누워 TV를 시청하는 것이 일과인 이들에게 근본적 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는 일을 하지만 자신도 줄곧 상처를 받고, 약한 부분이 많다고 인정한다. 보통의 현대인과 다를 바 없는 ‘멘털’을 지닌 그의 해결책은 그리 어렵지 않다. 누가 정상인지 그 누구도 제대로 알 수 없으며, 우울과 불안의 정도는 생각만큼 깊지 않고 당연한 것이며, 사소한 것을 지킬 때 마음의 병은 호전된다. 부정적 감정은 무조건 없애야 능사가 아니라 그런 감정이 있다 해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 이를 인정하고 실천할 때 마음과 정신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크고 작은 영향력을 바탕으로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발견해 이야기로 풀어갈 계획이다. 책을 쓰는 일이든, 환자를 돌보는 일이든 엄청난 비법을 전수하기보다는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을 위로하고 천천히 효과가 나타나는 안정제를 찾아가고자 한다.

 

김병수가 조언하는 마음의 병을 예방하는 법
1 의지력을 과신하지 말 것. ‘나’를 바꾸기보다 환경을 바꾸고 만나는 사람을 바꿔야 한다.
2 자기 복잡성을 기를 것. 마음은 복잡한 것이 정상이다. 삶이 다채로워지면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기를 수 있다.
3 ‘나는 옳다’고 확신하지 말 것. 자신은 남과 달리 능력 있고, 고결하고, 완벽하다고 생각할수록 심리적 유연성이 떨어진다.
4 자기 자신을 너무 파고들지 말 것. 행복한 사람은 자기 자신 에 대해 ‘덜’ 생각한다. 세상을 향해 에너지를 쏟아라.
5 부정적 사고를 바꾸려고 애쓰지 말 것. 이것은 인간의 본성에 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운동을 통해 몸이 함께 변해야 한다.
6 자신의 시간개념을 따를 것. 사회적 시간, 인생 표준 시계에 휩쓸리지 말고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7 자기 삶의 이야기를 만들 것. 지나온 삶은 변하지 않지만 과 거에 대한 이야기는 바꿀 수 있다. 의미를 찾고 끊임없이 인생 이야기를 새롭게 써라.

에디터 임해경 (hklim@noblesse.com)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