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아세요?
이유영은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같은 대사를 여러 번 반복한다.
“저를 아세요?” 실제 이유영도 모호한 이미지 속, 알 듯 말 듯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
이 인터뷰를 마치면 바로 청룡영화제 시상식에 가야 한다. 지난해에 신인여우상 수상자였는데, 올해는 시상자가 됐다.
전년도 수상자 자격으로 올해는 신인여우상을 시상하게 됐다.
누가 받을 것 같은가?
모르긴 해도 김태리가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아쉬움은 없나?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이 출품작이었다면 여우주연상 후보가 됐을 텐데.
아유… 그랬으면 창피했을 거다. 난 내 연기가 정말 별로였거든. 그날그날 나오는 시나리오 때문에 대사 외울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하지만 대사를 완벽히 숙지했다면 그 생생한 느낌이 덜했겠지.
맞다. 감독님도 그걸 의도하셨을 거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다른 생각 할 겨를이 없게, 오직 그 상황에 내던져진 기분으로. 하지만 촬영할 때는 답답한 게 많았다.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좋은 얘기를 많이 듣긴 했지만 아직 얼떨떨하다.
지난번 홍상수 감독 영화와 달리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이유영의 영화처럼 보였다. 당신의 에너지가 영화를 삼키는 느낌이었다.
정말 기분 좋다. 정말 난 아무것도 모르고 했거든.
홍 감독은 배우를 미리 만나고 실제 캐릭터에 맞게 시나리오 쓰는 걸로 유명한데, 첫 만남은 어땠나?
감독님과는 한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한 30분 정도 얘기 나눈 뒤 불쑥 “하려고 온 거지? 잘해보자” 하시더라. 그리고 김주혁 선배를 부르더니 막걸리로 새벽까지 달렸다. 하하. 나의 어떤 점을 보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속 캐릭터에 조금은 녹아 있겠지.
2014년에 데뷔했는데, 3년 만에 영화 세 편의 주연을 꿰찼다. 생각보다 빨리 올라온 걸까?
아니, 적당한 것 같다.(웃음) 너무 빠를 필요는 없지만 지금이 그렇게 빠른 것 같지도 않다. 아쉬운 건 학생 역할을 한 번도 못해봤다는 것? 데뷔작인 <봄>에서도 애 둘 있는 엄마 역할이었고 최근까지도 강한 역할이 많았다. 로맨스물을 좋아하는데 밝고 귀여운 역할도 해보고 싶다.
그러려면 영화보다는 드라마나 시트콤일 텐데. 이제 드라마 쪽에서도 제안이 꽤 들어올 거다.
사실 몇 편 제의가 있긴 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오랜 시간 촬영해야 하고, 환경도 중요하니까. 신중하게 고민하고 싶다.
아무래도 경제적으로 드라마가 더 도움이 되지 않겠나?
그렇긴 하다. 그래서 배우들이 드라마 한번 하면 쉽게 못 빠져나온다. 그런데 나는 지금 돈이 급한 건 아니니까. 휘둘리지 않을 자신은 있다.

돈 많이 벌고 싶지 않나?
나중에는 많이 벌고 싶지만, 지금은 돈보다 다른 게 훨씬 중요하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하는 것.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니까.
20대 여자에게는 돈 쓸 곳이 많지 않나?
옷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큰돈 들 일이 없다. 무엇보다 아직 큰돈을 벌어본 적이 없어서.(웃음)
보통 배우들을 촬영할 때는 어느 정도 이미지가 그려지는데, 당신은 그게 어려웠다. 이미지가 하나로 모이지 않아서. 모호한 느낌이었다.
나도 그게 고민이다.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건 장점인 것 같은데, 아직 나만의 매력을 못 찾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배우로서는 장점 아닐까? 하얀 도화지 같은 얼굴이다. 어떤 색도 칠할 수 있는.
그런 얘기를 가끔 듣긴 했다. 그런데 그건 화장했을 때와 민낯일 때너무 달라서 그런 것 아닐까? 요즘도 지하철을 자주 타는데, 알아보는 사람이 드물다.(웃음)
이력이 좀 특이하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엔 안 갈 생각이었다고. 왜?
초·중·고까지 12년이나 다녔으니 학교생활을 너무 오래 한 것 같았다.(웃음)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부모님 간섭도 안 받고 싶었고, 돈 벌어 독립하고 싶어서 대학 진학을 안 했다.
학창 시절에는 아웃사이더에 가까웠을까?
그런 편이다. 일진 같은 건 아니었지만 학교생활에 도통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나를 대견해한다. ‘뭘로 먹고살지 걱정했는데 인간답게 살고 있구나.’ 이런 느낌? 그랬는데 뒤늦게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려면 대학에 가야겠더라. 기왕이면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게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연기를 선택했나?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데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공부는 하기 싫고 실기 중에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그게 연기였다.(웃음) 어릴 때부터 막연히 연기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고, 시작할 엄두도 안 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마침 연기가 떠올랐다.
그래도 한예종이 아무나 갈 수 있는 학교는 아니다.
그 전에는 한예종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연기학원 선생님이 평생 배우 하고 싶으면 한예종에 가라고 해서 뭣도 모르고 시험 봤다. 물론 1년 정도 죽었다 생각하고 열심히 하긴 했다. 친구도 안 만나고 집에서 책 보고, 영화 보고, 음악 들으며 공부했다. 그게 다 배우에게 필요한 거란 생각이 들어서.
예체능 계열은 서열도 강하고, 군기도 센 편이다. 자유롭게 살아온 것 같은데 힘들진 않던가?
내가 보기보다 힘든 상황을 잘 견디는 편이다. 특히 사람을 잘 견딘다. 예컨대 모두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어도 ‘저 사람은 저런 성격이구나’ 하고 넘겨버리는 면이 있다. 그래서 그렇게 힘든 건 없었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제가 남자들이 좋아하는 타입인가 봐요.” 실제로는 어떨까?
데뷔하기 전에는 좀 있었는데 데뷔한 후에는 뚝 끊겼다.(웃음) 사실 내가 실제로 자주 하는 말이기도 하다. 장난기가 많아서 농담도 잘 하고,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라. 예전에는 이상형에 가까운 남자를 만나고 싶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내 문제라는 걸 알았다. 다음에 누군가와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단점까지 껴안을 수 있는 사랑을 하고 싶다. “제가 다 맞출게요” 하던 김주혁 선배 대사처럼.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나?
김주혁 선배 대사 중에 정말 좋은 게 있었다. “인생은 다 척이야. 사랑만이 진짜야. 나머지는 다 수작이고, 요식행위야” 하던 대사. 그 연기와 대사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내가 맡은 민정이 마지막에 “저를 아세요?” 하던 장면. 마술 부리는 것 같은 느낌의 신이었다.
곧 2016년의 마지막 날을 맞을 텐데, 뭐 하면서 보내고 싶은가?
나도 좀 특별한 이벤트를 하고 싶은데…. 특별한 게 뭔지 잘 모르겠다. 여자들끼리 호텔 잡고 파자마 파티 하는 것도 좀 싫다. 그냥 지인이 운영하는 바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혼자 술을 마시겠다고?
친구가 하는 바니까 혼자 마시진 않겠지. 술 마실 일이 너무 많아서 어지간해선 혼자 안 마신다.(웃음)
에디터 이기원(lkw@noblesse.com)
사진 노기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