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을 위한 미식
상하이에 위치한 울트라바이올렛 레스토랑에서의 만찬은 한 편의 오락 쇼와 같다. 폴 페르 셰프가 연출한 무대 위에서 직접 맛보고 느끼며 오감으로 즐기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온전히 새로운 형식, 아방가르드 퀴진의 새 장을 연 천재 셰프 이야기를 지금 만난다.
울트라바이올렛 폴 페르 셰프
아홉 살 소년의 생일 축하 선물 중에 요리책 한 권이 있었다.
피크닉 컨셉으로 연출한 다이닝룸
울트라바이올렛에서 식사하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된다. 전화번호도 없고 온라인으로만 예약할 수 있는데 수개월 전에 마감된다. 10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하나가 전부이니 오픈 이래 지금까지 예외없이 만석이다. 사실 울트라바이올렛은 ‘신비주의’ 컨셉으로도 유명하다. 어디에 있는지조차 아무도 알지 못한다. 미스터 앤 미세스 번드에서 식전주를 마신 후에 밴을 타고 이동하며, 어두운 입구로 들어서면 사방이 막힌 리셉션 공간이 나타난다. 이곳에 잠시 머무른 뒤 다이닝룸으로 인도된다. 여느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의 룸을 장식하는 화려한 집기는 여기서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공감각적 각종 하이엔드 기술로 채웠다. UV 조명, 360도 HD 월 프로젝션, 고해상도 프로젝터와 56개의 스피커, 커스텀 메이드로 제작한 프랑스 명품 퍼퓸 하우스의 디퓨저, 그리고 정중앙에 놓인 커다란 직사각형 테이블. 폴 페르는 이에 대해 “17세기 저택의 공동 식탁을 재현한 거예요.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키지 않나요?”라고 말한다. 이러한 컨셉을 고안한 이후 턱수염을 길렀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가 손님과 한 상에 앉는 일은 없다.
더 브레드 ⓒ Scott Wright
초콜릿 타르트 ⓒ Scott Wright
울트라바이올렛은 A, B 2가지 테이스팅 메뉴만 선보인다. 20개가 넘는 코스 요리로, 음식과 어울리는 홈메이드 칵테일과 와인을 매치할 수 있다. 전통적 프렌치 퀴진을 기반으로 하지만 일본과 동남아, 중동 스타일을 넘나든다. 하지만 당신이 음식에만 신경 쓸 때 셰프는 다른 것까지 세심하게, 총체적으로 배려한다. 매번 음식이 나올 때마다 프로젝터의 영상과 배경음악, 공간의 향기까지 바꾼다. 그는 4시간짜리 다이닝 쇼의 연출자, 그의 요리는 예술적 퍼포먼스에 가깝다. 필자가 맛본 음식은 UVB+(+는 음료 페어링을 포함한다)였다. 첫 번째 요리로 자몽과 석류, 액화질소를 사용해 얼린 라즈베리와 태국산 과일 요구르트가 서빙되었다. 벽면에 20세기 초 귀여운 교복을 입은 학생의 사진이 투영되었는데, 갑자기 사진이 움직이더니 학생들이 혀를 쑥 내밀고 카메라를 쳐다본다. 그리고 초콜릿 타르트가 등장했다. 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푸아그라 프랄린이 들어간 라임 향이 나는 머랭이었다. 요오드 냄새와 함께 바람이 불어오더니 다음 코스로 굴이 나왔다. 캐비아를 소복이 올린 뽀얗고 통통한 굴. 셰프의 시그너처 디시인 더 브레드(The Bread)를 만날 때는 또 달라졌다. 농축한 트러플 수프의 향미를 즐길 수 있는 음식인 만큼 벽에는 프랑스 트러플 숲의 이미지가 펼쳐졌고, 카니발스의 피아노 소나타가 흘러나왔으며 시가 연기가 차분히 스며든 한층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DIY 방식으로 제조해 먹는 인스턴트 코코 누들 수프(코코넛 에멀션을 주사기에 채워 수프에 분사해 먹는다), 지지직거리는 빈티지 오디오를 통해 올드 팝송을 들으며 피크닉 컨셉으로 타파웨어 그릇에 담아 먹는 생선 요리. 그의 또 다른 시그너처 요리인 토마토 모차 앤 어게인(Tomato Mozza and Again)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을 말해주는 독특한 요리. 겉으로 보기에 똑같은 2개의 접시가 나온다.
토마토 모차 앤 어게인 ⓒ Scott Wright
그런데 하나는 토마토, 모차렐라 치즈, 올리브 등 세이보리 메뉴로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토마토를 대신해 베리를 사용한 ‘달콤한’ 모방 버전이다. 어떤 음식을 맛보기 전에 잠재의식에 존재하는 ‘정신적 맛’과 ‘실질적 맛’의 일치와 배반을 설명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울트라바이올렛은 디저트만 5가지 코스에 달한다. 그중 셰프가 가장 좋아하는 아침식사(Le Breakfast)라는 이름의 달걀 요리(Egg Suzette, 실제로 그의 하루도 늘 달걀 요리로 시작한다. 다만 일을 마치고 새벽 1~2시에 먹으니 남들보다 아주 이른 아침식사지만), 피에르 에르메에 대한 오마주로 리치, 로즈, 라즈베리를 조합해 만든 이스파한-단델리온이 백미다.
식사가 끝나면 셰프는 늘 직접 손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며 주방을 구경시켜준다. 회전 건조기, 액화질소 탱크, 온도 순환 장치 등을 구비한 과학 실험실 같은 주방이다. “음식은 과학의 일부죠. 모든 조리 과정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나니까요.” 울트라바이올렛에서의 식사 경험을 말이나 사진으로 전부 담아내기란 불가능하다. 오감의 복합 작용을 표현할 수 있는 어휘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대체 이러한 컨셉을 어떻게 생각해낸 걸까? “다른 셰프에게 배워요. 알랭 뒤카스의 비전, 조엘 로부숑의 신념, 미셸 트라마의 기행, 알랭 파사르의 직관력, 페란 아드리아의 실험정신, 피에르 에르메의 미감.” 실제로 그가 가장 존경해 마지않는 이가 알랭 뒤카스인데, 그 또한 폴 페르의 팬이다. 울트라바이올렛에서 첫 디너를 즐긴 후에 이런 소감을 남겼다. “Cest magnifique et delicieux(정말 아름답고 멋진 순간이었네요)!”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사진 울트라바이올렛 글 손희란(미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