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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기부

LIFESTYLE

시대가 바뀌면서 기부의 종류와 방법도 다양해졌다. 미술에 대한 애정과 재능을 바탕으로 기부 활동을 펼치는 스타의 면면.

1 배우 송혜교와 서경덕 교수가 만든 LA 도산 안창호 하우스 한글 안내서
2 소더비와 함께 ‘#TTTOP’경매를 기획한 빅뱅의 탑
3 영화감독 조지 루커스와 그의 컬렉션 노먼 록웰 작품 ‘Shadow Artist’

전시회에 가면 오디오 가이드를 챙겨 듣는 편이다. 해설을 곁들이면 작품의 세세한 부분까지 감상할 수 있고, 작가와 작품 관련 에피소드를 듣는 것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데이비드 라샤펠>전에서도 오디오 가이드를 신청했다. 이어폰을 꽂고 재생 버튼을 누르자 어디서 많이 듣던 음성이 흘러나왔다. TV나 영화에서 자주 듣던 스타의 목소리다. 배우 조여정이 재능 기부로 오디오 가이드 녹음에 참여한 것이다. 성우가 아닌 배우에게 전시 해설을 맡긴 이유는 무엇일까? 전시를 기획한 최요한 감독은 “좋은 전시 해설을 위해선 작품 속에 담긴 감정을 잘 표현해야 한다. 성우는 발음은 또렷하지만, 기계적인 느낌이 든다. 하지만 배우는 감정에 호소하는 측면에서 탁월하다. 또 관람객이 스타의 목소리를 친근하게 느끼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한다.
최근 미술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예술적 기부’를 실천하는 스타가 늘었다. 그 방법도 다양하다. 2012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배우 이정재는 <올해의 작가상 2012>전에 출품한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작품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2014년 ‘모두를 위한 미술관 예절’을 슬로건으로 하는 ‘뮤지엄 매너 캠페인’에 서명하고, 이듬해에 미술관 관람을 제안하는 홍보 영상을 촬영하는 등 한국 미술 문화의 저변 확대에 힘써왔다. 지난해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개최한 <이중섭, 백 년의 신화>전에서 자신이 녹음한 오디오 가이드의 판매 수익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한편 2016 광주 비엔날레 홍보대사로 활동한 배우 현빈은 비엔날레의 역사와 전시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영상을 촬영해 주목 받았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데뷔 후 꾸준히 좋은 작품으로 대중과 소통하며 한류 스타로 자리매김한 현빈의 이미지가 광주비엔날레의 국제적이고 친근한 이미지와 부합해 홍보대사로 위촉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최근 미술가 권오상과 짝을 이뤄 ‘유방암 인식 향상 캠페인’의 아트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한 배우 유아인도 그에게 뒤지지 않는다. 문화역서울284에서 오는 4월 16일까지 열리는 <다빈치 코덱스, 기록된 미래>전의 홍보대사와 오디오 가이드 목소리 안내를 동시에 맡은 것. 전시에 앞서 그는 소외 계층 아동을 위해 4000만 원 상당의 전시 티켓을 아름다운재단에 내놓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더 많은 아동과 청소년에게 문화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가 하면 기존에 널리 알려진 재능 기부가 아니라, 아예 직접 전시를 기획해 젊은 미술가 돕기에 나선 스타도 있다. 빅뱅의 멤버 탑은 지난 10월 세계적 예술품 경매업체 소더비와 함께 ‘#TTTOP’라는 특별 경매를 열었다. 먼저 제의한 것은 소더비, 평소 수입의 95% 이상을 미술품에 투자한다는 탑의 컬렉터로서 자질을 높이 산 결과다. 소더비 한국 홍보 대행을 맡은 이안아트컨설팅의 김영애 대표는 “처음에 탑은 미술 전문가가 아닌 자신이 전시를 기획한다는 사실에 부담감을 느꼈지만, 형편이 어려운 신진 미술가를 돕기 위해 개런티 없이 소더비와 협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탑이 1년에 걸쳐 준비한 이 경매는 성공적이었다. 게스트 큐레이터로서 그가 직접 선정한 28점의 작품 중 25점이 팔려 약 195억 원의 판매고를 올린 것. 탑의 뜻에 따라 경매 수익 일부는 아시아문화위원회(Asian Cultural Council)에 기부했다. 배우 송혜교도 이와 비슷한 경우. 평소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유명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가 없어 아쉬워하던 그녀는 5년 전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교수를 처음 만나 그 자리에서 한글 안내서 제작 사업을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이들은 2012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을 시작으로 보스턴 미술관, 토론토 박물관 등에 한글 안내서를 만들어 무료로 제공하는 한편, 충칭 임시정부 청사와 LA 도산 안창호 하우스 등 전 세계 대한민국 역사 유적지에도 한글 안내서를 배포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윤봉길 의사 순국일인 12월 19일에 맞춰 상하이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 한글 안내서 1만 부를 기증해 의미를 더했다.
스타의 예술적 기부는 해외라고 다르지 않다. 영화감독 조지 루커스는 미국을 대표하는 삽화가이자 화가 노먼 록웰(Norman Rockwell)의 오랜 팬. 그는 2010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텔링 스토리: 조지 루커스와 스티븐 스필버그 소장 노먼 록웰 컬렉션>전을 열어 소장품을 선보였고, 지난 10월엔 노먼 록웰 미술관의 디지털 콘텐츠를 보강하기 위해 150만 달러(약 17억 원)을 기증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환경보호 단체를 세울 만큼 열성적인 환경 운동가인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아트 바젤 페어에 늘 얼굴을 드러낼 뿐 아니라 앤디 워홀과 장 미셸 바스키아, 살바도르 달리 등 거장의 작품을 보유한 세계적 미술 컬렉터. 그는 2013년 환경보호 프로젝트 재원 마련을 위해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미술품 자선 경매를 열었고, 멸종 위기 동물 보호 활동에 경매 수익금 전액을 기부했다. 이 밖에 영화와 음악, 패션 등 각 분야의 유명인사와 협업해 자선 활동을 펼치는 국제 기부 단체 21세기리더재단(21st Century Leaders Foundation)의 W.I.T(Whatever It Takes) 캠페인도 흥미롭다. 배우 조지 클루니, 축구 선수 박지성 등 세계적 스타의 그림을 새긴 제품을 판매하는데, 향수와 와인, 식기 세트 등 종류가 다양하다. 판매 수익금 일부는 유니세프 등 국제 자선단체에 기부해 빈곤 퇴치와 의료 지원, 난민 구호 활동 등에 쓰인다.

1 <다빈치 코덱스, 기록된 미래>전에서 배우 유아인은 홍보대사와 오디오 가이드 녹음을 맡았다.
2 배우 조여정은 <데이비드 라샤펠>전에서 오디오 가이드 녹음에 참여했다.
3 W.I.T 캠페인에 참여한 배우 조지 클루니의 향수

사실 스타의 기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공인으로서 모범을 보인 훌륭한 스타가 많다. 다만 시대가 바뀌면서 기부의 종류와 방법도 다양해졌다. 과거엔 봉사 활동에 참여하거나 성금을 내는 등 기부 형태가 제한적이었지만, 요즘 스타들은 자신의 재능과 관심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사회에 공헌한다. 예술적 기부도 같은 맥락이다. 20세기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저서 <구별 짓기>에서 문화 상품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다고 분석 했다. 사회계급에 따라 향유하는 문화의 종류가 다른데, 특히 미술은 일부 계층만이 즐길 수 있는 특권처럼 자리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여전해 보인다. 지난 2015년 빅뱅의 리더 지드래곤과 현대미술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서울 시립미술관의 <피스마이너스원: 무대를 넘어서> 전시를 두고 상업적이란 비판이 쏟아졌을 때, 미술관 측은 “서울 시민 중 미술 향유층은 15% 정도에 불과하다. 대중문화 스타와의 협업을 통해 더 많은 시민을 미술관으로 불러모으겠다”며 전시 기획 의도를 밝혔다. 전시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적어도 이 전시가 나머지 85%의 관심을 끈 건 분명하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인혜 학예사는 “스타의 예술적 기부는 미술의 높은 진입 장벽을 허무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예술적 기부를 하는 스타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은 자연스레 미술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스타가 미술 문화와 대중 사이를 잇는 매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물론 스타의 예술적 기부를 두고 ‘스타 마케팅’의 일환이란 견해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스타는 예술적 기부 활동을 통해 문화 예술 애호가로서 이미지를 쌓을 수 있고, 미술관이나 경매사 등 행사 주최는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넘어 미술에 대한 식견을 넓히고 싶다면, 스타의 예술적 기부 행보를 주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스타와 함께라면 멀게만 느껴지던 미술도 한층 친근하게 느껴질 테니 말이다. 시작이 반이다.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당신의 삶은 한층 풍요로워질 것이다.

에디터 황제웅(hjw1070@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