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윤식의 따뜻한 30초 미학
올해로 CF 감독 7년째를 맞이한 곽윤식은 자동차, 음료, 아웃도어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색깔을 영민하게 바꿔왔다. 그럼에도 그의 정체성을 담은 색깔을 꼽자면 포근하게 사람을 감싸는 노란색이 아닐까.

CF가 30초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순간 포착해 재치 있게 표현하는 동시에 찰나와 같은 그 짧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수많은 스태프의 고민과 아이디어, 열정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한 편의 드라마인 CF를 위해 배우, 아트 디렉터, 카피라이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촬영감독 등 수많은 사람이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정성을 쏟지만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카메라 뒤의 CF 감독으로, 그들은 현장에서 스태프들을 능숙하게 진두지휘해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을 더한 작품을 완성한다. CF 감독 곽윤식은 2010년 3월 KT의 구글 넥서스 1 휴대폰 광고로 입봉한 후 삼성 르노자동차(2012년), 농심 둥지냉면(2012년), 아웃도어 브랜드 마운티아(2013~2015년) 등 다양한 장르의 광고에 따뜻한 인간애를 담은 작품을 선보였다. “광고는 상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결국 우리의 인생 이야기가 투영된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광고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제품의 특성과 함께 녹여내는 것이 제 광고의 특징입니다.”
지금은 CF와 사랑에 빠진 광고쟁이가 됐지만 어릴 때 그의 꿈은 아버지 곽영범처럼 드라마 감독이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를 보며 감독의 꿈을 키운 그는 199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카데미 오브 아트 칼리지(Academy of Art College)의 영화 & TV 연출과에 진학했다. “어릴 때 아버지의 촬영장에 자주 놀러 갔어요. 아버지가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액션!” 하고 외치는 모습이 너무 멋있더라고요. 그 장면을 보고 저도 아버지처럼 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입학 후 2년간 영상 연출을 공부하던 중 아버지가 드라마만 고집할 게 아니라 CF라는 장르도 한번 고려해보라고 권유하시더라고요. 생각해보니 장르는 다르지만 짧은 영상에 서사가 있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광고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 연출 공부를 마친 후 CF 감독이 될 수도 있었지만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 싶어 군대에 다녀온 후 1998년에 같은 학교 광고 디자인과에 재입학했다. 하지만 광고를 감상하던 시청자의 입장에서 막상 그것을 전공으로 하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광고 아이디어 구상안과 콘티 짜기 등 광고 전반을 아우르며 배울 수 있는 건 만족스러웠어요. 그런데 재미있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짜내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더라고요. 열심히 아이디어를 구상해도 교수님께 혼나는 일이 다반사였죠.” 대학교 2학년, 광고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싶던 차에 그는 용기를 내어 학교 선배와 한국 대학생 광고제에 응모했고 당당히 우수상을 수상했다. 광고제에서 수상하면서 자신감이 붙자 2002년 졸업할 즈음엔 광고가 두렵기보다는 재미있게 느껴졌다.
같은 해 한국에 돌아온 그는 한국 광고 시스템을 파악하고 현장감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광고 대행사 오길비앤매더(Ogilvy & Mather)의 프로듀서로 광고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영상 연출과 광고 디자인을 전공했기에 광고주의 입장과 감독의 입장을 이해하고 조율하는 프로듀서 일은 그에게 적격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소중히 품어온 꿈을 포기할 수 없던 곽 감독은 2010년 아프리카픽처스에 입사해 CF 감독으로서 행보를 시작했다. 앞서 말한 CF 외에도 글라소의 비타민워터(2013년), 아웃도어 브랜드 센터폴(2014~2015년), 카카오 온라인 게임 초월(2016년) 등을 통해 광고계에 존재감을 드러냈고, 데뷔 7년 만에 현대자동차 에쿠스 바이 에르메스(Equus by Hermes)모터쇼 영상(2013년)과 에누리닷컴 바이럴 영상(2015년) 연출까지 진행한 베테랑 감독이 됐다. 언뜻 보면 큰 위기 없이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 같지만 광고의 상업성과 그가 추구하는 예술성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난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야’라는 자의식이 강했어요. 그래서 광고주와 이야기할 때도 제 생각을 굽히지 않고 고집을 부려 불협화음이 계속 생겼죠. 그렇게 수년이 흐른 어느 날 ‘광고 제작이 내 개인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광고라는 매체를 통해 예술적 감성을 표현하는 일인데 내 욕심만 부려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대행사나 광고주는 오랫동안 광고 상품을 연구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들이 제품에 공들인 정성을 존중하되 제 의견을 반영해 현명하게 조율해나가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럼에도 광고 연출을 시작한 이후 지금껏 그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사람 냄새 나는 광고를 만드는 것이다. 2015년 에누리닷컴 바이럴 영상을 보면 전 미국 대통령 오바마와 북한 노동당 위원장 김정은을 닮은 대역 배우들이 홍대 앞에서 화합의 버스킹을 선보인다. 공연이 끝난 후 김정은 대역 배우가 “형, 잘 가! 아저씨, 왕십리요”를 외치며 오바마 대역 배우를 택시에 태워 배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평소 관찰이 취미인 그의 아이디어를 반영해 탄생한 컷이다. “광고의 트렌드를 이끄는 건 소수가 아닌 다수의 대중이에요. 그래서 시간이 날 때마다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고, 종점에서 종점까지 2~3시간 동안 버스를 타면서 일어나는 일상의 다양한 풍경을 머릿속에 담아두죠.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와 비메오(Vimeo)에서 동영상을 보며 트렌디한 감각을 유지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그는 3년 전 아프리카픽처스를 그만두고 직접 CF 제작사 판다프로덕션을 설립했는데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남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소하지만 기발한 우리의 이야기를 제가 주체가 되어 그리고 싶었어요. 촬영을 하다 보면 여전히 원치 않는 상황으로 흘러가는 일이 많지만 여유를 잃지 않는다면 결과물도 판다를 닮은 기분 좋은 결과물이 나올 거라고 믿어요.”
지금은 CF를 주로 제작하고 있지만 곽 감독은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영화, 뮤직비디오, 전시 등 다양한 영상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평소에도 창조적 작업을 즐기는 그는 곧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와 스니커즈도 런칭할 계획이라고. “저는 모든 사소한 행동이 곧 광고와 직결된다고 생각해요. 지금껏 제 경험이 광고에 고스란히 투영됐거든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어쩌면 광고와 무관해 보이는 그의 모든 일상과 새로운 경험이 앞으로 그가 연출할 CF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담을 소중한 티끌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사진 김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