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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석, 사방을 가로지르는 나비의 날갯짓

ARTNOW

지난 1월, 건축가 조민석(매스스터디스 대표)이 2024년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프로젝트 작가로 선정됐다.

조민석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컬럼비아 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OMA 로테르담 등 다양한 회사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은 후, 2003년 한국에 돌아와 매스스터디스를 설립했다. 2014년 제14회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서 한국관 커미셔너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고, 스페이스K 서울과 페이스갤러리 서울 등 다양한 전시 공간을 설계했다. 그가 설계한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군도의 여백’은 6월 7일부터 10월 27일까지 선보일 예정이다.

아버지가 김중업건축연구소 출신 건축가라고 들었습니다. 아버지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건축가를 꿈꾸셨나요?
저는 사실 미대에 가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뭔가 만드는 걸 좋아했고, 피카소와 달리를 좋아했죠. 예고 입시를 준비하던 때만 해도 아버지가 하는 일은 솔직히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르코르뷔지에 책을 보고 건축이 자기표현 수단은 아니지만 실용성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지금은 건축과 예술이 통한다고 쉽게 믿지는 않아요. 제가 예술가들을 존경하면서 친구로 삼는 건 건축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기 때문이에요. 어쨌든 건축은 용도에서 출발하는 거고, 그 이상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탐구하면서 건축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었어요.
최재은, 양혜규 등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아티스트와 우정을 나누고 계시죠. 그들과는 어떻게 교류하게 되었나요?
‘덕업일치’의 자연스러운 결과랄까요. 관심 있는 작품을 계속 따라가다 예술가 친구들을 만나게 됐죠. 최재은 작가와의 관계는 잡지 〈공간〉 표지에 실린, 경동교회에서 작업한 작품 ‘동시다발’(1990)을 인상 깊게 본 것이 시작이었어요. 미국에서 일할 때였지만, 최재은 작가가 작업한 대전엑스포 재생조형관(1993)도 시간 내서 보러 갔습니다. 2004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믹스막스〉전에선 양혜규 작가와 서상영 디자이너의 작품을 흥미롭게 봤는데, 그 후 자연스레 만나게 됐죠. 장르를 불문하고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며 자기 영역을 만들어가는 분들에게 관심이 있어요.
갤러리, 아트센터, 뮤지엄, 복합 문화 공간 등 민간과 공공을 넘나드는 다양한 예술 공간을 설계했습니다. 그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데, 각 공간의 설계 과정에서 서로를 참조하기도 하나요?
일단 제 건축은 주어진 조건에서 출발해요. 참조는 은연중에 이루어지죠. 〈Imagining the Future Museum: 21 Dialogues with Architects〉(2023) 책 관련 인터뷰 덕분에 지난 21년간 우리 작업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어요. 뮤지엄을 포함한 전시·문화 공간만 30여 곳을 작업했더라고요. 전 이런 작업의 흥미로운 출발점을 ‘충무로 인터미디어 플레이그라운드’(2002)로 생각해요. 매스스터디스 설립 직전 한국과 뉴욕을 오가며 건축가 제임스 슬레이드(James Slade), 김광수와 함께한 작업입니다. 2002 월드컵을 앞두고 서울시와 충무로역의 썰렁한 공간을 단장하자는 정도로 출발했어요. 하지만 사업을 담당한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람들과 함께 영화제, 강의, 영상 편집 등을 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공간을 만들어버렸죠. 예산 부족으로 문을 닫는 진통을 겪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런 우발적 상황이 제가 서울에서 일하게 된 계기였어요. 저는 금서 시대에 대학 생활을 했고,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어떤 낙관과 여러 기회의 틈이 보였어요. 그 안에서 영화나 미술 등 예술을 위한 잠재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봤어요. 이런 감각이 지금까지 나비효과처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제가 해온 일은 서양의 제도적 예술 공간 역사와는 무척 달랐습니다. 그래서 레퍼런스 또는 참조점이라고 하면 오히려 소위 선진국의 번듯한 미술관보다는, 지금은 이런 표현도 그리 적절하지 않지만, 주변부로 불리는 브라질의 사례나 리나 보 바르디(Lina Bo Bardi)의 건축을 떠올리게 됩니다.

Serpentine Pavilion 2024 designed by Minsuk Cho, Mass Studies. Design render, exterior view. ©IVAM

픽셀하우스(2005) 내부. 중학교 교사인 부부와 두 자녀를 위한 협소주택이다. 사진: 김용관.

Minsuk Cho

리나 보 바르디의 건축에 관심이 있으실 줄은 몰랐어요.
2016년에 상파울루에서 직접 작품을 보고 좋아하게 됐어요. 그녀는 모더니즘 안에서 일종의 토크니즘(tokenism, 사회적 소수집단의 일부를 대표로 선정해 구색을 갖추는 관행)적 존재로 인식될 때가 많았죠. 그녀의 ‘카자 지 비드루(Casa de Vidro)’도 역사책에서 보면 모더니즘 반열에 올리기 위해 부각한 특정한 뷰가 있는데, 실제로 보니 정감 있는 삶의 공간으로 느껴졌어요. 같은 ‘유리의 집’인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와 비교해보면 흥미롭습니다. 리나 보 바르디의 ‘세스크 폼페이아(SESC Pompéia)’는 당인리 문화창작발전소를 설계할 때 참고한 모델이기도 해요. 저는 외국에서 현대건축의 정전 같은 존재들을 직접 봤지만, 한국에 돌아와 김수근·김중업 선생이나 캄보디아의 반 몰리반(Vann Molyvann), 스리랑카의 제프리 바와(Geoffrey Bawa) 등 평행 우주처럼 펼쳐진 역사적 인물들을 재발견하게 됐습니다. 20세기 모던 유토피아의 거대 서사에 편입됐지만 곡해된 부분들을 보게 됐죠. 평행 우주로 비유했지만, 모더니즘의 종말이라고도 하는데 한국에서는 같은 시차로 진행되지 않거든요. 한국만의 독특한 궤적이 있고, 거기서 20세기 초반 모더니즘 건축에 기대한 역할이 아직 한국에선 가능하다는 희망이 있어요.
충무로 인터미디어 플레이그라운드는 지금 봐도 진보적 문화 공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나비의 날갯짓 같다는 비유를 했는데, 그 작업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서울영화센터에 영향을 주었어요. 저는 건축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변화하는 과정의 일부를 담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건축 그 자체는 화려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대부분 먼지 가득한 공사장에서 묵묵히 일하며 계속 관심 있는 쪽으로 길을 좇으면서 뭔가 만들어가는 긴 여정이라고 생각해요.
건축가로서 짧지 않은 여정을 지나오셨죠. 매스스터디스의 강렬한 초기 작업과 요즘 작업은 한편으로 결이 달라 보입니다. 최근작에서는 자연과 맺는 다양한 대응 관계가 두드러져 보였습니다. 건축가의 나이 듦이 자연스레 그런 여정에 영향을 주었을까요?
제가 나이 먹는 것도 물론 영향이 있겠죠. 하지만 전 처음부터 어떤 규정된 건축을 하지 않았어요. 초기작을 예로 들면 ‘픽셀하우스’와 ‘네이처포엠’을 동시에 작업했어요. 헤이리의 협소주택과 청담동의 고급 오피스텔은 완전 다른 건물이지만 개념적으로 서로 통해요. 동시다발적으로 작업한다고 했는데, 제 경우 20세기라는 거대한 배가 난파해서 그걸 피해 한국에 왔더니 거기로 계속 그 잔해가 들어오고 있는 상황인 거죠. 건축의 정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작업해보려 했는데, 그 파편들이 유입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돼요. 흥미로운 건 과거에는 주목받지 못한 평행 우주의 건축가들도 공감하던 방언 같은 요소죠.

스페이스K 서울(2021) 전경. ‘새로운 공공장소로서의 미술관’을 목표로 건립되었다. 사진: 신경섭.

픽셀하우스(2005) 외관. 사진: 김용관.

페이스 갤러리 서울(2022) 중정과 통로. Lawrence Weiner, Peeled Past the Core, Language + the materials referred to, Dimension variable, 2016. ©Lawrence Weiner, Courtesy Pace Gallery, 사진: 김용관.

화제의 중심인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 이야기를 해볼까요. 먼저 ‘군도의 여백’이라는 작품 제목이 평소에 사용하던 건축 언어와 달라 의아하게 느껴졌어요. 파빌리온에 담긴 ‘마당’이라는 개념 또한 4.3그룹(승효상, 조성룡, 민현식, 김인철 등이 주축이 된 건축 집단)의 작업에서 자주 드러난 개념인데, 건축가 조민석의 언어로는 낯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저를 기존 담론에 반항하는 존재로 보는데, 그렇지 않아요. 기존 한국 건축사의 서사에 균열을 내겠다는 각오로 일하지도 않고, 좋은 점은 아우르면서 같이 가려는 사람이에요. 세계 건축사에서 ‘보이드(여백)’나 ‘아키펠라고(군도)’ 같은 개념이 갖는 보편적 지점이 있어요. 여기에 각자의 이야기를 집어넣는 거죠. 오히려 이번 작품의 ‘군도’라는 이름은 서펜타인 갤러리 아티스틱 디렉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에게 선물로 받은 책에서 직접적 영향을 받았어요. 프랑스 철학자 에두아르 글리상(Édouard Glissant)과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나눈 대화를 수록한 책입니다. ‘군도’와 ‘여백’이라고 하면 각자 문화권에서 닿는 지점이 많을 거고, 레퍼런스도 풍부해요. 저는 한국 문화권 입장에서 다른 경험의 기회를 기대해요.
목구조 건물인데, 재료도 지난 작업에서 잘 쓰지 않던 것 아닌가요?
중목이나 합성목으로는 작업해봤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통나무집에 도전해요. 이 새로운 기회를 어떤 식으로 탐험할지 벌써 기대됩니다.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은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한 재료를 사용해야 해서 더글러스퍼(douglas fir)라는 연질 소나무를 씁니다. 제가 만드는 파빌리온은 기둥이 가늘고 연약해서 섬세해 보이는 그런 공간은 아닐 거예요. 재료와 형식에서 나오는 투박함이 우리가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두꺼운 기둥이라 기대기도 편할 것이고, 만져볼 수도 있는 매우 촉각적인 공간이 될 겁니다.
임시 구조물을 뜻하던 파빌리온이라는 단어가 익숙한 시대가 됐습니다. 특히 최근 10년간 한국 건축계에서는 파빌리온을 젊은 건축가의 전유물로 여겼습니다. 이와는 다른 좀 더 풍부한 해석의 여지가 필요할 것 같아요.
20세기 파빌리온은 소위 정전이라 불리는 담론의 중심에서 완결된 선언적 건물이었죠. 거칠게 말해 놓인 장소와는 상관없는, 마치 우주선처럼 내려온 존재였어요. 하지만 과거 한국에서는 그런 완결성보다는 장소와 연결된, 건축을 통해 주변과 대화를 위해 만든 가장자리 공간 같은 거라고 봐요. 물론 종교적 성찰이 극적으로 이루어지는 파빌리온도 있겠지만, 우리가 만드는 파빌리온은 무수한 문지방들 같은 거예요. 중심과 5개의 날개로 이루어진 공간이 있고, 그 사이 공간들이 있어요. 그 여백들이 외부 공간이 되는데, 결국 총 11개 공간을 새롭게 정의해보려 합니다. 밥상의 이미지를 상상해보세요. 경계 없는 장소, 다양한 사람이 서로 다른 목적과 용도로 음식을 해 먹는 그런 모습요. 하나의 거대 서사를 좇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사용하고 즐기는 모습이죠.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은 완공 이후 그 안에서 벌이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중요하잖아요. 어떤 활동이 이루어질까요?
5개 매스 중 하나를 라이브러리로 만들었어요. 한국에서 파빌리온은 정자처럼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짓는 곳이니까 우리도 도서관을 만들었죠. 게다가 오늘날 도서관은 디지털에 반격하는 아날로그를 위한 장소이기도 하잖아요. 그러자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가 그냥 도서관 말고 싱가포르 아티스트 히만 청(Heman Chong)의 ‘읽지 않은 책들의 도서관(The Library of Unread Books)’을 해보자고 하더군요. 최근 히만 청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이 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읽지 않고 기증한 책들이 모이는 장소이자 퍼포먼스가 될 겁니다. 갤러리에서 장영규 작가의 사운드 설치도 흥미로울 거예요. 티하우스처럼 차도 팔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구조체를 벤치처럼 사용하며 쉴 수 있을 겁니다. 제일 뾰족하고 높은 부분은 올라갈 수 있게 해서 해먹도 설치할 건데,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이제까지 봐온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보다는 훨씬 세속적일 거예요. 우리 작업은 스시 한 점 정교하게 내놓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앞서 말한 대로 한 상 푸짐하게 내놓는 것에 가까워요. 이런 걸 보면 미학적으로 구수하다거나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도록 필진도 ‘군도적(archipelagic)’입니다. 김혜순 시인의 글을 보면 이미 파빌리온 안에 들어가본 것 같아요. 작가 르네 그린(Renée Green), 건축사학자 케네스 프램턴(Kenneth Frampton) 등 다양한 분의 글을 받았어요. 무척 감사한 일이죠.

 

정다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안지섭(인물), 매스스터디스, 서펜타인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