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바꾼 발명품, 청동검
청동은 남성성과 직결되는 영웅의 상징이었다. 이런 영웅의 개념은 지금도 남성의 문화 DNA를 형성하고 있다.

반인반수 켄타우로스를 무찌르는 영웅 헤라클레스의 조각상
인류의 역사는 석기, 청동기, 철기처럼 우리 삶을 바꾼 소재를 기준으로 시대를 나눈다. 새로운 물건이 발명될 때마다 남자의 역사도 새로 쓰였다. 인간은 미완성으로 태어난다. 다양한 옵션을 장착할 수 있는 기계처럼 손에 무엇을 끼우고 몸에 무엇을 덮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역할을 수행 한다. 그런 면에서 ‘청동검’이란 무기의 등장은 실로 대단한 사건이었다. 남성이 꿈꾸던 ‘영웅’의 이상형이 청동기시대와 함께 도래했기 때문이다. 동물의 뼈나 돌을 갈아 만든 창머리를 나무 막대기에 묶어 무기로 쓰던 시대에 전쟁은 동네 패싸움을 방불케 했다. 맨땅에서 서로를 움켜잡고 진흙탕에서 구르며 주먹과 돌과 나무로 때리고, 팔이 부러지고 뼈가 으스러졌지만 죽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청동검과 갑옷으로 무장한 전사는 한칼에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구리와 아연의 합금인 청동은 재료를 구하기 힘들고 가공 또한 까다롭다. 자연스럽게 비쌀 수밖에 없었다. 장비를 가진 사람들이 신무기를 대물림하면서 아이들 또한 더 이상 농사를 짓거나 다른 노동을 하는 대신 어려서부터 검술을 연마했다. 오랜 시간 동안 연마한 무술을 기반으로 그들은 청동 갑옷과 방패로 무장한 채 수많은 사람의 공격을 막아냈고, 마치 춤추는 듯한 우아한 몸짓으로 적군을 쓱 베어버렸다. 이 새로운 형태의 전사는 전장에서 마치 신이나 마술사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바야흐로 영웅의 시대가 온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왕 사르곤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영웅이다. 사르곤 이전의 왕들은 지역마다 모시던 신과의 특별한 관계를 과시하는 종교적 엘리트였다. 하지만 청동기시대의 신세대인 사르곤은 달랐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신이 아니라 그 자신이었다. 사르곤 시대부터 훌륭한 남자는 일 대 백으로 싸워도 이기는 엄청난 무력과 타인 앞에서 절대로 두렵거나 창피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자신감, 다른 이보다 앞서 나가 싸우는 용기를 필요로 했다. 사르곤의 점토판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후대의 왕이 나와 동등한 업적을 남겼다 주장하려면, 내가 가본 모든 곳을 일단 가보고 말하라.” 신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먼 후대까지 남긴 사르곤의 얼굴은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청동은 단순한 금속을 넘어 남성성과 권력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1 그리스 시대의 청동검 2 그리스 시대의 청동투구
아킬레스, 헥토르 등 고대 그리스 시대의 위대한 영웅들도 대부분 청동기시대의 사람이다. 고대 그리스 시인 헤시오도스는 인류의 역사를 황금기, 은기, 청동기, 철기로 나누면서 청동의 시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청동기시대의 인류는) 무시무시하고 강력했으며 아레스(전쟁의 신)의 폭력을 업으로 삼아 사랑했다. 그들은 빵을 먹지 않았고, 심장이 철석과 같은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갑옷은 청동이었다. 집도 청동이었고 모든 도구도 청동이었다…. 그들은 (철기시대 사람들에 비해) 더 귀족적이고 정의로웠다. 신과 비슷한 영웅의 종족, 우리가 반신반인이라고 부르는 이들이다.” 청동기시대에는 또 하나의 발명품인 서사시가 널리 퍼져나갔다. 호메로스 같은 서사시인은 청동기시대 영웅들의 행적을 노래했고, 그들의 시는 영웅전으로 기록되어 지금까지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헤라클레스, 페르세우스, 테시우스, 오디세우스, 아킬레스 등 우리가 반신반인이라고 부르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수많은 영웅의 이미지는 바로 청동검이라는 신무기로 무장한 새로운 엘리트 전사 계급이 당시 사람들에게 각인된 모습일 것이다. 청동기시대가 막을 내리고 철기시대가 왔다. 청동기시대만 해도 칼과 방패는 대대로 물려 쓰는 가보이자 귀중품이었으나, 철기시대가 되자 제국의 사병들에게도 보급되는 물건으로 전락했다. 상대적으로 원자재를 쉽게 구할 수 있던 철기는 로마제국이나 중국의 진나라 같은 국가 레벨의 대규모 군대를 탄생시켰다. 도시국가의 영웅들끼리 개인의 명예를 걸고 싸우던 전쟁은 이제 수만 명이 대형을 갖추고 영토와 노예를 위해 죽기살기로 싸우는 국가 대 국가의 전쟁으로 진화했다. 대형을 이탈해 개인전을 하는 사람은 승리는커녕 전우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영웅의 시대가 막을 내린 것이다. 로마인은 사각형 방패를 빈틈없이 맞추고 북 소리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전사가 아닌 군인이었다. 하지만 영웅 시대에 대한 판타지는 철기시대에도 지속됐다. 청동은 여전히 장군 계급의 상징, 일종의 사치품으로 남아 있었다. 고대 로마의 장군들도 신무기인 철검 대신 청동검을 차고 다녔다. 로마가 멸망한 지 1000년이 지난 르네상스 시대에도 장군들의 형상은 청동으로 만들어 동상을 세우는 전통이 있었다. 이런 예를 보면 ‘청동은 곧 영웅이다’라는 공식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기 제조 기술이 발달하고 전쟁이 대형화할수록 영웅의 존재는 희미해진다. 하지만 청동기시대의 영웅주의는 중세의 기사도와 미국의 카우보이 정신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의 ‘신사 전투기 조종사’, 지금의 스포츠 영웅에 이르는 남성의 문화 DNA를 차지하는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다. 영화 <탑 건>에 나온 톰 크루즈처럼 윗사람의 말을 전혀 안 듣는 자존심 강한 전투기 조종사부터, 미하엘 슈마허나 데이비드 베컴처럼 오만한 스포츠 스타까지 우리는 여전히 청동기시대의 영웅을 방불케 하는 유형을 가장 남자다운 남자라고 여긴다. 그리고 오늘날 존재하는 수많은 슈퍼히어로물에도 청동기시대 영웅들의 마법 같은 전투력에 대한 동경을 투영시킨다. 청동검뿐 아니라 권총, 전투기 등 새로운 무기가 나올 때마다 이런 발명품이 진짜 남자의 개념을 완전히 바꾸곤 했다. 컴퓨터, 인공지능, 드론 등이 신무기로 떠오른 오늘날에도 남자의 개념은 또다시 변화를 겪을 것이다. 이런 변화의 최종 결과는 후대에 알 수 있지 않을까.
에디터 전종현(harry.jun@noblesse.com)
글 조승연(세계 문화 전문가) 사진 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