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의 젠트리피케이션 대처법
예술가들의 설 자리를 위협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나날이 가속화되는 상황. 색다른 공간을 꾸미고 소통의 창구를 넓혀가는 아티스트들의 노력도 그만큼 활발하다.

1 공간 사일삼의 ‘안이자밖 프로젝트6’ 김범종 개인전 <왜곡상> 전시 전경
2, 3 공간 사일삼 ‘안이자밖 프로젝트5’ 서주연 개인전 <산속의 늙은 노인> 전시장 외관과 설치 전경
예술가의 작업실은 일터이자 생활공간. 매우 중요한 공간이지만 일정한 수입을 보장하기 어려운 많은 예술가에게 작업실 유지 비용은 꽤 부담스럽다. 그래서 도시에서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로 스튜디오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삼삼오오 모여들기 마련. 그 덕분에 그곳엔 문화 예술적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 이후다. 동네에 예술의 향기가 감돌기 시작하면, 상업적 가게나 도시의 중상류층이 점차 몰려드는 것. 그로 인해 다시 땅값과 임대료가 치솟고 결국 예술가가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서울에서 상승한 주거 비용 때문에 기존 주민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일어난 곳으로는 홍대 인근, 서촌, 북촌, 문래동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이 몇 년에 걸쳐 여러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자, 예술가들은 직접 발벗고 나서서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 소통하며 작품 활동을 도모하는 등 그들만의 터전을 확보하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레인보우큐브’는 부동산 정보를 모아놓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나 웹사이트처럼 작업실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운영진은 “작업실은 예술가에게 생태계와 같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많은 예술가가 도심에서 부유한다”고 말한다. 많은 작업실이 도시 개발에 밀려나거나 사라지는 추세에 예술가를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보는 시선까지 생겨나고, 최근에는 예술가들이 모이는 곳을 미리 파악해 부동산 투자를 하는 사례까지 있다는 소식이 들려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레인보우큐브 작업실이다. 이들은 운 좋게 좋은 건물주를 만나 저렴한 월세로 장기간 작업실을 사용할 수 있게 됐고, 그 덕분에 그동안 작업실에서 많은 작가가 안정적인 창작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는 또한 작업실 커뮤니티와 합정동에 자리한 레인보우큐브갤러리를 탄탄하게 운영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

4 박민수 작가의 아카이브.집 내부
5 개방회로의 <Or Vice Versa – 그 역 또한 같음>전시 연계 워크숍 진행 장면
6 레인보우큐브의 망원동 작업실
최근 몇 년간 월세가 저렴한 공업 상가와 전자 상가 등에는 예술가들의 자생 공간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들은 규모는 제각각이지만 나름의 방식을 구축하고 체제를 유지하며 성장해가고 있다. 그중 선두 격인 기획 컬렉티브 ‘개방회로’는 을지로 세운상가에 터를 잡은 지 햇수로 4년째. 을지로 일대는 작가들이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찾는 익숙한 지역이면서, 도심임에도 임대료가 저렴해 운영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시각예술, 영상, 공연 등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유로운 예술 기획을 하는 이들은 다소 투박하더라도 아티스트다운 열정적 시도 속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발굴하고자 전시, 공연 기획 및 대관,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활동을 펼친다. 지금은 개방회로가 처음 이곳에 발을 들인 당시에 비해 같은 건물에 들어선 자생공간의 수가 월등히 늘어났다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이번엔 우연하고 색다른 계기로 인해 생겨난 공간의 문을 두드릴 차례. 작가가 공동 작업실을 만들어 전시를 열고 예술인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소통 창구인 ‘공간 사일삼’은 문래동 빈 공장을 공동 작업실로 사용하면서 출발했다. 당시 빈 공장을 작업 공간으로 정비하기 위해 공을 들였고, 이 과정을 전시로 공개한 <문래동 공장과의 즐겁지만은 않은 네 달간의 대화>를 필두로 점차 입주 작가와 주변 창작자의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공간으로 발전한 것. 애초에 작가가 모인 스튜디오로 출발한 만큼, 외부의 기금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가동하는 소규모 시스템을 추구했다. 현재 이곳은 창작자에게 공간 사용료를 받지도, 서비스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각자의 영역을 유지하며 공생하는 형태다. 하지만 2015년부터는 공간 사용자와 운영자 간의 물리적·정신적 노동력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간 사용 매뉴얼을 만들었다. ‘안이자밖 사용 매뉴얼’과 ‘안개부엌 사용 매뉴얼’이 그것.
아티스트가 아예 관람객과 참여자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경우도 있다. 박민수 작가의 ‘아카이브.집(Archive.ZIP)’은 망원동에 있는 작가의 집이자 작업실이며 아카이브 공간이기도 하다. 여기에 전시공간이라는 역할까지 더한 이곳에서는 워크숍과 토론을 통해 예술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다. 향후 망원동 인근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계획 중이고, 작가와의 대화 시간도 마련할 예정이다. 작가의 사적 공간이기 때문에 프로젝트는 사전 신청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참여자는 프로젝트마다 6명 이내. 작품 감상만이 아니라 인문학과 예술에 관한 토론 프로젝트 ‘필요한 대화’, 미술 심리 치료사와 함께하는 아트 테라피 프로젝트 ‘필요한 만남’ 등 다양한 만남도 주선한다.
비록 갤러리가 모여 있는 지역은 아니지만 이제는 작가가 효율적으로 작업실 정보를 공유하거나 공동 작업실을 예술 공간으로 활용하고, 심지어 자발적으로 자신의 집을 개방하기도 하며 커뮤니티와 갤러리를 운영한다. 모두 개개인이 추구하는 개성 있는 예술만큼이나 다양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극복하려 노력 중이다. 레인보우큐브의 대표 관리자 김성근은 “작가는 젠트리피케이션 유발자가 아니라 낙후된 도심에 예술과 문화적 생기를 불어넣는 도시 개발자”라고 표현했다. 그의 의견에 공감을 표한다.
에디터 안미영(myahn@noblesse.com)
글 백아영(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