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그저 정직한 기록

ARTNOW

동시대를 정의하려면 어떤 단어가 필요할까? 붕괴? 몰락? 역사라는 거대한 맥락 속에서 볼 때 이것은 낯선 현상일까? 미술평론가 이진숙은 새 책 <롤리타는 없다>를 통해 지금의 시대를 이해하는 단초들을 제시한다. 시인 이우성은 체념하듯, 또는 그와 비슷한 심정으로 기대하듯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되뇐다.

이우성
시인인 동시에 매거진에 문학, 미술, 음악을 넘나드는 다양한 원고를 기고하는 에디터다. 미적인 것을 동경하며 그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나름의 취미다. 2009년 ‘무럭무럭 구덩이’로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2012년에 시집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를 출간했다.

이진숙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루카치의 소설 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러시아 여행 중 트레티야콥스카야 미술관에서 본 작품에 감명받아 문학을 등지고 미술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큐레이터, 아트 디렉터,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며 <러시아 미술사>, <시대를 훔친 미술>, <위대한 미술책> 등을 썼다.

이우성/ 선생님 글을 처음 읽은 게, 이명호 작가에 대해 쓴 신문 칼럼이었던 것 같아요.

이진숙/ 네. 몇 년 전에 썼어요. 그 후에도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몇 번 받았는데 제가 책 준비를 하느라 바빴어요.

이우성/ 이명호 작가, 잘 있죠?

이진숙/ 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죠. 이명호 작가 좋아하나 봐요? 시적으로 영감을 많이 주는 작가죠?

이우성/ 네. 나무 뒤에 커다란 캔버스를 세우고 찍은 사진들을 특히 좋아해요. 누구나 일상적으로 나무를 보잖아요. 그런 나무를 개별적 대상으로 만들었으니 굉장하죠. 그 사진 보고 시도 몇 편 썼어요.

이진숙/ 아, 그 시 제목이 뭐예요? 읽고 싶네요.

이우성/ 아니에요. 부끄러워요. 아무튼 저는 이명호 작가의 작품에 대한 선생님의 글이 좋았어요.

이진숙/ 아니에요. 저도, 부끄러워요.

이우성/ 제가 이런 판단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미술 작품에 대한 글이 그렇게 쉽게 읽혀도 되나, 생각했어요. 제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글이 미술 비평이에요. 쓸데없이 어렵잖아요. 그런데 선생님 글은 쉽고 논지도 분명해서, 저에겐 소중했어요.

이진숙/ 평론가들이 공부를 게을리하죠. 어려운 개념을 나열하는 게 비평이라고 생각해요. 어설프게 공부한 걸 과시하는 거죠. 이론이 자기 것이 되면 복잡하게 인용할 필요가 없어요. 물론 열심히 공부하는 분도 많아요.

이우성/ 비평, 평론이라고 하면 작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의견을 분명하게 적어야 하잖아요. 이게 기본인데, 어려운 평론들을 보면 자기가 알고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마구 꺼내놓고 있다는 인상을 줘요.

이진숙/ 동의해요. 다만 미술 비평에 한정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문학 비평의 경우는 그래도 언어를 다루는 분들이 쓰니까 주어, 술어는 맞는데, 미술 비평은 간혹 그것조차 틀리게 쓸 때가 있죠. 번역도 틀리게 하고요. 잘 아시겠지만, 한국 전체가 지적 콤플렉스를 갖고 있어요. 그래서 지식에서도 양적 척도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책을 천천히 읽고 오래 생각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못 견디죠. 날림공사예요. 우리 사회가 몇 년째 인문학을 강조하잖아요. 그런 열망조차 굉장히 비인문학적이에요. 처세술을 원하는 것 같아요. 양적인 것에 치중하면서 생기는 일이죠. 책을 100권 쌓아놓고 그걸 다 읽는 게 인문학이 아니라, 두꺼운 <안나 카레니나> 한 권을 3년 동안 읽는 게 인문학일 수 있어요. 당장 나의 처세술로 응용할 수는 없어도, 언젠가 닥칠 삶에 대해 꾸준히 생각하게 해주거든요. 지식의 거품을 빼고 자기 성찰적인 독서를 해야 해요.

이우성/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안나 카레니나>를 3년 동안 읽는다, 멋진 도전이 될 것 같네요.

이진숙/ 물론 3년 내내 그 책만 읽을 수는 없겠죠. 저는 네 번 읽었어요. 10대에는 고전이라고 하니까 읽고, 20대에는 국문과 소설 강의를 들으며 리포트 쓰느라 읽고, 격정적인 30대에 한 번 더 읽고, 40대 후반에 또 읽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돼요.

이우성/ 새 책 <롤리타는 없다>에도 쓰셨지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 최고의 책이 아닐까 싶어요. 가히 ‘역사상’이라는 수식을 달아도 될 정도로.

이진숙/ 동의해요. 톨스토이는 인간에 관한 한 천재예요. <안나 카레니나>가 겉보기에는 연애소설이잖아요. 연애 중에서도 제일 짜릿하다는 불륜 소설이죠. 처음 읽었을 때는 톨스토이가 여자의 감정을 깊숙이 알아서 놀랐어요. 어떤 대목이 나오느냐 하면, 안나와 브론스키가 집을 나와 같이 살게 돼요. 스릴 있게 연애할 때는 좋았는데, 막상 같이 살게 되고 사회로부터 고립되니까 젊은 남자는 짜증이 나요. 밖에 나가 다른 일을 하고 싶고 놀고 싶은데, 안나는 그걸 용납하지 않아요. 집착하죠. 그런데 브론스키가 선거 관련 일로 지방에 가게 돼요. 안나한테 편지가 오죠. 애가 아프다. 당신이 와줬으면 좋겠다. 당신이 올 처지가 안 되면 내가 가겠다. 브론스키는 화가 나요. 아니, 애가 아프다고 나보고 오라 해놓고 자기가 오겠다면 어쩌자는거냐. 브론스키 입장에서는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데, 안나 입장에서는 앞뒤가 맞아요. 이 모든 상황이 결국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민이에요.

이우성/ ‘인간’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롤리타는 없다>를 읽으며 제가 새삼 확인한 게 있어요. 가끔 어떤 그림을 보면 제가 그 그림에 대해 아는 게 없음에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느껴요. 그때 막연하게 문학이랑 미술은 접점이 있구나, 만나는구나, 생각했어요. 그 접점이 뭔지는 몰랐지만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라고 확신했어요.

이진숙/ 그렇죠. 결국 인간에 대한 얘기죠. 그 지점이 굉장히 중요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예술 작품을 자기 식으로 해석할 권리가 있어요. 맘대로 왜곡하고 멋대로 해석하는 게 가장 좋은 독법이라고 생각해요. 이우성 시인이 어떤 작품을 보고 ‘나 저거 알 것 같아’라고 느꼈다면 그 느낌이 정답인거예요. 들뢰즈는 그걸 ‘감각의 논리’라고 했죠. 저같이 이론 하는 사람은 그런 감각이 별로 뛰어나지 않아요. 예술 하는 분들이 그 감각으로 다른 예술을 이해할 때 문화가 풍요로워져요.

이우성/ 이 책에 예술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해준다고 쓰셨잖아요. 저는 대부분의 사회문제가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봐요. 그렇다면 이런 시대일수록 예술가의 역할이 중요한 거잖아요.

이진숙/ 문학이 뭘 할 수 있을까, 젊을 때 저도 많이 고민했어요. 문학도였거든요. 결국 접었지만.

이우성/ 왜 접으셨어요?

이진숙/ 저는 84학번이에요.

이우성/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

이진숙/ 신경숙 작가가 어떤 소설에 “청춘도 없이 20대가 갔다”라는 표현을 썼어요. 사랑하고 꿈꿀 틈 없이 그냥 던져진 거죠. 최루탄 속으로. 입학하는 날부터 최루탄이 터지기 시작해 졸업하는 날까지 터졌어요. 그때 얼마나 많은 친구가 죽었는지 몰라요. 죽음으로 만든 민주주의죠. 이 책을 쓰면서 사람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동시에 제가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고요.

문학과 미술의 접점이 ‘인간’에게 있다고 입을 모으는 이진숙과 이우성

이우성/ 책 얘기로 돌아가자면, <롤리타는 없다>는 문학과 미술 작품을 연결하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흥미로운 건 바로 선생님이었어요. 앞서 쓰신 <러시아 미술사>, <미술의 빅뱅>, <위대한 미술책>, <시대를 훔친 미술>이 어떤 연대기를 이룬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런 과정을 거쳐 이 책이 출간됐다고 느꼈기 때문이죠.

이진숙/ 저는 러시아 미술을 배우면서 미술을 시작했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문학을 하고 싶었는데, ‘이게 이거다’라고 잘라 말할 용기가 없었어요. ‘A가 B다’라고 썼을 때 제 언어가 가진 힘이 현실에 못 미친다고 느낀 거죠. ‘현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풍부하구나’라는 판단이 저를 절망시켰어요. 1980년대를 보내고 나서 1990년대가 왔잖아요. 갑자기 모든 게 뒤바뀌는 상황을 맞닥뜨렸죠.

이우성/ IMF요?

이진숙/ 네. IMF 전에는 사람들이 돈보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죠. 공부를 하는 게 의미가 있었어요. 공부를 특출하게 잘하지 않더라도. 그런데 IMF 전후로 그 기준이 돈으로 바뀌죠. 가치를 좇던 애들이 돈을 기준으로 하면 꼴찌가 되는 거예요. 반대로 돈을 좇던 애들은 일등이 되고. 소위 지금 엘리트라는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고,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안 해봤을 거예요. 돈과 권력을 향해 질주했는데 소설책 읽을 시간이 있었겠어요? 그게 이 시대가 파멸한 원인이에요. 매우 혼란스러웠고, 그러다 그림을 봤는데 너무 좋아서, 사실 그림을 그렸죠. 그런데 재능이 없더라고요. 하하.

이우성/ 에이, 잘하셨을 것 같은데요.

이진숙/ 결국 안목과 실력의 차이 때문이죠. 눈은 하늘에 있는데 손은 발끝에 있으니 그 괴리를 채울 수 없고,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었어요. 서른두살이었으니까, ‘그 나이에 공부해서 뭐에 쓰느냐’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러시아 미술을 공부하려면 러시아어도 배워야 하는데 그걸 할 수 있겠느냐, 그런 말도 들었고. 하지만 오기가 있었어요. 미술사 공부하니까 좋더라고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 더 생겨서 즐거웠어요.

이우성/ 자, 다시 책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이진숙/ 한국 미술은 세계 미술사에서 다루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다 현장에서 배워야 해요. 나는 한국 미술이 참 좋은데 이 한국 미술을 설명할 방법이 없을까 해서 쓴 게 <미술의 빅뱅>이라는 책이에요. 그걸 쓰고도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있었어요. ‘나는 반쪽이구나. 독문학과를 나와 러시아 미술을 전공하고 외국 사람들이랑 만나 되도 않는 언어로 얘기를 한다고 해도, 그들과 나는 분명히 다르구나.’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동양 문화권에 살면서도 동양 문화를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미술책을 다시 읽었어요. 우리 삶은 버라이어티한데 내 지식은 너무 얕구나 싶어서 쓴 게, 미술책을 체계적으로 읽어보자는 <위대한 미술책>이라는 책이었어요. 쓰고 나서 보니 미술사를 형식주의적 관점으로 보는 게 참 좁은 시각이더라고요. 그래서 역사와 연결해보자 하며 쓴 게 <시대를 훔친 미술>이에요. 과연 역사 속에는 인간의 다양한 활동이 포함돼 있더라고요. 시대를 통해 미술을 보면서 좋은 사회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세계사라는 건 어떻게 발전하는지 이해한 것 같아요. 저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진통이 마지막 영웅주의의 몰락이라고 봐요.

이우성/ 영웅요?

이진숙/ 네. 이제 영웅의 시대는 끝났어요. 우리의 일상은 평범한 사람들이 각각의 부족한 힘으로 메워나가야 하는 거예요. 지금은 비영웅의 시대예요. 대중의 시대가 왔어요. 대중 개개인의 가치와 권리, 의무, 이런 게 강조되죠. 전체주의적 집단에 복속된 개인이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개인이에요.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의 사례를 통해 볼 수 있듯 국가도 절대적 권위를 개인에게 강제할 수 없어요. 그런 시대는 지났어요. 역사에 대해 생각하고 나서 다시 <레미제라블>을 보니까, 전에 읽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읽히더라고요. 그 소설이 늘어질 때는 한없이 늘어지거든요. 파리의 하수구를 묘사하는 데만 몇십 페이지를 할애하니까요. 그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거죠.

이우성/ 저는 지루하다고 느끼며 대충 넘겨 읽었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이진숙/ 빅토르 위고는 세상을 한번 쫙 ‘스캔’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욕망에서 비롯된 거죠. <레미제라블>에서 가장 놀라운 장면 중 하나는 ‘워털루 전쟁’을 묘사한 부분이에요. 무려 100페이지예요. 읽어도 읽어도 전쟁이 안 끝나요. 워털루 전쟁으로 나폴레옹의 몰락이 시작돼요. 그래서 그렇게 길게 묘사한 거예요.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의 시대가 어떻게 끝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우연처럼 보이지만 역사의 힘, 즉 필연이었어요. ‘이제 영웅이 필요 없는 시대다’라고 정리해놓고, 혁명이 벌어지는 장면이 등장하죠. 이런 맥락에서, 뜬금없지만 제 안에서 문학과 미술이 만나게 된거죠.

이우성/ 뜬금없지 않아요. 예를 들어 루소의 <누벨 엘로이즈>와 존 컨버터블의 풍경화를 통해 선생님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결국 시대, 즉 시대의 변화니까요. 저는 ‘시대’가 어려워요.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탈퇴했고, 미국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죠.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고, 중국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한국은 국가라는 견고한 체계가 무너졌고. 그래서 저는 선생님께서 아까 미술을 배움으로써 새로운 시각이 하나 더 생겼다고 말씀하셨을 때 부러웠어요.

이진숙/ 마찬가지로 뜬금없는 답변이 될지 모르지만, 저는 공부를 하면서 절망하지 않는 힘을 배웠어요. 전 세계적으로, 물론 우리나라도 세대 갈등이 심하죠. 예를 들어 완강한 어르신이랑은 말이 안 통하잖아요. 그분들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었어요. 나라가 너무 중요한 거예요. 나라 없는 서러움, 나라가 약해서 겪어야 한 아픔이 마음에 남아 있으니까. 그분들이 그런 시대를 겪지 않은 세대와 인식의 차이를 보이는 건 한편으론 당연해요. 누구나, 어느 순간 알게 모르게 ‘꼰대’가 돼 있을 거 아니에요. 그게 지식의 함정이에요. 그러면 나를 경직되지 않게, 절망하지 않게 지켜주는 힘은 뭘까, 떠올려보면 역사를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의 기록이에요. 루소, 톨스토이, 단테, 빅토르 위고의 책들이죠.

이우성/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절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에서,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죠.

이진숙/ 젊은 세대에게 무엇인가 말할 때,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런 말은 기성세대로서 무책임한 것 같아요. 중요한 건, 개인의 차원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절망해선 안 된다는 거예요. 어떤 문제를 내 탓으로 돌려서도 안되고요. 사회의 문제라면 비판해야 해요. 다만 개인으로서는,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긍정하면서 바꿔나가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결국 외부의 압력에 의해 개인의 삶이 파멸해버려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자기 삶을 누려야 한다고. 내가 어느 순간 행복해질 수 있는지 끊임없이 찾아야 하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국가에 어떤 것을 요구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해요. 그래야 이 시대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어요.

이우성/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기뻐요. 최근에 저는 미래 같은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거든요.

이진숙/ 저는 그래도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기성세대가 엉망진창으로 키워놨는데 어쩜 그렇게 똑똑한지 모르겠어요. 다양하게 사고하고 기발하죠. 그런 친구들을 존중해야 해요. 너는 아직 직장이 없니, 너는 아직 결혼 못했니, 이런 걸 물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예술적 감각이 없기 때문에 범하는 무지막지한 오류죠. 잉게보르크 바흐만이라는 작가가 쓴 <호수로 가는 세 갈레 길>이라는 책이 있어요. 거기 굉장히 멋있는 말이 적혀 있어요. 대략 이런 거예요. 통장에 10만 원이 있으면 10만 원밖에 없네, 하는 생각이 들잖아요. 슬프죠. 그런데 풍선이 10만 개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훨씬 아름다운 상상을 시작할 수 있겠죠?

이우성/ 아, 그건 굉장히 아름다운 거죠! 행복은 추상적이고, 추상적인 상태로 존재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선생님의 새 책을 거듭 읽으면서 새삼 그 행복의 세계가 구체화되는 풍경을 목도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과장도 아니고 찬사도 아니에요. 정직한, 깊이 고민한 기록에 대한 예의 정도겠죠.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이우성(시인)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