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Rising Star7
지금도 잘하지만 앞으로 더 잘할 것 같은 사람을 유망주라 한다. 강민구, 이효정, 임윤정, 장예원, 최유리, 최은진, 한지호는 지난해 많은 주목을 받았고, 더 높은 곳으로 도약을 꿈꾸는 유망주들이다. 2015년, 수없이 접하게 될 그 이름을 미리 만나본다.
셔츠, 니트, 슈트, 슈즈는 모두 Gucci, 그린 컬러의 양말은 Cnyttan, 시계는 Mido, 브로치는 모두 Jamie & Bell, 고양이 부토니에는 Jaderyu, 안경은 Tony Scott
강민구는 ‘실력파’보다는 ‘노력파’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셰프다. 그는 대학 조리학과에 다니며 진작부터 미래에 대비했다. 학업 중에도 서울 시내의 유명 레스토랑 등을 돌며 틈틈이 경력을 쌓았다. 좀 더 큰물을 경험하기 위해 나간 해외에서는 100여 군데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넣은 전적도 있다. 정말 바닥부터 시작해 수년간 ‘굴렀다’. “미국 레스토랑에서 주 5일 근무할 땐 쉬는 이틀 동안에도 다른 레스토랑에서 일했어요. 남보다 빨리 배우려면 당연히 더 노력해야 하니까요.” 그는 스페인과 미국 등지에서 요리밖에 모르는 생활을 오랫동안 이어가다 2010년에는 결국 세계적 레스토랑 ‘노부’의 바하마 지점에서 만 26세에 최연소 총주방장까지 지냈다.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한 것뿐인데, 그렇게 큰 자리를 줬으니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요.” 지난 5월 서울 청담동에 문 연 ‘밍글스(Mingles)’는 그가 고등학생 때부터 자신만의 레스토랑을 열겠다는 꿈으로 이뤄낸 노력의 결과다. 밍글스는 영어로 서로 다른 것끼리 조화롭게 어우른다는 뜻도 있지만, 자신의 이름인 민구를 영어식 발음으로 만든 것이기도 하다. 예약 한 번 잡는 데만 최소 일주일, 한식과 장류를 바탕으로 창작 요리를 만드는 이곳에서 식사를 마친 열에 아홉은 반드시 레스토랑을 나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오너 셰프로 정신없이 지낸 지 어느덧 8개월, 그는 여전히 한 가지만 고민한다. 오픈 초기와 다름없는 요리 맛과 서비스를 계속 유지하는 것. 서울에서 지금 핫한 레스토랑을 꼽으라면 여러 곳이 떠오르지만, 가장 성실하고 노력하는 레스토랑을 꼽으라면 단 한 곳만 떠오른다. 바로 그가 있는 그곳이다.
비즈 장식 드레스는 Aquilano Rimondi, 입술 모양 뱅글과 링은 Jamie & Bell 빈티지한 나무바닥은 키엔호(빈티지티크 화이트)
“이 자리에 오기까지 10년이 걸렸습니다.” 지난 11월, MBC 에브리원 드라마 <사랑 주파수 37.2>의 제작 발표회에서 주연배우 임윤정이 건넨 말이다. 카메라 앞에 선 지도 어느새 10여 년,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신인 배우’다. <여고괴담 4- 목소리>(2005년), <생날선생>(2006년), <열한번째 엄마>(2007년) 등 데뷔 초부터 나름 알려진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녀의 역할은 여주인공 친구거나 여주인공의 돈을 빼앗는 불량 청소년이거나 둘 중 하나. 배우가 되고 싶어 무작정 상경한 열여섯 살 대전 소녀에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무수한 단역을 거쳐 2010년 <성균관 스캔들>의 기녀 앵앵이로 처음 ‘이름’ 있는 역할을 따냈지만 기대를 품은 것도 잠시, 또다시 긴 공백기가 찾아왔다.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단역이든 조연이든 가리지 않고 열심히 뛰어다녔고, 꾸준히 연극 무대에 오르며 내일을 준비했다. 그리고 2014년 하반기, 드디어 임윤정은 주목받는 신인 여배우로 떠올랐다. KBS N 드라마 <S.O.S 나를 구해줘>와 함께 11월 첫 방영을 시작한 <사랑 주파수 37.2>는 배우로서 그녀에게 도전과도 같다. 고군분투 끝에 이룬 주연 데뷔 무대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맡은 역할이 지난 어떤 작품에서보다 ‘악역’에 가깝기 때문. “전 어릴 때부터 소심한 편이었어요. 낯도 많이 가리고. 근데 카메라만 돌아가면 제가 아닌 다른 애가 자꾸만 안에서 나오는 거예요. 아무리 힘들어도 제가 도저히 연기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예요.” 요즘은 자려고 누워도 계속 대사 연습을 한다며 웃는 임윤정. 언제나 신인다운 마음가짐과 다부진 연기 욕심, 무엇보다 오랜 무명 생활에도 놓을 수 없던 단단한 열망이 있기에 지금 그녀의 미래는 누구보다 밝다.
슈트와 셔츠는 Boss, 슈즈는 Heritage Black, 시계는 Bulova, 보타이와 행커치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2014년 한 해가 ‘한지호의 해’였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 2가지만으로 충분하다. 3월에 열린 ‘제10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 피아노 부문 우승과 9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2014 ARD 국제음악콩쿠르’ 피아노 부문 1위 없는 2위 수상. 특히 한지호는 뮌헨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청중상까지 수상하며 한국 차세대 피아니스트의 파워를 보여주었다. 올해 63회를 맞은 ARD 국제음악콩쿠르는 1973년에는 정명훈 지휘자가(피아노 2위), 1983년에는 서혜경 피아니스트(피아노 3위)가 입상한 적이 있는 권위 있는 음악 콩쿠르로 올해 피아노 부문 경연에서 53명의 본선 진출자가 승부를 펼쳤다. 한지호는 최종 파이널에서 지휘자 미셸 타바크닉이 이끄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을 연주하며 사실상 1위를 차지했다. 한지호는 이 대회 수상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유독 눈에 띄는 건 러시아의 유명 피아니스트 보리스 베레좁스키 등이 속한 독일 최고의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의 러브콜을 받은 것. “서울예고 1학년을 마치고 바로 독일로 유학을 갔기 때문에 한국에선 그동안 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입상을 하고 나서부터 제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고, ARD 국제음악콩쿠르 이후에는 매니지먼트사까지 생겼죠.” 초등학교 2학년 때 피아노 학원에 처음 문을 두드리고, 6학년이 되어서야 개인 레슨을 처음 받아본 한지호는 현재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 재학 중이다. 콩쿠르 준비와 레슨, 연주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그의 하루는 쉬는 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수업이 없는 날은 아침 먹고 연습, 점심 먹고 연습, 저녁 먹고 연습해요.(웃음) 아무것도 할 게 없는 날만큼 연습하기 좋은 날이 없거든요. 일단 연주회가 잡히면 길 위에서 버리는 시간이 많아서요. 그래서 ‘연습할 수 있는 날이다!’ 싶으면 최대한 많이 해요. 그다음 날 많이 못하니까.” 한지호는 2014년, 세계적인 대회 수상과 키싱거 여름(kissinger sommer) 페스티벌에서 마르세유 오케스트라와 협연 등을 통해 기분 좋은 퀄리티 스타트를 끊었다. 2015년에는 김대진 지휘자가 이끄는 수원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을 비롯해 여러 독주회가 예정되어 있다. 여전히 학교 공부와 유럽 연주회 일정으로 삶이 빡빡하지만 그는 초등학교 아이처럼 싱글벙글이다. 그의 말처럼 “한국에서의 한지호는 이제 시작이니까!”
드레스는 Chanel, 네크리스는 Swarovski, 브레이슬릿과 링은 Minetani
장예원은 2012년 숙명여자대학교 3학년 재학 중 SBS 아나운서로 채용돼 화제를 모았다. 역대 최연소로 합격한 것은 물론 경쟁률이 자그마치 1900대 1이었다. 이후 그녀는 <모닝와이드>를 시작으로 <TV 동물농장>, <풋볼 매거진 골!>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한데 이런 그녀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운 좋은 아나운서로 여기면 곤란하다. 사실 그녀의 아나운서에 대한 꿈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으니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내내 방송부 활동을 했어요. 심지어 중학생 땐 대학 축제에서 사회를 보기도 했죠. 누군가 평소 제 모습을 마음에 들어해 대학 축제 MC로 서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죠. 그런데 놀라운 건, 제가 사람들 앞에서 조금도 떨지 않고 즐기는 거예요. 전 그게 ‘재능’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감지하며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그녀는 대학 시절에는 내리 3년간 학교 홍보 모델을 했다. 그 시절이 유독 기억에 남는 건, 10여 개의 대외 활동을 하며 다른 학생들 앞에서 따로 강연까지 한 이력 때문일 것이다. 이런 그녀를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뉴스 진행에 예능까지 하면서 주 7일 근무를 하고 있지만 정말 재미있어요. 물론 우울한 날도 있지만, 방송하는 순간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최상의 컨디션으로 끌어올리죠. 제게 아나운서란 저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해요. 그러니 열심히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녀의 새해 소망은 현재 하는 프로그램을 최선을 다해 진행하는 것.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거창한 계획이 아닌 이렇듯 잔잔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단다. 단, 맡은 일은 늘 성실하게. 지금보다 더 크게 성장할 그녀의 내일이 기대된다.
레이스 디테일 톱은 Wolford, 롱스커트는 Carolina Herrera, 반지는 모두 Minetani, 커프는 Jewelcounty
지난 6월, 한 장의 데뷔 앨범이 재즈 평론가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8곡의 자작곡과 직접 편곡한 재즈 스탠더드까지, 앨범 전체를 기획·제작한 이는 싱어송라이터 이효정. 어느 날 갑자기 국내 재즈 신에 뚝 떨어진 그녀는 탄력 넘치는 재즈 보컬과 몽환적인 분위기를 갖춘 ‘걸출한 신인 탄생’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재즈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어요. 사실 고등학생 때는 록 음악에 미쳐 있었거든요.” 록 밴드 보컬리스트로 활동하던 여고생은 ‘어떻게든 음악을 하기 위해’ 클래식 작곡과를 선택했고, 대다수의 음대생이 그렇듯 졸업 후 아이들을 가르쳤다. 방황도 적지 않았다. “이건 내가 정말 원하는 음악적 인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평범한 무역 회사에 취직해 노래도, 작곡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3년 반을 살았다. 그러다 2009년 그동안 모은 돈을 들고 무작정 뉴욕으로 떠났다. 회사를 그만둔 뒤 잠깐 재즈 밴드 보컬로 활동한 게 전부였던 이효정은 뉴욕에서 본격적으로 재즈를 배우기 시작했다. 가난하고 외로운 삶이었지만 이방인으로서 겪은 무수한 경험은 그녀의 음악 세계를 더욱 깊고 단단하게 해주었다. 그녀는 대학원 졸업 후 동료들을 모아 음반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데뷔 앨범이니까 내 손으로 직접 다 하고 싶었고, 미국보다는 한국에서 먼저 활동하고 싶었다. “귀국해 앨범 내고 발매 공연한 뒤부터는 연극 음악이나 영화제 초청 행사 같은 일들 때문에 너무 바빴어요. 이제 다시 제 공연을 해야죠. 열심히.” 악바리처럼 치열하게 음악에 매진해온 그녀의 목표는 간단하다. ‘내 음악을 하는’ 사람. “제게 음악은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예요. 거창한 목표보다는 꾸준히 저만의 색깔을 찾아나가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퍼스소매의 터틀넥 니트 톱은 Tina Victorian by Boon the Shop, 플리츠스커트는 Junya Watanabe by Boon the Shop, 슈즈는 Charlotte Olympia by La Collection, 뱅글은 모두 CK Jewelry, 링은 모두 Colette Malouf
유난히 얼굴이 작고 팔다리가 가느다란 소녀가 있었다. 천생 ‘춤추기 좋은 조건’을 갖췄지만, 그녀는 또래의 많은 소녀가 그렇듯 춤을 자신과 다른 세계의 것이라 여겼다. 대신 학창 시절부터 연극부 활동을 한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배우의 꿈을 키웠다. 꾸준히 무대에도 섰다. 그렇게 몇 년쯤 흘렀을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원하는 공연 창작에서 ‘몸에 대한 공부가 필수’라는 것을. “전 무대에서 실제로 몸을 움직일 때 획득하는 무대 언어의 생동감을 믿었어요. 몸을 가지고 작업하려면 먼저 내 몸을 직접 운용하는 일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오늘날 국내 무용계를 이끌 ‘젊은 피’로 꼽히는 안무가 최은진의 이야기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진학한 뒤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몸에 대한 담론을 키워온 최은진은 2014년 ‘ARKO가 주목하는 젊은 예술가 시리즈’에 선정된 <신체하는 안무>를 통해 단번에 차세대 안무가로 떠올랐다. 곧바로 이어진 작품은 <유용무용론>. LIG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지난 9월 무대 위에 올린 이 공연은 무용하는 몸과 돈을 벌기 위해 노동하는 몸 사이의 괴리감에서 시작된 작업이다. “이런 진퇴양난의 몸으로 계속 전진할 수 있을까? 이게 개인적으로 정말 중요한 문제였어요.” 최은진은 <유용무용론>을 좀 더 다듬어 1월 말부터 갤러리 전시 형태로 다시 한 번 작업할 계획이다. “올해의 목표는 공연과 삶을 일체화하는 거예요. 둘을 분리해서 보면 공연이 마치 단기 프로젝트처럼 느껴지지만, 삶이라고 받아들이면 어떤 장기적 여정의 한 부분이 되거든요.” 안무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지 고작 3년, 최은진의 ‘장기적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드레스는 Jaison Couture, 레이스업 슈즈는 Manolo Blahnik, 이어링은 Swarovski, 브레이슬릿은 Society of Golden J.
지난 9월에 열린 인천아시안게임 여자 축구 A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한국은 태국을 5대 0으로 격파했다. 최유리는 후반 추가 시간에 교체로 들어가자마자 팀의 다섯 번째 쐐기골을 뽑아냈다. 그녀는 자신이 찬 공이 골대에 맞고 나오자 포기하지 않고 쫓아가 마무리했다. 다음 날 각종 신문에는 ‘역대 여자 대표 선수가 뽑은 A매치 최단 시간 골’이라는 카피와 함께 너무도 앳된 그녀의 사진이 도배됐다. 그녀의 나이 고작 20세였다. 사실 최유리의 축구 실력은 진작부터 남달랐다. 중학생 때 이미 중등부 팀에서 활약하며 몇 개의 득점왕을 휩쓸었고, 인터뷰 때마다 한국 여자 축구를 세계 정상에 우뚝 세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 만난 그녀는 영락없는 소녀였다. 인터뷰 내내 에디터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아시안게임에서 골을 넣는 소감을 묻는 말에는 실실 웃기만 하다 “몸을 너무 오래 풀어 볼이나 잡을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득점까지 해서 기뻤어요” 라고 수줍게 말했다. 솔직히 그간 국내에서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인천아시안게임의 분발(2회 연속 동메달) 덕분인지 지금은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아울러 최유리가 속한 국가대표팀은 지난 11월에 있었던 동아시안컵 예선에서도 3경기 전승해 본선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현재 그녀는 더 큰 무대로 나아가기 위해 일본 여자 프로 리그로의 진출을 모색 중이다. 그물이 찢어질 것처럼 골을 넣곤 생글생글 앳된 얼굴로 웃는 스물한 살. 심지어 “축구는 좋지만 허벅지가 자꾸 두꺼워져 고민이에요”라고 말하는 스물한 살. 올해도 그녀는 한국 여자 축구를 짊어질 재목으로 선배들과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예정이다.
에디터 |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류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