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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텍처럴 어소시에이션 – AA School

LIFESTYLE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 전문 사립학교 아키텍처럴 어소시에이션(AA)은 졸업과 동시에 현장에서 한 명의 건축가로 제 몫을 해낼 수 있도록 가르친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깨달아야 전 과정을 통과할 수 있는 AA의 철저한 교육 방식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돌 하나가 놓이고 그 위에 바닥과 기둥을 세우고 벽을 만들고 계단을 놓아 건물이 완성되면, 목적에 맞게 공간을 나누어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와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면 온기가 돌면서 건물은 비로소 존재 가치를 얻는다. 건축가는 맨땅에서 시작해 사람이 들어설 때까지 일련의 과정에 빠짐없이 관여하는 까닭에 종합예술가라 불린다. 건축가라는 직업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정립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이들이 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학교인 영국 아키텍처럴 어소시에이션 스쿨 오브 아키텍처(Architectural Association School of Architecture, AA)의 창립자 로버트 커(Robert Kerr)와 찰스 그레이(Charles Grey). 1847년 20대 중반의 젊은 건축가인 그들은 만족스럽지 않은 당시 건축 교육을 개선하고자 AA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1901년 주간 학교를 만들고, 1917년 지금의 위치인 런던 베드퍼드 광장으로 이전하며 학교로서 기반을 공고히 다진다. 현재 AA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축 전문 사립학교다. 다른 명문 학교가 졸업생의 활약과 화려한 교수진을 전면에 내세운다면 AA는 영국 현대건축의 발전 역사와 궤를 같이하며 건축가라는 직업의 개념을 정립하고 건축 교육의 틀을 마련했다는 데 자부심을 드러낸다. 16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이 학교는 건축가를 꿈꾸는 많은 학생에게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영국에서는 법적 면허가 있는 건축가가 되기 위해 영국왕립건축가협회(The Royal Institute of British Architects, RIBA) Part 1·2·3 과정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AA는 기초 과정인 파운데이션(Foundation) 코스와 학부 과정에 해당하는 1년짜리 퍼스트 이어(First Year), 2년 코스인 중급 과정 인터미디어트 스쿨(Intermediate School), 대학원 과정 2년에 해당하는 디플로마 스쿨(Diploma School)이 있다. 일반적으로 중급 과정을 마치면 RIBA Part 1이 주어진다.
그런데 2012년부터 AA가 입학 자격 요건을 매우 까다롭게 강화했다. 2011년 파운데이션 과정은 국내 고등학교 졸업자 혹은 수능을 치른 학생이면 가능했으며 RIBA 1 과정도 4년제 대학 1학년까지 마친 학생, 2년제 대학 2학년까지 마친 학생이면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2년부터 파운데이션 과정은 건축 전공으로 2학년까지 마쳐야 하며, RIBA 1도 건축 전공으로 3학년까지 마쳐야 응시할 수 있도록 변경했다. 이처럼 자격 요건을 강화한 배경에는 입학 후 적응하지 못하고 탈락하는 학생 수, 특히 유학생의 비율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AA는 입학할 때 개인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매우 중요한데, 포트폴리오가 훌륭해도 입학 후 드러나는 수준 차가 컸다. 졸업하기 어렵던 학교가 이제는 입학 당시부터 철저하게 AA의 교육 방식에 잘 적응하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사람을 뽑으려는 것이다.

1 지난 5월에 열린 AA의 전시 2 AA 출신 건축가 켄 양의 작품

AA는 정해진 커리큘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조직 시스템(Unit System)이라 불리는 1년 단위 과정으로 이뤄진다. 학년별로 원하는 교수의 지도를 받기 위해 1순위부터 3순위까지 적어낸 다음, 각 교수와 개별 면접을 거쳐 선정한다. 세계적 현역 건축가가 교수진으로 있어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원하는 교수의 지도를 받지 못할 수 있다. 주어진 과제를 꼬박꼬박 잘해내는 방식이 아니라, 입학 직후부터 스스로 작업을 꾸준히 발전시켜나가며 교수의 의견에 반론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냉정하게 평가받는다. 그리고 세계적 공학 설계 회사의 엔지니어들이 개인 지도를 해주며 학생의 작품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AA가 지금까지 영국 건축계에 쌓아온 영향력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사례가 있다. 2000년 베니스 비엔날레 영국관의 초청을 받은 윌 올솝(Will Alsop)을 중심으로 건축가 4명 모두 AA 출신이었던 것. AA 출신 건축가를 살펴보면 한국 대중에게도 익숙한 이름이 많다.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Zaha Hadid), 서울대학교미술관을 만든 렘 쿨하스(Rem Koolhaas), 갤러리아백화점 리뉴얼을 주도한 벤 판 베르켈(Ben van Berkel)을 비롯해 독일 국회의사당과 HSBC 본사를 세운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 런던 그리니치 밀레니엄 돔을 설계한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 친환경 바이오 건축의 거장 켄 양(Kenn Yeang) 등 유명 도시에서 우리가 한 번쯤 봤음 직한 역사적 건축물을 지은 이들은 대부분 AA를 거쳐갔다.
AA의 교육 목표는 건물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건축가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다. 여타 건축학과에서 배울 수 있는 건축 이론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현장에 바로 투입해도 손색없는 인재로 키우는 것이 AA의 목표다. 사고방식부터 건축적인 것, 이것이 AA가 학생에게 남겨주는 가장 큰 유산이다.

창립년도 1847년
교과 과정 기초과정 파운데이션(Foundation) 코스, 학부과정 퍼스트 이어(First Year), 중급 과정 인터미디어트 스쿨(Intermediate School), 대학원 과정 디플로마 스쿨(Diploma School)
등록금 1년 학비 기초 과정 기준 1만 3578파운드(한화 약 2000만원) 일반 석사 1만7571파운드(한화 약 3000만원)

건축 안에서 놀다, 김주령레고나 인형의 집이 아니라 실제 공사 현장이 더 친숙한 집안에서 자란 건축가 김주령은 지금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것 이상으로 건축가의 영역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건축가이자 JRK디자인매니지먼트 대표인 김주령이 어린 소녀였을 때, 그녀의 가족은 2~3년마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했다. 성북동 곳곳 부친이 직접 지은 집으로 옮겨다녔고, 집에는 늘 건축가와 목수와 미장이 등 인부들이 오갔다. 그중에는 승효상 선생이 젊은 건축가였을 때 직접 설계한 집도 있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좋은 집을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임대와 매매는 어떻게 이뤄지는지 자연스레 채득했다. 의식주 중 그녀에게 가장 친근한 것은 당연히 주일 수밖에 없다.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에서 건축 공부를 마친 그녀는 미국과 유럽 중 어디로 진학할지 알아보던 차에 유럽인이 집을 짓는 방식이 어릴 때 보고 자란 한국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AA는 유럽에서 유명세를 떨치는 건축 전문 학교였고 렘 쿨하스, 자하 하디드 등이 졸업한 학교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1997년 AA에 진학한 후, 수업 방식에 불만을 품고 교수에게 항의한 적도 있어요. 그게 AA의 특징인데 그전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교육 방식에 제가 적응하지 못한 거죠.” 1년 동안 유닛 마스터인 지도 교수에게 가르침을 받는데, 어떤 건물을 짓고 설계할지 배우는 것이 아니었다. “학기 초 학생 한 명에게 한 곳씩 나라를 정해줘요. 그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 이슈를 정해 나라와 도시를 면밀히 분석하고 부지를 찾으러 다녀요. 관련 업계 종사자를 일일이 만나 이야기를 듣고 도시 건축공학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해요.” 이렇게 발로 뛰면서 만든 보고서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지도 교수의 비평을 받는다. 이게 끝이 아니다. 지도 교수와 전혀 다른 시각을 지닌 외부 건축가를 초빙해 또 한 번 비평을 거친다. 두 번의 비평에서 대두되는 모든 의견에 반론을 펼치고 자신의 논리로 설득해야 통과할 수 있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모든 상황에서 변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본인의 작품을 스스로 믿지 못한다면 누가 믿어주겠느냐는 논리죠. 스스로 모든 난제를 뚫고 개척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AA의 특별함입니다.”
AA를 졸업한 모든 이가 건축가로 활동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특이하다. 이 점 역시 AA의 교육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김주령은 설명을 덧붙였다. “AA는 건축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알려줄 뿐, 우리나라처럼 빌딩 짓는 방법을 가르쳐주진 않아요. 개인의 예술적 성향을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건축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그 때문에 AA 출신 건축가 사이에서는 전공보다 지도 교수가 누구였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녀는 갤러리아백화점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벤 판 베르켈 교수에게 공간과 건축에 심리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법을 배웠다. 공간의 형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조명, 음악 등이 어우러져 사용자의 경험적 측면을 고려하는 것이다.
AA 졸업 후 런던에서 자하 하디드, 마이클 홉킨스, 노먼 포스터 등 스타일이 다른 세계적 건축가의 사무실에서 3년 정도 일한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돌아와 가장 먼저 느낀 건 건축에 접근하는 방식이 유럽과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에요.” 그녀는 현대자동차의 글로벌 오피스를 통일성 있게 만들어주는 스페이스 브랜딩, 호텔과 오피스 등 다목적 복합 빌딩이 들어선 여의도 PARC 1의 전체 개발을 주도한 디자인매니지먼트 등 대기업을 클라이언트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여의도 프로젝트로 맺은 클라이언트와의 인연은 두바이까지 이어졌다. KT의 일명 재즈업(Jazz-Up) 프로젝트는 디자인 혁신상을 수상했다. “전형적인 사무실의 딱딱한 분위기를 깨려고 했어요. 너무 급진적인 변화는 반발을 부르니까 사용자가 이해할 만한 범위에서 재즈 뮤지션을 컨셉으로 분위기를 연출했어요. 사무실마다 가장 먼저 보이던 KT 로고는 전혀 드러나지 않게 바꿨고요.”
김주령은 앞으로 건축가의 손을 거치지 않고 개인의 욕구가 반영된 공간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시스템도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축가도 현재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전체 시스템을 조율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녀가 현재 하고 있는 디자인 매니지먼트 서비스다. 의뢰가 들어오면 부지 선정부터 건물의 용도 파악, 건축주의 의도를 가장 잘 살려줄 건축가와 시공업체 선정, 법적 측면과 비용 절감까지 모든 것을 컨설팅해준다. “새로운 사고를 만들어내는 것이 건축입니다. 새로운 사고가 새로운 행동양식을 만들죠. 기존에 있던 형식에 국한될 필요는 없어요. 더 나은 것이 나와야죠.” AA에서 생존한 건축가 김주령은 새로운 영역으로 진입해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녀가 AA에서 배운 건축적 사고법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켄 양의 대표작인 싱가포르 EDITT Tower

켄 양의 건물에서는 초록 나무가 자란다지금까지 만든 건물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을 묻는 질문에 그는 “거의 대부분 사랑해요. 제가 그 안에서 행복했기 때문이죠!”라고 답했다. 전부라고 말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다. 초록빛 나무가 자라는 건물을 만드는 켄 양은 AA가 낳은 세계적 친환경 생태 건축가다.

지금은 누구나 친환경을 찬양하지만 건축가 켄 양(Kenn Yeang)은 1970년대에 이미 건축에 생태학을 도입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48년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태어난 켄 양의 건축물은 애니메이션에 등장할 법한 외양이 눈길을 끈다. 회오리바람의 나선형 형태로 세운 건물 층층에 풍성한 초록 숲이 얼굴을 드러낸다. 건물 허리에서 나뭇가지가 자라난 것처럼. 글로벌 기업 IBM의 말레이시아 지사 건물인 메나레 메시니아가(Menare Mesiniaga) 빌딩은 현지의 기후와 특색을 고려한 건물로 켄 양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자연 환기를 극대화하고 낮의 햇빛을 최대한 확보해 실내 적정 온도를 유지하며 건물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EDITT Tower는 건물 곳곳의 녹지대로 인한 실내 공기 정화, 빗물을 모아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는 장치를 더했다. 그의 손길이 닿은 건물은 인간과 자연의 거리를 훌쩍 좁혀준다.
어릴 때부터 건축가가 꿈이었나요? 원래 아트나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의사인 아버지께서 제가 약대로 진학하길 바라셨어요. 합의점을 찾은 것이 건축이었습니다. 케임브리지에서 건축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 부모님이 무척 기뻐하셨죠.
AA는 지도 교수와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죠. 당신에게 영향을 끼친 지도 교수는 누구였나요? 엘리아 젠겔리스(Elia Zenghelis, OMA 렘 쿨하스의 초기 파트너)의 지도를 받은 첫해가 정말 좋았습니다. 엘리아가 모더니스트라 주로 현대적 디자인의 작품을 공부했습니다. 그 당시 높은 학점은 ‘스토어(store)’라고 불렸는데, 그 프로젝트가 미래 세대를 위한 훌륭한 예로 AA의 기록 보관소에 ‘보관’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제게도 ‘보관’된 프로젝트가 몇 개 있습니다.(웃음)
AA에서 당신이 배운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1966년부터 1971년까지, 제가 AA를 다닐 때는 진학하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프로젝트마다 정말로 열심히 해야 했습니다.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은 동료들의 디자인에 대한 엄청난 열정이었습니다. AA는 진정 디자인과 건축가를 위한 학교였습니다. 우리에겐 동지애가 있었어요.
AA는 당신의 건축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AA는 어떤 제약도 없는 방임하는 디자인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것이 저를 자유롭게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제 비즈니스 파트너인 텐쿠 로버트 함자(Tengku Robert Hamzah)를 AA에서 만났어요. 1976년 말레이시아에서 함께 사업을 시작했고, 그 후 40여 년 동안 파트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생태 건축은 당신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인데, 친환경 생태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 있나요? 제가 AA에서 공부할 때, 케임브리지 대학 건축학부 부교수인 존 프레이저가 ‘오토너머스 하우스(Autonomous House, 건축용어로 태양열 등 에너지를 자급자족하는 주택을 말한다) 프로젝트’를 연구하는 단체에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어요. 오토너머스 하우스는 도시 기반 시설의 혜택이 부족한 주택을 위해 건축가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가 제안한 아이디어였습니다. 프로젝트에 합류해 몇 개월을 보낸 후, 저는 진정 중요한 이슈가 생태적 디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떠나 ‘생태적 디자인과 설계’를 주제로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매진했고, 그 후 제 일생의 화두가 됐습니다.
당신은 특히 생태 친화적 고층 건물로 유명해졌습니다. 우리 삶에 고층 건물은 꼭 필요할까요? 점점 더 높은 건물만 지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고층 건물은 저층 혹은 중간층 건물보다 비용이 많이 들고, 세우고 철거하는 데 30%나 많은 에너지와 재료가 들어갑니다. 고층 건물을 생태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 차량이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교통 허브에 위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층 건물로 해결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대개 높게 짓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한 건물의 설계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염두에 두는 것은 무엇인가요?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 3가지 있습니다. 부지의 조건, 특히 생태와 기후, 프로젝트 예산 그리고 고객의 예산으로 우리가 얼마나 친환경적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합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스스로 집을 지으려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작은 거주 공간을 지을 때도 생태 건축을 실천하고 싶은 이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세요. 우리가 무엇을 짓든, 우리는 오래 지속되고 궁극적으로 재활용하기 위해 낭비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점을 잊지 마세요.
건축가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건축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직업일 수 있어요. 그러니 건축가가 되고 싶다면 모든 역경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줄 예술적 능력과 뛰어난 건축 기술에 대한 강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에디터 | 고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