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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Vacance – 블레드, 왕족들의 바캉스

BEAUTY

유럽의 매력은 아직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작고 희귀한 원석 같은 멋진 소도시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왕족과 귀족의 프라이빗한 여름 별장이 밀집한 슬로베니아 ‘블레드’는 그런 의미에서 <노블레스> 독자들에게 추천하고픈 아주 훌륭한 여름 바캉스 여행지다.



Transportation Tip 한국에서 직항으로 이어지는 가장 가까운 공항은 독일의 뮌헨 공항(408㎞).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랴나까지는 항공이나 유레일패스를 이용해 기차로 이동하면 된다. 류블랴나에서 블레드까지 1시간 정도 소요된다. 기차역과 공용 버스터미널이 인접해 있지만 버스가 편리하다.

여행지 선택 기준은 주관적이다. 그러나 충분히 객관적인 곳도 있다. 구구절절한 미사여구도 필요치 않다. 일단 몸을 움직여 ‘그 자리’에 가서 머릿속을 백지장처럼 하얗게 비우고 ‘그저 느끼면’ 된다. 단언컨대, ‘이곳에 가기 전에는 죽지 마라’라고 말할 수 있는 곳.
슬로베니아 ‘블레드’는 많은 여행 정보 서적에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손꼽는다. 필자 또한 블레드를 여행하며 ‘그래, 이곳은 꼭 와보고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 아름다움이 나에게만 한정되었겠는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왕족은 이곳에 그들만의 빌라를 지었고,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해체되면서 유고슬라비아 왕국에 편입되었을 때도 왕실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되었다. 1947년에는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별장을 건설했다. 또 고(故) 김일성 북한 주석은 이곳의 풍치에 반해 14일 동안이나 머물렀다고 한다.
필자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새벽녘 레스체 블레드(Lesce-Bled) 기차역에서 내린다. 간이역에서 함께 내린 몇 명의 팀원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택시를 탄다. 4~5km 떨어진 작은 마을에 도착해 숙소가 문을 열 때까지, 호수를 에둘러본다. 조깅, 산책, 바이크족 등을 많이 만난다. 이 마을은 ‘웰빙(well-being)’이라는 말이 무색치 않다. 1855년, 스위스 출신 의사 아르놀트 리클리가 요양소를 설립하면서 유럽 전역에 알려졌다고 한다. 잔잔한 호수는 밤새 잠 못 이룬 피곤한 몸을 품어 안듯이 정화해준다.
블레드는 그저 작은 시골 마을일 뿐이다. 그러나 블레드 성, 그리고 호수 한가운데에 우뚝 선 ‘블레드 섬’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다. 그저 카메라만 들이대도 엽서, 캘린더 사진이 된다. 잠시 몸을 움직여 호숫가를 따라 걸으면 또 다른 모습이 되는, 신기한 형상이 연출된다. 그리고 항상 눈길을 사로잡는, 마을을 넓게 넉넉히 품고 있는 산이 있다. 바로 알프스 산이다. 알프스가 어찌 스위스에만 있겠는가. 슬로베니아에도 발을 걸치고 있다. 슬로베니아 쪽을 ‘줄리안 알프스의 진주’라고 부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블레드 호수는 바다가 아닐까 착각하게 된다. 찾아온 관광객은 아무 곳에나 자리를 틀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강아지도, 오리도 함께 헤엄친다. 거기에 윈드서핑을 하거나, 나룻배를 타고, 낚시를 즐기는 사람 등은 흔하다. 특히 이 호수의 명물은 전통 나룻배 ‘플레트나(Pletna)’다. 블레드 호수에 떠 있는 블레드 섬까지 안내해준다. 그런데 이 나룻배는 블레드 호수엔 23척뿐이란다. 18세기 합스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시대부터 그랬단다. 블레드 호수가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딱 23척의 배만 노를 저을 수 있도록 허가했다. 그것을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것. 뱃사공은 가업으로 전해지고 남자만 할 수 있다고 한다. 제법 먼 거리여서 노 젓는 사공의 숨소리에 미안한 마음이 들 지경이다.
블레드 섬은 생각보다 아주 작다. 섬 양끝으로 총 99개의 계단이 이어준다. 계단을 오르면 바로크 양식 ‘성모마리아 승천 성당’이 1000년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성당 내부에 있는 ‘행복의 종’을 울리면 소원을 이뤄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시도 때도 없이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면 신랑이 신부를 안고 99개의 계단을 올라가 그 `행복의 종`을 울려야 한다는 전통이 있다. 아마 힘이 좋은 신랑이어야 할 것이다.
호숫가 절벽 위에는 블레드의 상징인 블레드 성이 자리한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자리한 성이 시선을 붙든다. 호수와 블레드 섬, 블레드 성이 환상의 트리플을 이룬다. 블레드 성은 1004년 독일 황제 하인리히 2세가 주교에게 영지를 하사한 것을 기념해 로마네스크 양식 탑만 있던 자리에 세운 것이다. 성 한쪽에는 블레드 지역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전시하는 작은 박물관이 있는데, 주로 검과 갑옷 등이 진열돼 있다. 블레드 성에서 바라보는 마을 전경 또한 매혹적이다. 밤이 되면 블레드 성에 불을 밝힌다. 마치 불이라도 난 듯, 핏빛으로 타오르는 ‘여름 성’의 모습을 보면서 ‘블레드 여름 축제’에 빠져든다.

글·사진 이신화(여행 작가, 저자)

에디터 정새미(프리랜서) 문지영 (jymoon@noblesse.com) 이혜미 (hmlee@noblesse.com)
사진 박지홍 스타일링 & 디자인 이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