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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ulture

LIFESTYLE

대중문화에서 시작된 한류의 장르가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가장 먼저 한류 바람을 불러일으킨 드라마와 가요뿐 아니라 이제는 전반적인 한국 문화와 콘텐츠가 세계로 도약하며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를 넘어 중동, 유럽, 미국까지 뻗어나가는 한류의 성장세를 보며, 우리는 문화라는 무형의 존재가 가진 영향력을 실감한다. <노블레스>가 세계에서 폭넓게 인기를 누리는 한류 콘텐츠의 주요 장르를 살펴보고 그것을 만드는 주인공들을 만났다. 찬란한 봄날에 펼쳐지는 역동적인 K-컬처 이야기.


점점 뜨거워지는 ‘웹툰 한류’
지금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한류 콘텐츠는 단연 웹툰이다. 국내의 대표적 웹툰 제공사 네이버는 2014년부터 자체 제작한 글로벌 웹툰 플랫폼인 ‘라인웹툰’을 통해 400여 편의 웹툰을 영어와 중국어, 태국어, 인도네시아어 등으로 제공하고 있고, 경쟁사 다음 또한 지난해부터 중국의 대표적 포털 사이트 ‘큐큐닷컴’과 ‘U17(요유치)’, ‘열독기지’ 등을 통해 12억 중국 현지 독자에게 50여 편의 웹툰을 서비스하고 있다. 한국 웹툰은 짧은 분량을 주 1~2회씩 나눠 무료로 연재하는 것이 인기 요인이다. 또 스마트폰 등 모바일 환경에 최적화해 화면을 아래로 내리면서 볼 수 있어 편리하다. 더불어 일상 만화부터 시대극, 공포, 추리, 무협물까지 다루는 장르만 수십가지인 데다, 뿌리 깊은 권위주의에 반기를 드는 웹툰이나 노동시장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웹툰 등 좀처럼 만화로 다루지 않는 이야기를 소재로 쓴 작품까지 존재해 더 주목받는다. 웹툰의 부가 시장 진출도 활발하다. 네이버는 지난해까지 <노블레스>와 <치즈 인 더 트랩> 등의 자사 웹툰 20여 건을 2차 저작물 판권 계약 형태로 해외에 수출했다. 다음도 최근에 중국 최대 글로벌 콘텐츠 미디어 기업인 화책 그룹에 <거울아씨전>, <부탁해요 이별귀>, <저스트 원 샷>, <캐셔로> 같은 작품의 2차 콘텐츠 판권을 팔았다. 또 유료 웹툰을 공급하는 레진엔터테인먼트는 지난해에 일본에서 ‘레진코믹스’를 유료화했는데, 3개월간 누적 페이지 뷰만 500만 건을 넘어섰다. K-웹툰이 만화의 본고장 일본에서도 통한다는 소리다. 10여 년 전, 출판 만화의 대안으로 시작한 웹툰은 이제 만화 작가가 되는 정통적 길로 발전했다. 또 그 결과물이 다양한 모양새로 해외로 팔려나가고 있다. 웹툰은 한국에서 시작됐고, 여전히 한국의 정서에 맞는 작품으로 채워지지만, 그 독자층은 이제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한국의 웹툰 작품이 지금의 상승세를 이어가길 바랄 뿐이다.

의상협찬 캘빈 클라인 플래티늄

HA IL KWON 하일권(웹투니스트)

최근 네이버 웹툰에 연재를 시작한 <스퍼맨>은 처음 시도하는 성인물이다. 제작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 기획 당시의 예상과 다르게 연재가 시작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성인물은 타깃이 명확하기에 이전의 작품과 달리 생각할 부분이 많다. 현재 성인물론 이례적으로 ‘일요 웹툰’ 1위에 올라 있는데 상당히 당황스럽다.

이번 작품에서 특별히 신경 쓰고 있는 건 뭔가? <스퍼맨>의 타깃은 성인 남성이다. 여성 독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기획 초기 단계부터 혹시 있을지 모를 여성 독자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려고 그림에 신경 썼다. 근데 최근엔 되레 여성 독자가 늘었다.

그간 장편으로 제작한 대부분의 웹툰 작품이 2차 콘텐츠 시장에 판매됐다. <3단 합체 김창남>은 영국 영화 제작사에, <두근두근두근거려>는 일본에. <목욕의 신>, <삼봉이발소> 등도 영화화가 진행 중이거나 연극 등의 공연으로 제작되었다. 애초에 영화나 드라마 제작을 고려해 웹툰 작품을 만드는가? 전혀 아니다. 그랬다면 판타지 성향이 강한 기존의 내 작품들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거다. 난 만화엔 만화로만 표현할 수 있는 소재와 표현이 있기에 사람들이 즐길 수 있다고 본다. 웹툰의 2차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건 좋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문화 상품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몇몇 영상물 제작사에서 기획부터 웹툰 제작을 함께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창작 원칙이 있나? 첫째도 ‘재미’, 둘째도 ‘재미’다. 재미는 스릴러나 멜로, 공포 등 어떤 장르에서도 느낄 수 있다. 독자가 몰입해서 볼 수 있는 만화를 그리는 게 최우선이다. ‘재미없는 만화’를 누가 좋아하겠나.(웃음)

당신의 작품이 해외에서도 통하는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나? 나도 사실 그게 의문이다. 최근 네이버 웹툰의 해외판 ‘라인웹툰’에 <방과 후 전쟁활동> 번역본을 연재했는데, 수능과 학업 스트레스, 징병제 등 우리나라 정서에 맞춰 만든 이 작품에 영어권 독자의 피드백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 그걸 보며 사람 사는 게 전부 비슷비슷하다고 느꼈다.

만일 웹툰 이후 다른 만화 플랫폼이 나온다 해도 생존할 자신이 있나? 그래야 할 것이다.(웃음) 사실 플랫폼의 형식이 바뀌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콘텐츠만 좋다면 그것이 어떤 플랫폼이건 창작에 어려움은 없을 거다. 분명 가까운 시일 안에 웹툰을 대체할 뭔가가 나오긴 할 거다. 하지만 10여 년 전, 출판 만화 시장에서 많은 작가가 웹툰 시장으로 넘어올 때도 그랬듯이 좋은 작가는 어디서든 살아남기 마련이다.

방과 후 전쟁활동

목욕의 신

삼봉이발소

의상 협찬 브루넬로 쿠치넬리

BAEK YOUNG MIN 백영민(웹투니스트)

<그놈은 여고생>이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첫 작품이라 그런지 작가 자체는 정작 알려지지 않았다. 어떻게 웹툰 작가가 됐나? 2014년 ‘다음 웹툰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사실 중학교 시절부터 만화가의 꿈을 키웠고, 대학에서도 만화 창작을 전공했다. 데뷔 전엔 몇몇 기성 웹툰 작가의 작업실에서 일을 도왔다.

<그놈은 여고생>의 인기가 대단하다. 특히 중국에선 누적 조회 수가 2000만 건에 달한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다음 웹툰 편집부를 통해 전해 듣긴 했지만 나도 실감이 안 난다. <그놈은 여고생>은 현재 다음을 통해 중국의 대표 포털 사이트 ‘큐큐닷컴’에서 연재되고 있다. 이따금 사이트에 들어가 번역기로 돌려 댓글을 보는데, 다행히 재미있다는 반응이 많아 기분은 좋다. 그것과 별개로 러시아와 동남아 쪽에서도 가끔 팬 메일을 받는데,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그 지역 독자들은 해적판으로 내 만화를 접한 거라더라. 정식 유통이 아니라는 점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작품을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선 나쁘지 않은 듯하다.

작품의 탄생 과정이 궁금하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여동생을 위해 오빠가 여장을 하고 동생의 학교에 입학해 겪는 이야기가 큰 줄기다. 사실 그동안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꼬아볼까 많이 고민하긴 했다. 그러다 오빠를 평범한 여장 남자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가 아니라 ‘불량 학생’으로 그리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거기에 살을 붙였다.

해외에서 작품이 인기를 끄는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용이 가볍고 직관적인 그림 때문인 듯하다. 중국에서의 인기는 같은 아시아 지역이라 학원물의 정서가 통하는 이유도 있겠다.

<그놈은 여고생>은 기획 단계부터 2차 콘텐츠를 고려한 작품이라고 들었다. 맞다. 애초부터 드라마 제작을 염두에 두고 그린 작품이다. 다행히 최근 국내 한 방송사와 작품의 판권 계약을 마쳤다. 사실 수년 전 내가 데뷔한 공모전도 ‘영상화할 수 있는 만화 콘텐츠’가 작품 모집 요강의 중요 골자였다. 지금도 난 늘 영상화를 고려하며 만화를 그린다.

웹툰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드라마나 영화로 2차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물론 그러려면 웹툰 자체의 ‘품질’이 좋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위부터_ 임희영, 함경, 문지영, 김홍박ⓒ [Music Friends] Jun-Yong Lee

‘클래식 한류’를 향한 박수갈채
서양 작곡가의 곡을 서양 악기로 연주하는 클래식 음악에 ‘한류’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따라붙는 날이 올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대중문화 못지않은 클래식 한류 열풍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지금, 세계 무대를 누비는 한국 연주자들의 활약을 지켜보는 일이 더없이 즐겁다. 가장 최근 이야기부터 하면 당연히 지난 10월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사건’이다. 한국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다시 쓴 성과였다. 중요한 것은 최근 국제 콩쿠르에서 인정받은 연주자가 그만이 아니라는 사실. 작년 5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한국인 최초로 기악 부문 우승을 거머쥐었고, 9월에는 피아니스트 문지영이 동양인 최초로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일찌감치 해외로 나간 몇몇 연주자가 이름을 날리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유학을 가지 않고 국내에서 수학한 재능 있는 젊은 연주자가 대거 등장해 클래식 스타로 떠올랐다.
물론 콩쿠르의 성과만으로 클래식 한류를 말하는 건 아니다. 지난 1월 서울에서 열린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에서는 한 단원이 정확한 한국말로 앙코르곡을 설명했다. 그녀는 아시아 여성 최초로 이 악단에 들어간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이스 노(Joyce Noh)였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외에도 현재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단원은 많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최초의 여자 부악장으로 활동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윤진, 작년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에 제2바이올린 악장으로 들어간 이지혜, 지난 2월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첼로 수석으로 임용된 임희영 등 여러 연주자가 유럽의 명문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고 있다. 한국 연주자들이 현악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알려진 관악기 분야의 성장세도 두드러진다. 뉴욕 필하모닉의 플루티스트 손유빈, 베를린방송교향악단 바순 수석 유성권,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호른 제2수석 김홍박 등이 대표적. 또 하노버 슈타츠오퍼에서 오보에 수석으로 활동 중인 함경은 올 8월 세계 최고 악단으로 꼽히는 로열 콘세르트헤보 오케스트라에 정식 입단할 예정이다.
이젠 해외 유명 음악홀에서 한국인 연주자의 공연 소식을 접하고 도이체 그라모폰(DG) 같은 세계적 클래식 레이블에서 발매한 음반을 만나는 게 전혀 낯설지 않다. 어릴 때부터 클래식 영재 교육을 받은 연주자들이 세계 곳곳에 자리 잡기 시작했으니 앞으로의 활약은 더욱 주목할 만하다.

ⓒ Studio D

CHOI YE EUN 최예은(바이올리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조피 무터는 자신이 직접 유망한 인재를 선발해 후원하는 ‘안네 조피 무터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최예은은 2005년 16세의 나이로 오디션을 통과해 이 재단의 장학생이 된 바이올리니스트. 한마디로 거장이 선택한 젊은 연주자다. “안네 조피 무터 재단은 정형화된 지원이 아니라, 악기나 진로 설정 등 개개인에게 맞는 후원을 해줍니다. 그리고 제게 무터 선생님은 멘토이자 오랜 친구, 엄마 같은 분이에요. 늘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데, 특히 음악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그렇습니다.” 뮌헨 음악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2013년 한국인 최초로 유럽문화재단 신인 연주자상을 수상했고,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데뷔 앨범을 발매했다. 2014년에는 예브게니 키신, 힐러리 한 등이 소속된 세계적 클래식 매니지먼트 IMG 아티스츠와 계약하며 화제가 됐다. 앨런 길버트의 뉴욕 필하모닉,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지휘하는 샌프란시스코 오케스트라 등 그동안 세계적 악단과 협연해온 그녀는 현재 유럽을 기반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올해도 지휘자 야니크 네제세갱이 이끄는 로테르담 필하모닉과 함께하는 유럽 투어와 리사이틀을 비롯해 많은 일정을 소화한다. 10월에는 NDR 라디오 필하모닉과 서울에서 협연할 예정. “클래식 음악은 서양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현대는 동서양의 문화가 어우러진 시대죠. 한국인의 음악성은 그것이 클래식이든 K-팝이든 흥이 많고 열정적인 국민성과 관련 있는 것 같아요.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많은 젊은 연주자가 두각을 보이는데 단순히 성공만을 위해 나아가지 말고 ‘왜 클래식 음악을 하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제게도 항상 큰 도전입니다.”

ⓒ Jino Park, Credia

MUN TAE GUK 문태국(첼리스트)
2004년 열 살에 금호영재콘서트로 데뷔한 소년은 정확히 10년 후인 2014년, 파블로 카살스 국제 첼로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한국인 최초였다. K-클래식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연주자 첼리스트 문태국은 콩쿠르 우승 이후 남다른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많은 연주 제안이 있었어요. 특히 작년 부다페스트 스프링 페스티벌이 기억에 남습니다. 콩쿠르 당시 호흡을 맞춘 헝가리 라디오 심포니와 다시 만나 연주했죠. 콩쿠르에서 연주한 곡을 전혀 다른 느낌으로 연주한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또 2014년 루브르 박물관 초청 독주회도 특별했어요. 장소 때문에 더욱 설레었고, 그곳에서 언어의 벽을 넘어 음악으로 소통하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2007년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입학한 뒤 유학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그는 현재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세계적 첼리스트 로런스 레서를 사사하고 있다. 그는 스승에게 테크닉뿐 아니라 ‘진솔한 음악’을 전달하는 법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5월에 졸업하는데, 음악 공부를 더 하고싶어 독일 유학을 계획 중이에요. 어디서든 음악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하고, 그 마음을 변함없이 지켜가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6월 15일, 문태국은 디토 페스티벌을 통해 LG아트센터에서 피아니스트 문지영과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초여름 한국에서 가장 반가운 무대가 될 듯하다.

빅뱅

카라

슈퍼주니어 규현

SM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의 아이덴티티를 가미한 푸드 상품

다시 돌아온 케이팝 전성기
1999년 아이돌 그룹 최초로 NRG와 베이비복스가 중국에 진출한 데 이어 2000년 2월 H.O.T.가 베이징 단독 공연을 개최하면서 ‘한류’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했다. 보아, 비, 원더걸스, 동방신기, 빅뱅 등 아이돌이 본격적으로 한류 열풍에 동참한 것은 2006년 이후.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 최광호 사무국장은 이 시기를 K-팝의 융성기로 꼽는다. “당시 일본 활동을 시작한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빅뱅은 모두 일본 오리콘 차트 1위를 거머쥐었고 도쿄 돔 5만 석 전 석을 매진시켰습니다. 전체 J-팝 시장의 8~9%를 K-팝이 점유하며 새로운 한류 역사를 썼죠.” 이들은 국내 대형 기획사에서 수년간 전략적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한 그룹으로, 출중한 외모는 물론 라이브와 안무 등 퍼포먼스에 능했다. 국내의 ‘완성형 아이돌’을 따라올 만한 아시아계 아이돌은 드물었고, 저마다 다른 매력과 강점을 지닌 그룹 멤버들은 다양한 국가에서 폭넓은 팬층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한류가 이런 성과를 내자 2010년 전후로 2PM, F(x), EXO 등 중화권이나 동남아시아 국적의 멤버를 영입해 해외시장을 전략적으로 공략하는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외국인 멤버가 출신 지역의 취향을 저격하는 데 큰 몫을 해내면서 그 지역의 팬덤과 SNS 트래픽이 극대화되는 성과를 거뒀다. 2012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포문을 연 ‘케이콘(KCON)’은 음악을 기점으로 드라마, 영화 등의 콘텐츠와 IT, 패션, 뷰티 등 한국 상품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글로벌 컨벤션 행사다. 일본, LA,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로 개최지를 확장해나가던 지난 3월에는 중동 지역에서 첫 콘서트 ‘KCON 2016 아부다비’를 개최했다. 이 행사를 계기로 해외 K-팝 시장은 북미, 남미, 유럽을 넘어 아랍에도 안착했다. 콘서트가 열린 3월 25일, 아부다비의 최대 야외 공연장 ‘두 아레나(Du Arena)’는 사우디, 오만, 이집트 등 중동 전역에서 몰려온 현지 팬 5000여 명으로 가득 찼고 소녀시대 태연, 슈퍼주니어 규현 등 7팀의 콘서트 무대는 열기로 뜨거웠다. 같은 시기 아부다비에 개관한 중동 지역 최초의 한국문화원은 아랍권에 새롭게 형성될 한류 시장에 힘을 실었다.
K-팝 스타들은 이제 SNS를 비롯한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을 타고 전 세계로 날아간다. 지난 1월, 싸이의 ‘강남 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유튜브 조회 수 25억 뷰를 넘어서면서 구글 유튜브 사업부는 최대 21억까지만 체크가 가능한 조회 수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했다. MBC플러스가 운영하는 ‘All The K-Pop’은 다음카카오, 티빙, 유튜브 등 인터넷과 모바일을 활용한 K-팝 엔터테인먼트 채널로 길이가 짧은 ‘클립형 콘텐츠’를 24시간 선보인다. 각종 미디어 채널에 뮤직비디오, 방송 활동 영상 등을 업로드한 K-팝 아티스트들은 현지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많은 국가의 팬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게 됐다.
한류 열기는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전략적 아이돌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진입 지역이 확장되면서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세계 곳곳에서 인정받고 있는 K-팝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일까? 한국 대중가요의 새로운 시대를 이어갈 K-팝의 내일을 기대해도 좋다.

박장근과 챈슬러(왼쪽부터) 의상 협찬 타임 옴므

DUBLE KICK 이단옆차기(작곡가, 음악 프로듀서)
래퍼 겸 배우로 활동하던 박장근과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작곡과 편곡을 전공하고 있는 챈슬러로 구성된 음악 프로듀싱 팀. 지금까지 5년간 350곡 이상을 만들어온 이들이 해외시장의 뜨거운 반응을 실감한 것은 2012년, ‘남미돌’로 불리는 엠블랙의 ‘전쟁이야’를 작사·작곡한 무렵이다. 뮤직비디오를 보는 팬들의 모습이 담긴 ‘리액션 비디오’는 저 멀리 브라질의 작은 도시에서 유튜브와 SNS를 통해 생생하게 전해졌다. “우리가 만든 노래가 해외의 대형 스타디움에 울려 퍼지고 팬들의 ‘떼창’을 들을 때 엄청난 한류 열기를 실감해요.” 이들은 카라의 ‘맘마미아’, 에이핑크의 ‘Mr. Chu’, 2015년 씨스타의 ‘Shake It’ 등 해외 팬들이 열광하는 다수의 히트곡을 만들었다. 이 곡들이 해외 시장에서도 이처럼 뜨거운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우리는 특정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실험을 해요. 이를테면 걸스데이의 ‘Something’은 1990년대 가요에서 모티브를 얻었어요. 엄정화나 박지윤 등 여가수의 곡에서 영감을 받아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에 팝적 요소를 더했죠.”
사실 이들이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공략한 것은 아니다. 이들이 쓴 곡이 10~20대에게 특히 인기를 얻으며 국내 음반 차트 1위에 오르자 해외의 반응이 자연스럽게 따라왔고, 그 덕분에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프로듀싱 의뢰가 시작된 것. 그 여세를 몰아 최근엔 가수, 작곡, 프로듀싱 분야의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이단옆차기 실용음악학원’을 개설했다. 훌륭한 시스템을 갖춘 환경에서 그들의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전수해 해외시장에 진출할 만한 실력 있는 아티스트를 키울 예정이다. 이들은 4월 말부터 방영하는 SBS 드라마 <딴따라>의 OST 작업을 비롯해 앞으로 중국 걸그룹 SNH48과의 작업도 예정되어 있다. 머지않아 국내외 K-팝 시장의 역사에 또다시 한 획을 긋게 될 다재다능한 두 남자의 활약을 기대해보시라.

ⓒ NEW

신(新)한류 드라마 시대
K-드라마는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콘텐츠 중 하나다. 1999년 원조 한류 배우 안재욱을 탄생시킨 <별은 내 가슴에>, 2000년 수많은 해외 팬을 울린 <가을 동화>가 인기리에 방영되면서 한국에 대한 중국과 동남아시아권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 방송 시스템은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아 정치적 색채가 짙은 혁명극이나 역사 드라마가 주를 이뤘다. 그래서 현대적인 한국 드라마는 그들에게 정서적·문화적으로 색다르게 다가갔다. 반면 탄탄한 문화 콘텐츠를 보유한 일본은 상대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지만, 2004년 NHK 종합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겨울 연가>를 기점으로 크게 높아졌다. 첫사랑과 재회해 이어가는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일본 중년 여성의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몰라도 욘사마는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배용준을 향한 애정은 쉽게 식지 않았고, 촬영지인 남이섬은 1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매년 2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국제적 명소가 됐다. 같은 시기에 <대장금>은 음식을 소재로 인기를 끌었고 한국 역사를 알리는 역할도 했다. 2006년 이후 K-드라마는 이전의 인기 드라마를 뛰어넘는 작품이 등장하지 않으면서 한동안 암흑기를 맞았다. 뉴미디어를 통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와 함께 새 전성기를 맞은 건 2013년 <상속자들>, <별에서 온 그대>, <피노키오> 등이 등장하면서. 특히 그해 12월부터 방영한 <별에서 온 그대>는 외계인과 여배우의 러브 스토리라는 참신한 소재로 중국과 동남아시아권의 인기를 휩쓸었다.
한류 스타와 드라마에 대한 인기가 날로 뜨거워지자 중국에서는 K-드라마를 견제하기에 이르렀다. 자국의 콘텐츠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사전 심의제’를 강화한 것. 현재 한국 드라마는 가장 큰 수출 시장인 중국의 변화에 대응하며 새로운 작전을 모색하는 중이다. 바로 ‘100% 사전 제작’ 시스템. 중국 드라마 시장에 정식으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심의 기간인 3개월 전 모든 제작을 완료해야 하지만, 미리 만들어 한중 동시 방영을 시작하면 무분별하게 불법 유통되고 저렴한 값에 팔려나가던 한국 드라마를 보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런 추세에 따라 상반기에 방영한 <치즈 인 더 트랩>, <태양의 후예>를 시작으로 현재 <사임당, 더 허스토리>, <함부로 애틋하게>, <보보경심: 려> 등의 드라마가 한중 동시 방영을 위해 방영 시기 1년여 전부터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이영애, 송승헌, 수지, 김우빈 등 많은 해외 팬을 거느린 스타가 투입되면서 캐스팅과 동시에 방송 전부터 화제다.
K-드라마는 시청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탁월한 기량을 해외에서 인정받았다. 리얼리티를 중시하고 희로애락을 절제하는 드라마에 익숙한 일본인은 감정을 자극하며 빠르게 전개되는 한국 드라마를 보면 “후련하다”고 한다. 여기에 기승전결에 따른 탄탄한 스토리라인으로 완성도를 높이고 유교 문화권이 공감할 수 있는 가족 중심의 재미와 감동을 더해 한국 드라마만의 강점을 갖추게 됐다.
K-드라마는 한국을 해외에 알리는 하나의 수단이었지만 이제는 거꾸로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등 해외시장에서 한국을 찾는 주 목적 중 하나로 급부상했다. 한류 스타를 키우고 부가 수익을 올리는 것을 넘어 앞으로 한국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데 K-드라마가 어떤 역할을 할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의상 협찬 꼬르넬리아니

LEE EUNG BOK 이응복(KBS PD)
4월 14일 종영한 수목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시크릿 가든>과 <상속자들>의 김은숙 작가와 <여왕의 교실>의 김원석 작가, 영화 투자 배급사 뉴(NEW), 그리고 KBS의 합작품이다. ‘세계 30여 개국 판권 수출’, ‘국내 시청률 30% 돌파’ 등 연일 수많은 헤드라인을 장식한 이 작품은 한중 동시 방송을 위해 작년 6월 사전 촬영을 시작했고 첫 방송 전부터 판권 판매와 PPL, 광고 매출을 통해 손익 분기점인 130억 원을 일찌감치 넘겼다. 또한 4월 2일 기준으로 중국 내 최대 동영상 플랫폼 ‘아이치이(iqiyi)’에서 누적 조회 수가 17억 뷰를 넘어섰으며,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에서 <태양의 후예> 해시태그 #太􄧈的后裔# 조회 수는 약 85억4000회를 기록했다.
<태양의 후예>의 연출을 맡은 KBS 드라마국 이응복 PD는 이 화제의 드라마가 탄생하기까지 현장을 진두 지휘한 인물이다. 그는 2002년 KBS에 PD로 입사해 2009년 <전설의 고향-금서>로 데뷔한 이후 드라마 <명가>, <드림하이 1·2>, <학교 2013>, <비밀>, <연애의 발견> 등 10여 편의 드라마를 연출하며 이름을 알렸다. <태양의 후예>는 액션, 메디컬, 재난 등 다양한 요소가 극 전체에 녹아 있고 여기에 로맨스, 휴머니티까지 어우러져 연출가에게는 그야말로 큰 도전이었다. 그는 이 드라마의 성공 비결로 훌륭한 제작진과 배우 그리고 잘 만든 대본을 꼽는다. 특히 군대를 막 제대한 꽃미남 배우 송중기와 대표적 한류 여배우 송혜교를 캐스팅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군인과 의사로서 사명감을 지닌 예쁜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만국에서 통할 거라고 확신했어요. 데이트 도중 헬기를 타고 떠나는 특전사는 현실에서 드물지만 이건 상징적 표현이에요. 극한 상황에서 발현되는 인류애,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사랑과 신념이 세계 곳곳에서 공감을 얻었죠.”
지난 12월까지 진행한 사전 제작은 쪽대본, 고무줄 편성 등 그간 지적돼온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의 문제점을 해결하며 작품성을 한층 끌어올렸다. 국내외 다양한 장소에서 촬영한 근사한 풍경은 또 다른 볼거리였다. 극 중 성당 막사는 강원도 태백에 대규모 세트를 지어 촬영했고 해외 촬영지인 그리스 자킨토스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문과 가구, 타일과 종, 펌프 등의 소품을 현지에서 공수해 리얼리티를 극대화했다. 이런 방식으로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여서인지 중국 시청자 사이에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태양의 후예>를 시청한 중국 여성 중 상당수가 ‘유시진 대위’를 향한 상사병에 빠졌으며 그로 인해 부부 싸움이 잦아졌다는 것. 드라마에 대한 반응이 뜨겁게 치솟자 중국 공안부는 이례적으로 SNS를 통해 드라마 시청 부작용을 경고하기까지 했다.
<태양의 후예>는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도 최고점을 찍은 이응복 PD는 K-드라마의 미래를 어떻게 예측할까?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드라마는 더욱 많아지겠지만 그쪽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려워요. 한국 시청자를 배제한다면 K-드라마는 무의미하죠. 시청자의 다양한 감정과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앞으로 미스터리, 멜로, 코미디, 스릴러 등 여러 장르의 드라마가 필요해요. 그 다양성의 가치는 시청률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한류의 숨은 조력자
지금 세계에 퍼져 있는 한류는 아티스트들의 실력만으로 일군 게 아니다. 배우가 무대에서 빛을 발하기 위해선 여러 스태프의 활약이 필요하듯 한류 또한 누군가의 뛰어난 직관과 두뇌, 판단이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흐름을 탈 수 있었다. K-팝과 드라마, 클래식, 게임, 웹툰 등을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은 숨은 조력자들을 만난다. 이제 글로벌 대중문화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퍼즐의 한 조각이 된 K-팝과 규모 면에서 한류의 선봉장으로 자리매김한 K-게임, 슬슬 세계 무대에서 날개를 펴고 있는 K-웹툰의 숨은 조력자들을 만나 한류의 시작과 원칙, 우려, 특이점, 전망 등에 대해 들었다.

JUNG SANG WON 정상원(넥슨 코리아 개발총괄 부사장)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1996년 넥슨코리아에 입사해 10년간 근무한 후 퇴사해 2005년 네오위즈 게임제작본부 본부장을 거쳐 2010년 띵소프트를 설립, 현재 띵소프트 대표와 넥슨코리아 부사장 및 신규개발총괄 본부장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국내 게임 산업의 부흥을 이끈 1세대 게임 개발자로 ‘바람의 나라’와 ‘카트라이더’, ‘마비노기’, ‘크레이지아케이드비엔비’ 등의 유명 게임을 시장에 내놨습니다. 어떻게 게임 개발을 하게 됐나요? 서울대학교 분자생물학과 재학 시절 전산실에서 친구들이 하던 ‘텍스트 머드게임’을 접하며 온라인 게임의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이후 삼성SDS에 입사했는데, 게임이 너무 만들고 싶어 근처에 있던 ‘넥슨’이란 게임 회사를 찾아가 연을 맺었고요. 그 당시 제가 처음으로 기획과 프로그래밍을 해 만든 온라인 게임이 올해 서비스 20주년을 맞은 ‘바람의 나라’입니다.

한국 온라인 게임 신화의 시작과 현재를 직접 경험했습니다. 지금껏 일대 ‘사건’이라고 할 만한 일을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테지만, 전 ‘바람의 나라’의 탄생이라고 생각합니다. 탄생 자체는 큰 사건이 아니지만, ‘바람의 나라’는 디스크에 담긴 게임을 사고 혼자 그것을 즐기던 방식에서 벗어나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온라인 게임의 시초였습니다. 말하자면 지금 사이버 세상에 있는 ‘전우’나 ‘절친’은 이 게임을 통해 생긴 겁니다.

국내 게임 회사들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한국 게임 회사들은 여전히 색다른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그에 걸맞은 기술력과 경험도 많이 축적했고요. 유저의 참여를 끌어내는 스토리의 유연한 변화 또한 특장점이라고 봅니다.

지난 10여 년간, 한류 열풍의 숨은 일등공신은 바로 K-게임이었습니다. 국내 게임 산업 총수출액은 재작년 기준 30억 달러(약 3조1300억 원)고, 이는 해외 매출이 각각 3억 달러(약 3130억 원)인 방송과 K-팝 규모의 10배에 달하는 규모죠. 앞으로 K-게임이 더욱 성장하려면 무엇에 신경 써야 할까요? 브랜드 인지도입니다. 한국의 게임 회사들은 유저들의 애정이 폭발하는 게임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게임은 유저의 한때를 함께하는 친구 같은 존재임에도 아직까지 이런 감성적 부분까지 생각하는 회사는 드뭅니다. 앞으로 각 게임이 브랜드 인지도를 쌓고 오프라인으로 게임을 확장해 유저들이 조금 더 애정을 느낄 수 있게 한다면, 한국의 게임은 지금보다 세계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될 겁니다.



PARK JUNG SEO 박정서(다음 웹툰 총괄)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다음에서 웹툰 업무를 담당한 지는 10년, 책임지는 위치가 된 건 5년 정도 됐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웹 & 앱 서비스 기획자이자 웹툰 프로듀서입니다. 프로듀서마다 담당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전 주로 경력이 좀 있는 강풀과 윤태호, 훈, 네스티캣, 캐러멜, 네온비, 장이, 강형규 작가 등을 담당합니다.

지난 몇 년, 웹툰 작가의 위상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본격적으로 웹툰의 파이가 커진 건 언제부터라고 진단하시나요? 개인적으로 두 번 정도 계기가 있었다고 봅니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성공과 국민 웹툰 <미생>의 등장입니다. 전자는 웹툰을 영상으로 만들면 실패한다는 인식을 일거에 불식시켰고, <미생>은 웹툰의 위상을 재정의하고 웹툰이 원 소스 멀티 유스로 얼마나 성공할 수 있는지 보여줬습니다.

다음 웹툰에 게재하는 콘텐츠에 관한 자신만의 원칙이 있나요? ‘창의적’인 걸 선호합니다. 창의라는 단어를 쉽게 생각하면 ‘뜻을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기존에 누구나 알고 있는 뜻은 만드는 행위에 포함될 수 없으니 결국 창의란 전혀 새로운 뜻을 만들어내는 걸 지칭하게 됩니다.

그간 웹툰 콘텐츠를 감독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건은 무엇인가요? 예전에 어떤 작가와 식사를 하다가 그분의 친구 한 명이 동석한 적이 있습니다. 동석한 이도 만화를 그리는 분이었죠. 체구가 작고 수염이 덥수룩하고 모자를 푹 눌러쓴, 다소 남루한 인상이었습니다. 그는 회사 사정으로 연재처가 사라져 당장 연재를 시작할 곳을 찾고 있었고, 우연히 제가 그의 원고를 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전 그의 원고를 받고 너무 뛰어나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제가 당시 본 작품은 <이끼>였습니다. 윤태호 작가와 전 그렇게 만났습니다.

K-웹툰이 지금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세요? 중국이든 미국이든 좋은 시장이 형성된 곳은 그만큼 치열한 경쟁이 따르고, 그 경쟁에서 이기려면 상상하기 힘든 비용과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콘텐츠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죠. 그런데 비용과 인프라는 갑자기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어느 정도는 내수가 받쳐줘야 가능한 일이죠. 따라서 대한민국처럼 만화 혹은 캐릭터 내수 시장이 작은 나라는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규모를 만들기 위해 목표가 유사한 업체들의 사업적 연대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SHIN WON SOO 신원수(로엔엔터테인먼트 대표)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SK텔레콤 공채 1기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고, 2000년대 초반 SK텔레콤 모바일콘텐츠사업본부에 합류해 2004년 음악사업팀장을 맡고, 같은 해 11월에 음악 사이트 멜론을 런칭했습니다. 이후 SK 계열사인 서울음반(2008년 로엔엔터테인먼트로 상호 변경) 대표로 취임해 멜론을 합병한 뒤 현재 로엔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가 K-팝의 열기가 더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지난 10여 년간 K-팝의 이모저모를 최전선에서 겪은 사람으로서 K-팝의 인기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각 분야 전문가들이 기획과 제작 등에 참여해 콘텐츠의 품질을 높였고, 아티스트들은 기존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볼 수 없던 중독성 강한 음악과 강렬한 퍼포먼스를 동시에 선보여 프로페셔널한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또 무대 밖에선 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 때문에 독보적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고요. K-팝의 위상이 높아지며 해외 뮤지션과의 협업, 다국적 멤버 구성 등 글로벌 매니지먼트가 증가하고, SNS와 뉴미디어형 채널 등 다양한 창구로 콘텐츠가 퍼지고 있어 앞으로 K-팝의 인기는 더 뜨거워질 겁니다.

2008년엔 현재 K-팝의 대표 스타인 아이유를 발견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어떻게 그녀의 재능과 스타성을 알아보셨나요? 아이유는 데뷔 당시 16세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이임에도 음악에 대해 누구보다 열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음악을 향한 열린 마인드가 정말 남달랐죠. 또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깨끗한 음색과 섬세한 감정 전달력을 겸비했고요. 그런데 그녀의 스타성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닙니다. 그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죠.

2000년대 중반 ‘멜론’을 런칭해 국내 디지털 음원 시장의 50%를 점유했습니다. 디지털 음원 시장의 성장이 K-팝 시장을 키웠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를 어떻게 보시나요? 저작권 보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지며 제도 정비를 통해 음악 산업을 성장시키는 게 과제로 떠올랐다고 봅니다. 멜론은 ‘편하게’, ‘마음껏’ 음악을 듣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PC와 휴대폰으로 음악 감상이 가능한 플랫폼을 설계했죠. 디지털 음원 시장의 성장은 K-팝 시장의 성장에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봅니다.

K-팝과 K-드라마 등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지금보다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현재까지 양적 성장을 이뤄왔다면 앞으로는 질적 성장을 이뤄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를 중심으로 비즈니스를 전개해 그동안 ‘생산자’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이젠 소비자뿐 아니라 생산자 측면에서도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고 소비자에게 들려줄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고 봅니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임해경 (hklim@noblesse.com)
커버 디자인 Kenzi 사진 김제원(인물) 디자인 이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