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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땅, 이집트의 신앙을 걷다

LIFESTYLE

성가족의 피신에서 요셉과 모세의 서사까지, 이집트에 남은 신앙과 역사의 기록을 짚어본다.

람세스 2세가 완성한 룩소르 신전.

아스완의 누비아인 마을.

아뇰로 브론치노, ‘홍해 횡단’, 피렌체 베키오 궁전.

2021년 개관한 국립 이집트 문명 박물관 내부.

핫셉수트 장제전에서 본 룩소르 황야.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 첫 부분에서 빌헬름은 산길에서 나귀를 끌고 가는 사나이를 만난다. 나귀에는 갓난아이를 안은 예쁜 부인이 타고 있었다. 빌헬름은 그토록 그림에서 자주 보던 ‘이집트 피신’이 눈앞에 펼쳐진 것 같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 나는 이 구절에서 화보로 본 렘브란트의 그림을 떠올리는 공감각으로 만족했다. ‘Flight into Egypt’라는 영어 제목으로 보면 이집트 취항 여객기라는 뜻 같지만, 이는 헤롯 왕의 신생아 학살을 피해 요셉과 마리아가 갓난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도피한 일을 말한다. 성가족의 이집트 피신은 성탄의 마지막 퍼즐이며, 정치적 박해에 내몰린 구사일생의 가족애는 르네상스의 인본주의 정신에 부합하는 주제였다. 실제 괴테가 본 그림 은 무엇이었을까. 조토, 카라바조, 엘스하이머? 숱한 그림으로만 보던 끝에 마침내 이집트의 기독교 성지에 도착했다. 성 세르기우스와 바쿠스 교회는 성가족이 피난 당시 머물렀다는 동굴 위에 지었다. 지하 예배당에서 두려움과 피로에 지친 그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시모네 브렌타나, ‘요셉을 유혹하는 술레이카’, 베로나 마페이 궁전.

폰토르모, ‘파라오와 시종장과 제빵장’, 런던 내셔널 갤러리.

14세기에 문을 연 카이로 칸 엘 칼릴리 시장.

국립 이집트 문명 박물관 내 미라관.

오라토리오에 새겨진 성서
이집트 기독교 신자인 콥트 교도는 현재 약 1800만 명으로, 이집트 인구의 10%를 차지할 만큼 적지 않은 수다. 그런데 이들의 삶이 극단적이다. 소수 상류층은 회계사, 의사, 약사 같은 고소득층인데 ‘자발린’이라 불리는 하층민은 쓰레기 수거와 재활용으로 먹고산다. 자발린의 쓰레기 재활용률은 80%다. 서유럽은 20%쯤이다. 콥트 교도가 없다면 카 이로 시내는 온통 쓰레기장일 것이다. 헤롯이 죽을 때까지 수개월 또는 길어야 1년 정도로 추정되는 성가족의 이집트 체류와 오늘날 그들을 믿는 자발린의 삶이 겹쳐 보였다.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오라토리오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로 이 시기를 전한다. 어렵사리 도착한 이집트에서도 배척된 성가족은 사이스까지 흘러 들어간다. 한 모슬렘 가장은 유대 이방인이 미처 기대하지 못한 쉴 곳을 내어준다. 마침내 찾은 온기를 두 대의 플루트와 하프 삼중주가 전한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선율과 차창 밖 황량한 풍경 사이의 접점을 찾기 힘들다. 이집트는 페인트가 열기에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도로에 차선이 아예 없다. 수많은 차량이 일제히 경적을 울리며 존재감을 표시한다. 아기를 업은 엄마가 수십 미터 찻길을 아슬아슬하게 건넌다.괴테와 베를리오즈에 앞서 헨델은 오라토리오 <이집트의 이스라엘인>과 <요셉과 그의 형제>로 이집트에 선착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서 ‘출애굽기’에 걸친 이야기다. 야곱의 아들 중 가장 총명한 요셉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그는 형들이 자신에게 무릎을 꿇으리라는 예언을 해 미움을 샀다. 형들은 동생을 노예 상인에게 팔아넘긴다. 요셉은 파라오의 경호대장 포티파르의 노예가 되어 그의 총애를 받는다. 그러나 요셉은 포티파르 아내의 유혹을 거부하다가 도리어 그녀를 겁탈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투옥된다. 감옥에서 고관에게 해몽해주고 신임을 얻은 그의 명성은 급기야 파라오의 귀에까지 이른다. 파라오의 꿈을 듣고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을 예고해 총리 자리에 오른 이방인 요셉. 흉년을 버티다 못해 이집트까지 곡식을 사러 온 야곱의 아들들은 동생인 줄도 모르고 총리 요셉에게 무릎을 꿇는다. 형들을 잠시 시험하고 용서한 요셉은 그들을 이집트에 정착시킨다. 20세기 아스완댐을 건축한 후 요셉 시대 같은 나일강의 범람과 기근은 거의 사라졌다. 사막 한가운데서 관개시설로 농사를 짓지만 기후변화와 사막 확대, 인구 증가로 이집트 농업은 도전에 직면했다. 사실 요셉 시대의 풍요도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이집트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온 침략자 힉소스 왕조 시대였다. 요셉은 그들과 같은 셈족이라 대우받았지만, 수백 년이 흐르면서 이집트인의 신왕국 시대가 되자 히브리인은 노예로 전락했다. 헨델의 <요셉과 그의 형제>가 파라오에게 꿈풀이를 해주고 기근을 이겨낸 뒤 형들과 화해하는 요셉을 그렸다면, <이집트의 이스라엘인>은 요셉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세월의 흐름과 시련의 도래를 한 사람의 죽음에 응축하며 바로 수 세기 뒤 모세의 시대로 넘어간다. 파라오와 형제로 자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는 출애굽 이야기다. 순순히 노예를 풀어주길 거부한 파라오는 하늘이 내린 7개의 재앙 끝에 큰아들을 잃고 겨우 말을 듣는다. 다시 모세를 쫓아 갈라진 홍해 바닥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헨델은 요셉을 잃은 슬픔부터 들판을 덮친 메뚜기 떼를 거쳐 백성의 찬양까지 물샐틈없는 합창에서 합창으로 연결한다. 그 홍해에 지금은 거대 자본이 세운 리조트가 욕망을 길어 올리는 유정(油井)과 서로 바라본다.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의 헨델 묘역.

모세가 발견된 곳에 9세기에 지은 벤 에즈라 유대교 회당.

카이로 성 세르기우스와 바쿠스 교회의 ‘이집트 피신’ 부조.

카이로 성모마리아 콥트 정교회의 ‘이집트 피신’ 모자이크.

욕망과 신앙 사이
십자군 원정부터 지역 패권을 두고 벌인 20세기 전쟁까지 불길이 사그라들 줄 모른다. 괴테는 일찍이 예감했던가! 그는 고대 페르시아의 하피즈가 쓴 시를 번역해 <서동시집>으로 묶었다. 동서양의 화해와 교류를 꾀한 이 시집에 괴테는 페르시아 시인 하템으로 등장한다. 시를 쓰던 무렵 60대인 괴테는 20대인 마리아네라는 여인과 사랑하는 사이였다. 마리아네는 곧 다른 이와 결혼했지만, 괴테는 시집을 통해 사랑을 이어갔다. <서동시집>에서 하템의 연인은 술레이카이며, 그녀의 시는 마리아네가 괴테에게 준 것이다. 쿠란에도 언급된 술레이카는 누구인가? 놀랍게도 요셉을 유혹했던, 바로 이집트 경호대장 포티파르의 아내다. 왜 괴테는 성서의 무명(無名) 여인을 애인으로 삼았을까? 뒷날 괴테는 자서전 <시와 진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자연스러운 이야기는 매우 매력적이지만 너무 짧아서, 누구든 이를 자세히 묘사하고 싶은 마음을 느끼게 된다. 나는 오랫동안 ‘요셉의 이야기’를 다루길 바라왔다.” 괴테가 하지 못한 일은 20세기에 토마스 만이 <요셉과 그의 형제>로 완수했다. 만은 네 권에 걸친 방대한 서사에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을 하나로 녹였다. 만은 포티파르가 환관이라는, 성서에 없는 설정을 끌어들였다. 그의 아내 술레이카가 외로웠던 이유다. 그녀는 처음에는 요셉에게 느끼는 강렬한 끌림이 단순한 육체적 욕망인지, 아니면 더 깊은 무엇인지 몰라 혼란스러워한다. 만은 그녀를 귀족적 우월감과 아내로서 정절, 그리고 누를 수 없는 열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로 섬세하게 묘사한다. 술레이카는 요셉을 향한 감정을 ‘신적인 것’으로 승화시키려다 결국 소유욕과 질투에 굴복한다. 요셉은 그런 술레이카의 마음을 정확히 읽는다. 자신의 매력을 무기 삼아 상대의 감정을 적절히 자극하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절묘한 줄타기를 한다. 여인의 진심 어린 고통을 이해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운명과 목적을 우선시하는 그의 냉정한 모습은 인간적 온기보다는 신의 섭리를 향한 사명감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다시 돌아가, 괴테는 <서동시집>에서 목마른 술레이카에게 사랑을 돌려준다. ‘술레이카’ 장(章)의 여러 시는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등이 가곡으로 작곡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갖고 싶을 만큼 감미롭기 때문이다. 요셉이 거부한 쾌락이 얼 마나 큰지 가늠할 만큼! 그러면 요셉은 짝을 찾지 못했을까? 성서에서 파라오는 총리의 아내로 대제사장의 딸 아세나트를 점지한다. 헨델의 <요셉과 그의 형제>에서 실제 주인공은 아세나트다. 둘은 첫눈에 반했다. 이 얼마나 축복인가! 그녀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남편을 보고 “황홀한 예언이 내 가슴을 채우고, 우리가 여전히 축복받으리라 속삭이네요”라고 노래한다. 하늘이 내린 배필의 북돋움으로 요셉은 형제들과 아버지를 다시 만난다. 카이로의 칸 엘 칼릴리 시장은 14세기에 문을 열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이곳에서 나는 금속 골무를 샀다. 원래는 미라의 부장품으로 소중한 손끝을 보호하는 용도다. 요셉과 모세, 성가족의 손때가 묻었을 법한 파라오의 골무를 키보드 위에 두고 이집트 기행문을 맺는다.

 

글∙사진 정준호(문화 칼럼니스트)
에디터 김수진(suze@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