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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에 전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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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바리톤과 테너, 2명의 뮤지컬 배우로 구성된 ‘흉스프레소’는 가장 이질적인 조합이었다. 그들은 톤과 성량, 심지어 사용하는 언어도 달랐다. 마법이 일었다. 그들은 <팬텀싱어> 무대 중 가장 완벽한 하모니를 이뤄냈다.

왼쪽부터
권서경 셔츠 Baton Kwonohsoo, 베스트와 슈트 Corneliani, 블랙 슈즈 Punkt
고은성 셔츠, 보타이, 더블브레스트 턱시도 Baton Kwonohsoo
백형훈 셔츠, 보타이, 자카드 윙 칼라 턱시도 슈트 모두 Baton Kwonohsoo, 네이비 윙팁 슈즈 Punkt
이동신 셔츠, 보타이, 자카드 윙 칼라 턱시도 슈트 모두 Baton Kwonohsoo

오디션 프로그램은 권태롭다. 10대의 빛나는 재능 감상이나 그들의 성장 드라마도 어느덧 지겨워졌다. 지난해부터 대다수 오디션 프로그램은 핏빛 바다에 빠져 허둥거렸다. 동어반복에 피로가 쌓였다고 할까. 그 지점에서 <팬텀싱어>는 영리한 항해를 했다. 무기력한 항로에서 푸른 바다를 찾아낸 것이다. 이곳엔 재롱 잔치나 로드 무비가 없다. 대신 스페셜리스트를 모아 판을 벌였다. 그들은 노련한 베테랑이자 명민한 승부사였다. 오페라하우스나 크렘린 궁전에 울릴 법한 성악곡과 뮤지컬 넘버로 무대를 채웠다. 그 세계는 낯설지만 아름다웠다. 그리고 웅장했다. 종합편성채널 예능 프로가 평균 시청률 4.6%라는 놀라운 수치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목소리 덕이다. <팬텀싱어>의 특별한 점은 또 있다. 최후의 승자를 뽑는 여타 오디션과 달리 사중창에 적합한 구성원을 선별하는 것이 목표다. 아무리 뛰어난 솔리스트라도 다른 목소리와 하모니를 이루지 못하면 ‘팬텀싱어’가 될 수 없다. 흉스프레소는 이러한 취지에 가장 적합한 팀이었다. 2명의 성악가(권서경, 이동신)와 2명의 뮤지컬 배우(고은성, 백형훈)의 조합은 마치 오래 합을 맞춰온 밴드처럼 조화를 이뤘다. 결승 1차전 곡 ‘Si Tu Me Amas(만일 당신이 나를 사랑했다면)’에서 권서경은 숨을 죽인다. 스튜디오 끝 벽을 울릴 만한 성량이 있지만 고은성과 백형훈의 감정이 치고 들어올 공간을 내준 것이다. 2라운드에서 부른 ‘Vincero(승리하리라)’에선 하모니의 절정을 선보였다. 모두 최대 성량으로 내달리지만 그 파편들은 어느덧 하나의 피스로 결합한다. 그때가 최고 시청률(6.7%)을 갱신한 순간이었다. 흉스프레소는 <팬텀싱어>의 가장 값진 발견이었다. 성악과 오페라, 뮤지컬이 대중과 호흡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제시했다. 이들의 장르와 무대를 허무는 활동은 지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전율은 이어질 것이다.

체크 베스트와 팬츠 Gabriele Pasini by Shinsegae International, 셔츠와 넥타이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베이스바리톤의 매력에 젖다
권서경
베이스바리톤은 건축가다. 성부의 단단한 지반과 뼈대를 만든다. 테너와 베이스는 그 위에 벽돌을 쌓고 지붕을 얹는다. 권서경이 팀에서 맡은 역할도 같다. 그들의 마지막 곡 ‘Incanto(신에게 올리는 기도)’에서 권서경이라는 코어가 없었다면 목소리는 제각기 흩어졌을지도 모른다. “성격이 원체 긍정적이라 팀원들과 잘 지낸 거 같아요. 원만한 관계에서 좋은 화음이 나오거든요. 욕심 내지 말고 내 역할을 지키자는 생각을 했어요.” 권서경은 유연하다. 박상돈과 함께 꾸린 듀엣 ‘Quisas Quisas Quisas’에서 선보인 퍼포먼스는 전통 성악가에겐 파격적인 모습이었다. “전 성악을 사랑해요. 그래서 이 장르가 더 많은 대중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팬텀싱어>는 좋은 기회였어요. 프로그램을 통해 성악이나 오페라가 조금 더 친숙해졌으면 해요.” 권서경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고은성과 함께 만든 ‘무지카(Musica)’였다. 그는 어울리는 톤을 찾기 위해 2주 동안 잠을 설쳤다. 이제껏 직선만 그렸다면 곡선을, 점선을 자유자재로 그려 가며 새로운 권서경을 찾은 것이다. “‘무지카’는 저를 다른 세계로 이끌어준 무대였어요. 이전까진 틀에 갇혀 있는 부분이 있었는데 자유로워졌어요. 자신감도 많이 붙었고.” 물론 이 모든 과정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에서 정통 성악을 전공한 그가 단숨에 대중과 접점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았다. 권서경은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음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추가 합격으로 본선에 합류한 그는 계속 성장해나갔다. “결선 2차전 무대에서 온몸에 전율이 일었어요. 3500명의 관중과 투표에 참여해준 시청자를 생각하니 불에 휩싸이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제껏 느끼지 못한 감동이었다고 할까요.”

셔츠와 벨티드 슈트 Brioni, 네이비 윙팁 슈즈 Punkt

아름다운 궤도로 비행하는 목소리
백형훈
백형훈의 목소리는 맑고 예쁘다. 중저음에서 가볍게 떠다니다 고음으로 부드럽게 비행한다. 청아한 소리 뒤엔 슬쩍 떨리며 사라지는 여운이 남는다. “사중창이다 보니 각각의 역할이 있어요. 제 역할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하이 테너’가 좋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백형훈은 4명 중 감정선이 가장 길게 뻗어나갔다. 박요셉과 듀엣으로 꾸린 ‘이제 그만’에서 그는 연기한다. 애절하고 간절한 마음이 호흡과 손끝, 눈빛에 가득 묻어난다. “아쉬운 건 오페라나 뮤지컬 넘버를 많이 못해본 부분이에요. 대중에게 쉽게 접근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가요를 많이 했어요. 좋은 부분도 있었지만 제 강점을 전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요.” 사실 그 무대에선 뮤지컬 <피맛골 연가>의 듀엣 넘버 ‘아침은 오지 않으리’를 부르려 했다. 백형훈은 여자 파트를 맡아 색다른 크로스오버를 선보이려 했다. 그 아쉬움이 오래 남았다. 백형훈은 <팬텀싱어> 출연으로 과거로 회귀했다. 묘한 경험이었다. “저는 솔리스트에 가까워요. 그런데 듀엣, 트리오, 사중창 이렇게 맞춰나가는 것이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마치고 나니 좋았어요. ‘내가 왜 노래를 시작했지?’라는 질문을 하고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복기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이제 뮤지컬 배우 8년 차, 백형훈에게 이번 기회는 한 번 더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자신감도 붙었다. “오디션 참가는 잊고 있던 제 모습을 다시 생각하게 해줬어요. 아직 뮤지컬이 낯선 분들에게 더 좋은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고,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백형훈이 생각나는 그런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셔츠와 니트 Brioni, 팬츠 Corneliani, 브라운 가죽 시계 Frederique Constant, 스카프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영웅의 서사를 기록하는 테너
이동신
이동신은 저돌적이다. 첫 무대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넘버 ‘Nessun Dorma(아무도 잠들지 마라)’를 불렀을 때, 심사평을 빌리면 ‘돌진하는 커다란 흑소’같이 내달렸다. 그의 발성은 드라마틱하다. 영웅의 서사를 노래하거나 비극에 항변할 때 이동신의 목소리는 폭발한다. 팀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서사의 굵은 선을 긋는 것이다. 가장 명징한 주제를 던지고 개성을 얹는다. 테너의 홍수 속에서 이동신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 이유다. 그건 예선에서부터 시작됐다. 그가 본선 진출 무대에서 ‘Nessun Dorma’를 선택한 이유는 각별하다. “처음엔 바리톤을 전공했어요. 고음을 내지 못했죠. 그러다 ‘Nessun Dorma’를 들었어요. ‘아, 성악이 이렇게 멋진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인생에 목표가 생겼어요. 테너로 전환해 곡을 완성하는 것. 잘해냈다고 생각해요. 기뻐요.” 그는 <팬텀싱어> 출연으로 어깨의 힘을 뺐다. 성악이라는 본질은 유지하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 모든 것은 그가 진실로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음악은 제게 시가 같아요. 물론 담배를 피우지는 않지만(웃음) 속이 타면 찾게 되고 결핍되거나 어떤 갈증이 생겼을 때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것.” 그는 <팬텀싱어> 출연으로 상당한 팬을 갖게 됐다. 현재 600명을 넘어섰다. 팬클럽에서 미팅 제의가 꾸준히 들어오고 있지만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게 그의 답이다. “어색하기도 하고(웃음) 먼저 공연으로 만나고 싶어요. 단독 콘서트를 계획 중이거든요. 만족할 만한 무대를 꾸리고 만나면 조금 편할 것 같아요.”

스트라이프 셔츠 Brioni, 팬츠 Arco Baleno, 서스펜더와 시계, 슈즈 모두 본인 소장품

빛나는 재능의 솔리스트
고은성

고은성은 빛난다. ‘대성당들의 시대’를 부른 1회부터 그는 예정된 스타였다. “마이클 리 앞에서 ‘대성당들의 시대’를 부르는 건 부담이 됐죠. 그래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뮤지컬 무대를 꿈꾸게 한 게 그 노래였거든요. 검정고시를 준비할 때 우연히 들었어요. 그때 두려움, 권태 같은 감정이 걷히는 느낌이었어요. 10년이 흘렀네요. 이젠 뮤지컬 배우가 됐어요.” 고은성은 ‘대성당들의 시대’를 원어로 수천, 수만 번 들었다. 프랑스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도 그 곡이다. 단 한 차례 무대로 주목받은 건 요행이 아니었다. 고은성의 외모는 기억에 각인된다. 오뚝한 콧날과 긴 눈매, 다부진 어깨에서 마이클 리와 조승우, 홍광호가 스친다. 아니, 몇 년 뒤 그들보다 선연히 기억될까? 외모 덕에 주목받았다 생각하기 쉽지만 고은성은 바닥부터 돌을 차근차근 쌓았다. 이제 겨우 한 발 올랐을 뿐이다. 촬영 당일 그는 서점에 들러 ‘성악 기초 발성’에 관한 책을 샀다. 스튜디오 한편에서 계속 발성 연습을 했다. 성악을 전공한 권서경과 이동신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무대에서 당당함은 시간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고민하고 연습한 시간…. 전 제가 부족하단 걸 알아요. 그래서 끊임없이 묻고 읽어요. 동영상도 많이 보고. 좋은 텍스트가 주위에 많아요. 그래서 게을러질 수 없어요.” 고은성은 벌써 바쁜 2017년을 시작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3월 초까지 로미오를 연기한다. 이미 TV와 영화 쪽에서 콜이 이어지고 있지만 가장 맡고 싶은 역은 무대에 있다. “언젠가 <노트르담 드 파리>의 그랭구아르를 연기하고 싶어요. 나를 무대로 이끈 노래인데, 그 노래를 무대에서 부르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요. 제가 무대에서 부른 노래로 누군가 꿈을 키울 수 있다면 멋지지 않을까요?”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사진 박정민  헤어 & 메이크업 노은영  스타일링 이경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