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의 일, 소설의 일
소설가 천운영이 돌연 스페인 식당의 오너 셰프로 나타났다. ‘요리하는 소설가’ 혹은 ‘소설 쓰는 요리사’ 사이에서 그녀가 현재 고민하는 몇 가지에 대하여.

2013년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스페인 말라가에 반년간 머무른 천운영이 지난해 말 서울 연남동에 스페인 식당 ‘라 메사 델 키호테(이하 돈키호테의 식탁)’를 열었다. 처음엔 말라가의 여유로운 풍경과 사람들에게, 이후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빠져 수년간 스페인 전역에서 소설 속 돈키호테와 산초가 먹은 음식을 죄다 섭렵한 그녀가 최종적으로 낸 결과물이다. 한 식당의 얼굴마담이 아닌, 진짜 요리사 혹은 소설가로서 그녀를 만났다.
인터뷰를 수락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어요. 왜 그리 망설이셨나요? 소설가가 식당을 연게 재미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했는지 여기저기서 인터뷰 의뢰가 많이 들어왔어요. 몇몇 일간지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요. 식당엔 도움이 되겠지만, 소설가가 소설은 안 쓰고 식당 기사만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조금 망설였죠.
식당 이름이 ‘천운영 식당’은 아니지만, 어쨌든 천운영 소설의 팬도 찾을 만한 곳이기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무리는 아닐 것 같아요. 사실 이곳의 문제는 밥이 ‘맛있다’, ‘맛없다’가 아닌 것 같아요. 이 집의 분위기와 맛, 서비스 등 모든 것에 ‘천운영’이란 이름이 붙는 게 문제죠. 요리가 맛없어도 천운영이 맛없는 게 되고, 서비스가 불친절해도 천운영이 불친절한 게 되어버리니까요.(웃음)
사실 이곳을 열기 전까지 ‘식당’이라고 할 만한 곳에서 일해본 적이 없으세요. 그 점이 식당 운영에 문제가 되진 않나요? 당연히 되죠. 요리하는 것, 요리해서 파는 것, 그리고 그것들로 식당을 운영하는 게 실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걸 식당을 시작한 뒤에야 깨달았으니까요. 게다가 이곳에선 오픈 첫날에야 비로소 오븐을 돌려봤어요. 공사는 자꾸 늘어지는데, 오픈일은 진작에 정해버렸거든요.
가게 문을 연 지 이제 3개월 됐죠? 네, 지난 12월 15일에 열었어요. 예정대로라면 내부 공사가 11월 1일에 끝나야 했는데, 계속 지연되더니 개점 당일에야 가게 문을 다는 상황이 되어버렸죠. 그래서 개점 첫날 지인들을 불러 음식을 대접하기로 한 약속이 엉망이 되었어요. 한쪽에선 문을 달고 있는데 한쪽에선 감자가 들어오고, 주방 공사가 끝난 지 얼마 안 돼 오븐 팬은 없지, 한쪽에선 요리한다고 칼질하고, 홀에선 누군가 춥다고 난리…. 그래서 부랴부랴 라디에이터와 오븐 팬을 주문했고, 요리하랴, 서빙하랴 난리였죠. 다행히 ‘몽로’의 박찬일 셰프가 이것저것 도움을 줘서 겨우 버틴 것 같아요. 아마, 일일 주점도 그렇겐 안 할 거예요.
그쯤 들으니, 이곳에서 애초에 계획한 메뉴 또한 주방의 ‘현실’을 고려한 메뉴는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물론이죠.(웃음) 제가 처음 메뉴에 넣은 요리 중 상당수는 약 일주일이 지나 정리됐어요. 나중에 따져보니, 몇몇 메뉴는 대략 2~3일은 시간을 들여 준비해야 온전한 맛이 나는 것이었거든요.
손님들과 이따금 내밀한 교감도 하고 훈훈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게 작은 식당의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해왔는데, 그 또한 쉽진 않을 듯해요. 처음엔 저도 제 가게가 드라마나 영화 속 ‘심야식당’처럼 될 줄 알았어요. 일일이 손님들 사연 들어주고, 손님 가까이에서 요리를 만들고. 한데 지금은 그냥 식당 아줌마예요. 실제로 저녁 8시부터 9시까진 팬 돌리느라 바쁘고, 홀은 살필 틈도 없죠. 그래서 아는 사람들은 좀 느지막이 와서 수다를 떨어요. 그래도 이런 재미는 있어요. 이따금 제가 모르는, 이전까지 만나보지 못한 세계의 사람들이 찾아와 잠깐 몇 마디 나누고 돌아가는 것. 지금은 그런 게 흥미로워요.
최근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이런 얘길 하셨어요. “나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간 소설가의 권위를 등에 업고 살았다. 그래서 그걸 떨치려고 이 길(식당 운영)로 들어섰다. 하지만 결국 그걸(권위를) 다시 가지고 가고 있다”라고요. 여기서 소설가의 권위란 대체 뭘 말하는 건가요? 쉽게 말해 이런 거죠. 여길 찾아오는 이들을 보세요. 제가 소설가가 아니라면, 누가 이렇게 서울 구석에 문을 연 식당에 찾아 오겠느냐는 말이죠. 많은 예술가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음에도 ‘예술’을 한다는 일념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특별한 ‘시각’으로 봐주기도 하고요. 소설가를 예로 들면, 그간 많은 작가가 책을 팔아봐야 얼마나 팔고, 돈을 벌어야 얼마나 벌겠냐고 한탄하면서도, 결국 출판사엔 “내 문장 고치지 마세요”라면서 떵떵거리며 버텨왔다는 말이죠. 한데 저는 그 자체가 ‘예술가의 권위’라고 봐요. 그게 권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권위에 빠져 있다는 얘기죠. 많은 예술가가 자기가 누리고 있는 건 모른 채, 누리지 못하는 것만 가지고 얘길해요. 그런데 제가 식당을 열면서 또 그걸 누리고 있다는 얘기를 한 거죠.
그게 그렇게 큰 문제가 되나요? 다시 소설가를 예로 들면,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 ‘자기 복제’를 하게 돼요. ‘나랑 똑같은 소설’, ‘독자가 좋아할 만한 소설’, 아니면 ‘그냥 써야 하니까, 마감이 닥쳐서 쓰는 소설’을 쓰는 거죠. 그런데 전 그게 싫더라고요. 안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변신을 하겠다고 발버둥친 셈이죠. 이렇게 식당을 여는 것으로요. 몸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요. 내가 안온하게 있던 곳에서, 궤도를 이탈한 별처럼 떨어지지 않으면 그 안온한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볼 수 없는 것처럼요.
그래서 더더욱 식당의 홀이 아닌 주방에만 있겠다는 얘길 하는 거군요? 그렇죠. 제가 가게의 ‘마담’이 될 수 없는 이유죠. 사실 쉽게 가려면 ‘소설가’ 간판 달고, 주방에 사람 쓰고, 그냥 방글방글 웃으며 가게를 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정작 식당을 열었는데, 권위는 이전 그대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잖아요. 몸은 더 힘들고요. 여러 요소가 아이러니하게 굴러가는 거요. 식당을 연 걸 후회하진 않으세요? 실은 후회도 돼요. 제일 후회하는 건, 식당에서 매일 주방 보조를 해주시는 저희 엄마가 힘들기 때문이죠. 요즘처럼 가게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면, 정말 이러다 엄마 잡겠다 싶어 그만두고 싶기도 해요. 하지만 엄마는 제가 사람 구하는 게 싫대요. 힘에 부치지만 엄마와 함께 일할 수 있어서 좋기도 하고요. 늘 엄마와 수다 떨면서 뭔가를 만들고, 어쨌든 제 카드로 엄마가 장을 볼 수 있는 게 아직은 즐거워요.
‘돈키호테의 식탁’을 처음 방문하는 이에게 단 하나의 메뉴를 추천한다면 뭘 골라주실 거예요? ‘세피아 아 라 플란차(Sepia a la Plancha)’요. 우리말로 ‘갑오징어 철판구이’쯤 돼요. 현재 제일 잘나가는 요리죠. 사실 제가 이걸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 셰프들이 모두 말렸어요. 원가가 비싸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요. 그런데 정말 남는 게 별로 없어요. 메뉴판 가격이 1만7500원인데, 엄마가 가게 열기 전 매일 시장에서 전화로 “오늘은 더 크고 좋아”라면서 늘 크고 좋은 걸 사오시거든요.(웃음) 저는 늘 “엄마, 그 (가격) 이상은 안 돼”라고 딱 잘라 말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진 않더라고요. 이 요리는 사실 손질하는 게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웬만한 셰프들은 못할 요리죠. 그런데 우리 가게엔 엄마가 있으니 가능해요. 그게 사실 비장의 무기죠.
이전에 떠난 ‘스페인 음식 기행’은 본업인 글쓰기를 위해서였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식당 일이 본업인 글쓰기를 멀찌감치 밀어낸 상태죠. 언젠가 식당일이 소설 쓰기를 완전히 밀어내는 날도 올까요? 식당을 연 건 사실 소설을 쓰는 제 인생의 작은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말해, 소설가로 걷는 길을 벗어난 게 아니라, 계속 가는 중에 잠깐 터널도 지나고 산도 타는 개념이죠.
나중엔 장사가 잘되지 않아 식당을 그만두는 게 아니라,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충만해 가게를 그만두는 일도 생길 수 있다는 얘기인가요? 정말로 글을 쓰고 싶어 미치겠다 하는 순간이 오면 그만둘 것 같기도 해요. 소설 쓰기의 욕구를 더는 참을 수 없을 때요. 하지만 이건 ‘소설가로서 내가 잊히나?’ 하는 감정과는 조금 다른 거예요. 정말 글을 쓰고 싶을 때를 말하는 거죠. 사실 전 어떤 기간을 설정하는 걸 좋아해요. 그동안에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죠. 그래서 앞으로 2년 동안은, 이게 내게 무슨 의미인지 끝까지 가보자 하며 버틸 생각이에요. 어쨌든 최소 2년 동안은 버티겠다고요. 돈을 벌건 못 벌건, 몸이 망가지건 이것의 결과물이 무엇인지는 끝까지 가보면 안다고요. 이렇게 하면 사실 무서울 것도 없어요.
에디터 이영균(youngykoon@noblesse.com)
사진 박용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