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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동물의 왕국

FASHION

지금 반클리프 아펠이 아시아 소사이어티 홍콩 센터에 ‘라크 드 노아’라는 이름으로 산과 바다, 하늘, 심지어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 40종을 풀어놨다. 바로 현대 공연 예술계의 대가로 알려진 로버트 윌슨을 통해서다. 반클리프 아펠과 로버트 윌슨이 만든 그 신비한 예술 세계 속으로.

로버트 윌슨이 연출한 빛과 소리의 시노그래피 ‘라크 드 노아’

지난 3월 9일, 프랑스 하이 주얼리 & 워치 메종 반클리프 아펠(Van Cleef & Arpels)이 아시아 소사이어티 홍콩 센터(Asia Society Hong Kong Center)에서 ‘라크 드 노아(L’Arche de Noe, 노아의 방주)’ 컬렉션을 선보였다. 우거진 숲과 너른 들판, 남극대륙부터 하늘에 이르기까지 지구촌의 다양한 지역과 환경에 살고 있는 각종 동물 40종이 반클리프 아펠의 독창적이고 우아한 해석을 통해 재탄생한 것이다.
사실 ‘동물’은 반클리프 아펠이 설립 초기부터 꾸준히 선보여 온 주제기도 하다. 이들은 1910년 다이아몬드로 만든 깃털 모양 클립을 시작으로 원앙과 극락조 등 날개 달린 동물을 컬렉션으로 발표했고, 1954년엔 ‘라 부티크(La Boutique)’ 컬렉션을 통해 고양이와 사자, 다람쥐를 선보였으며 1970년엔 말과 코끼리를, 2000년 이후 호랑이와 원숭이, 플라밍고 등을 컬렉션에 포함시켜 동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데 이번엔 그 규모가 다르다. 아예 ‘노아의 방주’라는 이야기를 끌어와 기존에 소개한 친근한 동물은 물론 유니콘이나 페가수스 같은 상상의 동물까지 모두 컬렉션에 포함시킨 것. 쉽게 말해 반클리프 아펠의 예술혼이 깃든 ‘동물의 왕국’이 시작된 것이다.

1 가지에 앉은 한 쌍의 무당벌레를 표현한 코치넬 클립   2 열대조의 아름다움을 그려낸 투캉 클립   3 뒷다리로 앉은 토끼를 구현한 라팽 클립   4 서로 대화하는 얼룩말을 그린 지브라 클립

한편 이번 전시는 지난 9월 파리 라크 드 노아 컬렉션 런칭 행사와 마찬가지로 공연 예술계의 대가로 알려진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이 참여해 다시 한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로버트 윌슨이 누구인가. 그는 당대 최고의 시노그래퍼이자 연극 연출가이며 비디오아트와 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통달한 예술가다. 이런 경력을 고스란히 컬렉션 무대에 재현하기 위해 반클리프 아펠은 이번 홍콩 컬렉션 또한 지난 파리 컬렉션과 마찬가지로 그를 연출가로 선정했고, 로버트 윌슨은 반클리프 아펠의 명성에 걸맞은 작품으로 보답했다.
실제로 이번 홍콩 라크 드 노아 컬렉션에서 경험한 로버트 윌슨의 시노그래피 전시는 입이 딱 벌어지는 어떤 것이었다. 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하나의 단단한 인터랙션 작품으로 연출했다. 작은 방 하나를 시커먼 어둠으로 감싼 후, 빛을 이용한 영상과 음악을 흘려보내 관람객으로 하여금 공감각적 예술을 느끼게 했다. 반복 재생 비디오가 바다를 암시하고, 부드럽게 감싸 안은 음향은 신비로움을 선사한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번개가 치며 방주의 험난한 여정이 시작되는 연출 또한 이어지는데, 그 바로 옆에선 반클리프 아펠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동물 친구들이 이를 단순한 전시 경험 이상의 것으로 전해지게 했다.
사실 로버트 윌슨은 반클리프 아펠과의 협업 이전부터 이미 세계 비평가들에게 찬사를 받아온 인물이다. 빛의 사용과 무대 위 단순한 움직임에 대한 연구 그리고 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빛을 이용한 특유의 무대장치는 ‘고전적 엄격함’이 돋보이는 것으로 현재 공연 예술의 교과서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가 111년 역사의 하이 주얼리 브랜드 반클리프 아펠과 만났다고 하니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을까. 까불이 원숭이부터 껑충껑충 뛰는 캥거루, 전력으로 달리는 말, 금방이라도 비상할 준비를 마친 이국적인 새까지, 반클리프 아펠의 고귀한 동물 컬렉션을 로버트 윌슨의 예술 세계 속에서 만나보자. 반클리프 아펠과 로버트 윌슨이 아시아 소사이어티 홍콩 센터에서 선보이는 컬렉션 전시는 3월 26일까지 이어진다.

현대 공연예술의 대가 로버트 윌슨

로버트 윌슨이 말하는 ‘라크 드 노아’ 전시
1960년대 초부터 음악과 춤을 결합한 퍼포먼스와 오페라, 연극 연출, 현대미술 전시 등 다양한 예술 세계를 펼쳐왔습니다. 최근엔 시노그래피에 좀 더 매진한 듯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작업에 참여하고 있고요. 어떻게 이렇듯 다양한 장르를 끌어안는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저는 모든 작업을 추상적 개념으로 접근합니다. 시노그래피부터 오페라, 춤, 연극 연출 등 모든 작품에서요. 그렇게 하는 게 가상이든 심리적으로든 더 많은 ‘생각’과 ‘공간’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사실 이 말은 현대 예술의 확장성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간 단 한 번도 스스로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하고 있다고 여긴 적이 없습니다. 창작자 스스로 ‘장르’에 갇혀 있다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반클리프 아펠과의 협업 전시 ‘라크 드 노아(노아의 방주)’는 니콜라 보스 회장이 J. 폴 게티 미술관(J. Paul Getty Museum)에서 본얀 브뤼헐(Jan Brueghel)의 ‘노아의 방주로 들어가는 동물들(The Entry of the Animals into Noah’s Ark)’을 보고 감명을 받은 것이 그 발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반클리프 아펠 측에서 작업 의뢰를 받고 처음 든 생각은 무엇인가요? ‘노아의 방주’는 성경에도 나오는 신성하고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반클리프 아펠과 협업을 시작한 후 그들과 처음 공유한 아이디어는 ‘짝(pair)’으로 존재하는 무엇이었죠. 몸은 하나지만 두 손을 갖고 있거나, 좌뇌와 우뇌가 존재하는 것처럼 짝을 이루는 거요. 짝은 늘 흥미롭죠. 이번 전시에서도 동물들이 각자 작은 배에 올라 짝을 이룬 채 항해합니다.

이번 전시도 당신의 기존 작품에 상징적으로 등장한 빛을 전면에 부각시켰습니다. 그간 여러 인터뷰에서 ‘빛이 모든 것의 근원’이란 말씀을 하셨는데, 이번 전시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는지요? 제 작품에서 ‘빛’은 늘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빛은 가시적이거나 청각적인 부분을 더 부각시킬 수 있죠. 이번 전시도 그렇고요. 제 기존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전시에서도 빛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노아의 방주’의 거친 파도를 연출하고, 배에 탄 동물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천둥신 아다드의 천둥 또한 빛으로 표현했죠. 빛은 이외에 관람객이 더 잘 듣고, 더 잘 보게 하는 역할도 합니다. 넓게 보면 ‘공간’을 창조하는 거죠.

5 ‘라크 드 노아’를 위한 로버트 윌슨의 시노그래피 스케치   6 공중에서 급강하하는 앵무새를 표현한 페로케 클립

실제 전시장엔 벽면마다 작은 박스를 만들어두었습니다. 그걸 보고 단번에 ‘노아의 방주’에서 동물들이 탔을 공간이 떠올랐죠. 빛으로 연출한 공간이 아니라 전시장 내 물리적 공간에서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말씀하신 것처럼 반클리프 아펠의 하이 주얼리가 담긴 수십 개의 작은 박스는 ‘노아의 방주’에서 수많은 동물이 탄 공간처럼 보이게 연출했습니다. 그 작은 공간에서 동물(하이 주얼리)을 보여주면 그들이 더 강조되고 훨씬 강렬하게 다가갈 거라고 생각했죠. 더불어 전시장 한쪽 천장엔 당시 동물들이 탔을 법한 커다란 나무배를 축소해 설치해뒀고요. 그렇게 하고 보니, 전시장 내의 빛과 음악이 그들을 다른 세계로 더 잘 이끄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맞아요. 전시에서 빛만큼 인상적인 게 음악이었습니다. 종교 합창곡으로 유명한 아르보 패르트(Arvo Part)의 곡을 작품 전면에 내세우셨어요. 음악은 어떻게 고르신 건가요? 가장 먼저 어떻게 하면 반클리프 아펠의 아름다운 하이 주얼리가 관람객에게 잘 보일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가사가 있거나 다소 격양된 곡은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밀쳐뒀고, 하이 주얼리가 보여 주고자 하는 장인정신이나 스톤의 퀄리티 그리고 예술적인 면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곡을 찾았죠. 그 결과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Spiegel im Spiegel)’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거울 속의 거울’은 아르보 패르트 특유의 신중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곡입니다. 또 ‘라크 드 노아’ 컬렉션에 담긴 신성한 정신과도 잘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고요.

7 그리스 신화 속 페가수스를 구현한 페가수스 클립   8 한 쌍의 사이좋은 너구리를 그린 너구리 클립

이번 작업도 마찬가지지만, 당신의 작품에선 빛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인위적인 빛이죠. 공연장 안의 조명이 만드는 빛. 앞으로 혹시 자연광을 재료로 작업을 해볼 생각은 없는지요?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리가 현재 앉아 있는 인터뷰 장소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봅시다. 이 공간은 참 인상적이죠. 창밖으로 나무도 자연스레 우거져 있고요. 자연을 인위적으로 연출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우리가 있는 이 빌딩을 본다면 얘기가 달라질 겁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빌딩은 주변의 다른 빌딩에 둘러싸여 있어 꽤 ‘인위적’이라고도 얘기할 수 있겠죠. 자연(나무들)과는 이렇게 놀라운 조화를 이루고 있지만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긴 이런 겁니다. 우리가 있는 이 공간에선 크게 2개의 ‘라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직선과 곡선이죠. 나무는 빌딩을 잘 보여주고, 빌딩은 나무를 더 돋보이게 합니다. 왜냐하면 둘의 형태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죠. 제가 그간 선보인 전시는 인위적인 빛과 음악으로 통제해왔지만, 그 주변은 늘 멋스러운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빛도 그 일부고요. 아주 흥미롭죠. 따라서 제 전시는 늘 자연적 빛과 인위적 빛이 조화롭게 공존해왔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게 바로 제가 ‘자연광’이란 말을 잘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죠.

말씀하신 게 이미지로는 그려지지만, 다소 어렵기도 합니다. 좀 더 쉽게 말씀해주시겠어요?많은 이들이 추상적인 예술 작품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평소엔 다들 추상적인 방식으로 사고하죠. 이를테면 우리는 해 질 녘 노을을 볼 때, 따로 스토리가 없어도 공간이나 변화하는 색 등을 통해 그걸 느끼죠. 다채로운 조명에 따라 변화하는 무대, 의미 없는 대사와 움직임의 반복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 저는 그게 관람객의 몫이라고 봅니다.

예술가란 대체 어떤 존재인가요? 예술가는 늘 ‘이것은 무엇인가?’ 질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는 이라면 예술을 할 필요가 없죠. 그냥 고민 없이 편히 살면 되니까요. 하지만 예술가는 대세에 편승하지 말고 자신이 궁금한 것을 끈질기게 파고들어야 합니다.

끝으로 이번 반클리프 아펠과의 작업을 처음 보는 관람객을 위해 한마디 해주세요. 유년기의 추억과 동물은 제 작품 연출에 그간 꾸준히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해왔지만, 이번 반클리프 아펠의 전시 시노그래피는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추상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을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초점을 둔 부분은 ‘노아의 방주’가 전하는 종교적 이미지보다는 꿈과 환상으로 가득한 동심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었죠. 말하자면 간결하고 구상적인 컨셉에 유머를 더한 것이 연출의 포인트입니다. 많은 이가 저와 반클리프 아펠이 펼치는 특별한 여정에 동참하길 바랍니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제공 반클리프 아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