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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lesse.com Weekly Briefing

FASHION

‘노블레스닷컴 위클리 브리핑’은 지난 한 주간 벌어진 국내외 패션·문화·라이프스타일 소식 중 <노블레스>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를 골라 매주 월요일에 소개합니다.

2017년 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 컬렉션 리뷰 (1)

지난 3월 27일부터 4월 1일까지 서울패션위크(Seoul Fashion Week)가 막을 올렸습니다. 이제 막 봄이 시작된 계절이지만, 패션의 시간은 이미 가을과 겨울을 다룹니다. 이미 대가 반열에 오른 패션 디자이너부터 동시대 서울 패션을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까지, 다양한 패션 브랜드가 각기 다른 룩과 취향을 선보였습니다. 3월 마지막 노블레스닷컴 ‘위클리 브리핑’에서는 서울패션위크의 중간 지점을 도는 지금, 2명의 여성복 디자이너와 2명의 남성복 디자이너 컬렉션 리뷰를 전합니다.

푸시버튼의 컬렉션을 실시간으로 감상한 후, 컬렉션을 보고 글을 쓸 때 으레 따르게 되는 사적인 관습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주제와 컨셉, 디자이너의 생각과 의도, 섬세하게 묘사한 디테일 같은 것을 말이죠.

비평가로서 지양해야 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2017년 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의 출발을 알린 푸시버튼과 라인 프렌즈(Line Friends)의 ‘PLF’ 협업 컬렉션을 본 이래, 디자이너 박승건(Park Seunggun)이 오롯이 자신의 이름을 건 컬렉션에선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패션의 순수함과 즐거움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떻게 옷을 입을까 고민하고, 어떤 실루엣과 색상에 새롭게 도전할까 생각하는, 정말로 ‘옷’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컬렉션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는 남자 디자이너지만 여성들이 열광하는 낭만주의(romanticism)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푸시버튼 하면 떠오르는 반복적이고 장식적인 패턴의 베이지색 코트에 노란 형광 벨벳 원피스와 심드렁한 펠트 모자를 결합할 수 있다는 게 그 증거죠. 허리선이 쏙 들어간 소매가 둥근 녹색 울 재킷이나, 반세기 전 이미 전설이 된 패션 디자이너들에 대한 헌사로 느껴지는 분홍빛 치마 슈트는 따분한 일상과 분리된 하루를 보내고 싶을 때 제격으로 보여요. 이는 곧 고전적(classic) 패션과 소위 ‘도시 스트리트웨어(urban streetwear)’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는 얘기도 됩니다.

푸시버튼의 중요한 축을 차지하는 남성복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빈티지 가공한 청바지를 툭 잘라내고, 그 위에 작업복(workwear)를 떠올리게 하는 반바지를 모양에 맞춰 덧댄 후, 헨리넥(henry neck) 상의에 소매만큼은 치렁치렁한 플란넬 체크무늬로 완성입니다. 다소 심심한가요? 그 위에 걸친 은색 패딩 베스트를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거예요. 우아함과 거친 느낌이 공존하는 긴소매 흰 셔츠 위에 불투명한 푸른색 체크무늬 반소매 셔츠를 겹치고, 울 양말과 가공하지 않은 청바지를 한 단 접어 입는 것 또한 조금 더 날이 풀리면 그대로 입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정리하면, 푸시버튼의 컬렉션에는 지금 시대를 휩쓰는 모든 유행이 들어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흡수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것이 없는 시대의 거리와 일상에서 만난 다른 취향을 스포이트의 물방울처럼 조금씩 담아냅니다. 이를 푸시버튼의 우산 아래 새로이 펼쳐내면, 비로소 서울 패션의 새로운 룩이 하나 더 탄생하는 거죠.

디자이너 홍혜진(Hong Hyejin)의 더 스튜디오 케이는 언제나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하지만 감성적 측면과 즉흥성에 기대는 여느 디자이너와 달리 이성적 측면과 과학적 사실 등을 반영하며 만들어간다는 점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죠. 영원을 뜻하는 ‘Forever’와 어느 정도 그 이상을 뜻하는 ‘Over’를 합치고, 무한대의 부호를 그 뒤에 단 ‘fOreVER(∞)’가 이번 컬렉션의 주제였거든요.

개인적으로 컬렉션을 볼 때, 중요한 몇 가지 요소가 조금씩 다듬어지고 그 몇 가지 요소가 전반에 드러나며, 웬만큼 익숙해졌다 싶을 때 튀어나오는 작은 반전이 있는 쇼를 좋아합니다. 런웨이 무대 앞을 장식한 더 스튜디오 케이 그래픽 로고는 2개의 기다란 끈(strap) 장식이 바닥까지 내려왔습니다. 디자이너 홍혜진은 자신이 잘할 수 있는 탁월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가을·겨울 옷장을 채워 넣겠다고 말하는 듯 보였어요.

옷깃을 꼭 여밀 정도로 찬 바람이 물러간 계절 감각을 반영한 홑겹 울 트렌치코트는 컬렉션의 중심이자 다가올 시즌의 키 아이템이 될까요? 어깨와 소매를 타고 흘러내리는 끈 장식은 움직이는 모델들의 동작에 맞춰 경쾌하게 찰랑거립니다. 남색 점선 무늬(pinstripes) 코트의 연분홍색 끈 장식처럼, 서로 대비되며 어울리는 조화는 남자인 제가 봐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죠. 회색 타탄체크 무늬 소재로 어깨선을 둥글게 감싼 남성용 코트의 여밈 끈은 겉감과 다른 올리브색 안감이 슬며시 비쳤고요. 촘촘하게 짠 니트 원피스부터 통통 튀는 꼬인 주름 장식을 단 녹색 실크 드레스는 ‘셔츠’에 뿌리를 두어 스타일링하고, 또 만들었습니다. 첫인상은 한없이 여성적으로 보여도, 실은 남성복에 뿌리를 둔 옷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맛을 참으로 오랜만에 보았습니다.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바로 ‘실루엣’입니다. 애초에 큰 치수(oversized)의 옷을 좋아하고 즐겨 입는 편이지만, 광장에 모인 많은 이가 엇비슷한 그래픽과 실루엣으로 무장한 모습에 피로감을 느끼곤 하거든요. 솔직히 이 거대한 유행은 컬렉션 쇼장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가시진 않아요. 더 스튜디오 케이의 컬렉션이 좋았던 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가느다란 실루엣의 샛노란 셔츠 소매 끄트머리가 살짝 손등을 덮고, 독한 술보다는 조금 쓴 에스프레소가 어울릴 법한 단정한 코트는 고루한 유행의 대척점에 있으면서 동시대적이죠. 날렵하고 간결한 디자인, 감촉을 느끼고 싶은 소재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훌륭한 컬렉션이었습니다.

30년 동안 남성복을 만든 패션 디자이너. 고급 기성복(high fashion) 역사가 여느 패션 도시보다 비교적 짧은 대한민국에도 시간이 쌓은 세월의 가치는 고고하게 살아 있습니다. 많은 패션 브랜드(비단 패션 분야뿐이겠느냐마는)가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현혹되어 기록을 저장하는 역사, 즉 ‘아카이브(archive)’를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하죠. 하지만 디자이너 장광효는 30년의 세월 동안 꾸준히 ‘컬렉션(collection)’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해왔습니다. 매해 두 번씩 치르는 컬렉션은 차근차근 쌓여 아카이브가 되었고요. 2017년의 장광효는 대가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나이가 되었지만, 그가 만든 남성복 ‘카루소’는 이제 막 서른 살 청년이 되었습니다.

패션 세계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시간이 빠르게 흐릅니다. 오랜 시간 브랜드를 노출할수록, 더 젊고 더 빨리 유행을 좇는 디자이너들이 나타나요. 패션계의 유행이 세월의 힘을 존경하긴 해도, 그 둘이 적확한 톱니바퀴처럼 맞아 돌아가는 경우는 아쉽게도 드물죠. 그래서 대가라 불리는 디자이너들은 금세 지나갈 유행을 좇기보단 지금껏 해온 가장 자신 있는 결과물을 중심에 둡니다. 역설적으로 패션 브랜드의 고민은 그 안에서 시작됩니다.

한국 디자이너로서 시대의 남성상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장광효는 섬세하게 재단한 대표적 슈트에 ‘밀리터리(military)’ 디테일을 녹여냈습니다. 과시하지 않으면서, 그저 곱게 옷소매나 등판 어딘가에 수를 놓는 식으로요. 둥근 곡선 실루엣이 매력적인 큰 치수의 코트는 날렵하게 떨어지는 바지와 만나 스타일에 섬세하게 신경 쓴 인상을 줍니다.

장광효의 남성복은 남성우월주의적(machoism)이거나 으스대기보단, 항상 여성성과 남성성의 중간 어디쯤에 존재했습니다. 블라우스처럼 보이는 셔츠는 우아하게 겹쳐 입은(layered) 디테일을 리본처럼 아름답게 풀었어요. 카키색 군용 재킷과 회색 망토 사이, 카루소 하면 떠오르는 실험적인 턱시도 슈트도 있죠. 경쾌한 원색과 차분한 단색이 만난 모델들이 하나둘 런웨이를 걷다 보면, 장광효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무대로 갈무리합니다.

이번 컬렉션이 지난 수년간 선보인 카루소 컬렉션과 가장 다른 점은 디자이너가 데뷔 30주년 기념 컬렉션을 소개하는 종이 서신에 쓴 말처럼 ‘청년 문화(youth culture)’를 대폭 받아들였다는 데 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디자이너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 카루소의 무대 위에선 형광색의 찢어진 비니와 어깨선이 제법 내려간 긴소매의 그래픽 상의, 그리고 바짓단 끄트머리를 날카롭게 절개한 꼭 붙는 바지가 카루소식 밀리터리와 만났어요.

“일반적인 남성상의 룩을 해체하는 희열, 구태의연한 사고에 한바탕 골탕을 먹이는 것. 저는 이런 반대성을 즐기고 사랑합니다.” 서신에 쓴 글귀가 다시 떠오를 즈음, 한 템포 쉬었다 시작한 피날레 무대에는 빌리 조엘(Billy Joel)의 명곡 ‘To Make Your Feel My Love’가 울려 퍼졌어요. 디자이너가 남긴 말에 꼭 어울리는 마무리였습니다.

지난 시즌,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우주 공간으로 여행을 떠난 커스텀멜로우는 남성복의 고향 중 한 곳인 영국으로 눈길을 돌렸습니다. 컬렉션 쇼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화면에 단아한 서체(typography)로 쓴 ‘Mmm…’, ‘Modern Masterpieces’, ‘Oh My Godness’라는 단어가 어떤 남자의 독백과 맞물리며 컬렉션에 대한 힌트를 던졌어요.

“2008년 즈음 한 공연을 봤어요. 마이클 클라크(Michael Clark)라는 영국 안무가(ballet dancer)의 프로젝트였는데, 촉망받는 남성 발레 무용수가 ‘춤’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인물이 되었죠. 쇼장에 온 관객에게 영상으로 선보인 작품은 그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작업한 <스트라빈스키 프로젝트(Stravinsky Project)>라고 해요.”

커스텀멜로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손형오(Son Hyoungo)는 마이클 클라크가 던진 메시지를 조사하다 그 안에서 공통된 하나의 접점을 발견합니다. 그건 바로 ‘펑크(punk)’에 관한 이야기였죠. 모든 기성 체제에 관한 전복을 이야기하는 펑크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섹스 피스톨스의 음악만이 아닙니다. 굳건하게 영역을 지키며 변화를 거부하는 모든 세력에 대한 ‘반대(anti)’ 정신이 그 뿌리에 있어요. 컬렉션을 준비하던 시기, 사회적으로 벌어진 여러 사건 또한 이번 시즌 컨셉을 잡는 데 영향을 주었노라고, 그는 백스테이지에서 넌지시 말했습니다.

지금껏 커스텀멜로우가 받아들여 변주한 다양한 발자취 안에 펑크가 들어간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요? 첫 주자로 등장한 모델 박성진이 입은 자유분방한 낙서 프린트와 패치워크 가득한 하얀 테일러드 재킷은 컬렉션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어서 등장한 베이지색 겹여밈(double breasted) 코트와 하운즈투스 체크무늬 슈트는 밖으로 분출하는 분노의 펑크라기보단 더 섬세하게 정제해 재해석한 방식이었죠. 펑크 정신에서 영향을 받은 디테일, 가령 금속 피어싱 링을 박아 넣은 재킷의 주머니나 구속복(bondage) 장식과 지퍼를 단 카고 바지, 그리고 푸른색 니트 조끼의 조화는 정통(original) 펑크보다 좀 더 신사적으로 보였습니다.

“발레와 펑크를 결합하고, 그 안에서 다시 커스텀멜로우가 추구하는 고전적 남성복 소재와 테일러드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펑크의 대표적 테일러드 재킷 중 하나인 검붉은 줄무늬 코트는 소매 부분만 네모나게 절개해 다시 붙이는 방식을 취하고, 복고풍의 말쑥한 줄무늬 셔츠는 허리춤 밑으로 내려온 가죽 벨트가 치렁치렁했습니다.

머리를 삐쭉 세우고 드러난 모든 것에 대한 반항을 이야기하는 펑크는 물론 ‘펑크’ 그 자체일 겁니다. 하지만 어떤 정신을 담아내면서도, 하나의 태도로 마무리한 옷에 마음이 끌릴 때가 있죠. 사회현상에 관한 화두를 던지는 안무가로 출발한 여정의 끝에 지금 우리 사회의 이야기들이 중첩되었습니다.

 

홍석우(서울에 기반을 둔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더 네이비 매거진(The NAVY Magazine)> 편집자. 서울 거리 풍경을 기록하는 블로그 YourBoyhood.com의 사진도 찍고 있다)
에디터 김수진(suze@noblesse.com)
디자인 임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