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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양경수입니다

LIFESTYLE

“참고 견뎌라”라는 조언에 “내가 왜?”라는 물음표를 던지며 정면으로 따귀를 후려치는 만화로 지금 가장 주목받는 양경수를 만났다.

“보고서가 개판이네”라고 타박하는 선배에게 “개처럼 일만 시키니까요”라고 대꾸하는 후배.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고 말하는 직장 상사에게 “못 피했으니 즐기세요”라며 뺨을 날리는 부하 직원. “쉬면서 하게”라고 말하는 상사에게 “쉬고 있는데 오셨잖아요”라고 받아치는 사원. “야근이 로또라면 난 이미 백만장자”, “열정 페이는 너나 하시고, 나는 페이 열정!”, “경영자의 마인드로 열심히 일할 테니, 경영자의 월급을 주세요, 썅!”….
요새 가장 주목받는 만화가 중 한 명인 양경수의 그림이다. 그는 이렇게 젊은 직장인의 애환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꼰대’들의 ‘갑질’에도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담아야 하는 직장인의 답답한 심정을 제대로 포착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의 그림을 보면 반드시 반할 것이다. 한 번 웃다가 두 번 웃고, 결국엔 빵 터질 것이다.
그 역시 제대로 ‘터졌다’. 불과 반년 전만 해도 일러스트 외주 일을 하며 한가롭게 살던 그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만화가보다 바쁘다. 지난해 봄, 일본 작가 히노 에이타로의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에 ‘직장 시리즈’ 만화를 그려 1차로 화제가 됐고, 몇 달 뒤 직장인의 피 말리는 하루를 그린 그의 첫 책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을 출간하며 속된 말로 ‘대박’이 났다. 책의 성공에 힘입어 지난 6개월간 그에게 들어온 광고만 150건. 직접 운영하는 페이스북의 팔로워는 16만 명에 달하며, SNS를 통해 공개하는 그림은 매번 수천 건의 댓글이 달릴 정도다. 지금은 그의 그림이 삽입된 만든 빵도, 소주도, 홍삼도 있으며, 취업 사이트 배너도, 마우스 패드도, 스마트폰 이모티콘도 있다. 또 얼마 전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다 막을 내린 드라마 <김과장>의 오프닝과 엔딩에 나오는 일러스트도 그의 그림.
한데 이렇게 직장인의 마음을 깨알같이 표현해내는 그도 사실 직장에 몸담은 적은 없다. 아이디어 제공의 원천은 바로 친구들. “30대 중반인 제 친구들은 이제 다 회사에서 중간 위치 정도 돼요. 아주 위도, 그렇다고 막내도 아니죠. 샌드위치처럼 낀 위치다 보니 친구들이 정말 불만이 많더라고요. ‘네가 회사 생활을 몰라서 그래’부터 시작해 얘기가 자꾸 길어지죠. 그런데 이런 게 있어요. 굳이 회사 생활을 해보지 않았더라도 어디에나 ‘갑’이 있다는 건 알잖아요.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이 조금만 위라고 여기면 바로 ‘갑질’부터 하는 사람들이 있죠. 제 그림은 그걸 당하는 대다수가 회사원이니 거기서 힌트를 얻은 거예요. 물론 제 경험도 녹였고요.”
그는 이미 뚜렷한 작품 세계를 구축한 미술가이기도 하다. 지금은 한 컷 만화로 더 알려졌지만, 실은 20대 초반부터 불교를 재해석한 그림을 꾸준히 그려왔다. “아버지는 사찰 등의 단청 기술자였고, 어머니는 탱화를 그리셨어요. 집에 널린 게 그림 도구와 물감이니 당연히 저도 글을 깨치면서부터 그림을 그렸죠. 하지만 어릴 적엔 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작업장에 가는 게 그렇게 싫었어요. 방학 때 친구들과 떨어져 산속 깊은 사찰에서 힘든 작업에 동원되는 게 너무 싫었죠. 아버지의 뜻대로 인생이 결정지어지는 것도요.”

1, 2 양경수 작가의 직장 시리즈 중 ‘경영자’와 ‘난 달라’
3 불교미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녹원전법상’

2002년, 그는 서울 한 대학의 서양화과에 진학했다. 가업을 이으라는 아버지의 반대에 맞선 ‘결정’이었다. 그래서 그의 대학 입학은 가출 아닌 가출의 계기가 됐다.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스스로 벌어야 했지만 마음만은 자유로웠다. ‘부모님과 다른 방식으로 그려보자’는 생각으로 집을 나온 한참 뒤 자신의 정체성이 불교미술이란 걸 깨달았지만, 당시엔 그걸 살필 겨를이 없었다. 오로지 ‘생존’뿐이었다. 쉬지 않고 달렸다. 동대문 옷 가게 아르바이트부터 벽화 사업, 화장품 사업, 인테리어 사업 등 안 해 본 게 없었다. 몸이 힘들 때마다 ‘좋아하는 걸 하다 보면 언젠가 행복해지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살자’는 생각이 대기업과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이 시대의 아픈 청춘으로부터 그를 떼놨다.
그래도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거였다. ‘예술가가 되겠다’는 이상이 오래전부터 가슴속 어딘가에 콕 박혀 있었기에, 다른 일을 할 때도 밤엔 계속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인생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 탄생했다. 부처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와 부처의 10대 제자를 그린 ‘The Ten’이다. 그는 ‘팔상도’ 중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에서 부처를, 깨달음을 얻은 클럽 DJ로 묘사했다. 자주 가던 클럽에서 DJ를 중심으로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한편 부처의 10대 제자의 특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The Ten’은 불교계에 작은 파란을 일으켰다.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서 눈도장을 찍는 데 성공했고, 지난해부터 올 2월까지는 네덜란드에 있는 국립세계문화박물관에서 <the buddha>라는 타이틀로 관람객을 맞는 호사까지 누렸다. 더 대단한 건, 아시아 13개국 중 현대미술 작가로는 그의 작품과 <아톰>을 그린 일본 만화의 아버지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만 초청했다는 사실. “사실 작품을 보낼 땐 엄청 욕먹을 줄 알았는데, 스님들이 좋아해주셔서 놀랐어요. 하지만 그럼 뭐해요? 전시가 1년 가까이 열렸는데 한 번도 못 가본걸요. 3박4일이란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독일에서도 곧 제 작품으로 비슷한 전시를 기획한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땐 꼭 가보려고요.” 그의 작품은 불교에 내재되어 있는 매력적 요소를 찾아내고, 그걸 새 캐릭터로 재창조함으로써 기존 불교가 지닌 이미지의 틀을 깬다. 쉽게 말해 젊은 층에 어필하는 새 포교의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말을 빌리면 불교미술 작품은 “젊고 쉽고 ‘간지 나는’ 불교”다.
그런데 이쯤 정리하다 보니, 그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현대 미술가로 처음 사회에 나왔지만 명성은 대부분 만화가로 얻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에게 들어오는 일의 양만 봐도, 만화 쪽 일이 본업을 월등히 추월한 상황.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불리길 원할까? “그냥 그림 그리는 사람이죠. 지난 몇 달간 직업을 컨셉으로 만화를 그리며 그 직업군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직업 자체를 놓고 고민하게 됐어요. 직업의 사전적 의미는 ‘생계’를 유지하고, ‘능력’과 ‘적성’에 맞게 일정 기간 할 수 있는 일이죠. 그런데 지금 제가 하는 일은 그 셋을 모두 갖췄어요. 그래서 좋아요. 이 일을 대충 하고 싶지도 않고요.” 그는 지금 불교미술을 잠시 미뤄둔 채 만화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느긋해 보인다. 직장 생활의 애환을 그려낸 그의 만화 속 캐릭터들과는 완전 딴판이다. 그리고 그가 한마디 덧붙인다. “다들 남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하지만, 오늘도 우린 모두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우리는 조금 더 특별하게 살고 싶은 마음으로 똑같이 살게 되는 게 아닐까요? 눈앞에 닥친 현실에 성실히 임하다 보면 그게 나만의 역사가 된다고 봐요. 결코 조급해할 필요가 없단 얘기죠.”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잔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