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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아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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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아는 봄의 먼발치에서 가능성을 엿봤다. 그녀의 예감은 대개 맞아떨어진다.

화이트 원피스 YCH, 별 모양의 팔찌와 반지 세트 Chanel Fine Jewelry, 귀고리 Jamie & bell.

봄이라고 생각했다. 홍수아가 느낀 서울의 3월은 완연한 봄이었다. 유심히 들여다봐야 언뜻 보일 모습이, 그러니까 고목에 튼 움이나 갓 녹은 땅을 뚫고 나온 새순, 먼지가 걷힌 남산타워의 모습이 선명했다. 그래서 옷장을 정리했다. 계절이 바뀔 즈음 그녀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다. 홍수아는 중국에서 겨울을 보냈다. 시베리아의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촬영장에서 봄을 상상했다. 허리를 길게 늘어뜨리는 낮과 봄볕, 알록달록한 꽃의 풍경. 얇은 옷을 입고 문을 나섰다. 마음 한편에서 이르다는 소리가 들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봄을 느꼈으니까.

“겨울에 산 봄옷이 많아요. 옷장을 열 때마다 시간이 더디 가서 아쉬웠어요. 하루는 날이 너무 좋은 거예요. 얇게 입고 나갔다가 며칠을 앓았어요.(웃음) 바람이 매서워 종일 코와 볼이 빨갰죠. 이젠 정말 봄이 오는 것 같아요. 전 따뜻한 걸 좋아해요. 멋진 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녀는 옅은 가능성을 먼저 알아채는 재능이 있다. 이른 데뷔도 그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하이틴 잡지 모델로 세상에 나왔다. 어린 나이를 염려한 가족과 친구, 주변 사람 모두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곳에 서 있는 모습을 또렷하게 그릴 수 있었다. 카메라 셔터가 쉼 없이 돌아가는 무대 위의 홍수아, 그리고 그 풍경은 1년 만에 현실이 됐다.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죠. 워낙 어렸으니까. 그런데 막연히 잘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포기하겠어요.”
그녀는 꽤나 잘 팔리는 스타였다. 밝고 잘 웃는, 다소 엉뚱한 하이틴 연기자. 마냥 예쁘고 가녀린 캐릭터들 사이에서 홍수아의 등장은 신선했다. 그러곤 한동안 동어반복이 이어졌다. 그녀는 소비됐다. 비슷한 컨셉의 CF와 예능 프로그램, 하이틴 드라마에서 시들어갔다. 그사이 권태를 느꼈다. 스크린 속 홍수아는 한동안 성장하지 못했다.
“여러 역할을 맡아보고 싶었어요. 시트콤과 드라마, CF도 줄곧 했지만 특정 캐릭터 안에 갇혀 있어서 답답했거든요. 진한 로맨스도 해보고 싶고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도 연기해보고 싶고…. 나이는 먹어가는데(웃음) 언제까지 천방지축 20대 초반 여자애 연기만 할 순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기회가 오지 않더라고요. 좋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인생 참 모를 일인 것 같아요.(웃음)”
생각지도 못한 곳은 중국을 말한다. 중국의 한 프로덕션은 그녀가 출연한 대하사극 <대왕의 꿈>의 짧은 영상을 보고 러브콜을 보내왔다. <원령>이라는 영화의 주연 자리였다. 과감한 결정이었다. 그들은 홍수아의 화장기 없는 청순한 외모와 다채로운 표정을 보고 캐스팅을 결정했다 했다. 선입견 없이 바라본 그녀에겐 그런 모습이 있었다.
“얼떨떨했죠. ‘나를 어떻게 알았을까?’, ‘잘할 수 있을까?’, ‘말은 어떻게 하지?’ 온갖 걱정에 막막했어요. 그런데 가슴은 두근대더라고요.(웃음) 너무 원하던 기회였으니까. 잡을 수밖에 없었죠. 죽자, 현장에서 죽자. 이런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원령>은 공포 영화다. 만듦새가 엉성한 10대 하이틴 공포물이지만 홍수아는 시작부터 끝까지 폭넓게 연기를 펼친다. 연기의 완성도를 떠나 이 작품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 설련은 연민과 두려움, 공포와 절망을 폭넓게 연기한다. 이제껏 바라던 무대가 주어진 것이다. 그러나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더 목이 타고 조바심이 일었다.
“그 전까진 담고 싶은 건 많은데 그릇(분량)이 작았어요. 그게 아쉬웠는데 원을 풀었죠. 그런데 마지막 OK 사인이 난 순간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다음 작품을 찾은 것 같아요. 지금도 같아요. 잠을 2시간 자건, 출연료가 어떻건 다양한 역할을 맡고 싶어요. 메이크업 안 한 민낯으로 앵글에 설 수 있어요. 처참하고 추한 모습도 좋아요. 배우니까 할 수 있어요.”

1 베이지 컬러 원피스Miss Gee Collection, 볼드한 목걸이 Chanel Fine Jewelry.
2 사과 문양의 레드 원피스 Dolce & Gabbana, 골드 컬러 슈즈 Gucci, 반지 Hermes.

블랙원피스 Chanel, 귀걸이 Jamie & bell, 팔찌와 반지 Hermes.

인터뷰를 준비할 때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 그녀와 첫 통화가 이뤄진 것은 새벽 3시였다. 뉴욕에 체류 중인 것을 모르고 주책맞게 잠을 깨운 것이다. 상황 파악 후 어쩔 줄 모르는 내게 “괜찮아요. 제가 생각한 컨셉은 이래요”라며 말을 이었다. 잠을 설치면서도 조목조목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몇 시간 뒤엔 휴대폰으로 수십 통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촬영 관련 시안과 그것을 설명하는 텍스트였다. 홍수아는 치열하다. 현장에 있는 누구보다 높은 온도로 촬영에 임한다. 인터뷰 당일 이른 아침엔 양재동 화훼시장을 찾았다. 혹시 쓰일지 모를 꽃을 사기 위해서였다.
“스케줄이 잡히면 여러 가지를 생각해요. 이런 느낌은 어떨까? 이런 톤은 어울릴까? 이런 표정을 지어볼까? 아주 세세한 것을 상상해요. 그러다 보면 준비할 것이 많아요. 열가지를 준비해 단 하나라도 쓰이게 된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화보 촬영은 연기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어요. 가장 정제된 모습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단 한 컷을 위해 스태프들과 논의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거워요.”
그녀가 만 3년 만에 중국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지점 때문이다. <원령> 출연이 결정되고 곧바로 2명의 중국어 선생을 구했다. 스케줄은 물론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며 빠르게 말을 익혀나갔다. 발음과 성조를 탄탄히 익힌 이듬해에 40부작 드라마 <억만 계승인>의 주연을 맡았다.
“그곳에서 승부를 걸어보려 했어요. 말이 가장 급했죠. 연기자니까 언어가 안되면 불구라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욕도 많이 먹었죠. 중국말도 못하는 배우가 주연이라고 뒤에서 수군대는 걸 들은 적도 있어요. 전부 맞는 말이라 대꾸도 못했죠. 열심히 하다 보니까 해결되더라고요. 이젠 현장에서 다 친하게 지내요.”
중국 대중은 그녀를 좋아한다. 화면 속 그녀의 청순한 모습을 반기고 밖에선 홍수아의 솔직한 모습을 사랑한다.
그녀의 2017년은 빠듯하다. 데뷔 이후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먼저 중국에서 촬영을 마친 영화 <방관자>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도시화를 거치며 인정이 메말라가는 중국의 사회현상을 담아낸 작품이다. 그리고 <위무삼국>이라는 전통 사극에 출연할 예정이다. 홍수아는 여기서 귀족의 딸로 태어나 왕의 여자가 되고 황후로, 다시 태후로 성장해가는 강인한 여성을 연기한다. 제작비 200억 원 수준의 대작으로 이제껏 보여주지 못한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를 선보일 예정이다.
“개인적으로 기대되는 한 해예요. 필모그래피가 다채로워지지 않을까요? 특히 <위무삼국>은 공을 들여 준비하고 있어요. 강하지만 섬세하고 굴곡진 인생을 살아가는 여자거든요. 꿈꾸던 역할이랄까요.”
무엇보다 그녀의 올해가 기대되는 것은 오랜만의 국내 활동 때문이다. 홍수아는 현재 두 편의 작품을 촬영 중이다. 코믹 장르의 드라마, 이와는 정반대 느낌의 정통 멜로다. 바쁜 중국 활동 중에도 국내 작품과의 병행을 선택한 것은 아쉬움 때문이다.
“국내 활동에 대해서는 항상 아쉬움이 있었어요. 아직 못해본 것이 많아요. 그게 짐처럼 남아 있었거든요. 마침 좋은 기회를 잡았어요. 최대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좋은 연기를 펼치고 싶어요. 느낌이 좋아요. 이런 예감은 항상 맞거든요.”

레드 원피스 칼라에 크리스털 장식을 더한 레드 원피스 Dolce & Gabbana, 골드 귀고리 Jamie & bell.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사진 김상구  헤어 고선영(차홍아르더)  메이크업 김수빈(우현증메르시)  스타일링 정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