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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lesse.com Weekly Briefing

FASHION

‘노블레스닷컴 위클리 브리핑’은 지난 한 주간 벌어진 국내외 패션·문화·라이프스타일 소식 중 <노블레스>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를 골라 매주 월요일에 소개합니다.

© 〈Margiela, The Hermès Years〉Exhibition at MoMu Fashion Museum Antwerp Image Courtesy of MoMu

과거와 지금을 연결하는 패션 디자이너_ 마르지엘라와 에르메스
초여름처럼 기온이 오르는 따스한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들리는 봄비 소식에 레인코트라도 한 벌 장만하고 싶어지는 5월 초, 노블레스 위클리 브리핑은 지난주에 이어 ‘과거’가 된 전설적 패션 디자이너들의 현재 소식을 전합니다. 그들이 여전히 패션계에 생생히 살아 있고,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강력한 방증이기도 합니다.

2. 마틴 마르지엘라가 디자인한 에르메스

오늘 전하는 ‘마르지엘라’ 이야기는 존 갈리아노가 이끄는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의 최신 소식은 아닙니다. 8년 전 이미 은퇴를 선언한 디자이너이자 하우스의 설립자,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입니다.

현재 벨기에 ‘안트베르펜 패션 박물관(ModeMuseum Provincie Antwerpen)’에서는 2017년 3월 30일부터 8월 27일까지, 장장 5개월에 걸친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마르지엘라, 에르메스의 시간(Margiela, The Hermès Years)>이라는 전시입니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 7년 동안 마르지엘라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패션 하우스 에르메스(Hermès)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직했습니다. 무슈 마르지엘라가 자신의 레이블을 선보인 게 1989년이니, 브랜드 설립 이후 10년이 채 되지 않은 디자이너에게 최고의 하우스 브랜드가 전권을 준 셈이죠. 그가 안트베르펜 왕립예술학교(Royal Academy of Fine Arts)를 졸업하고 프리랜스 디자이너를 거쳐 처음 몸담은 직장이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인데, 마르지엘라가 떠난 에르메스를 장 폴 고티에가 이끌었다는 점(2003~2010년)도 흥미롭습니다.

전시 서문은 마르지엘라와 에르메스의 만남을 지금 돌아보는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아직 마르지엘라가 브랜드를 이끌 때의 이름)와 에르메스라는 ‘획기적인 탈구축과 영원한 럭셔리(groundbreaking deconstruction and timeless luxury)’의 관계가 출발점이라고 선언하면서 말이죠.

© Hermès A/W 1998 Image of the Advertising Campaign Over-painted by Martin Margiela (Cape Cod Watch Designed by Henri d’Origny and Double-tour Strap Bracelet Created by Martin Margiela) Photograph by Thierry le Gouès, Graphic Design by Jelle Jespers, 2017

마틴 마르지엘라는 물론 장 폴 고티에와 1980년대에 일본 패션 디자이너의 전성기를 연 꼼데가르송(Comme des Garçons)의 레이 가와쿠보(Rei Kawakubo)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그가 브랜드를 이끈 20여 년간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는 그야말로 ‘전례’가 없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지하철역에서 컬렉션 쇼를 열고, 순백색으로 칠한 아틀리에와 컬렉션을 선보이고,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소통과 협업에 인색하지 않은 활동을 통해 창조의 접점을 모색했죠. 이는 당시 기성 패션 브랜드에선 찾아보기 힘든 장점이었습니다.

다시 전시 이야기입니다. 해체주의의 대가와 고급 기성복·가죽 전문 하우스의 만남을 주도한 에르메스 전 회장 장 루이 뒤마(Jean-Louis Dumas, 1938~2006년)의 결정 또한 담대했습니다. 1997년은 노쇠한 패션 브랜드에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안착, 자신의 입맛대로 브랜드를 일신하는 정점으로 향하던 시절이니까요. “지금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마르지엘라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Anybody who’s aware of what life is in a contemporary world is influenced by Margiela).” 비슷한 시기, 루이 비통(Louis Vuitton)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역임한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는 훗날 자신의 컬렉션을 비판한 평론가를 향해 저 유명한 문구를 남깁니다. 여전히 생존해 있으면서도, 심지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에도 은둔자 이미지가 강했던 패션 디자이너를 향한 최고의 헌사입니다.

© 〈Margiela, The Hermès Years〉Book, 2017 Images Courtesy of Hermès, Maison Margiela, Lannoo Publisherss

마르지엘라가 에르메스에서 선보인 열두 번의 컬렉션은 그 자신과 에르메스의 장점을 하나로 결합한 탁월한 협업(collaboration)이었습니다. 2015년에 발매한 애플 워치 에르메스(Apple Watch Hermès)의 더블 투어(double tour) 시곗줄 디자인부터 1999년 에르메스 기성복 컬렉션 무대에 올린 ‘소년처럼’ 보이는 흰 셔츠와 회색 티셔츠 그리고 피에르 아르디(Pierre Hardy)가 디자인한 검은색 가죽 스니커즈의 조합은 영원한 고전(classic) 그 자체입니다. 등이 깊게 파인 실크 상의와 여행 가방에 달린 이름표를 목걸이처럼 변형한 가죽 액세서리 또한 에르메스의 대표작이 되었습니다.

© 〈Margiela, The Hermès Years〉Book, 2017 Images Courtesy of Hermès, Maison Margiela, Lannoo Publisherss

물론 누구나 이 전시를 보러 안트베르펜에 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전시의 정수를 모은 서적 출간 소식이 더욱 반갑습니다. 라노 출판사(Lannoo Publishers)에서 2017년 5월 31일 공식 출간하는 〈Margiela, The Hermès Years〉는 총 256쪽에 달하는 장정본입니다. 지금껏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사진과 이미지부터 기존 출판물에 언급하지 않은 내용을 마르지엘라 본인이 직접 골랐습니다. 아마존(Amazon.com) 등 유명 온라인 매장에선 이미 선주문을 받고 있습니다. 성격이 급한 분이라면, 전시 도록을 겸하는 이 책을 벨기에 서점 ‘카피라이트 북숍(Copyright Bookshop)’에서 45유로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copyrightbookshop.be/en/books/details/14428/0).

© 〈Margiela, The Hermès Years〉Book, 2017 Images Courtesy of Hermès, Maison Margiela, Lannoo Publishers

마지막으로 마르지엘라의 작업이 지금 이 시점에 다시금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베트멍(Vetements)을 비롯한 후대 패션 디자이너와 세계 각국 유명인사의 패션에서 우리는 여전히 ‘마르지엘라’의 그늘을 발견합니다. 큰 치수의 코트, 해체해 재결합한 청바지, 그리고 록 음악에 기반을 둔 전위적 티셔츠는 사실 십 수년 전 마르지엘라가 선보인 디자인이니까요.

그가 에르메스와 함께한 시간,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동시대 여성상을 재정립했다는 점 또한 지금 생각해도 흥미롭습니다. 마르지엘라는 에르메스에 있는 동안, 편안한 착용감의 옷을 최고급 소재로 짓고 탁월한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기존 패션 브랜드가 내세우지 않은 방식을 일관되게 선보였습니다.

마르지엘라의 에르메스가 톰 포드(Tom Ford)의 구찌(Gucci)나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의 디올(Dior), 그리고 마크 제이콥스의 루이 비통 등 당시 슈퍼스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이끌던 경쟁 브랜드만큼 크게 주목받았다고는 말하지 못할 겁니다. 그의 협업은 어떤 면에서 대단히 도전적인 것으로 평가받았지만, 오랜 세월 이어온 브랜드 철학이 한순간에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변하진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만일 당신이 동시대 패션에 관심이 있거나, 그 세계에 한발이라도 담근 채 일하고 있다면 이 전시나 책, 둘 중 하나는 반드시 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과거가 현재와 미래가 되는 지금이기 때문입니다.

〈Margiela, The Hermès Years〉Exhibition
www.momu.be/en/tentoonstelling/margiela-de-hermes-jaren.html

 

홍석우(서울에 기반을 둔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더 네이비 매거진(The NAVY Magazine)> 편집자. 서울 거리 풍경을 기록하는 블로그 YourBoyhood.com의 사진도 찍고 있다)
에디터 김수진(suze@noblesse.com)
디자인 임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