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리더
리더는 조직을, 나아가 인류를 이끈다.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미지의 영역에서 가능성을 찾아내고 이를 실현한다. 조직의 이익과 인류의 번영을 위해 지난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이 시대의 리더들을 묶었다.

동기부여의 리더십MLB 시카고 컵스 감독
조 매든(Joe Maddon, 1954년~)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그러나 위대한 팀을 만드는 감독은 있다.’ 조 매든은 지난해에 이 명제를 입증했다. 월드 시리즈(WS)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꺾고 108년 만에 시카고 컵스에 챔피언 반지를 안긴 것이다. 그는 2015년 시즌을 앞두고 템파베이 레이스에 옵트아웃(계약기간 중 연봉을 포기하는 대신 FA를 얻는 권리)을 선언하고 컵스로 이적했다. 테오 엡스타인 단장이 WS 우승을 위해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기대대로 매든은 단 두 시즌만에 염소의 저주를 풀었다. 지난해 연말 시카고에 컵스를 상징하는 컬러 ‘커비 블루(cubbie blue)’가 가득한 것은 당연했다. 매든이 부임하기 전까지 컵스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2013년, 2014년 시즌 최하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부임 이후 엡스타인이 시작한 리빌딩을 완성했다. 크리스 브라이언트와 앤서니 리조라는 최상의 거포를 탄생시켰고 제이크 애리에타와 존 레스터 두 선발의 심장을 단단히 무장시켰다. 여기에 아롤디스 채프먼이라는 리그 최상의 클로저를 적절히 활용하며 마지막까지 빈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조 매든은 시즌 내내 “목표를 이루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선수는 물론 코치, 스태프 모두 팀의 목표를 위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의미였다. 매든은 매 순간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한다.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모든 결과는 선수들의 몫”이라며 공을 넘기다가도 “편해서는 안 된다. 압박을 받아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 나는 우리가 편해지길 바라지 않는다”라며 고삐를 단단히 쥔다. 지난 시즌 WS 우승으로 생애 세 번째 감독상을 수상한 그의 올해 목표도 역시 우승이다.
신뢰와 속도의 경영학징둥상청 CEO
류창둥(Liu Qiangdong, 1974년~ )
지난해 9월 세계 증시는 중국의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상청(京東商城)을 주목했다. 징둥은 2016년 2분기에 652억 위안(약 11조7000억 원)을 벌어들였다. 이는 전년 대비 무려 42%나 성장한 수치다. 실적 발표 이후 징둥의 뉴욕 주가는 10%나 치솟으며 글로벌 500대 기업 자리를 꿰찼다. 징둥은 ‘슈퍼 차이나’를 떠받치고 있는 기둥 중 하나다. 여기엔 만 43세의 젊은 CEO 류창둥의 경영 신화가 있다. 류창둥은 1998년 중관춘에사 자본금 1만2000위안(약 200만 원)으로 시작한 한 평짜리 전자제품 매장을 시가 총액 381억 달러(약 42조5000억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그가 전자상거래 비즈니스에 던진 화두는 ‘신뢰’와 ‘속도’다. 류창둥은 직거래 방식을 도입해 중국에 만연한 짝퉁 포비아를 해결했다. 징둥닷컴(JD.COM)은 삼성전자와 애플, MS, 레노버, P&G 등 1000여 개의 글로벌 기업에서 직접 제품을 구매해 유통한다. 비용과 재고 부담이 있지만 가격 조정과 물량 확보 면에선 탁월한 전략이었다. 무엇보다 알리바바와 타오바오 등 중국 인터넷 쇼핑몰 제품 중 30% 이상이 모조품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징둥의 정책은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에 충분했다. 또한 류창둥은 중국 물류 시스템에 혁신을 가져왔다. 중국 어디든 오전 11시 이전 주문 고객에게는 당일 배송, 그 이후 주문자는 다음 날 제품을 받아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연회비 99달러의 아마존 프라임 고객이 제품을 받기까지 평균 4일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이는 혁신에 가깝다. 류창둥은 전국 123개의 거대한 물류센터와 3210개의 배송센터를 확보하고 이를 스마트 시스템으로 연결해 관리한다. 징둥은 이미 슈퍼 차이나의 맏형인 알리바바 그룹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류창둥이 준비하고 있는 다음 카드는 ‘무인 배송’이다. 징둥은 이미 지난해에 드론 배송 시연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올해 상반기에 100개 이상의 드론 배송 노선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로써 징둥의 총알 배송은 말 그대로 날개를 달 전망이다.
사소한 발상으로 역사를 바꾸다에어비앤비 최고제품책임자
조 게비아(Joe Gebbia, 1981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최악의 축제를 예고했다. 치안은 둘째치더라도 현저히 부족한 호텔이 문제였다. 예상 관광객의 80% 수준을 수용할 인프라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때 공유 숙박 서비스 ‘에어비앤비(Airbnb)’가 빛을 발했다. 월드컵 기간에 브라질을 찾은 약 12만 명이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며 숙소 대란을 피할 수 있었다. 공동 창립자 조 게비아는 세를 얻어 살던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업을 착안했다. 인근에서 매년 개최되는 국제 디자인 콘퍼런스에 참가하는 사람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숙소를 제공한 것이다. 그는 3명의 게스트에게 간이침대와 아침 식사용 시리얼을 내주고 일주일 만에 1000달러를 벌어 들였다. 에어비앤비의 탄생은 오랜 기간 고착화된 여행 문화의 패턴을 바꿨다. 저렴한 가격으로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에어비앤비엔 현재 192개국 3만5000개의 객실이 등록되어 있다. 교통과 편의 시설, 호스트의 제공 범위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물론 장애 요소도 많았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 신뢰가 문제였다. 게비아는 ‘사람이란 서로의 집에 머물 수 있는 만큼 서로를 신뢰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에어비앤비를 디자인했다. 여기에 삶이 묻어나는 호스트의 집 소개와 게스트들의 생경한 후기가 제 역할을 해냈다. 현재까지 에어비앤비에선 1억3000만 번에 가까운 숙박이 이뤄졌다. 사소한 발상이 기업 가치 300억 달러(약 34조 원)의 대박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미래를 예측하는 힘소프트뱅크 대표이사
손정의(Son Masayoshi, 1957년~)
손정의는 일본을 움직인다. 그의 행보에 따라 일본의 정책이 바뀌고 타국과 일본의 관계를 좌우한다. 단순한 기업인의 무게가 아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에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소프트 비전 펀드’라는 IT 투자 펀드를 조성했다. 단숨에 1000억 달러의 자본이 모였다. 여기에 영국의 글로벌 반도체 기업 ARM을 3.3조 엔에 인수하며 글로벌 큰손임을 공공연히 알렸다. 지난해에 푸틴과 트럼프가 잇따라 그를 찾은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손정의는 회담에서 러시아와 미국 내 IT 산업에 대대적 투자를 약속했다. 특히 트럼프는 500억 달러 투자 유치와 5만 개 일자리 창출이라는 구체적 소득을 얻어갔다. 그렇다면 손정의는 무엇을 챙겼을까? 소프트뱅크는 미래를 약속받았다. 비전 펀드를 활용해 미국과 러시아에 설비투자를 하는 대신 사물인터넷(IoT) 산업 성장에 따라 발생하는 사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이다. 손정의는 미래를 예측한다. 그가 판단하는 미래의 패권은 ‘플랫폼’에 있다. 그는 1980년대 초반 첫 플랫폼 사업인 ‘NCC·BOX’ 개발에 착수했다. 전화 연결 시 자동으로 저렴한 회선을 찾아 선택하는 통신 장비였다. 공급 파트너를 찾지 못해 손정의의 첫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플랫폼 선점에 대한 그의 꿈은 지속됐다. 소프트뱅크는 15년 뒤 ADSL 사업에 뛰어들었다. 인터넷망이 세상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현재 그가 아시아의 최고 큰손으로 군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다. 그는 여전히 미래를 예측한다. 소프트뱅크가 인수한 ARM은 반도체 설계 지적재산권(IP) 기업이다. 이미 삼성전자와 애플, MS 등 90% 이상의 스마트 디바이스 업체는 ARM에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만약 IoT 산업이 급격히 성장한다면 ARM의, 아니 손정의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21세기 혁신의 아이콘테슬라모터스 CEO, 스페이스엑스 CEO, 솔리시티 회장
일론 머스크(Elon Musk, 1971년~)
일론 머스크는 인류의 시곗바늘을 앞당긴다. 미래를 실현하고 진화를 촉진한다. 그러나 머스크는 리얼리스트다. 탁상공론이나 멋 훗날보단 현실에 오롯이 집중한다. 그가 2004년 ‘테슬라’를 차렸을 때 전문가들은 전기 자동차 상용화까지 못해도 30년은 족히 걸릴 거라고 예측했다. 그의 생각은 달랐다. 모두를 비웃듯 그는 4년 만에 첫 모델을 세상에 내놨다. 테슬라의 첫 전기 자동차 로드스터는 제로백 3.7초, 최대출력 288마력을 내는 괴물이었다. 특히 총 6831개의 리튬이온 전지로 완성한 배터리팩은 높은 가격과 충전 불량이라는 취약점을 획기적으로 해결한 혁신이었다. 이후 테슬라는 고성능 세단 S, SUV 모델 X, 보급형인 3 등 진화한 모델을 잇따라 선보였다. 설립 10년 만에 ‘전기 자동차=테슬라’라는 공식이 완성된 것이다. 일론 머스크가 괴짜로 불리게 된 건 민간 최초의 우주여행 기업 ‘스페이스X’를 설립하면서다. 막대한 자본과 국가적 기술이 투입되는 우주여행에 민간 기업이 진출한다는 것은 유머에 가까웠다. 사기꾼이나 몽상가 등의 별명이 붙은 것도 이즈음이다. 머스크는 개의치 않았다. 지난 2월 스페이스X는 2018년 하반기에 민간인 고객 2명을 달로 보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기술적 검증이나 안정성 검토도 끝났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이다. 여기엔 달 왕복 여행을 떠날 고객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을 곧 시행한다는 구체적 내용까지 포함돼 있었다. 일론 머스크의 관심은 광범위하다. 시속 1200km로 이동하는 총알 기차 ‘하이퍼루프’와 태양광에너지 기술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솔리시티’ 등 아직까지 인류에게 미지의 영역인 것이 다수다. 그는 미래를 산다. 지금도 22세기를 위한 초석을 부지런히 다지고 있다. 그의 다음 관심사는 인간의 뇌다. 최근 머스크는 뉴럴링크(Neuralink)라는 바이오 과학 기업을 출범시켰다. 이곳에선 ‘뉴럴 레이스(neural lace)’를 집중적으로 연구할 예정이다. 뉴럴 레이스란 인간의 뇌에 미세한 전극을 이식해 물리적 접촉 없이 컴퓨터와 인간의 뇌를 연결하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머릿속 생각을 컴퓨터에 업로드하거나 다운로드할 수 있으며 기억력과 인지력, 정보 등을 강화할 수 있다. 인간의 뇌를 USB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역시나 다수의 언론은 이를 허황된 계획으로 보고 있다. 그가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설립했을 당시와 같은 반응이다. 그러나 일론 머스크가 직시하는 세상은 우리의 그것과 다르다. 가까운 시일 내에 그가 무엇을 선보일지 지켜봐야 한다.

EDM계의 불사신DJ
티에스토(Tiesto, 1969년~)
요즘 EDM이라는 음악 장르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lectronic dance music)의 준말인 EDM은 모든 전자음악을 통칭하는 일렉트로니카(electronica)의 하위 장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장르에 대한 정의와 그에 대한 반론이 거센 파트라 이렇게 정의하고 넘어가겠다). 덥스텝, 하우스, 테크노, 트랜스 등 다양한 하위 장르에서 수많은 별이 뜨고 지는 업계지만 데뷔한 지 20년이 넘도록 장수하는 DJ가 있으니 그 이름은 바로 티에스토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본명이 테이스 미힐 페르버스트(Tijs Michiel Verwest)인 티에스토는 1994년 활동을 개시해 2000년대 초 트랜스 장르의 하위 장르인 더치 트랜스 열풍을 주도하면서 EDM계의 슈퍼스타로 자리 잡았다. 영국의
구찌를 부활시킨 해결사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 1972년~)
“이것은 도박이다.” 2015년 1월 럭셔리 브랜드 구찌가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발표하자 <뉴욕타임스>가 보인 반응이다. 앞으로 구찌를 이끌 수석 항해사가 대중에게는 전혀 노출되지 않은 내부 디자이너였기 때문이다. 알레산드로 미켈레. 전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 시절 액세서리 부문 수석 디자이너를 맡았던, 13년간 묵묵히 구찌에서 일해온 내부 디자이너가 그 주인공이다. 구찌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했다. 근래 매출은 계속 떨어지고 있고 모기업인 케어링 그룹의 주가 또한 좋지 않았다. 게다가 구찌는 도박에서 성공한 전력이 있었다. 구찌를 떠난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직도 구찌 하면 생각나는 그 이름, 톰 포드다. 그는 영입 당시 엉망이던 구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재정비하고 섹시한 브랜드로 탈바꿈시키며 루이 비통과 함께 명품 브랜드의 대명사로 만들어놨다. 하지만 그때 구찌가 폭삭 망한 상태였다면 지금은 어느덧 한 해 매출만 수조 원을 올리는 메가 럭셔리 하우스로 성장한 상태. 사람들의 호기심과 우려 섞인 눈빛이 교차했지만 미켈레는 결국 해냈다. 빈티지와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프린트와 패턴을 믹스하고 맥시멀리즘을 추구하는 등 기존의 구찌가 전혀 걸어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창조해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시키는 구찌의 변신에 소비자는 환호했고 지난해에만 17%의 매출 신장, 주가는 50% 넘게 뛰는 괴력을 발휘했다. 단정하고 세련된 박제물이 아니라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은 규칙 없는 아이디어의 구현물과 함께 구찌는 지금 신세계를 열고 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마법을 통해서 말이다.

과학으로 새로운 미각을 창조하다前 엘불리 수석 셰프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a, 1962년~)
큐브 형태로 얼어붙은 마르가리타 칵테일, 겉보기엔 완벽한 생육이지만 입안에 넣으면 바로 액체로 변하는 올리브, 팝콘 향의 구름을 서빙하는 곳. 음식을 분자 단위로 쪼개 물성을 파악한 후 완벽히 새로운 질감으로 재탄생시키는 분자 요리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작은 음식점에서 그 신화가 시작됐다. 수석 셰프 페란 아드리아의 지휘 아래 이 레스토랑은 영국 <레스토랑>의 세계 최고 식당으로 다섯 번 선정됐고 미슐랭 3스타를 14년간 유지했으며 매년 전 세계에서 250만 명이 예약을 요청하지만 그중 8000명만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그마저도 6개월간은 가게 문을 닫았고 그동안 아드리아와 50명의 요리사는 요리 연구에 몰두했다. 25년간 탄생한 요리만 1846가지. 그리고 2011년에 돌연 폐업 결정. 바로 전설의 레스토랑, 엘불리의 연대기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주아리는 <엘불리의 철학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페란 아드리아의 작품을 접한 사람들은 그의 요리에서 모든 종류의 해체, 비물질화, 전이, 일탈, 놀라움, 환상, 충격, 웃음, 어긋남 등을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은 요리를 공유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고 성찰케 하며 그로 인해 다시 자기 자신으로 회귀한다.” 현재 아드리아는 엘불리 재단을 세워 엘불리의 음식 조리법을 집대성한 불리피디아를 만들고 스페인 정부와 함께 요리를 연구하는 알리시아 연구소를 설립해 요리 연구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스위스 시계 마케팅의 미다스LVMH 시계사업부 총괄사장
장 클로드 비버(Jean-Claude Biver, 1949년~)
오데마 피게, 블랑팡, 오메가, 위블로, 태그호이어, 그리고 제니스까지 스위스 시계 산업에서 빠질 수 없는 이들 브랜드의 공통점을 하나 대라면 한 명의 인물로 압축된다. 럭셔리 시계 산업 마케팅의 제왕 혹은 황제라 불리는 남자, 장 클로드 비버 LVMH 시계사업부 총괄사장이다. 1975년 오데마 피게를 통해 스위스 시계 산업에 입문한 그는 1983년 친구인 자크 피게(스위스의 유명 무브먼트 제조사 프레데리크 피게의 후계자)와 함께 블랑팡을 인수한다. 그때만 해도 일본에서 발명한 쿼츠 시계의 보급으로 스위스 시계 산업이 존폐의 위기를 겪을 때였다. 하지만 장 클로드 비버는 블랑팡의 헤리티지에 입각한 마케팅으로 명맥이 끊길 뻔한 브랜드를 위기에서 구해내고 1992년 이를 스와치 그룹에 매각하며 오메가의 고위 임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 후 그의 손을 거친 브랜드는 연거푸 대박이 나기 시작한다. 오메가는 물론이고 가장 극적인 예는 바로 위블로다. 기본적으로 100년은 넘어야 명함이라도 내미는 스위스 시계업계에서 1980년 탄생한 위블로는 너무나 어린 브랜드였다. 업계 최초로 고무 스트랩과 골드를 매치하면서 관심을 받기 시작해 폴로나 승마 등 로열패밀리가 선호하는 운동에 어울리는 특성 때문에 일명 ‘왕들의 시계’라고 불렸지만 실적과는 전혀 상관없는 별명이었다. 하지만 장 클로드 비버가 2004년 CEO로 취임하면서 ‘퓨전의 예술(The Art of Fusion)’이라는 구호 아래 2005년 ‘빅뱅’이라는 컬렉션으로 대박을 치고 이후 다양한 디자인, 기술 혁신을 시도하며 스포츠라는 접점을 최대한 활용한 마케팅 활동을 지속하자 4년 만에 매출이 10배로 오르는 기적이 일어났다. 마케팅이 시간의 유산을 넘어선 것이다. 이를 눈여겨본 LVMH에서 회사를 인수한 후 장 클로드 비버는 LVMH의 시계사업부 총괄사장으로 부임해 자신이 키운 위블로뿐 아니라 태그호이어, 제니스, 불가리, 쇼메, 디올 타임피스 등 많은 브랜드를 관장하며 그 영향력을 한층 높이고 있다. 스위스 스키장 에디션까지 팔 수 있는 그의 마케팅 능력은 스위스 시계 산업의 수호자로서 결코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환호의 리더십리버풀 FC 감독
위르겐 클로프(Jurgen Klopp, 1967년~)
리버풀 FC는 영국 축구의 상징이다. 더 레즈(The Reds)라는 애칭은 어떤 상황에서도 경기를 뒤집는 기적의 팀에 붙인 찬사였다. 여기까지가 20세기 얘기다. 열여덟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명문 클럽의 모습은 2000년 이후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었다. 위르겐 클로프 감독의 부임이 결정됐을 때 팬들은 그가 리버풀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선수 영입에 인색한 팀 방침 때문이었다. 소수의 스타플레이어에게 기대는 현대 축구에서 감독 한 명 교체로 팀이 바뀔 가능성은 낮았다. 클로프는 있는 자원으로 최상의 전술을 짰다. 특유의 ‘게겐프레싱(Gegen-Presing)’을 리버풀의 심벌로 안착시킨 것이다. 이 전술은 공격권을 빼앗기면 말벌처럼 달려들어 압박하는 스타일이다. 체력 소모가 심하지만 선수들은 불평 없이 클로프의 전술에 충실히 따른다. 그의 넘치는 파이팅에 고취된 까닭이다. 클로프는 이적 당시 기자회견에서 “3년 안에 우승을 차지하겠다”라고 선언했다. 과감한 발언이었다. 그 한마디에 오랜 기간 침체돼 있던 구단과 선수들, 리버풀의 심장인 팬 코브(Kob)들은 열광했다. 클로프는 에너지가 넘친다. 연습장은 물론 경기장에서도 누구보다 파이팅이 넘친다. 크게 환호하고 갈채를 보내며 선수들을 격려한다. 그의 부임 이후 리버풀은 20세기 당시 끈질긴 모습을 되찾았다. 쉽게 패하지 않고 불리한 경기를 뒤집는 마법을 부린다. 리더의 환호와 격려는 어느 누구의 것과도 다르다. 클로프는 그 무게를 잘 알고 있다.
관찰과 고민의 성과드림웍스 애니메이션 부문 CEO
제프리 캐천버그(Jeffrey Katzenberg, 1950년~)
애니메이션은 드림웍스 창립 전과 후로 나뉜다. 아동 문화 위주였던 애니메이션에 그들은 어른의 코드를 끼워 넣는다. 진지하지만 위트 있고 울림이 있는 고민들이다. 드림웍스는 곤충 집단이나 가상의 왕국, 성경 속 장소에서 계급과 노동, 사랑과 자아 실현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미>의 일개미 Z-4195나 <슈렉>의 공주 피오나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우리의 자화상인 셈이다. 드림웍스의 CEO 제프리 캐천버그는 연령과 성별, 인종과 문화를 뛰어넘는 공통 가치를 주목한다. 함께 즐기고 고민할 수 있는 근원적 질문을 애니메이션 곳곳에 배치한다. 시작은 <토이 스토리>였다. 캐천버그는 우디와 버즈라는 캐릭터에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를 입혔다. 세심한 관찰과 고민은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드림웍스의 캐릭터들은 친숙하다. 직장이나 학교, 바에서 쉽게 마주칠 법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저마다 고민을 안고 있고 적당히 유쾌하며 마음이 따뜻하다. 그들의 여정을 좇다 보면 성장을 거치며 잊게 된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

즐기는 리더십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CEO
케빈 파이기(Kevin Feige, 1973년~)
케빈 파이기는 영웅들의 세상을 만들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어벤져스>에 열광한다.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캡틴 아메리카>, <토르>, <닥터 스트레인지>까지 현재 마블 무비의 세계관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파이기는 유년기부터 SF 영화의 팬이었다. 병적일 정도로 <스타 트렉>이나 <빽 투 더 퓨쳐>, <로보캅> 시리즈를 좋아했다. 그는 조지 루커스가 공부했다는 이야기만 듣고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에 입학한다. 졸업 후 <엑스맨>과 <스파이더맨> 시리즈 제작에 참여한 그는 2005년 금융투자회사 메릴린치에 캡틴 아메리카와 닉 퓨리 등 캐릭터를 담보로 현재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설립한다. 파이기는 영화 제작 시 외부에서 제작자를 데려오는 관행을 따르지 않는다. 그건 영화를 망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원작 만화가와 작가, 편집자로 제작위원회를 꾸렸다. 그는 전문가라는 타이틀 대신 작품에 애정이 많은 이들과 무수한 논의를 이어갔다. 그것은 회의라기보다 취미를 공유하는 대화에 가까웠다. 당시 탄생한 것이 현재 마블 무비의 방대한 세계관이다. 케빈은 <어벤져스> 시리즈로 10조 달러 이상의 순이익을 디즈니 스튜디오에 안겼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제작자로 꼽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조직을 키우는 리더십前 PGA 커미셔너
팀 핀첨(Timothy W. Finchem, 1947년~)
PGA(미국프로골프)는 세계의 스포츠다. 220여 개국에 중계되며 골프장 없는 나라를 찾기 힘들 정도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PGA의 황금기 1990년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팀 핀첨은 커미셔너로 1994년부터 22년간 PGA를 이끌었다. 핀첨은 사업 수완에 관한 한 천부적 재능을 지녔다. 백악관 경제 보좌관 재직 당시 쌓은 정·재계 인맥을 십분 활용해 PGA 투어의 덩치를 키웠다. 핀첨은 TV 중계권료 인상과 프레지던츠 컵 개최, 월드골프챔피언십(WGV) 시리즈 개최, 페덱스 컵 도입 등 여러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그 결과 취임 당시 40개 대회 총상금 5240만 달러(약 595억 원)였던 투어를 43개 대회 총상금 3억 달러(약 3405억 원) 규모로 성장시켰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타이거 우즈라는 세기의 스타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핀첨은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파악하고 충실히 수행했다. 스타를 발굴하고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 물론 그 모든 과정엔 막대한 스폰서 금액이 뒤따랐다. PGA가 22년 넘게 그에게 한 해 500만 달러가 넘는 연봉을 지급한 이유다.
유연한 접목과 복제우버 CEO
트래비스 캘러닉(Travis Kalanick, 1976년~)
우버는 스마트폰의 대중화가 일상을 얼마나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다. 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은 10년 전 이런 세상을 예측했다. 파리에서 택시 잡는 데 애를 먹은 그는 ‘버튼 하나로 택시 탑승이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을 떠올린다. 우버의 시작이다. 차량 예약 서비스로 시작한 우버는 어느새 일상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헬리콥터 택시인 ‘우버콥터’, 보트 택시인 ‘우버보트’ 오토바이 택시인 ‘우버모토’를 비롯해 최근엔 식료품 당일 배송 서비스인 ‘우버프레시’와 음식 배달 서비스 ‘우버이츠’ 등 배달 서비스까지 진출하며 덩치를 키우고 있다. 캘러닉은 우버라는 플랫폼을 유연하게 활용한다. 흩어진 점들을 모아 네트워크라는 거대한 선을 만든 것이다. 이미 검증된 비즈니스 모델의 복제와 재생산은 현재의 우버를 만들었다. 트래비스 캘러닉은 벌써 다음 먹거리를 준비중이다. 지난해에 이미 세계 최초로 자율 주행 트럭을 이용해 물건을 배송하는 데 성공한 것에 이어 올해부터는 미국으로 범위를 넓힐 예정이다.

사고방식의 전환스냅챗 CEO
에번 스피걸(Evan Spiegel, 1990년~)
스냅챗은 독특하다. 상대와 나눈 메시지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삭제된다. 디바이스 용량 키우기와 클라우드 서비스가 득세하는 세상에서 반대로 걷는다. 스냅챗은 ‘잊힐 권리’를 이야기한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21세기 가장 성공한 메신저를 탄생시켰다. 스냅챗의 공동 창업자이자 개발자인 에번 스피걸은 현재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이다. 최연소 억만장자, 스탠퍼드를 중퇴한 천재, 미란다 커의 약혼자 등 무수한 애칭은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보여준다. 스피걸은 스탠퍼드 재학 시절 친구인 보비 머피, 레지 브라운과 공동으로 스냅챗의 초기 모델인 ‘피카부(Picaboo)’를 개발했다. 그 가능성을 알아본 대기업이 사업 초기 거액을 제시했지만 스피걸은 거절했다. 더 큰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소통의 리더십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CEO
마이크 모하임(Mike Morhaime, 1966년~)
블리자드는 신세계를 만든다. PC방과 프로 게임 리그라는 세상에 없던 문화를 만들고 배틀넷이라는 인터넷 대전 방식을 대중화했다. 그들이 개발한 게임은 매력적이다. 블리자드가 이제껏 발표한 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월드오브워크래프트, 하스스톤, 오버워치 등은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명작이다. 이처럼 흥행 불패 신화를 이어갈 수 있는 건 블리자드의 CEO 마이크 모하임의 소통 경영 덕분이다. 모하임은 유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가 매년 막대한 비용을 들여 블리즈컨(블리자드의 홍보 컨벤션)을 개최하는 것은 팬들의 반응을 살피고 의견을 듣기 위해서다. 실제로 최근 여성 캐릭터 묘사에 불만을 표시한 팬의 메일을 받고 오버워치는 대폭 수정 작업을 거쳤다. 확장 팩 이후 2차 수입이 전혀 없는 스타크래프트2 관련 행사와 이벤트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것도 팬들의 요구 때문이다. 방한 당시 TV 프로그램, 인터넷 포털과 가진 대담에서 그는 “유저들의 요구는 경영의 핵심”이라고 답했다. 블리자드는 어떤 게임 회사보다 베타테스트 기간이 길다. 테스트에 참가한 유저들이 충분한 재미를 느꼈는지, 불만 사항은 무엇인지 파악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평범하다는 평가를 받던 디아블로3는 업데이트를 거듭하며 더욱 인기를 얻고 있다. 모하임은 상품을 만든다. 누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원칙의 리더십FIFA 회장
자니 인판티노(Gianni Infantino, 1970년~)
FIFA는 정치적 집단이다. 월드컵의 인기를 등에 업고 막대한 부와 권력을 누린다. 당연히 부패가 일었다. 2015년 FIFA의 14명 간부는 금융 사기, 자금 세탁 등의 혐의로 FBI에 체포됐다. 조제프 블라터 회장은 기소는 면했지만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니 인판티노는 이러한 상황에서 9대 회장에 올랐다. 당연히 우선 과제는 개혁이었다. 인판티노는 당선 인터뷰에서 “슬픈 시간을 보낸 FIFA와 세계 축구를 투명하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취임 이후 FIFA 운영과 회의 안건 등을 낱낱이 공개했다. 여기에 선수 이적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거래까지 제재를 가하고 있다. 개혁은 관성에 부딪힌다. 벌써부터 파열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가장 큰 논란은 월드컵 참가국 확대 문제다. 인판티노는 본선 진출 국가를 48개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진정한 지구촌의 축제로 거듭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사실 월드컵은 유럽과 몇몇 남미 국가를 위한 잔치였다. 유럽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그들은 경기 수준 저하를 이유로 인판티노에게 불통, 불도저라며 몰아붙이고 있다. 인판티노가 물러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는 FIFA 회장직을 최대 세 번까지만 연임할 수 있는 법안을 상정했고, 자신의 역할이 다할 때면 사임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원칙을 지키는 리더십엔 당연히 신뢰가 뒤따른다.

예술 경영을 실현한 마에스트로베를린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
사이먼 래틀(Simon Rattle, 1955년~)
영연방 훈장 중 메리트 훈장(Order of Merit)이 있다. 군사, 문화, 공공복지 분야에 크게 공헌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것인데, 단 24명의 생존자만 수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연방에서 가장 명예로운 훈장으로 여긴다. 그중 유일한 음악 관련 인물이 사이먼 래틀 경이다. 사이먼 래틀은 음악 신동으로(열다섯 살에 로열 리버풀 관현악단의 타악기 주자가 됐다) 단 25세의 나이에 버밍엄 시티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투신해 1998년까지 80년 무명의 시골 악단을 세계적 교향악단으로 성장시키며 명연과 명반을 쏟아냈고 2002년부터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를 맡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어떤 곳이던가. 천의무봉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 오케스트라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클라우디오 아바도 등 세계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지휘자만이 상임 지휘자를 역임할 수 있었다. 래틀은 전임자인 아바도가 시도한 민주적 문화를 정착시키고 현대음악의 비중을 늘리면서 베를린 필의 이미지를 좀 더 젊고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특히 그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지점은 현대사회의 문화기관이라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재정 문제를 극복해냈다는 것이다. 베를린 필이 국가 보조금에 쩔쩔매는 상황에서 벗어나 독립적 재단화를 실현했고, 그에 대한 금전적 문제를 스폰서십과 ‘디지털 콘서트홀’ 사업으로 완벽히 만회했다. 특히 웹사이트를 통해 공연 생중계와 아카이브 공연을 볼 수 있는 디지털 콘서트홀이 소위 대박 나면서 그의 존재감은 음악에만 헌신하는 거장을 넘어서게 된다. 사이먼 래틀은 올해 9월부터 모국을 대표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 상임 지휘자로 자리를 옮긴다. 베를린 필하모닉을 마다하고 떠나는 이면에는 런던에 바비칸 센터 말고 또 다른 음악 전문 홀이 필요하다는 스스로의 판단이 존재한다. 그의 이동 소식만으로 런던 시 당국과 시민이 새로운 홀 건립의 필요성을 긍정적으로 본다니 예술과 돈 사이의 미묘한 갈등을 해결하는 그의 능력과 리더십은 21세기 예술 경영의 중요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혁신의 리더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Jeffrey Preston Bezos, 1964년~)
‘전자상거래’라는 용어가 세상에 등장한 것은 불과 20년 전이다. 1994년 시애틀의 작은 창고에서 제프 베조스는 인류의 첫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닷컴을 개설한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창업 일주일 만에 전 세계 45개 도시에서 주문이 밀려들었다. 그 시작은 지난했다. 미지의 비즈니스에 선뜻 돈을 맡길 투자자는 없었다. 베조스는 결국 가족과 친구들에게 200만 달러를 빌려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투자자들에게 “성공 가능성은 30%밖에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마존닷컴의 성장은 그 끝을 모를 정도였다. 100달러까지 주가가 치솟으며 전자상거래라는 새로운 비즈니스의 성공을 알렸다. 베조스는 <타임>의 표지를 장식했다. 실리콘밸리의 상징이 된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서브프라임 모가지 바람이 불었다. 아마존은 위기를 맞았다. 닷컴 버블이 꺼지며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베조스는 움츠리는 대신 사업을 확장했다. 아마존닷컴을 종합 쇼핑몰로 탈바꿈시키고 킨들 시리즈의 디바이스 출시, 클라우드 시스템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2013년 베조스는 두 번째 도전을 했다.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한 것이다. 그 비용은 2억5000만 달러, 인수는 그의 순수 자산으로 이뤄졌다. 미디어와 월 스트리트는 베조스의 선택에 의문을 품었다. 인쇄 매체의 종말을 논할 때 왜 신문의 상징인 <워싱턴 포스트>를 사들일까? 답은 간단했다. 베조스는 플랫폼은 바뀌되 언론의 기능은 유지될 것을 확신했다. 인수 이후 <워싱턴 포스트>는 그의 지휘 아래 가장 빠르게 디지털 매체로 전환하고 있다. 혁신적 리더는 미지의 영역에 관심을 둔다. 어두운 곳에서 가능성을 본다. 베조스도 일론 머스크처럼 우주에 관심이 많다. 블루 오리진이란 우주 로켓 기업을 세워 미지의 세계에 도전 중이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기업을 꿈꾸다무인양품 CEO
가나이 마사아키(Masaaki Kanai, 1957년~)
무인양품(無印良品)은 1980년 유통 기업 세이유의 생활 디자인 브랜드로 출발한 뒤 간소함을 바탕으로 ‘브랜드 없는 브랜드’, ‘디자인 없는 디자인’이란 역발상적 철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 장기화된 경제 불황 속에서 도리어 초고속 성장을 끌어온 희귀한 회사다. 의류, 식품, 생활 잡화, 가구 그리고 주택에 이르기까지 7000여 개의 제품을 파는 무인양품을 이끄는 현 CEO는 가나이 마사아키. 1976년 세이유 그룹에 입사해 무지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지켜보고 이후 상품개발본부에서 제품 생산과 세일즈를 총괄한, 뼛속까지 ‘무지(MUJI, 무인양품의 일본어 음가인 ‘무지루시 료힌’에서 비롯한 무인양품의 영어 이름) 맨’이다. 가나이 회장은 평생을 바친 무인양품의 브랜드 코어를 한층 발전시키고 있다. “무인양품의 전략은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생활이 아름다워지면 세상은 좋아진다. 아름다움이란 생략과 간소화를 기반으로 창의성을 발휘해 최소한의 자원으로도 생활에 도움을 주는 미의식이다”라는 발언에서 이를 잘 알 수 있다. 특히 그는 기업이 사회문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며 창의성을 통해 이를 해결하는 것으로 무인양품의 기업 철학을 넓혀놨다.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 문화적 다양성, 지역화를 통한 가치의 재발견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그의 믿음은 지난해부터 로컬 일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무지가 시골 마을 재생 사업에까지 뛰어들게 했다. 최근 무인양품의 주력 사업으로 부상 중인 주택 사업과 공공주택 노후 단지 개선 사업도 노년층의 고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업적 양심과 창의성의 결과물이다. 브랜드에 집착하지 않고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무인양품의 기본 골조는 이제 공공성과 디자인, 창의력을 응집한 플랫폼으로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기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잠자던 재규어를 깨우다재규어 디자인 디렉터
이언 칼럼(Ian Callum, 1954년~)
영국 스코틀랜드 태생인 자동차 디자이너, 이언 칼럼은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자동차 브랜드 재규어에 1999년 수석 디자이너로 입사해 지금까지 재규어의 고급스러운 DNA를 유지하면서도 이 오래된 브랜드를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자동차 브랜드 중 하나로 바꾸는 변화의 선봉에 선 신화적 인물이다. 글래스고 예술학교와 런던의 왕립예술대학교(RCA)에서 운송 기기 디자인을 전공한 후 그는 포드에서 일하며 애스턴 마틴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커리어가 활짝 꽃핀 것은 그의 영원한 사랑인 재규어의 디자인 디렉터로 임명되면서다. 그는 노쇠한 브랜드 이미지에서 핵심이 되는 헤리티지를 굳건히 유지하는 뚝심을 보이면서도 유연하게 당대가 원하는 스포티함과 세련된 곡선을 적절히 녹여냄으로써 재규어가 고풍스러운 영국 왕실의 차가 아닌 ‘바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차’로 보이게끔 브랜드를 지속적으로 혁신시켰다. 재규어를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로 턴어라운딩시켰다는 찬사를 받는 XJ, XF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의 디자인 수장 피터 슈라이어, BMW 그룹의 전 디자인 디렉터 크리스 뱅글, 그리고 폭스바겐 그룹의 전 디자인 디렉터 발터 드 실바와 함께 세계 최정상 자동차 디자이너로 인정받고 있는 그는 다른 차 메이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본이 부족한 재규어에 계속 남아 디자인의 지속성과 완결성 그리고 끝없는 혁신을 추구하며 어느덧 재규어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 인물이자 아이덴티티의 수호자가 되었다.

스타 건축가의 대명사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 1929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는 누구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지만 우리는 갈망한다. 일종의 답변이 되는 스타 건축가의 존재를 말이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자하 하디드는 DDP를 통해 우리에게 스타 건축가의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 이전에 원조 스타 건축가가 있었으니 바로 프랭크 게리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유대인 이민자로 태어난 그는 청소년기에 미국 LA로 이주한 후 LA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창조성이 샘솟는 신선함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후 그는 예술가이자 건축가로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재료의 물성에 집중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주의적 건축의 선두주자가 되었다. 1989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받으면서 그에게는 국제적 프로젝트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중 대표작이 바로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뮤지엄이다. 물고기의 곡선에서 영감을 받아 보는 방향에 따라 매번 다른 구조와 곡선이 드러나며 그 겉면은 티타늄으로 덮어 빛의 방향과 세기에 맞춰 시시각각 장관을 만들어내는 이 놀랍고도 독특한 건축물은 쇠락해가던 인구 30만 명의 소도시에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을 불러모으며 스펙터클한 건축이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의 대명사가 되었다. LA의 디즈니홀부터 MIT기숙사, 최근의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까지 그의 수많은 건물은 찬반양론을 불러왔지만 그가 건축에서 추구하는 바는 뚜렷하다. 바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장이자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의 건축이다. 이미 초로의 나이가 되었지만 열정적으로 건축에 집중하는 그를 보면 예술가와 건축가가 뒤섞인 거장의 자존감을 엿볼 수 있다. 과연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야말로 그의 능력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리더십제266대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 1936년~)
제265대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건강상의 문제로 역사상 세 번째로 선종하지 않고 교황의 자리에서 퇴임하자 2013년 3월 12일 교황을 뽑는 비밀 투표인 콘클라베가 열렸다. 유럽파와 비유럽파, 보수파와 개혁파 간의 끈질긴 논쟁이 이어진 지 이틀 만에 건물 굴뚝에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며 새로운 교황의 탄생을 알렸다. 결과는 아르헨티나의 베르골료 추기경. 2000여 년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비유럽권 교황이 선출된 것이다. 청빈하기로 유명한 예수회 출신으로 교황명마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에게서 딴 프란치스코 교황은 금세 지구촌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떠올랐다. “돈과 명예와 권력을 위해 사는 삶은 절대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 “불평등은 사회악의 근원이다”, “집 없는 노인이 유해한 환경에 노출돼 죽는 것은 기사가 안 되고, 주식시장에서 지수가 2포인트 떨어지는 것은 기사가 된다”, “보잘것없는 삶에 만족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더 정의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포기하지 말자”, “삶을 발코니에서 관망하지 말라”, “위선적 종교인보다 무신론자가 더 종교적일 수 있다” 등 그의 어록은 세태를 정확히 집어내 대중을 이끄는 매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청빈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거침없이 자본주의와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믿음 저변에는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존재한다. “사랑은 신뢰의 척도다.” “세상을 바꾸려면 은혜를 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잘해야 한다.” 실제로 그는 미사에 청소부, 정원사, 경비원, 노숙자를 차례로 초대하고 식사를 같이 하는가 하면 세계 곳곳을 방문할 때마다 그곳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곳을 먼저 찾아 아픔을 듣고 격려한다. 특히 선천성 장애로 얼굴 전체가 일그러진 병을 앓은 행자를 어루만지며 포옹하고 입을 맞춘 사건은 만화로 그려질 정도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낮은 곳으로 임하며 스스로를 낮추는 평등의 리더십이야말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신적 지도자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그가 누구를 두려워하랴예술가
아이웨이웨이(Ai Weiwei, 1957년~)
영국의 글로벌 아트 잡지 <아트 리뷰>는 해마다 미술계의 중요 인사를 뽑아 ‘파워 100’ 리스트를 발표한다. 보통 상위권에는 세계적 미술관 관장이나 비엔날레 총감독, 다국적 갤러리 오너의 이름이 오르내리는데 지난 2011년에는 달랐다. 중국 출신의 설치미술가이자 반체제 운동가인 아이웨이웨이가 1등을 차지한 것이다. 베이징 출신인 아이웨이웨이는 어린 시절을 신강의 고비 사막에서 보냈다. 중국을 대표하는 현대 시인인 아버지 아이칭이 문화혁명 당시 사회비판적 문인으로 낙인찍혀 18년간 신강에서 강제노동으로 화장실 청소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복권으로 베이징에 돌아와 중국 현대 전위미술 1세대 작가로 활동하던 그는 일명 ‘새 둥지’로 불리는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에 대한 아이디어를 낸 건축가로도 위명을 떨쳤다. 하지만 피는 못 속인다고 했던가. 그는 거침없이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반체제 성향을 자신의 예술에 그대로 투영, 실질적 결과물로 끌어올려 중국 당국에는 눈엣가시로, 해외에서는 보호해야 할 반체제 예술가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블로그 활동으로 중국과 티베트의 민족 분쟁, 쓰촨 대지진과 부실 공사, 멜라민 분유 파동, 당국의 사스 은폐 의혹 등 중국의 사회적 사건과 관련해 직설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쓰촨 명단’ 등의 작업으로 승화시켰다. 중국 당국은 블로그 폐쇄, 스튜디오 파괴, 구타, 감금까지 했지만 아이웨이웨이는 이에 굴하지 않고 트위터로 1인 시위를 하거나 록 가수로 변신, 구금당한 당시의 모습을 뮤직비디오로 만들어 조롱하기도 했다. 이제 아이웨이웨이는 시리아 난민의 죽음을 구명조끼 구조물로 표현하는 등 세계적 인류애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자신에게 쏠리는 미디어의 관심을 기반으로 현실 세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예술가가 갖출 수 있는 사회적 리더십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웨이웨이가 어느 누구를 두려워하랴!

방송의 지형을 완전히 바꾸다넷플릭스 CEO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 1960년~)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아는가? 열광적인 성원에 힘입어 올해 벌써 시즌 5를 방영 중이다. 그런데 <하우스 오브 카드>는 TV 드라마가 아니다.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서비스하는 웹 드라마다. 그런데 이게 히트를 치고 에미상과 골든글로브상을 받았다. 드라마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누가 만들었을까? 넷플릭스. 그러면 온라인 스트리밍은 누가 담당했을까? 그것도 넷플릭스. ‘미디어가 넷플릭스에 당하고 있다(netflixed)’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회사, 넷플릭스는 대체 어떤 기업인가.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말한다. “우리는 테크 회사이자 콘텐츠 회사다.” 1997년 리드 헤이스팅스와 마크 랜돌프가 공동 창업한 넷플릭스는 영화 DVD 대여 산업이 본업이었다. 그들이 꿈꾼 것은 특정 콘텐츠를 필요한 사람들에게 맞춤형으로 공급하는 주문형 비디오였다. 그래서 전에 없던 온라인 대여와 우편 배송 서비스를 통해 인지도를 올리며 성장했고 IPO를 통해 마련한 투자금으로 2007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로 방향을 틀었다. 시청자가 원하는 배우와 감독, 콘텐츠를 빅데이터로 분석한 후 맞춤형으로 만든 <하우스 오브 카드>로 방송의 지형을 무너뜨린 후 지금은 세계 190개국에 진출해 넷플릭스의 독점 콘텐츠를 받아보는 월간 가입자 수가 1억 명을 돌파했다. 세계화, 지역화, 개인화, 맞춤화한 콘텐츠를 안정된 기술로 전달하는 넷플릭스는 10~20년 후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전달하는 TV 네트워크가 없어질 거라고 자신하고 있다. 그에 따라 거대 방송사의 대응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승리의 여신은 과연 누구에게 미소를 지을 것인가. 최후의 승자가 우리의 여가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드론계의 스티브 잡스DJI 테크놀로지 CEO
프랭크 왕(Frank Wang, 1980년~)
드론(무인 항공기)은 요즘 미래 먹거리 산업의 대표주자로 손꼽히고 있다. 드론을 이용한 각종 산업에 대한 장밋빛 예측이 쏟아지는 데 비해 막상 드론 제조 시장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지 않다. 그 이유인즉슨 전 세계 상업용 드론 시장의 표준 기술을 장악, 그 점유율이 무려 70%에 육박하는 회사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중국 기업 DJI 테크놀로지다. 중국 항저우에서 태어난 DJI의 창업자 프랭크 왕은 현재 우리나라 나이로 겨우 38세. 어릴 적부터 모형 헬리콥터에 꽂혀 헤어나지 못하다 홍콩 과학기술대학 졸업 작품으로 자동 헬리콥터 조종기를 만들었고, 2005년 홍콩 로봇 경진 대회에서 우승하며 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우승 상금과 제품 판매 수익금으로 이듬해에 중국 제조업의 메카인 선전에 DJI를 세운 것이다. 그는 카메라가 달린 일체형 모형 헬기를 구상했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드론의 모체다. 2013년 흰색의 세련된 디자인과 손쉬운 조작법이 특징인 드론 ‘팬텀’을 내놓으면서 DJI는 드론의 대명사로 떠올랐고, 이후 매년 무서운 속도로 신제품을 쏟아내면서 드론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프랭크 왕은 줄곧 애플의 창업자 스티븐 잡스와 비교되는데 그 독창성은 물론이거니와 완벽주의적 성격까지 꼭 닮았기 때문이다. 제품의 완성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신제품 발표회에 얼굴을 비치지 않은 경우까지 있으니 어쩌면 더 독한 걸지도 모르겠다. 요즘 DJI는 단순 비행체인 드론을 넘어 영상 촬영의 모든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올해 초 최고급 중형 카메라의 대명사인 스웨덴의 핫셀블라드를 인수한 것은 DJI의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킨다. 과연 DJI는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을까? 전 세계가 프랭크 왕을 주목하고 있다.

<스타워즈>의 세계를 만든 조물주영화감독 겸 프로듀서
조지 루커스(George Lucas, 1944년~)
1977년에 처음 개봉한 <스타워즈> 시리즈는 전 세계적 흥행과 팬덤을 일으킨 전설적 우주 대서사시다. 우주공화국의 분열, 루크 스카이워커라는 영웅의 탄생, 그의 활약으로 다시 평화를 되찾는 공화국 등 권선징악의 틀을 중심으로 정치와 사상의 충돌, 영웅의 탄생과 사랑, 인간의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얽힌 이 장대한 세계관은 온전히 조지 루커스라는 걸출한 영화감독 겸 프로듀서의 머릿속에서 나온 산물이다. <스타워즈>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40년 동안 <스타워즈>가 미국 문화에 끼친 영향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스타워즈>를 기점으로 영화의 특수 효과 기술은 빠른 속도로 진일보했으며 지금까지 창출한 부가가치만 자그마치 33조 원이 넘는다. 작년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미국 내 문화·스포츠계 인사 중 최고 부자로 조지 루커스를 꼽았다. 5조 원이 넘는 재산은 대부분 그의 영화사인 루커스 필름을 디즈니에 매각하면서 형성됐는데, 루커스 필름은 <스타워즈>뿐 아니라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만든 또 다른 전설적 액션물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제작한 곳이다. 20세기 최고의 영화 프로듀서 중 한 명으로 조지 루커스의 이름이 거론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0년 LA에 루커스 박물관(Lucas Museum of Narrative Art)까지 생긴다니 조지 루커스에 대한 미국인의 사랑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핫한 감독영화감독
데이미언 셔젤(Damien Chazelle, 1985년~)
지금 세계에서 가장 ‘핫’한 감독을 꼽으라면 아마 많은 사람이 데이미언 셔젤을 말할 것이다. 올해 그의 나이 33세. 한 편의 단편영화와 두 편의 장편영화를 만든 필모그래피에 비해 그의 존재감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뚜렷하다. 드럼 연주자를 꿈꾸는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 첫 번째 장편영화 <위플래쉬>로 제30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201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과 편집상, 음향상을 받았다. 두 번째 장편영화 <라라랜드>는 소포모어징크스는커녕 그에게 완벽한 대박을 안겨줬다. 무명의 재즈 피아니스트와 배우 지망생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꿈을 좇는 청춘의 열정과 사랑을 환상적으로 풀어낸 이 작품은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 코미디 부문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각본상, 음악상, 주제가상 등 7개 부문을 석권하며 골든글로브 사상 최다 수상 기록을 경신했고, 2017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타이타닉> 이후 20년 만에 14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면서 감독상, 여우주연상, 촬영상, 미술상, 주제가상, 음악상을 수상했다. 특히 감독상은 역대 최연소다. 어린 나이에 비해 위축되지 않는 과감함과 꼼꼼한 연출 그리고 각본 능력까지 아우른 이 놀라운 인물이 앞으로 어떤 작품을 들고 올지 궁금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전설적 거장의 발자취를 현재진행형으로 목도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에디터 조재국(jeju@noblesse.com), 전종현(harry.jun@noblesse.com)
일러스트 김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