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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blesse.com Weekly Briefing

FASHION

‘노블레스닷컴 위클리 브리핑’은 지난 한 주간 벌어진 국내외 패션·문화·라이프스타일 소식 중 <노블레스>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를 골라 매주 월요일에 소개합니다.

2017년 5월 초순, 지금 서울의 낮 기온이 벌써 26℃를 넘어섰습니다. 계절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진다든지, 여름이 너무 빨리 찾아온다든지 하는 문제가 패션계와 경제 위기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칠지는 확언할 수 없습니다만, 우리의 ‘영감’을 채울 이야기 역시 여전히 패션계에서 이어진다는 점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죠. 이번 위클리 브리핑은 일본을 넘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전설적 패션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 Rei Kawakubo/Comme des Garçons: Art of the In-Between
At The Met Fifth Avenue, May 4–September 4, 2017

레이 가와쿠보/꼼데가르송: 아트 오브 더 인비트윈(중간 지대의 예술)

어쩌면 올해 가장 중요한 패션 전시 중 하나로 손꼽힐 <레이 가와쿠보/꼼데가르송: 아트 오브 더 인비트윈(중간 지대의 예술)(Rei Kawakubo/Comme des Garçons: Art of the In-Between)>.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의상연구소(Costume Institute of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에서 꼼데가르송과 그 설립자 레이 가와쿠보가 만든 컬렉션 중 약 150벌의 ‘여성복’을 추려 선보이는 올 상반기 최대 패션 전시는 사실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을 정도로 패션계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의 회고전이자 그에 대한 헌정입니다. 1981년 파리 패션계에 데뷔한 이래 ‘소년처럼’이라는, 이제는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다소 생뚱맞은 브랜드명을 붙인 이 전위적 패션 하우스는 항상 패션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며 호사가들 사이에서 논란과 경탄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패션은 예술인가?’, ‘예술과 패션의 경계는 어디인가?’, ‘아름다움은 관습인가?’, ‘남성과 여성의 정체성을 구분하는 기준이 의복에도 이어지는가?’ 같은 질문을 던진 레이 가와쿠보에게 혹시라도 인터뷰 기회가 생겨 물으면, 그는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생각해본 적 없다’고 단언할 듯하지만, 그가 꼼데가르송을 통해 평생을 도전한 패션은 결국 ‘관습에 대한 반대’, 즉 저항정신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우리가 길거리 젊은이들에게서 보는 무표정하고 기괴한 의상의 원류 역시 대체로 레이 가와쿠보가 만든 우산 아래 있을 정도이며, 그야말로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게 여전히 동시대 패션계와 유행을 이끄는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2017년 현재 꼼데가르송이 카녜이 웨스트(Kanye West)와 에이셉 로키(A$AP Rocky)를 위시한 슈퍼스타 래퍼부터 다소 진지한 패션 키즈, 초로의 유명인사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세대를 넘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사실 일정 부분 아이러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그 모든 의도를 예측할 수는 없을 겁니다.

© Exhibition View of Rei Kawakubo/Comme des Garçons: Art of the In-Between
Images Courtesy of The Met/BFA.com

레이 가와쿠보는 잘 알려졌다시피 브랜드를 통해 자신의 창조성과 영광을 독식하지 않습니다. 그를 존경하는 무수한 젊은 패션 디자이너만큼 그 또한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의 가능성에 꾸준히 관심과 지지를 보냅니다. 고샤 루브친스키(Gosha Rubchinskiy)가 꼼데가르송 생산 시스템의 지원을 받아 세계적 브랜드를 만든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준야 와타나베(Junya Watanabe)와 구리하라 다오(Tao Kurihara)부터 최근의 ‘누아르 케이 니노미야(Noir Kei Ninomiya)’까지, ‘꼼데가르송 생태계(Comme des Garçons ecosystem)’ 안에는 이미 그의 뒤를 이끌 수많은 인재가 포진해 있습니다. 꼼데가르송보다 매출이 높거나 유구한 역사를 지닌 패션 하우스는 하늘의 별만큼 많지만, 브랜드 설립자가 나이를 먹을수록 후진 양성에 이토록 적극적인 패션 하우스는 21세기인 지금도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시 전시 얘기를 해볼까요. ‘자유를 입어라(Wear your freedom)’라는 꼼데가르송의 광고 캠페인 구호처럼, 이번 레이 가와쿠보 전시는 항상 꼼데가르송이 몰두한 주제를 그의 여성복 디자인에 집중하고 압축합니다. 바로 이런 것이죠. ‘패션과 반패션(Fashion / Anti-Fashion), 디자인과 비디자인(Design / Not Design), 과거와 현재(Then / Now), 자아와 타인(Self / Other), 고급과 저급(High / Low), 의복과 비의복(Clothes / Not Clothes)’….

꼼데가르송 플래그십 매장에 가면 볼 수 있는, 중세 갑옷을 금속에서 면과 울, 펠트 소재로 변형해 만든 것 같은 꽃무늬 드레스 시리즈는 ‘예술 작품’이 아니라 현재 판매 중인 기성복입니다. 물론 이 옷이 현대 기성복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의 대중적 기준을 담보하진 않겠죠. 하지만 꼼데가르송의 강력한 팬덤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우리는 취향을 입는 거예요. 아니면 어떤 정신 같은 것이죠’라고 말입니다.

꼼데가르송은 영리한 상업 컬렉션 라인 ‘플레이 꼼데가르송(Play Comme des Garçons)’을 유지하면서, 그 대척점에서 패션의 가장 사적이고 진지한 주제를 무려 수십 년 동안 수명의 디자이너가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물론 그 중심에는 레이 가와쿠보가 있었지요. 꼼데가르송의 팬덤을 다소 전위적인 스타일을 좇는 마니아로 치부할 순 없습니다. 레이 가와쿠보는 말 그대로 서구 패션이 정의하고 수세기 동안 유지해온 ‘아름다움’을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현대인의 기준을 아주 독자적으로 창조해냈죠. 이는 비단 ‘성별’이나 ‘여성’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특정 사회에 속한 모든 개인이자 자아를 향한 이야기일 겁니다.

© Comme des Garçons’s Exclusive Products for Rei Kawakubo’s MET Exhibition

당신이 5월 4일부터 9월 4일까지 뉴욕을 방문해 이 전시를 본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너무 실망하진 마세요. 전시 개막 이틀 전인 5월 2일부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공식 매장과 온라인 매장(store.metmuseum.org)에서 ‘꼼데가르송’ 전시를 기념하는 티셔츠와 가죽 지갑, 그리고 전시 카탈로그이자 일반에게 공개하는 패션 서적〈Rei Kawakubo / Comme des Garçons: Art of the In-Between〉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미술관의 애칭 ‘THE MET’를 크게 새긴 티셔츠는 어느 것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게 없고, 특히 2개의 애칭을 꼼데가르송 로고 위아래에 대칭으로 넣은 티셔츠는 꼭 한 벌 가지고 싶군요.

© The Catalogue of〈Rei Kawakubo / Comme des Garçons: Art of the In-Between〉
Lavishly Illustrated with Brilliant New Photographs, This Publication Presents More than 120 Examples of Kawakubo’s Designs for Comme des Garçons  Cover: Photograph by Paolo Roversi, 2017

책은 더 마음에 듭니다. 최근 구찌(Gucci)와 작업한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 아리 마르코파울로스(Ari Marcopoulos)와 동시대 최고 패션 사진작가 중 한 명인 크레이그 맥딘(Craig McDean)부터, 패션계를 넘어 예술가의 반열에 오른 콜리어 쇼어(Collier Schorr) 등이 레이 가와쿠보가 직접 고른 의상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표지 속 몽환적인 느낌의 붉은 드레스를 입은 2명의 모델은 이탈리아 <보그> 등의 화보를 통해 친숙한 또 다른 전설적 사진작가, 파울로 로베르시(Paolo Roversi)가 촬영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미화 50달러짜리 양장본 서적은 소장 가치가 충분합니다.

www.metmuseum.org/exhibitions/listings/2017/rei-kawakubo
newyork.doverstreetmarket.com/met/index.html

 

홍석우(서울에 기반을 둔 패션 저널리스트이자 <더 네이비 매거진(The NAVY Magazine)> 편집자. 서울 거리 풍경을 기록하는 블로그 YourBoyhood.com의 사진도 찍고 있다)
에디터 김수진(suze@noblesse.com)
디자인 임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