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느끼려다가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 그리고 당신이 있는 공간을 탐구하는 아티스트 듀오 mup.

‘mup’은 현대무용가 조형준과 건축가 손민선이 함께하는 아티스트 듀오다. 둘은 무용과 건축을 결합한 퍼포먼스 작품을 만든다. 흔히 무용가와 건축가가 함께 뭔가를 만든다 하면 이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건축가가 설계한 공연장 무대에 무용가가 디자인한 공연을 올리는 것 말이다. 하지만 이들은 다르다. 장소 특정적 작품을 만드는 이들은 공연을 올릴 무대에 관한 고민부터 작품의 주제, 움직임을 만드는 체계와 원리를 함께 고민한다. 또 그걸 기록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매체로 전환하는 작업 전반을 훑어 작품으로 완성한다. 사실 무용가가 어떤 공연의 주제를 정하고 움직임과 음악, 무대 공간 등의 요소와 결합해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은 건축의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건축 또한 설계 주제를 정하고 도시적·문화적 요소를 고려해 그것을 발전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간 이들은 제법 합이 잘 맞았다. 2013년에 발표한 <좌표화된 로비>를 시작으로 <둘이 된 순간 Di-a-meter>(2015년), <오버더월>(2016년), <데카당스 시스템>(2017년) 등을 완성하며 국내 미술계에 이전에 없던 건축과 무용의 새로운 움직임을 각인시켰다.

1 현대무용과 건축에 미디어 아트를 결합한 <데카당스 시스템>. ⓒ 전소영
2 벽(wall)에 대해 탐구한 작품 <오버더월>. 사진 제공 국립현대무용단
그럼 이들의 무용담을 본격적으로 늘어놓기에 앞서, 이들이 어떻게 팀을 이루게 되었는지부터 살펴보자. 이들은 2011년에 처음 만났다. 현대무용가 조형준이 짬을 내 운영해온 요가 클래스에 손민선이 수강생으로 등록한 게 계기였다. 그런데 조형준은 당시 여러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몸과 건축’을 주제로 곧 장소 특정적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데, 좀처럼 리서치가 진행되지 않은 것이 이유였다. 그 고민을 들어준 이가 손민선이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서울의 한 건축사 사무소에 근무하던 그녀는 단순히 건축물 안에서 춤을 추는 게 몸과 건축의 결합은 아닐 거라고 믿는 조형준에게 관심을 보이며 나름 어드바이스를 건넸다. 한데 그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날이 갈수록 깊은 주제에 대해 대화하던 둘은 서로의 무용과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급기야 함께 ‘재미난’ 뭔가를 해보자는 다짐까지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게 바로 ‘mup’이다. “당시 저희가 가장 많이 고민한 게 이런 거였어요. 왜 관객은 꼭 한자리에 앉아 공연을 봐야 하나, 왜 그렇게 경직된 상태로 공연을 봐야 하나 하는 거요. 극장에선 늘 무대와 객석, 무용수와 관객 같은 이분법 논리가 성립되잖아요. 하지만 우린 그런 주장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바람이 있었어요.” 함께 팀을 이루기로 한 두 사람은 이듬해에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애초 예상과 달리 초반에 자주 다퉜다. 상대의 작업 특성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무용과 건축에도 하나의 공통점은 있었다. ‘공간’과 ‘사람’이 상호작용하는 요소로서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것 말이다. 건축이라고 공간만 있을 수 없듯이, 무용 또한 사람만 있을 순 없다. 그러면서 둘은 안무에 건축적 기법을 적용하는 것으로 작품 세계의 가닥을 잡았다. “같은 춤을 매번 공간을 바꿔 추고 또 추고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작품을 선보일 장소에 대한 분석을 먼저 하는 것, 그 장소의 특성, 목적, 어떤 가능성, 어떻게 변형할 잠재성이 있는지 파악하고 그것에 대한 공연을 펼치는 것, 이게 저희가 생각한 작품의 방향성이었어요.” 이듬해에 두 사람은 긴긴 준비 끝에 첫 작품 <좌표화된 로비>를 선보였다. 당연히 작품을 공개한 장소는 흔한 극장 무대가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서울 역삼동의 LG아트센터 로비였다. 이들은 당시 4명의 무용가가 각기 다른 네 곳에서 그 장소성을 반영해 안무를 하고, 공연 시 관객과 현장을 투어하는 형식으로 공연을 펼쳤다. 쉽게 말해 무용수들이 LG아트센터를 오가는 사람들의 동선 흐름을 춤으로 표현한 것. 춤은 로비의 한쪽 끝에서 시작했다. 안무를 맡은 조형준을 포함해 3명의 무용수는 회전과 미끄러지는 듯한 동작을 반복하며 로비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했고, 서로 몸을 같은 방향으로 엮는 조형적 몸짓을 하다가, 한 사람씩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고 위쪽으로 사라지며 공연은 막을 내렸다. “LG아트센터의 로비 바닥을 보면 타일 귀퉁이마다 전체적으로 점무늬가 박혀 있어요. 근데 그게 건축의 좌표처럼 보였죠. 사실 우린 이 ‘점’에 착안했어요. 로비에서 찾은 좌표를 연습실로 옮겨와 무용수들과 함께 재현한 로비를 체험했죠. 로비에서 일어날 법한 일상적 순간을 기초로 움직임을 취하고, 실제 로비를 통과할 때처럼 자유롭게 자신만의 동선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좌표 위에 동작을 입힌 다음, 트레이싱지에 각각의 동선을 그리니 서로 다른 레이어가 생성됐고요. 그리고 그걸 겹치거나 콜라주처럼 이어 붙이는 변형 과정을 통해 대략 아홉 가지 유형의 동선을 도출했죠. 그걸 다시 로비로 가져가 무용수들이 각각의 동선 위에서 퍼포먼스를 펼친 거예요.” 그로부터 2년 후에 이들은 다시 한번 ‘공간과 기하학적 요소’에 대한 분석을 통해 <둘이 된 순간 Di-a-meter>를 그 이듬해엔 ‘벽’에 대한 탐구에서 출발한 <오버더월>을 소개하며 우리가 디디고 선 수평면에 사물과 사람의 물리적 배치에 따라 발생하는 공간과 안무, 심리적 거리 등에 대한 실험을 이어갔다. 특히 재미난 건 신체의 움직임으로 이루어지는 공간 지각에 대한 작품 <오버더월>을 제작하게 된 계기. “미술관 로비에 굉장히 큰 흰 벽이 있었어요. 그저 어떤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벽인데 엄청 컸죠. 근데 사람들이 아무도 그 벽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때 미술관 로비의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는 벽을 가지고 작업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사실 미술관에선 바닥보다 벽이 중요하잖아요. 흰 벽은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탈색한 공간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뭐든 들어올 수 있는 거고. 미술관에 흰 벽이 없다면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모든 게 벽에서 출발하는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어요.” mup의 ‘공간’은 이렇듯 다르다. 그 자체로 물리적 속성을 지니지만 ‘공간’으로서 의미를 갖는 건, 그곳을 사용하는 존재를 지각할 때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둘 중 한 사람의 역량만으론 온전히 느끼기 어려운 일일 거다. 바로 공간과 기록을 담당하는 건축가와 그것에 존재감을 부여하는 무용가가 함께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오는 6월 서울 창동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에서 입주 작가 결과 보고전을 여는 이들은 8월 중순엔 일산 킨텍스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 전파상과 인공지능을 주제로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무용과 건축, 몸과 공간을 통해 감각하고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미술 세계에 대해 말해온 이들이 앞으로 흥미를 갖게 될 건 또 어떤 분야일까?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