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도 가치 있게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내가 쓰는 돈이 그들에게 보탬이 되며 더 나아가 자연을 지킬 수 있는 여행. 공정 여행이야말로 우리가 그동안 꿈꿔온, 사람 냄새 나는 여행이 아닐까.

내몽골 전통 가옥 게르에서 보내는 여유. ⓒ 공정 여행
에메랄드빛 바다를 바라보며 쾌적한 리조트에서 맞이하는 느긋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해변에서 만끽하는 여유로운 오후.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여행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여행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나아가 세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누군가는 ‘외국 여행을 하는 자체만으로 현지 경제에 도움을 주는 착한 일을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약 세계 호텔 체인에서 묵고, 면세점에서 쇼핑을 즐긴다면 그것이 과연 현지인도 행복한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세계 관광산업은 매해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경제적 이익의 대부분은 G7 국가에 속한 다국적 기업에 돌아가고 있습니다. 네팔 70%, 태국과 코스타리카는 각각 60%와 45%의 누손율을 기록할 정도로 심각합니다”라고 밝혔다. 여기에 환경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여행자 한 명이 하루 평균 3.5kg의 쓰레기를 버리고,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 주민 한명이 쓰는 양의 30배에 달하는 전기를 쓴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떠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즐기느냐’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현지의 경제에 도움을 주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의 삶과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행을 찾는다면 공정 여행이 바로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공정 여행은 1989년 영국 NGO 단체 투어리즘 컨선(Tourism Concern)이 제3세계 관광산업으로 인해 일어나는 환경 파괴, 노동력 착취, 인권 침해를 알리면서 점차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공정 여행의 개념이 도입된 건 2007년 평화 운동 네트워크 이매진피스 주도로 공정 여행 캠페인을 실시하면서다. 2009년부터 트래블러스맵과 착한여행 같은 공정 여행사가 설립되기 시작해 국내에도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 공정 여행은 세계의 다양한 곳에서 경험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문화 체험과 함께 경제 이익 누손율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나라에 주목하고자 한다.
네팔 포카라에서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고 싶다면 1994년 러키, 디키, 니키 세 자매가 설립한 공정 여행 트레킹 회사 스리 시스터스(Three Sisters)를 찾아가보자. 남성도 이용할 수 있지만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고 싶은 여성 여행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여행사다. 가이드와 포터도 모두 네팔 여성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 3명의 대표는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열악한 삶을 살아가는 네팔 여성에게 기회를 주고자 1999년 비영리 기구 Empowering the Women of Nepal(EWN) 센터를 설립했다. 여기에서는 여성들에게 7개월 동안 영어 회화, 트레킹 기술과 가이드 교육 및 수련의 기회를 제공한다.

1 현지인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방비엥의 나두앙 마을. ⓒ 착한여행
2 네팔 여성에게 자립의 기회를 제공하는 스리시스터스. ⓒ 스리시스터스
2000년 가이드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참여한 샤밀라는 “감옥에서 벗어난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내게 삶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여전히 성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는 네팔 여성들에게 스리시스터스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업계의 평가를 받고 있다. 트레킹을 마친 후 역시 포카라에 위치한 WSDP(Woman’s Skill Development Project)에 들러봐도 좋을 듯하다.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자립을 돕는 공정 무역 제품을 생산하는 단체로, 여성들이 실을 염색하고 천을 짜고 가방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그리고 여행의 마무리로 타이거 마운틴 포카라 로지(Tiger Mountain Pokhara Lodge)를 선택하는 건 어떨까? 타이거 마운틴 포카라 로지는 주로 수력발전을 이용해 전기를 공급받으며, 물이 낭비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시스템을 체크하는 노력을 기울일 뿐 아니라 현지인을 직원으로 우선 채용한다. 빵과 잼, 저장 음식 등 모든 식자재를 현지에서 조달하는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공정 여행의 묘미는 현지인의 생활을 그대로 체험해보는 데에 있다. 라오스는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 비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지만 2008년 <타임>에서 꼭 방문해야 할 여행지 1위로 뽑힐 만큼 외국에선 인기가 높다. 자연이 아름다운 도시 방비엥과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인 루앙프라방까지 구석구석 탐험하다 보면 라오스의 정취에 흠뻑 빠져들것이다. 수도 비엔티안에서 4시간 거리에 있는 방비엥의 나두앙 마을은 2012년 마을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홈스테이를 시작했다. 농번기에만 소득을 올리고 그 외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사는 마을 주민에게 홈스테이는 좋은 수입원이다. 대나무를 엮어 벽을 쌓고 라오스에서 자라는 튼튼한 나무로 기둥을 만든 전통 가옥을 체험하고, 마을의 학교를 둘러보며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나두앙 마을에서는 한 달 수입의 5%를 기부해 라오스 전통춤을 배우는 등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여행자는 쓰지 않는 학용품이나 문구류 등을 기증하는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방비엥에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 5시간 정도 이동하면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루앙프라방이 나온다. 해 질무렵 왓 마이 사원 근처 도로의 야시장에서 전통 의상, 라오스 커피, 접시 등 다양한 물건을 파는데, 그 수익금은 지역 상인들의 생계 유지에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중국 내몽골 게르에서 머문 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옛 마을 3위로 손꼽힌 촨디샤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이다.

지리산 인근 지역 할머니들에게 도움을 주는 트레킹 투어. ⓒ 트래블러스맵
하지만 꼭 공정 여행을 해외에서 하란 법은 없다.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공정 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경기 수원시가 마련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 예술가들과 함께 수원화성의 우수성을 알리는 공정 여행 프로그램 ‘청년 예술가와 함께하는 니나노 공정 여행 in 수원’이 대표적이다. 청년 예술 공동체 술래가 주관하는 공정 여행 프로그램은 판소리 등의 전통 공연을 관람하는 ‘행궁한류’, 전통 한복 원단으로 모빌을 만드는 등 수원 지역 작가와 문화 체험을 하는 ‘행궁피플’ 등 5개로 이뤄져 있다. 1인 1만 원이면 참가할 수 있으며 11월까지 운영할 예정이라니 참고하자. 공정 여행사 트래블러스맵은 지리산 둘레길 인근의 농가에 사는 할머니들의 집을 숙소로 마련해 할머니들이 직접 아침식사를 차려주는 트레킹 상품을 선보인다. 이외에 착한여행에서는 여행객이 직접 여행 상품을 기획할 수 있는 가디언 신청 섹션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외의 다양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공정 여행의 대중화는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다. 영국의 온라인 여행사 리스판서블트래블(Responsible Travel) 담당자는 “여전히 비행기를 이용해야 하는 이유 때문에 완벽한 공정 여행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전 세계 인구의 10%가 공정 여행의 수익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무엇보다 지역을 풍요롭게 하는 여행은 호텔이나 운송회사가 아니라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밝혔다. 돈으로 사는 소비 여행이 아니라 나의 즐거움을 바탕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 낯선 문화권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페어플레이를 한다면 공정 여행도 머지않아 여행의 주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