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가 알려준 메종의 의미
5월 20일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가 오픈 1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레노베이션을 마치고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메종(maison)의 의미처럼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이 살아 있는 공간의 모범 답안을 제시하면서 말이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 외관.
메종의 속 깊은 의미
오래전 ‘메종’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는 플래그십 스토어의 ‘우아한 버전’이라고 생각했다. 브랜드의 다양한 아이템을 판매하는 곳이지만 마치 집처럼 아늑하고 품격 있는 공간을 지향하는 곳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메종이라는 이름을 내건 장소를 면밀히 살펴보면서 ‘메종’이라 말할 수 있는 곳은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물론 이 자격 요건은 순전히 에디터의 관점으로 선정한 것이다. 메종은 말 그대로 그 브랜드의 ‘집’이다. 집은 어떤 공간인가. 거주하는 사람의 스타일과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비밀스러우면서도 종종 공개되는 공간이다. 건축과 인테리어 스타일부터 주인의 컬러를 반영하는 곳이기에 아무리 사소한 아이템이나 장식에도 주인의 철학이 깃들어 있다. 그 어떤 곳보다 다양하고 특별한 아이템이 즐비하다는 것도 특징이다.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입점한 부티크에서는 만날 수 없는, 브랜드의 특징이 확실히 살아 있는 제품이나 리미티드 에디션을 접할 수 있는 곳도 메종이다. 마지막으로는 물건을 판매하지 않는 공간, 즉 오롯이 주인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휴식처가 존재하는 곳이다. 에디터는 세 번째 요소가 어쩌면 메종을 여타 숍과 구분 짓는 가장 확실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Maison Hermes DosanPark)는 에르메스의 전 세계 네 번째 메종이다. 메종 오픈 순서가 말해주듯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에는 한국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담겨 있다.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충성스럽고 열정적인 지지가 메종의 오픈으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2000년부터 미술상을 제정해 한국 미술계에 공헌해온 에르메스와 문화계에 대한 애정을 공고히 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지하의 4개 층을 포함해 총 11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잘 알려졌다시피 고인이 된 전 회장 장-루이 뒤마의 부인인 르나 뒤마가 이끌던 RDAI사가 맡았다. 사각 형태의 건물은 중앙에 아트리움을 두어 모던한 건축물의 숨을 틔워주고, 건물 외관은 30cm 간격으로 세운 2개의 유리 벽면이 감싸고 있다. 바깥벽은 굵은 황금색 선으로, 내벽은 흰색의 가늘고 불규칙한 선으로 실크 스크린 처리해 외부의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온전히 담아낸다. 건물 외관의 정직한 사각형과 달리 내부에는 아트리움 옆에 커브형 계단을 설치해 외관과 대조를 이룬다. 나선형 계단은 조가비처럼 펼쳐지며 위층의 매장과 전시실로 향하고 지하의 카페와 박물관으로 이어진다.

1, 2 3층에 자리한 홈 컬렉션. 3 지하 1층에 위치한 카페 마당.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여백의 아름다움이다. 공간을 제품으로 가득 채우기보다는 방문한 사람들에게 산책을 즐기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했다. 건물의 정중앙에 자리 잡아 최상층까지 뚫려 있는 아트리움과 루이 베네크가 조경을 맡은 정원은 경제 발전 과정에서 소실된 서울의 녹지 공간을 되살린다는 컨셉을 실현했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의 진입로에 놓인 화분과 4층과 6층에 자리한 작은 정원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잡아둔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가 오픈 초기부터 방문객을 끌어들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지하에 위치한 박물관인 프롬나드와 카페 마당이다. 지금이야 많은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당연시하는 요소지만 당시만 해도 매우 희귀한 공간이었다. 에밀 에르메스의 수집품을 전시한 공간은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브랜드의 역사를 알려주는 귀중한 장소다. 고즈넉한 서재를 연상시키는 카페 마당은 화려하고 떠들썩한 카페가 아니라 친밀함과 여유가 묻어나는 공간이다. 쇼핑 목적이 아니라 이곳을 찾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의 명물로 꼽힌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는 2014년 한 차례 레노베이션을 거쳤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3층을 홈 컬렉션 전용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 가구, 텍스타일, 벽지, 테이블웨어, 스포츠 및 레저용 비치 제품과 피크닉 제품을 포함한 다양한 제품을 만날 수 있다. 더불어 생루이 크리스털 제품과 퓌포카의 실버 제품도 접할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건축가 시게루 반이 에르메스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맞춤식 벽 패널인 모듈 아쉬(Module H) 등은 공간의 활용도를 극대화한다. 홈 컬렉션을 고객에게 제대로 소개하기 위한 VIP 룸도 특징 중 하나. 개인 전용 매장처럼 느껴지는 이곳에는 맞춤 제작한 가구, 브론즈 래커로 마감한 드라이 바, 브론즈 컬러 카펫, 에르메스 고유의 에토프 색상 가죽으로 RDAI가 디자인한 상하이 의자 등이 놓여 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가 지하로 자리를 옮긴 것도 주목할만하다. 카페 마당도 대대적인 변신을 거친 건 마찬가지다. 벽과 천장, 바닥에는 회색 톤 오크나무를 사용해 상자 속 상자를 연상시킨다. 천장의 중앙에 설치한 빌트인 조명은 마치 선묘화를 보는 듯 아래로 내려오며 유기적으로 확산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샹들리에는 천장에서 빛이 새어 나와 건축물이 나무를 뚫고 나오는 듯한 효과를 준다. 모든 가구와 실내장식품은 한국 도자기에 사용하는 유약에서 영감을 받은 컬러 팔레트로 인테리어의 완성도를 높였다고 하니 한국 문화에 대한 예우를 갖춘 브랜드의 진심이 느껴진다.

1〈광장사각(廣場四角)〉by 홍승혜(2012년). 2〈Rama Lama Ding Dong〉by 박미나 & 잭슨 홍(2009년). 3 실버 주얼리 전시〈사운드 오브 실버〉(2014년). 4 아뜰리에 에르메스 개관 기념 특별전〈FiltresColores, Travail in Situ〉by 다니엘 뷔렌(2006년).
메종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경험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가 제품만 파는 곳이었다면 오늘의 유명세는 얻기 어려웠을 터.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충족시키는 다채로운 공간과 장치를 통해 어느 곳과도 견줄 수 없는 독보적인 장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5 시계 전시〈Slim d’Hermes-시간의 협주〉(2016년). 6〈컨덴세이션(Condensation)〉by 엘리자베스 클라크 외(2014년). 7, 8〈지수화풍 : Earth, Water, Fire, Air〉by 김수자(2010년).
아뜰리에 에르메스_ 한국 컨템퍼러리 작가의 산실
2006년 11월 3층에 오픈한 컨템퍼러리 아트 전시 공간,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2014년 레노베이션을 거쳐 지하 1층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더 많은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국내외 작가의 개인전과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전시를 포함해 연 3회의 전시를 기획 및 개최한다. 에르메스는 지난 2000년 외국 기업 최초로 한국의 역량 있고 창의적인 젊은 작가를 발굴해 후원하고자 에르메스 코리아 미술상을 제정했다. 1회부터 3회까지는 한 차례의 추천 및 심사 과정을 거쳐 수상자를 선정한 뒤 전시와 시상식을 개최했으나 2003년 아트선재센터와 공동 주관하면서 5명의 추천위원이 선정한 10명의 작가를 대상으로 5명의 심사위원이 수상 후보자 3명을 선정해 이들의 신작 제작을 지원하고 전시를 개최한 후 최종 수상자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2008년에는 에르메스 재단 발족과 함께 에르메스 미술상으로 거듭나게 된다. 16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부터는 최종 후보자 3인의 전시를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처음부터 1명의 수상자를 국내외 심사위원이 선정한 후 이듬해에 개인전을 개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의 역대 수상자는 장영혜(2000년), 박이소(2002년), 서도호(2003년), 박찬경(2005년), 양아치(2010년), 구동희(2012년), 장민승(2014년), 오민(2017년) 등 한국의 컨템퍼러리 아트를 이끌어가는 주자로 그 면면이 화려하다.

9 <합성적 체험> by 구동희(2008년). 10 잭슨 홍의 2016년 가을 윈도 디스플레이. 11 잭슨 홍의 2016년 여름 윈도 디스플레이. 12 위고 가토니가 표현한 윈도 디스플레이.
쇼윈도_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닐지니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를 특별하게 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쇼윈도다. 통상적으로 쇼윈도는 판매하고자 하는 주력 제품을 선보이는 공간이라는 선입견이 강한데, 에르메스는 이 같은 편견을 보란 듯이 날려버렸다. 인기 있는 제품을 소개하기보다는 브랜드의 철학과 유머를 보여주는 또 다른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 시킨 것. 잭슨 홍이 참여한 디자인부터 현재 레노베이션 중인 외벽을 가린 위고 가토니의 작품까지, 쇼윈도는 메종에 들어가기 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최고의 매개체임이 틀림없다.

에르메스 스트리트 콘서트_ 브랜드의 유쾌한 변주
2007년부터 지역 주민과 연주자의 교감을 위해 시작한 ‘스트리트 콘서트’는 도산공원 일대를 지역의 핫 플레이스로 부각시키는 데 기여했다. 탱고, 재즈, 블루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은 연주자의 공연을 선보이며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를 찾는 이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3층에 자리한 홈 컬렉션.
또 다른 차원의 메종을 기대하며
2017년 새로이 오픈하는 메종은 RDAI의 아티스틱 디렉터이자 전 세계 에르메스 매장의 건축 책임자인 드니 몽텔이 맡아 진행했으며, 1층에선 남성 컬렉션을, 2층에선 여성 컬렉션과 가죽 제품을 선보인다. 메종 후문의 전용 입구에서 엘리베이터로 바로 연결되는 VIP 룸도 있으며, 3층의 VIP 라운지에는 남성복을 맞춤 제작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한다. 새로운 메종은 에르메스의 역사를 현대적으로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마구상으로 시작한 에르메스의 최초 고객은 ‘말’이었다. 티에리 에르메스가 브랜드를 설립한 당시 그의 꿈은 말과 마부를 편안하게 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1867년 티에리의 아들 샤를 에밀이 만국박람회에서 은메달을 수상하면서 브랜드의 기술력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샤를 에밀은 부아시당글라 가와 포부르생토노레 24번지의 모퉁이에 위치한 2층짜리 건물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후 그의 두 아들인 아돌프와 에밀의 도움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에르메스 최초의 백인 오뜨 아 크루아를 탄생시킨 것도 에밀이다. 자동차가 말을 대신하자 에밀은 자동차를 위한 다양한 액세서리를 고안했고, 그 유명한 새들 스티치를 적용한 부드러운 쿠션과 트렁크 등을 내놓았다. 에밀 에르메스의 딸들이 성장한 후엔 사위가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사위 중 한 명인 로베르 뒤마는 건축을 공부한 창의적인 디자이너일 뿐 아니라 장인으로서 역량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는 1937년에 최초의 실크 스카프, 주 데 옴니버스 에 담 블랑쉬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에밀 에르메스에 이어 에르메스를 이끈 로베르 뒤마의 후계자는 그의 아들 장-루이 뒤마다. 장-루이 뒤마는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제인 버킨의 요청에 따라 버킨 백을 만들었다. 하우스의 유서 깊은 가죽·실크·기성복 제품에 새바람을 불어넣었으며, 시계와 수제화 등으로 제품 영역을 넓혔다. 현재는 에르메스의 6대손인 악셀 뒤마가 CEO로, 피에르-알렉시 뒤마가 총괄 아티스틱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다. 이처럼 브랜드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각각의 아이템이 매우 현대적인 공간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를 차별화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은 3층에 설치되는 양혜규 작가의 작품으로 예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메종의 상징성을 보여준다. 메종의 외관을 담당하는 윈도 디스플레이 역시 플라잉시티, 배영환, 지니 서, 잭슨 홍이 함께한 지난 10년간의 윈도 작업 중 엄선해 선보인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도 오는 7월 23일까지 <오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구나(O philoi, oudeis philos)>전을 통해 여섯 명의 작가가 지난 10년간의 의미 있는 전시에 경의를 표할 예정이다.
에르메스는 뿌리 깊은 나무를 연상시킨다.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대지에 튼튼하게 뿌리내린 채 꾸준히 성장하는 나무 말이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가 국내에 메종의 개념을 전파한 것도 비슷한 과정이었다. 드러내놓고 자랑하진 않았으나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것에 도전하길 멈추지 않았다.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의 미래가 기대되는 것은 바로 이런 브랜드의 독보적인 철학 때문이기도 하다.
에디터 이윤정(yoonjunglee@noblesse.com)
사진 제공 에르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