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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기의 진심

ARTNOW

이광기를 배우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이제 그를 전시 기획자이자 사진가, 무엇보다 미술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삶의 탐험가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배우 이광기의 첫 개인전 <막간>이 열리는 갤러리AG에서는 인터뷰 내내 그의 독백이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단순한 이름이 아닌, 내면을 꿰뚫어보는 듯한 존재에 대한 질문. 나는 대답 대신 그에게 되묻고 싶었다. 당신은 누구냐고. 그는 TV 드라마 <정도전>, <징비록> 등의 사극에 출연한 경력 33년 차의 연기자일까? 아니면 예능 프로에서 유쾌한 에너지를 전하는 방송인일까? 물론 그 둘 모두 정답이다. 그리고 여기에 꽃을 찍는 사진작가라는 타이틀을 더해야 할 것 같다.
연기자 이광기만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의 개인전 소식이 놀랍겠지만 그가 사진과 인연을 맺은 지는 벌써 7년째. 가족사진 찍어준 경험이 전부던 그는 2010년 아이티 대지진 구호 현장에서 아이들을 찍기 시작했고, 지금은 꽃을 찍는 사진작가가 됐다. “아이들을 위한 구호 활동 외에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사진을 떠올렸습니다. 처음엔 상실감으로 얼굴빛이 어둡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밝게 빛나는 모습은 피사체로도 매력적이었죠. 처음엔 제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아이들이 기뻐하니까 계속 셔터를 누르게 되더라고요.”
아이티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사랑을 전하고 싶었던 그는 한국에 돌아와 미술 행사 기획자로 변신했다. 그 시작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월드비전, 서울옥션과 함께한 자선 경매. 컬렉션을 수집하며 알게 된 문형태, 마리 킴, 나라 요시토모 등 50~70명의 작가가 기꺼이 자신의 작품을 내주며 뜻깊은 일에 동참했다. 자선 경매를 하는 중간에는 영화제와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011~2012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특별전과 이용백 작가와 함께한 ‘상상동화: Angel Soldier & Flower Tank’ 퍼레이드가 바로 그것. 꽃으로 장식한 탱크와 꽃무늬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평택에서 서울을 거쳐 파주까지 평화의 행진을 하는 이벤트는 그가 낸 아이디어였다. 2013년엔 120여 명의 아이가 초대형 캠퍼스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며 평화를 표현하는 공공 미술 프로젝트 을 진행해 언론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연기와 함께 미술 행사를 기획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꽃 사진을 찍은 그는 작년부터 아트 페어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2016 화랑미술제를 시작으로 아트부산, 부산사진아트페어, KIAF에 사진 작품을 출품한 것. 사진은 그에게 희망을 전하는 매개체지만 그것과 별개로 작가로서 작품을 선보이는 일이 부담되진 않을지 궁금했다. “물론 전문적으로 사진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작품을 얻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하지만 요즘은 예술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정식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개성 넘치는 작품을 선보이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형식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저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전시 <막간>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제 사진의 꽃은 자세히 보면 조화와 생화가 섞여 있습니다. 겨울이 오면 생화는 시들어 생명을 다하지만 봄이 되면 다시 찬란한 꽃을 피우지 않습니까? 한때도 저 자신이 시든 꽃 같다 여기고 방황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꽃을 보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이긴이 꽃 싹을 틔우듯, 죽음과 삶도 순환하는 것이 아닐까’라고요.” ‘막간’을 전시 제목으로 정한 이유를 묻자 “연극 무대에서 막간은 극과 극의 경계에 있는 휴식의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에서 막간은 죽음과 삶의 미묘한 경계가 아닐까요? 제 전시가 사람들이 잠시 막간에 서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그는 답했다.
이쯤에서 그에게 전시 기획자와 사진작가가 되기 전 어떻게 처음 미술을 접하게 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2000년에 지인을 통해 동양화 한 점을 구입했어요. 거실에 그 그림을 걸었는데 집 안의 분위기가 달라지더라고요. 그림 한 점이 집 안을 이토록 따스한 분위기로 만들 수 있다니 그 변화에 감탄했습니다. 그 후로 문형태의 고양이회화, 김인태의 사과 조각, 쿠사마 야요이의 오렌지 판화 등 다양한 미술 작품을 구입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하나둘 작품을 모으며 다양한 작가와 교류를 이어온 것은 물론, 국내외 아트 페어를 찾아다닐 정도로 이름난 미술 애호가가 됐다. 지난3월엔 가족과 함께 아트 바젤 홍콩을 찾아 센트럴 구석구석을 누비며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현지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하기도 했다. “미술을 사랑하는 전 세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작품을 감상하고 교류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가슴 벅찬 경험이었어요.” 이번에 홍콩에서 본 가장 인상적인 전시를 묻자 그는 프랑스 하이 주얼리 & 워치 메종 반클리프 아펠이 선보인 ‘라크 드 노아’ 컬렉션을 꼽았다. “음악, 무대장치, 주얼리 컬렉션 모두 완벽하게 어우러진 최고의 전시라고 생각해요. 막간을 전시에 차용한 것을 넘어 본격적으로 무대와 예술이 어우러진 설치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가슴속에 샘솟을 정도로요.”
아트 바젤 홍콩도, 그의 사진전도 이미 막을 내렸지만 그는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6월에 개최하는 아트부산에 출품할 사진을 준비하고, 파주출판단지에 작업실과 함께 전시를 열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도 설계 중이기 때문. 인터뷰의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의 인생 자체가 연기·미술·나눔, 이 모든 것을 이어주는 막간이 아닐까 하는.

 

백남준, Lamp, Mixed Media, 50×25×33cm, 1994

배우 이광기가 꼽은 내 마음속 작품
백남준의 ‘램프’

이 작품을 선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평소 백남준 작가의 팬이기도 하고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원양어선에서 사용하던 램프를 이용해 만든 작품이에요. 램프 안에 TV 모니터를 넣었는데, 미디어가 세상을 비춘다는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안테나는 세상과의 소통을 상징해요. 처음 작품을 봤을 때 아마 백남준 작가도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거장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망망대해를 헤쳐나가는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저도 한때 방향을 잃고 방황한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은 그때 제가 길을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빛이 되어줬습니다. 인생은 자신이 설정한 방향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기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소중한 보물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에디터 최윤정(amych@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