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한 맛
50여 년. 강산이 다섯 번 바뀐다는 시간 동안 오롯이 한길을 걸어온 내공은 과연 어떤 것일까? 적어도 미식에 관한 한, 지금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에 가면 그 맛과 멋을 짐작할 수 있다. 오부치 야스후미 총괄 셰프를 통해서 말이다.

지금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은 전에 없던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올 뉴 파라다이스’란 이름을 걸고 키즈 빌리지와 수영장 등의 부대시설, 객실 신관과 본관, 로비 라운지와 뷔페 레스토랑 등에 대대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F&B는 괄목할 만한 수준. 작년 말, 50년 경력의 일본인 프렌치 셰프 오부치 야스후미(Obuchi Yasufumi)를 총괄 셰프로 영입하면서 한층 미식의 본질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닉스그릴’은 캐주얼한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 갈라 디너로 프렌치 파인다이닝까지 경험할 수 있는 유러피언 콘티넨털 레스토랑을 지향하며, 최근 오픈한 1층 뷔페 레스토랑 ‘온 더 플레이트’는 그간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의 F&B 노하우를 모두 쏟아부은 감각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그 변화의 중심에 오부치 야스후미 총괄 셰프가 있다. 20년 넘게 도쿄에서 명망 있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그가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에 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5년 넘게 제 레스토랑을 찾아준 한국인 요리 연구가가 작년 어느 날 전화를 걸었습니다.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 관계자와 잘 아는 사이인데, 그곳의 총괄 셰프로 와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죠. 당시 지진, 쓰나미, 원전 사고 등 어찌할 수 없는 재해의 연속으로 결국 운영하던 레스토랑의 문을 닫고 잠시 숨을 고르던 때였습니다.”
15년 전부터 서울은 가끔 오간 그지만, 부산은 처음이었다. 제안을 받고 찾은 부산, 특히 호텔이 위치한 해운대는 그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산과 바다, 숲이 어우러진 자연과 더불어 도시적 면모까지 완벽하게 갖춘 이곳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평소 요리 외에는 취미랄 것도 없었는데, 요즘은 산책하는 재미에 푹 빠졌을 만큼 이곳이 좋습니다. 특히 황령산 봉수대의 드라마틱한 벚꽃 파노라마 풍경을 감상했을 때는 황홀하기까지 하더군요. 일본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었습니다.”

닉스그릴의 오픈 키친에서 10여 명의 셰프를 진두지휘하는 오부치 야스후미 총괄 셰프.
오부치 야스후미 총괄 셰프의 고향은 일본의 북부 아키타 현. 조그마한 료칸과 식당, 식품 유통업체를 운영하던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요리를 접했다. 동경하던 도쿄 생활을 위해 열다섯 살에 상경해 요리를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일본, 도쿄에서도 서양 요리를 접할 수 있는 곳이 도심의 몇몇 호텔이 전부였다. 우에노의 작은 호텔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서양 요리를 배웠고, 1973년에는 선배의 권유로 프랑스로 건너가 진짜 프렌치의 세계에 입문했다. 이후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신주쿠와 긴자의 레스토랑을 비롯해 비스콘티, 르아루피노, 아라부시 등을 거친 후 1993년부터 ‘라비너스’, ‘프렌치 물고기’ 등 자신의 레스토랑을 오픈해 오너 셰프로 일해왔다. 거의 50년 가까이 프렌치 요리를 해온 셈. 프렌치 요리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렇게 오랜 시간 한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걸까? “제가 요리에 처음 입문했을 때, 프렌치 요리를 통해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 다른 세계의 요리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일본 역시 서양 요리에 대한 이해와 미식이 거의 전무하던 때였죠. 요리를 통해 전에 제가 알지 못하던 낯선 세계, 낯선 문화, 낯선 기술을 익힌다는 것이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단순히 전통 프렌치가 아닌 ‘오부치 스타일’ 프렌치로서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감동을 끌어내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미술계의 피카소와 달리가 그러했듯, 저 역시 음식을 통해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표현하기 위해 지난 50여 년간 노력해온 것 같습니다. 최소한 그런 자긍심과 자존감을 가지고 요리를 해왔습니다.”
오부치 야스후미 총괄 셰프는 ‘자신의 성숙한 정신이 한 그릇에 담겨야 한다’는 분명한 요리 철학을 바탕으로, 그것을 손님에게 오롯이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셰프로서의 자존심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에 부임한 이후 120여 명의 F&B 스태프에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존감과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1 닉스그릴의 오픈 키친에서 10여 명의 셰프를 진두지휘하는 오부치 야스후미 총괄 셰프. 2 레몬 풍미 버터 소스의 혀가자미 구이와 세르바티코 샐러드를 곁들인 소고기 구이.
그의 이런 생각이 담긴 1층 뷔페 레스토랑 ‘온 더 플레이트’가 최근 문을 열었다. 그는 온 더 플레이트가 사람들에게 진정한 ‘미식의 낙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이를 위해 파라다이스 호텔 F&B센터는 1년 전부터 미식 체험단을 꾸렸다. 이름하여 ‘팜 투 테이블’. 농장의 신선한 재료를 식탁에 바로 옮기겠다는 다부진 각오가 담긴 프로젝트다. 해외의 경우 한 달에 한 번 정도, 국내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전국의식자재 산지를 돌며 재료 수급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대저토마토, 밀양의 딸기와 은어, 태안과 연평도의 제철 꽃게, 울산 복순도가의 손막걸리, 거제도 맹종의 죽순과 알로에, 지리산 흑돈(버크셔 K) 등 오부치 야스후미 셰프와 F&B 스태프들이 직접 산지를 탐방하며 농장과 계약을 맺었다. 한국의 산지에서 직접 ‘씹고 뜯고 맛보며’ 엄선한 식자재를 이용해 오부치 야스후미 스타일로 만든 요리는 과연 어떤 맛일까? 상상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인다.
“산지의 신선하고 맛있는 식자재부터 그것을 다루는 숙련된 요리 솜씨, 접시 위의 장식, 레스토랑의 분위기까지! 미식에 대해 집요하게 도전하고 노력하는 정성을 바로 이곳, 온 더 플레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산에서 미식 하면 1순위로 파라다이스 호텔 부산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겠다며 부임 각오를 밝힌 오부치 야스후미 셰프. 그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만든 ‘미식 천국’이 기대된다.
에디터 손지혜(프리랜서)
사진 공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