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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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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 가공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평가받는 벨루티와 하이더 아커만의 본격적인 시너지가 시작됐다.

지난 4월 27일 벨루티의 2017년 F/W 컬렉션을 한발 앞서 소개하기 위해 하이더 아커만이 한국을 찾았다. 하이더 아커만은 벨루티에서의 행보에 대해 그 자신에게도 놀라운 일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여성복 디자이너로 잘 알려진 걸 알기에, 남성 브랜드의 수장이 된다는 것은 마치 동전의 반대 면을 택하는 것과 같았다는 것. 하지만 무언가 예상치 못한 일을 하는 것에서 흥미와 매력을 느낀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이미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인물이지만 겸손했다. 벨루티라는 브랜드에 자신의 철학을 완벽히 투영하기보다는 오랜 유산을 간직한 브랜드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미 3개월 전의 일이지만, 벨루티의 첫 컬렉션을 마친 소감이 궁금하다. 한숨 돌린 기분이었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벨루티의 컬렉션을 궁금해했다. 나와 팀이 어떤 컬렉션을 선보일지 기대감도 컸고, 일부는 의구심을 품었을 것이다. 한 시즌에 2개의 쇼를 진행하는 건 꽤 정신없는 일이다. 하이더 아커만과 벨루티 쇼를 이틀 간격으로 선보였기 때문에 사실 스트레스를 느낄 틈도 없었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하이더 아커만 쇼가 끝난 다음 벨루티 쇼까지 전화기를 일부러 꺼두었다.
당신을 통해 벨루티의 RTW가 한층 강력해질 거라고 짐작했다. 앞으로 벨루티의 RTW는 어떤 방향성을 띠게 될까? 무대 위 컬렉션 쇼를 위한 옷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실제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자 한다. 특별한 일부를 위한 것이 아닌, 패션의 민주화라고 할까.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영속성이다. 수명이 긴 옷을 만들고 싶다. 한 계절을 즐거이 보내고, 잘 관리해 옷장에서 다시 꺼내 입을 수 있는 그런 옷 말이다. 남자의 옷장에 꼭 필요한 옷으로 남기 위해서는 소재가 가장 중요하다. 어떤 브랜드든 소재의 조합에 대한 그만의 기술과 노하우가 있겠지만, 내가 벨루티에 이식하고자 하는 것은 최고급 소재의 조합에 대한 자유로움이다. 이번 시즌 주목할 만한 옷 중 하나인 보머 재킷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동일한 형태의 보머 재킷이지만 램스킨이나 카프스킨 누벅, 캐시미어, 벨벳 등 소재에 따라 각기 다른 분위기를 표현했다. 시어링 칼라를 세웠을 때 드러나는 언더 칼라에 강렬한 앨리게이터 레더를 덧댄 것도 꽤 흥미로운 요소로 느낀다.
하이더 아커만과 벨루티, 파리에서 한 시즌에 2개의 남성 컬렉션을 선보인다. 어떻게 차별화할 생각인가? 하이더 아커만의 남성과 벨루티의 남성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하이더 아커만의 남성은 방랑자나 몽상가처럼 느긋하고 여유롭다. 반면 벨루티의 경우는 도시의 남성이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만큼 정신없이 바쁘다. 하지만 늘 정도를 걸으며 자신감과 확신이 넘친다. 자연스레 옷에서도 그런 차이가 묻어날 거라고 생각한다.
남성복을 만들 때 ‘태도’에 중점을 둔다는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벨루티 컬렉션에는 어떤 태도의 남성이 녹아 있나? 멋진 캐시미어 코트를 입지만 그것을 의식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젠체하지 않는 태도랄까. 꽤 무심한 태도에 가깝다. 그저 많은 시간과 기억을 그 캐시미어 코트와 공유할 뿐이다. 일시적 패션 트렌드나 단순한 패션 아이템이 아니라 서서히 누군가의 일부가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럭셔리다.
벨루티의 구두는 ‘영혼을 지닌 구두’, ‘예술품의 가치를 지닌 구두’라는 찬사를 받는다. 가죽 제품에도 어떤 변화를 시도할 것인지 궁금하다.맞다. 벨루티의 가죽 제품은 이미 장인의 작품 반열에 오른 것으로 평가받는다. 1895년부터 현재까지 벨루티가 일궈낸 것이 연속성을 띠고 이어지길 바라기에 한순간에 기존의 것을 바꿀 생각은 없다. 나는 지금 벨루티의 코드를 이해하고 흡수하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것을 도출해낼 수 있을 테니까. 이번 시즌에는 앨리게이터나 도마뱀 가죽처럼 특수 가죽을 접목해 새로운 에너지와 자극을 전하고자 했다.
평소 당신이 즐겨 입는 팬츠의 실루엣, 옷을 겹쳐 입는 방식, 스카프를 두르는 것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있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기 전 옷을 선택하는 기준이 궁금하다.고백하자면 그날그날 입을 옷을 선택하는 것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그냥 옷장에 정리된 것을 아무거나 골라 입는 식이다. 오늘 입은 이 보머 재킷과 티셔츠, 팬츠도 손이 가는 대로 집어 입은 것이지 고심해서 선택한 건 아니다. 다만 여행지에서 얻는 영감은 큰 자극을 준다. 일전에 부탄을 여행했는데 현지 여성들의 옷차림이 무척 아름다웠다. 몇 시간씩 진지하게 고민한 결과가 아니라 그들의 내면이 자연스럽게 투영된 자유로운 차림이었다. 그렇기에 늘 진정한 의미의 패션은 자유라고 생각한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3월 말쯤 친구들과 인도 여행을 즐기는 모습을 봤다. 사진한 장으로도 행복이 느껴졌다. 친구와 떠나는 여행은 당신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나? 마음의 평화다. 틸다 스윈턴을 비롯해 함께 여행을 떠난 친구들은 17년 지기다. 다들 짬을 내기 어려울 만큼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종종 부탄이나 에티오피아 같은 한적하고 정적인 곳으로 함께 여행을 떠난다. 그 친구들과 시간을 함께하는 건 집이라는 공간을 떠났지만 진정한 집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정신없는 일상을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고 생각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집에 더욱 가까워진다고 할까. 전화기를 꺼두고 걱정거리나 즐겁고 슬픈 일에 관한 모든 것을 친구들과 나누고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다.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이의 멘토는 누구일까 늘 궁금하다. 당신의 멘토는 누구인가?조향사로 자신의 향수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세르주 루텐이다. 단순히 존경하는 것을 넘어 그를 흠모하고 경배한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장인이고, 영웅이며, 인간이자 친구다. 그는 미(美)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다. 그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며, 세르주 루텐이라는 인물 자체가 미의 화신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성품과 이야기, 시간을 초월한 우아함은 그 무엇과도 비교 불가하며 내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존재다.

 

에디터 정유민(ymjeong@noblesse.com)
사진 장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