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함의 미학
유리로 가구 만드는 걸 어디 상상이나 했던가.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재료의 매력에 세련된 디자인, 우수한 기술력이 모이니 명품 유리 가구가 탄생했다. 바로 세계 최고의 유리 가구 브랜드 ‘글라스이탈리아(Glas Italia)’다. 회사의 역사적 변곡점 시기에 입사해 투명함의 미학을 전하는 명품 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 오랜 시간 전면에서 활약한 글라스이탈리아의 수출 담당 제너럴 매니저, 플라비오 파를라토(Flavio Parlato)에게 브랜드의 성공 비결을 물어봤다.

이름은 자주 들어봤지만 한국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다. 글라스이탈리아는 어떤 회사인가? 정확히 말하면 유리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는 제조사다. 매출은 3개 부문에서 각각 비슷하게 발생하는데, 그중 첫 번째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유리 가구 완제품을 만드는 분야다. 두 번째는 다른 가구 회사에 유리 제품을 납품하는 부문이다. 예를 들어 옷장에 들어가는 유리 같은 거다. 세 번째는 콘트랙터(contracter) 역할인데 호텔, 레지던스, 병원 등을 지을 때 필요한 유리를 제공하며 함께 공간을 만들어가는 활동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다. 이탈리아에만 3개의 공장을 두고 있다. ‘Made in Italy’는 우리의 큰 자부심이다.
회사가 1970년에 설립된 걸로 아는데, 소개 문구에선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크리스털 브랜드라고 하더라. 이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유리 공장은 1920년에 밀라노 근처의 브리안차 지역에서 시작했다. 브리안차는 부유한 밀라노 사람들이 자신을 위한 맞춤 공예품과 생활용품을 주문하러 방문하는 공방 밀집 지역이었다. 지금은 전설적 브랜드가 된 자노타, 카시나 등도 원래는 이웃사촌 공방이었다. 그때 우리는 대리석과 유리를 다루었는데, 당시 오너가 예술에 조예가 깊어 디자이너들과 친구로 지냈다. 알레산드로 멘디니, 에토레 소트사스 등 지금은 전설적 이름이 된 친구들의 부탁으로 작은 유리공예품을 만들어 선물하곤 했다. 요즘의 컬래버레이션과 비슷한 개념인데, 그때는 그냥 친구끼리 취미로 즐기던 거다. 어찌 생각해보면 결코 믿을 수 없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그러다 공장이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는 모든 기반 시설이 붕괴됐다. 모두 새로 지어야 했다. 정부는 아주 천천히 집과 빌딩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전후 약 25년간 많은 건물을 지었지만 여전히 헐벗은 상태였다. 안에 가구나 살림살이가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이블에서 빌딩까지 모든 것을 되살려 다시 디자인하려는 욕구가 강한 시기였다.
그럼 글라스이탈리아의 명성은 1970년대 이후 생긴 것이라고 봐도 되겠나? 솔직히 말하면 1970년대 이후에도 디자인 컬렉션을 만드는 정도에 머물렀다. 기존에 취미로 즐겼다면 이것을 완제품 형태로 생산하는 수준으로 한 단계 뛰어올랐지만, 아직 상업적 전략을 기반으로 만든 제품은 아니었다. 지금 가구업체로서 글라스이탈리아의 이름값은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생성됐다. 오너의 두 아들 중 한 명인 로렌초가 가업을 물려받았는데 그의 직업은 건축가였다. 그는 아트워크 형태에 머물던 작업을 비즈니스 영역으로 확장하려 했고 초기에는 그 자신도 디자인에 참여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피에로 리소니(Piero Lissoni)를 아트 디렉터로 영입하면서 회사가 새롭게 변모하는데 가속도가 붙었다. 드디어 가구 산업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나도 2001년에 들어와 수출 일을 맡기 시작했다. 그때는 내수 시장만 겨냥할 때였다. 수출이 80%를 차지하는 지금과는 천지 차이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일한 지도 벌써 16년째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현 오너인 로렌초와 아트 디렉터 피에로 리소니가 글라스이탈리아의 성공을 이끈 핵심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맞다. 로렌초는 글라스이탈리아가 카시나나 카펠리니와 견줄 만한 가구 회사로 발돋움하길 원했다. 2001년과 2002년에 피에로 리소니는 컨설턴트로 우리와 인연을 맺었는데, 2005년에 결국 아트 디렉터가 되면서 글라스이탈리아에 혁신을 가져왔다. 자신의 미감을 적용한 제품도 많이 만들었지만, 다른 브랜드에서 같이 일한 다양한 스타 디자이너를 데려와 협업을 시작했다. 1920년대의 취미 같은 협업과는 수준이 다른 전문적 협업이었고, 이로써 글라스이탈리아는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피에로 리소니는 한국에 신라스테이 역삼을 디자인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에서 피에로 리소니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건축, 인테리어 디자인, 가구 디자인, 심지어 그래픽 디자인까지 디렉팅하는 이탈리아 크리에이티브계의 록 스타다. 사실 우리 로고도 그가 2001년에 만든 것이다. 가구 쪽에서는 필립 스탁의 뒤를 이어 카시나의 아트 디렉터를 맡기도 했다. 그런 그가 글라스이탈리아로 오니 영향력이 대단했다. 물론 우리는 그의 디자인과 스타일이 좋아 함께 일하기로 했지만 그의 인맥이 불러온 결과는 놀라웠다. 바로 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잡혔다. 컬래버레이션 말이다.

그래서인지 글라스이탈리아에는 유독 컬래버레이션 제품이 많다. 매번 협업할 디자이너를 찾는 게 힘들지 않나? 우리는 디자이너를 따로 수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디자이너가 먼저 찾아오기 때문이다. 보통 훌륭한 디자이너라면 소재와 상관없이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하고, 다양한 소재를 다룰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디자이너에게 유리는 생소한 재료고, 우리와 협업하면서 유리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테스트하는 기회로 삼는다. 그들에겐 포트폴리오에 빠져 있던 부분을 메울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유리를 가구에 접목하는 게 색다른 시도는 아니다. 글라스이탈리아의 제품이 기존 제품과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인가? 아까 말했듯이 우리는 다른 가구 회사에 유리를 납품하기도 한다. 옷장을 예로 들면 뒤판이나 문에 붙이는 유리를 제공하는 거다. 하지만 그건 유리 완제품이 아니다. 우리는 오직 유리로 만든 완제품 형태로 판매한다.

유리라는 소재로만 가구를 만드는 이유가 있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글라스이탈리아는 유리라는 소재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일종의 미션으로 받아들인다. 유리 가구 하면 얼굴을 찌푸리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최우선적으로 가구 재료로서 유리의 높은 가치를 인식시키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다른 이유는 더 명료한데, 우리는 100년 동안 유리를 다뤄왔다. 다른 어떤 소재보다 유리를 가장 잘 다룬다. 남들보다 우리가 잘하는 데 집중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유리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유리를 다루는 전통과 기술이 모여 글라스이탈리아의 제품이 탄생한다.
사실 나도 유리 가구 기피증이 있는 사람 중 한 명인데 그 이유는 위험해 보여서다. 글라스이탈리아는 이런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우리는 유리로 놀이를 한다. 우리 유리는 항공기에 사용할 만큼 강하다. 실제로 굉장히 내구성이 강한 유리지만 유약해 보이는 외관을 끌어내 극도의 가벼운 이미지를 선사한다. 그래도 위험해 보인다고? 그건 고정관념 때문이다. 운전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당신 앞에 있는 커다란 유리창이 언제 깨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가? 건물의 유리 파사드가 깨져서 바닥으로 떨어질 것을 걱정하나? 컵이 깨지는 게 두려워 철제 컵만 사용하는 것도 아닐 테고. 결국 이런 인식의 차이는 얼마나 자신에게 익숙한가에 달려 있다.
단단한 유리를 만드는 테크놀로지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일 것 같다. 기술은 브랜드의 생명이다. 경쟁사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방법은 기술에 대한 투자밖에 없다. 하지만 진정한 우리의 역량은 예로부터 내려온 수공예 기술과 첨단 기술이 만들어내는 조화다. 모든 수작업을 기계가 대신하고 첨단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술의 노예화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모방자를 물리치기 위해 손을 이용한 전통적 테크닉과 최신 기술을 결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글라스이탈리아의 제품은 기본적으로 가구다. 가구는 구조상 손을 써야 접합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45도 각도로 접하는 부분을 결합하는 것 등은 유리를 다뤄온 오랜 노하우에서 비롯한다.
피에로 리소니가 아트 디렉터로 합류한 2005년을 기점으로 보면 약 15년 만에 유리 가구의 최고봉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그 저력은 무엇인가? 회사의 여러 부서가 긴밀히 협업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디자인팀의 공식 명칭은 프로젝트 디벨롭먼트로 디자인에 천작하기보다 생산팀과 연계된 역할을 맡는다. 팀의 수장은 바로 오너인 로렌초다. 피에로 리소니나 다른 외부의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가져오면 프로젝트 디벨롭먼트 팀에서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역할을 맡는다. 디자이너라기보다 엔지니어에 가까운데, 그런 의미에서 로렌초는 가교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피에로 리소니는 아트 디렉터로서 디자이너와의 컬래버레이션을 중재하고 로렌초는 이 디자인과 실제 프로덕션을 잇는 역할을 한다. 이 연계는 아주 명확하면서 섬세하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늘 혁신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혁신에 대해 글라스이탈리아는 어떤 관점을 갖고 있나? 우리에게 혁신의 의미는 확고하다. 누구보다도 먼저, 더 좋게 만들겠다는 의지. 늘 불만족스러운 상태에 머물러 있는 우리에게 만족이란 단어는 공허할 뿐이다. 또한 유리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겪게 되는 고난과 한계점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혁신이다. 알다시피 유리는 부드러운 소재도 아니고 가공할 때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진보를 거듭하는 게 우리가 믿는 혁신의 가치다. 지금 글라스이탈리아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었는데 왜 굳이 노력하느냐고?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를 시험하면서 긍정적인 불안감을 갖는다. 언제나 더 나은 것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한계를 깨고 경쟁자들에게 계속 등을 보여주는 위치에 있기를 소망케 한다. 글라스이탈리아의 목표는 가장 트렌디한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다른 브랜드가 우리 스타일을 따라 하기 시작하는 시점에 우리는 이미 변하고 있다. 늘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게 글라스이탈리아의 성공 비결이다.
에디터 전종현(harry.jun@noblesse.com)
사진 장호(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