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와인’의 수호자
이탈리아의 ‘왕의 와인’ 바롤로의 수호자인 피오 체사레의 오너, 피오 보파에게 듣는 이탈리아 와인 이야기.

바롤로는 굉장히 숙성 잠재력이 긴 와인이다. 즉 생명력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와인을 숙성시키면 보통 점점 ‘늙는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몇몇 특별한 와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나아지고 빛이 난다. 바롤로도 그중 하나다.
지난 6월 12일 이탈리아의 대표적 와인 가문 중 하나인 피오 체사레(Pio Cesare)의 가주, 피오 보파(Pio Boffa)가 한국을 찾았다. 새롭게 선임한 국내 딜러인 CSR와인과의 협정을 축하하며 바롤로 와인을 한국에 알리기 위해서다. 바롤로는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의 지역 이름이자 그곳에서 자라는 토착 포도 품종인 네비올로로 만든 와인을 뜻한다. ‘왕의 와인, 와인의 왕’이란 별칭이 붙을 정도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인데 피오 체사레는 ‘바롤로 와인의 수호자’라 불릴 정도로 전통을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며 130년이 넘는 세월을 대대로 바롤로 와인에 바쳤다. 피오 보파가 말하는 바롤로와 이탈리아 와인 이야기를 들어본다.
당신은 피오 체사레 가문의 4대 가주다. 가문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피오 체사레는 1881년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4대를 이어 가족 경영으로 와이너리를 꾸려가는 와인 가문이다. 이탈리아에서 토스카나와 더불어 양대 와인 산지 중 하나인 피에몬테에서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를 생산하는 가문으로 이름이 높다. 포도를 재배해 수확하고, 이를 숙성시켜 와인으로 만들기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해 컨트롤하는 건 피오 체사레의 강점 중 하나다. 대대로 습득한 노하우를 통해 계속 전통을 유지하며 와인을 만들고 있다. 지금 우리가 이용하는 셀러도 BC 50년경 로마 시대부터 와인 저장고로 사용해온 유서 깊은 곳이다. 70헥타르 정도의 포도밭을 가지고 있는데 그랑 크뤼급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매우 좋은 품질의 포도밭이다. 우리는 수량보다 품질을 중시하기 때문에 소량생산을 고집하며 고품질을 유지한다. 우리의 철학은 자연의 특성을 그대로 담은 와인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국토의 모든 권역이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을 갖췄는데 그 특성이 궁금하다. 미국, 칠레, 호주 등 신세계 와인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이탈리아 와인을 전반적으로 설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위아래로 길게 이어진 이탈리아는 북부와 남부를 비교할 때 굉장히 큰 차이가 나타난다. 북쪽의 와인은 대체로 신선하고 과실 향이 풍부하며 피니시가 길고 우아한 편이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따뜻한 기후의 영향으로 알코올 도수가 높아지고 좀 더 복합적인 풍미를 띤다.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는 모든 와인은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하다. 각 지역마다 고유의 토착 품종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신세계 와인의 경우 카베르네 소비뇽, 소비뇽 블랑, 샤르도네 등 국제 품종을 주로 사용하지만 이탈리아는 다르다. 이탈리아에서 재배하는 토착 품종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피에몬테에서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를 만드는 네비올로 품종이 강세를 보인다면 토스카나 지역에서는 산조베제라는 품종이 가장 힘이 세다. 최남단인 시칠리아에 가면 또 그 지역만의 품종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탈리아 와인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매우 익스클루시브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이탈리아의 문화와도 연관된다. 지역마다 기후가 다르고 토착 품종도 다양하기 때문에 이탈리아 와인이나 음식을 한마디로 정의하는건 불가능하다. 각 지역에는 토착 음식과 그에 맞는 토착 와인이 존재한다. 이런 문화가 지배적인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달리 신세계 와인은 단지 와인이고, 술이고, 음용 대상이다. 음식과 함께 가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신세계 와인은 음식 없이 음미하는 경우가 있지만 구세계에서는 스낵 하나라도 놓고 즐겨야지 맨입으로 마시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다.
이탈리아에서 바롤로를 ‘왕의 와인, 와인의 왕’이라 부른다고 들었다. 그 연유는 무엇인가? 또 그렇게 불릴 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 어떤 와인보다 뛰어나고 특별하기 때문에 군계일학의 의미로 붙였다고 생각한다. 군중 속에서 빛나는 사람은 곧 왕의 자질을 타고난 것이니까. 달리 해석하면 이탈리아 전체에서도 바롤로 와인의 생산량은 엄청나다. 그래서 와인의 왕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바롤로는 그 자체로 특별한 와인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네비올로라는 품종은 피에몬테에서만 자라는 특별한 품종이다. 게다가 바롤로는 굉장히 숙성 잠재력이 긴 와인이다. 즉 생명력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와인을 숙성시키면 보통 점점 ‘늙는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몇몇 특별한 와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나아지고 빛이 난다. 바롤로도 그중 하나다.
피오 체사레는 안젤로 가야와 함께 피에몬테의 대표적인 와인 명가다. 피오체사레의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 가야는 그들만의 스타일이 있고, 우리는 우리만의 스타일이 있다. 피에몬테의 와인은 토양의 특성을 거울에 비추듯 투영하기 때문이다. 소유한 토양이 다르고 와인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지역이 가깝다 해도 생산하는 와인은 완전히 다르다. 안젤로 가야는 우리 형과 학교를 같이 다녔다. 어릴 때부터 죽마고우처럼 자란 친구 사이다. 세대를 거슬러 서로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모두 친밀한 관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똑같은 와인을 생산하는 건 아니다. 가야나 피오 체사레 모두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잇는 다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좋은 와인을 생산하길 바라지만 각자 만드는 사람이 다르고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와인도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공정한 경쟁을 하는 좋은 친구 관계다. 또한 우리는 가족과 같다. 상업적으로 와인을 생산하는 기업이 아니라 가족 경영을 통해 전통을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마음과 열정을 다해 와인 생산에 집중한다는 건 공통점이겠다.
피오 체사레 가문은 전통의 수호자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가족이 대대손손 지켜온 것을 후세에 전달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우리 아버지가 만든 1985년 빈티지, 할아버지가 만든 1886년 빈티지와 똑같은 품질로 2017년 빈티지를 만들고 싶다. 이런 이유로 피오 체사레의 라벨 디자인과 병 모양은 100여 년 전과 비교해 전혀 바뀌지 않았다. 바롤로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피오 체사레의 와인을 바롤로 그 자체로 받아들이도록 돕는 게 우리의 뜻이다. 우리는 자연을 그대로 따른다. 그것이 피오 체사레가 와인을 해석하는 방식이고 전통이다. 시류를 따르지 않고 우리의 자리에 서서 항상 같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 수 있길 바란다. 앞으로도 이런 삶의 태도를 이어가고 싶다.
에디터 전종현(harry.jun@noblesse.com)
사진 노기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