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새로운 이야기
떠오르는 아이스클라이밍 스타부터 올해 대세로 거듭난 혼성 듀오 밴드, 아티스트의 버려진 습작으로 업사이클링 가방을 만드는 디자이너까지. <노블레스>가 남다른 노력과 열정으로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블랙·블루·레드·화이트 컬러를 조화롭게 매치한 블라우스와 화이트 팬츠 Boss Woman.
멈추지 않는 아이스클라이밍 선수 송한나래
고작 네 살이었다. 올해 초 UIAA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여자 리드 부문 3~5차 석권, 종합 1위를 차지한 아이스클 라이밍 선수 송한나래가 산악인 아버지와 함께 산에 오르기 시작한 나이 말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길 좋아한 겁 없는 소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스포츠클라이밍으로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중학생 신분으로 일반부 선수들과 겨뤄 2등을 거머쥘 만큼 실력이 빼어났다. 그만큼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 자신도 욕심이 컸던 탓일까? 중학교 시절 손가락 부상으로 1년 6개월 정도 운동을 쉬어야 했다. “당시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어요. 운동에 맞춘 생활 리듬이 깨져 큰 걸 잃은 듯했죠. 그렇다고 그만두기에는 억울했어요. 포기하고 싶지 않았죠.” 상실감이 컸을 텐데도 그녀는 부상으로 운동을 쉬어야 한 기간을 슬럼프라고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원치 않더라도 운동을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운동은 물론이고 공부에도 매진하기 위해 체육 특기생이 아닌 일반 전형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한 것이다. “선수 활동 이후에 할 일을 고민했어요. 하지만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다 보니 점점 체력적·정신적으로 버거웠어요. 운동선수의 자신감은 훈련 양에서 오는데 공부하느라 훈련을 충분히 못하면 자신감이 줄어들잖아요. 자신감이 없다는 건 이미 경기에 지고 들어가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결단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에 모든 걸 멈추고 있던 어느 날, 선배가 찾아와 아이스클라이밍을 권했다. 스포츠클라이밍과 아이스클라이밍은 엄연히 다른 종목이기에 주변의 반대도 컸지만 그녀의 과감한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아이스클라이밍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것이다. “저는 손의 힘이 풀릴 때까지 매달려요. 떨어지더라도 액션을 하고 나서 떨어져야 점수를 얻어요. 다음 홀드를 잡으려 시도했을 때와 그냥 떨어지는 건 분명 차이가 있어요. 끝에 가서 힘들때 누가 참고 가는지가 중요하죠.” 이런 송한나래 선수의 각오는 아이스클라이밍뿐 아니라 인생에도 대입할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스포츠는 어떤 종목이든 상대방과 겨루는 느낌이잖아요. 아이스클라이밍은 스스로와의 싸움이라는 인식이 더 커요. 등반할 때 오로지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고, 그만큼 성취감도 크죠. 치열하게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어서 짜릿해요.” 최근 아이스클라이밍은 올림픽 시범 종목으로 채택됐다.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고, 매 경기에 나오는 새로운 루트 완등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송한나래 선수가 경기는 물론 앞으로 인생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루트도 섭렵하고, 그녀의 바람대로 아이스클라이밍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를 기대한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송한나래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이다. 내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그녀의 활약을 보게 될 테니.

2017년 대세 밴드, 가수 신현희와 김루트
‘기똥찬 오리엔탈 명랑 어쿠스틱 듀오’를 표방하는 신현희와 김루트(이하 신루트)는 역주행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지난 2015년에 발표한 곡 ‘오빠야’가 올 초 드라마틱한 차트 반등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요새 거리에서, TV에서 들려오는 “오빠야~”로 시작하는 사랑스러운 노래의 주인공이 바로 이들이다.
메인 보컬이자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는 신현희는 대구, 서브 보컬과 베이스를 맡은 김루트는 경북 칠곡 출신이다. 대구에서 버스킹을 하던 이들이 ‘신현희와 김루트’라는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기 시작한 건 2012년 겨울. 여기엔 신현희의 과감한 결정이 한몫했다. “원래 의상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그런데 취미로 시작한 음악이 너무 재밌더라고요. 음악을 하고 싶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는데 잘 안 돼서, 욱하는 마음에 서울로 올라왔어요.” 신현희의 고백에 김루트가 덧붙인다. “그 당시 저는 서울에 있었는데, 난데없이 현희가 올라온 거예요. 자연스레 함께 공연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죠.” 초창기엔 무대가 있는 곳이라면 서울 어디든 찾아 나섰지만, 점차 그들의 스타일에 잘 맞는 홍대 앞을 중심으로 활동하게 됐다. 라이브 클럽과 버스킹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노래하다 보니 조금씩 인지도가 올라갔다고. “클럽에서 신인은 화·수·목요일, 루키는 금·일요일, 최고 인기 밴드는 토요일에 무대에 서요. 저희도 처음엔 화요일에 시작했는데, 나중엔 토요일 라인업에 들어갔어요. 공연 요일이 바뀔 때마다 한 단계씩 성장하는 것 같아 뿌듯했죠.”
2014년, 지금의 소속사를 만나 음원을 발매하는 등 홍대 인디 신을 대표하는 밴드로 자리매김하던 신루트에게 올해 초 기분 좋은 사건이 터졌다. 지난 1월 유명 인터넷 방송인이 이들의 곡 ‘오빠야’를 따라 불렀는데, 이 영상이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모으며 커버 열풍이 분 것. 자연스레 원곡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오빠야’는 각종 음악 차트의 순위권에 올랐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어요. 신곡을 발표했을 때가 아니었거든요. 며칠 있으면 잠잠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오빠야’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자 다른 곳에서 신루트를 그냥 두지 않았다. 2월에만 주요 방송사의 가요 프로그램에 모두 출연했고, 지난 반년간 대학 행사부터 각종 뮤직 페스티벌, 드라마 OST, 공중파 예능 프로까지 섭렵하며 2017년 대세 밴드로 떠올랐다.
단기간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신루트만의 비결은 무엇일까? “저희는 무대 위에서나 아래서나 똑같아요. 낯도 잘 안 가리고, 거리낌없이 솔직하죠. 그러다 보니 관객들이 저희를 친구처럼 생각해주시더라고요.” 실제로 신루트는 젊음의 대학 축제부터 어르신이 많은 시장 공연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무대를 꾸미는 것으로 정평이 났다. “갑작스럽게 행운이 찾아왔지만, 특별히 변한 건 없어요. 평소처럼 공연하면서 관객들에게 행복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해마다 수많은 가수가 등장하고 잊히지만, 무대를 진정 즐길 줄 아는 신루트는 다를 거란 확신이 든다.

패션과 아트의 교집합, 얼킨 대표 이성동
얼킨(ul:kin)은 예술 문화를 기반으로 옷과 가방을 디자인하는 유니섹스 캐주얼 브랜드다. 이곳의 시그너처 아이템은 신진 아티스트의 버려진 습작으로 만든 업사이클링 가방. 세상에 똑같은 그림이 없는 만큼, 이것으로 만든 가방 역시 단 하나뿐이다. 그 희소성과 독특한 매력 덕분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얼킨의 가방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 브랜드의 대표이자 디자이너 이성동은 한양대학교에서 의류학을 전공했다. 2011년 두타에서 여성 캐주얼 브랜드를 런칭하는 등 의류를 주로 디자인하던 그가 가방 제작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미대에 다니는 친구의 졸업 작품 전시회에 갔어요. 한데 작품 대부분이 전시 후에 버려진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저는 새로운 소재를 찾던 중이었는데, 버려지는 것들로 무언가를 해볼 수 있겠다 싶었죠.” 연구를 거듭한 그는 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오브제가 가방이란 결론을 내렸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만든 샘플로 2014년 7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주관한 패션 페어에 참가했다. 결과는 대성공. “명함한 통이 하루 만에 없어질 정도로 반응이 좋았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죠.” 현재 얼킨은 업사이클링 가방은 물론, 아티스트의 터치가 묻어나는 액세서리와 의류도 판매한다. 온라인 숍과 편집숍, 아트 숍 위주로 유통을 전개하는 얼킨은 중국과 싱가포르, 프랑스 등 세계 각국으로 유통 경로를 확장하며 성장 중이다. 올해 초엔 특수 프린팅 기술을 개발해 인기 업사이클링 가방을 복제한 대량생산 제품도 선보였다. 물론 회화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건 잊지 않았다.
이성동 대표의 행보에 눈길이 가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아티스트와의 협업을 통해 ‘재능 순환’을 실현한다는 데 있다. 습작을 제공한 미대생과 아티스트에겐 새 캔버스를, 셔츠나 가방 등 제품을 만드는 데 직접 참여한 아티스트에겐 판매 수익의 일부를 돌려준다. 주기적으로 전시를 개최해 강덕현, 이다연 등 신진 아티스트의 작품 홍보와 판매를 도운 지도 벌써 6회째다. 아직 공간을 빌려전시를 열지만, 나중엔 제대로 된 갤러리를 직접 운영하고 싶다고 한다.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아티스트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많은 아티스트가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하며 작품 활동을 합니다. 저는 이들이 온전히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이런 노력을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예술 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겠죠. 대중과 예술의 간극을 좁히는 데 얼킨이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얼킨은 한국어로 ‘얽히고설킨’, 영어로 ‘Ultimately: We are Kin(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이란 뜻이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다시 보니 이보다 더 좋은 의미가 있을까 싶다. 패션과 아트가 얽히고설켜, 선순환되며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니 말이다. 얼킨이 패션과 아트의 교집합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우뚝 설 날이 머지않았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황제웅(hjw1070@noblesse.com)
사진 박용빈 헤어·메이크업 김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