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여자
남자를 휘어잡을 듯 대형 SUV를 자유자재로 운전하는 여자들.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는 SUV를 탄다. 거대한 차를 직접 운전해 아침마다 요가를 하러 가고, 민박집 직원인 아이유와 강아지를 태우고 바닷가로 산책을 간다. 남편과 장을 보러 갈 때도 큰 차를 당당히 컨트롤한다. 이효리는 닛산 큐브, 피가로 등 작고 희귀한 차를 몰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녀가 볼보의 플래그십 SUV XC90을 운전하며 섬을 누비는 모습은 자신감 넘치는 평소 이미지와 묘하게 잘 어울린다. TV 속 이효리만이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도 레인지로버나 메르세데스-벤츠 G 클래스 등 덩치가 산만 한 차에서 호기롭게 내리는 여자를 볼 수 있다. 물론 여자가 SUV를 타는 모습이 생경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전에는 좀 더 운전하기 편한 도심형 콤팩트 SUV가 주를 이뤘다면 요샌 대형 SUV는 물론 오프로드에 특화된 모델까지 가리지 않고 운전하는 추세다. 투박함과 터프함의 상징이던 예전과 달리 요즘 대형 SUV는 디자인도 잘빠지고 세단처럼 안락하며 몸놀림도 민첩하다. 게다가 자동차 기술이 좀 발달했나. 일정 부분 운전을 대신해주는 반자율 주행 시스템부터 사방을 찍어 모니터로 보여주는 카메라나 사각지대 경고 같은 안전장치 등을 기본 사양으로 탑재해 운전이 한결 수월하다. 그 덕분에 큰 덩치에 부담을 느끼던 여자도 주저하지 않고 대형 SUV를 고른다. 실제로 큰 차에 마음을 빼앗긴 이들을 만나 여성 오너로서 경험한 대형 SUV의 장단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왜 SUV를 탈까?
국내에서 랜드로버 중 가장 잘 팔린다는 디스커버리 스포츠. 올 초에 이 차를 구매한 플로리스트 박민정은 “꽃과 작업 도구를 싣고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일이 많아요. SUV를 찾던 중 든든하면서도 부드러운 인상의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눈에 들어왔죠.” 디자인에 매료되어 구매를 결정했다는 그녀는 오히려 타면 탈수록 장점이 많은 차라고 덧붙인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짐을 실을 수 있고, 짐이 무거워도 차체가 워낙 가벼워 핸들링이 수월해요.” 모델 출신 사업가 이미림은 여자로선 드물게 지프 랭글러 10주년 에디션을 소유하고 있다. “전 캠핑 마니아예요. 어느 날 캠핑장에 갔는데, 옆 텐트의 노부부가 랭글러를 타고 온거예요. 그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돌아오자마자 이 차를 계약했어요.” 투 도어에 열선도 없어 여자가 운전하기 편하진 않지만 랭글러 자체가 멋 아니냐고 되묻는다. 다른 차를 사게 되더라도 이 차는 팔지 않고 평생 곁에 둘 거라고. 캠핑 장비를 싣기 용이하고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달려도 차량 하부가 손상될 걱정을 덜 수 있어서 좋다고 덧붙인다. 성균관대학교 경영연구소 이세나 교수는 7인승 미니밴인 토요타 시에나를 운전한다. “대형 세단을 하나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셋째 아들을 낳은 뒤로 패밀리 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죠. 카시트를 3개나 달아야 하니까요.” 출산 전 미국으로 몇 달간 가족 여행을 갔는데, 여러 종류의 대형 SUV를 렌트해서 타봤다고 한다. “시에나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승차감이에요. 경쟁 차인 혼다 오딧세이도 타봤지만 시에나가 더 안정감 있고 부드럽게 잘 나가더라고요.” 국내에선 주차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지만 장거리를 운전해도 안정감이 뛰어나 피로감을 거의 느낄 수 없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고 말한다.

여심 공략 비결
직업, 취미 생활 혹은 가족을 위해 SUV를 타는 여자들.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렇게 SUV 추종자 중 여성의 비율이 증가하자 자동차업계에서도 신차를 출시할 때 여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힘도 좋고 승차감도 좋아야 하지만 여심을 사로잡기 위해 세심한 편의 사양에 많은 공을 들인다. SUV를 타고 여자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시야 확보를 위해 시트를 높이는 것. 그러다 보면 시야는 탁 트이는데 발이 브레이크 페달에서 멀어져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는 운전자의 체형에 따라 페달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넣었다. 센터페시아 왼쪽에 위치한 조절 버튼 하나로 손쉽게 페달을 올리고 내릴 수 있어 남자보다 키가 작은 여자에게 유용하다. 대형 SUV의 특성상 사람을 여럿 태우거나 짐을 실을 때 2·3열 시트를 움직여야 하는 경우도 많다. 중앙 좌석의 버튼을 이용해 전자식으로 2열과 3열 시트를 접었다 펼 수 있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더 뉴 GLS, 스마트폰을 이용해 차량 밖에서도 2·3열 시트의 원격제어가 가능한 랜드로버 올 뉴 디스커버리라면 여자 혼자서도 힘들이지 않고 시트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닛산 패스파인더는 시트 이동뿐 아니라 아이의 카시트를 움직여야 하는 상황까지 고려했다. 그 결과 유아용 시트를 떼지 않고 2열 좌석을 이동시킬 수 있는 래치 앤드 글라이드 기능을 개발해 어린 자녀를 둔 엄마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 밖에 짐이 쏟아지지 않도록 트렁크 안에 쇼핑백 고리와 홀더를 마련한 볼보 XC90까지 여성에게 유용한 기능을 더한 대형 SUV가 증가하고 있다.
물론 이런 편의 장치가 여성만을 위한 건 아니다. 차를 구매할 때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도 아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제품이 쏟아지는 SUV 홍수 속에서 외관과 성능을 따져본 후에도 감흥의 정도가 비슷하다면 이러한 디테일 하나가 그 차를 사게 하는 최후의 결정 요인이 될 수 있다.

에디터가 추천하는 SUV 기대주
레인지로버 벨라 9월, 레인지로버 벨라가 출격을 앞두고 있다. 재규어 랜드로버의 경량 알루미늄 구조를 기반으로 설계해 차체가 가볍고 민첩하게 움직인다. 무엇보다 간결하고 우아한 레인지로버라는 평가를 받아 디자인을 중시하는 여성에게 어필할 것으로 보인다.
닛산 패스파인더 7인승 대형 SUV인 닛산 패스파인더는 올가을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내놓을 예정이다. 내·외관 디자인을 변경하고 디젤 대신 가솔린엔진을 얹었다. 복합 공인 연비는 8.9km/ℓ로 경쟁 모델보다 1.0km/ℓ 이상 높으며 디젤보다 안락한 승차감을 기대해도 좋다.
테슬라 모델X 곧 전기차 SUV도 만나게 된다. 테슬라는 올 하반기에 7인승 SUV 모델X를 국내에 출시할 예정이다. 이 차는 걸윙 도어처럼 차체와 뒷좌석 지붕의 일부까지 위로 열리는 팰컨 윙 도어가 특징. 전기차도 타고 싶고 SUV도 타고 싶은 여성에게 알맞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