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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후의 미술

ARTNOW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인공지능의 발전은 앞으로 현대미술과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지난 7월 20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우리의 밝은 미래-사이버네틱 환상>전이 열렸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현대미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이 전시에 출품한 잭 블라스&제미마 와이먼(Zach Blas & Jemima Wyman)의 ‘나는 여기에서 공부하는 중:))))))’.

전후 현대 디자인과 미술을 움직여온 대전제로서의 인식론적 기반엔 크게 두 가지 철학이 자리한다. 하나는 존 듀이(John Dewey, 1859~1952년)의 경험주의 교육 이론, 다른 하나는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 1894~1964년)의 사이버네틱스와 요한 폰 노이만(Johann von Neumann, 1903~1957년)의 컴퓨터와 뇌 담론이다.
한데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와 요한 폰 노이만의 컴퓨터와 뇌 담론이 이끌어온 ‘미술-시뮬레이션’ 모델과 ‘디자인-시뮬레이션’ 모델은 경험주의 교육 이론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근본적 변화를 야기했다. 긴 얘기를 짧게 정리하면 이렇다. 요한 폰 노이만은 뉴런의 전기적 작동을 전기적 논리 회로로 유추한 과학자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뇌가 전기적 수리 연산 장치일 거라는 전제 아래 에드백(EDVAC, Electronic Discrete Vabrilae Automatic Computer)의 논리 구조를 디자인했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다시 컴퓨터와 뇌를 비교 연구하고자 했다. 같은 세대인 요한 폰 노이만과 노버트 위너는 사상적 궤적에서 여러 유사한 모습을 보였다. 노버트 위너가 <사이버네틱스: 동물과 기계에 있어서의 제어와 통신(Cybernetics: Or Control and Communication in the Animal and the Machine)>(1948년)에서 세계를 기계와 생물체 사이의 ‘피드백 메커니즘’으로 정의하고 고찰하기 시작한 이래 인간과 기계 사이의 새로운 관계 설정 가능성이 의제로 대두했고, 사이버네틱한 사고는 인터페이스와 인터랙티비티에 대한 자각을 이끌었다. 요한 폰 노이만의 미완성 유고 <컴퓨터와 뇌(The Computer and the Brain)>(1958년)도 넓은 의미에선 사이버네틱한 사고의 결과를 담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사상적 전환은 1970년대의 인지 혁명을 야기했지만, 사실 여러 모순과 결함 그리고 한계를 안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1970년대의 인지과학 발달은 다시 구식 사이버네틱스의 상상력과 결합해 1980~1990년대의 포스트휴먼 담론과 망상을 낳았다. 뇌의 작동 방식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면 뇌의 정보를 컴퓨터로 전송하고, 반대로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나 컴퓨터로 조작한 기억을 뇌로 (재)전송하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또 인간과 기술 환경이 결해합 인간이 포스트휴먼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담론이 별다른 근거 없이 마구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데 실제로 사이버펑크 문화와 포스트휴먼 담론의 유행은 딱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얼마 후 사그라졌다.

공장 노동자 50명의 얼굴을 3D 프린트해 만든 가면을 씌인 후 그들의 움직임을 드라마틱하게 구성한 양전중(Yang Zhenzhong)의 ‘위장’.

사실 오늘날 뇌과학 분야에서 구식 컴퓨테이션 모델은 설 자리를 잃었다. 컴퓨터의 유추를 통해 뇌를 이해하고자 한 노력은 오히려 실상 파악에 걸림돌이 됐을 뿐이다. 구식 컴퓨테이션 모델을 대치한 뇌인지과학 분야의 신경생물학적인지 기능 모델들은 현대 디자인과 미술에 이렇다 할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오늘의 연구 경향은 감각 및 지각신경 시스템과 기억 시스템 등의 특정 모델 시스템을 바탕으로 뇌의 여러 영역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특정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어떻게 구조적·기능적 긴밀성을 구현하고 유지하는지에 주목한다. 그런데 만약 자기 의미화, 자기 조직화를 강조하는 부분적 인지 모델의 상호 연동을 통해 의사 결정 과정까지 설명하고자 하는 지금의 연구 경향을 부분-자동화하는 현대 디자인과 미술에 적용한다면, 미술가와 디자이너의 정체성과 역할은 어떻게 갱신 혹은 재정의 될 수 있을까?
물론 컴퓨팅의 활용으로 유추한 전후의 인지과학적 인간 모델 덕에 프로세스 아트가 성립하긴 했다.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시리얼리티도 그 산물이다. 디자인의 경우 문제 해결 과정으로서 디자이닝 프로세스가 성립한 것이나, 스토리텔링 기반의 디자이닝 프로세스를 제시한 것이 그에 상응하는 결과다. 한데 이러한 인식론적 대전제가 붕괴한 현재, 현대 디자인과 미술은 구식 시뮬레이션 게임을 지속하기 어려운 철학적 위기 상황을 맞았다. 결국 사이버네틱스 붐 이후 미술계와 디자인계에서 인지과학 모델을 학습하고 적용하려는 흐름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오늘의 위기를 초래한 셈이다. 물론 이후에 제시된 인지 모델로 현대미술을 업데이트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신경심리학자 세미르 제키(Semir Zeki)의 시각뇌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걸 모색하려는 흐름도 있었지만, 신경미학과 관련된 여러 시도 역시 별 성과 없이 망해버렸다. 만약 딥 러닝 알고리즘으로 현대미술을 의태-수행하는 실험을 전개한다면, 외형적 스타일의 학습과 구현을 시도하는 것은 목표를 잘못 설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정 작업 패턴을 조합-구사한 화가들, 이를테면 점묘파나 입체파는 더 유사한 결과를 얻기 쉬울 테니 말이다. 한데 결과물의 시각적 유사성의 구현이 대체 무슨 소용일까?
앞으로 딥 러닝 알고리즘으로 미술을 의태-수행하는 실험을 전개한다면,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의 미디어 이론이나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등에 영향을 받은 규칙 기반 프로세스 아트를 학습-의태-구현하는 쪽이 훨씬 흥미로울 거다. 건축의 경우 모듈러 시스템을 제시한 르코르뷔지에의 전후 설계안 같은 사례를 학습-의태-구현하는 쪽이 더 유의미한 결과를 약속할 테고.
한편 2017년의 절반이 지난 오늘 “자동화 알고리즘에 의한 창작이 이뤄진다면 그 결과는 창작물로서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많은 한국인이 “아니오”라고 답할 테지만, 답은 “그렇다”에 가깝다. 당연히 알고리즘에 의한 창작도 창작이다. 이미 개념미술 이래 현대미술은 과정을 지배하는 알고리즘적 법칙을 세우고, 이에 의거해 다양한 실험을 벌이는 방식으로 전개돼왔다. 즉 작가 본인이 알고리즘의 구현-실행을 대신해온 셈. 한데 개념미술가 솔 르윗(Sol LeWitt)이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미술을 구현하겠다는 이상을 제시한 것과 달리, 관리 감독자로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사실과 마찬가지로, 관리 감독하는 주체가 없는 창작 알고리즘의 자동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근미래의 주요 포인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이제까지는 사이버네틱한 대응물로서 메타-시스템 혹은 메타-메커니즘을 발생시키고 성장시키는 것이 현대 디자이너와 미술가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이었다. 한데 만약 사이버네틱한 위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자명하게 드러난 시대가 온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을 해볼 법하다. 작업 세계의 성장이라는 드라마는 과연 온전히 성립할 수 있을까? 작업 세계를 성장시키는 역할은 알고리즘이 맡고, 자라나는 그 세계를 정원사처럼 관리하는 역할이 인간의 몫이 되진 않을까? 그렇다면 큐레이터나 평론가는 일종의 식물학자가 될 것인가?
오늘날 예술 활동에서 원안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담은 스케치와 메모’가 아니다. 이미 데이터 형태의 이미지 구성 정보로 현존 방식이 뒤바뀐 상황이니 말이다. 만약 근미래에 디자인 활동에서 원안이 ‘연관된 이미지 구성 정보의 DB에서 새로운 디자인안을 (반)자동 도출해내는 알고리즘’의 지향성 그 자체가 된다면 어떨까? 그 근미래의 시점에서 디세뇨(작업 과정 전체를 관리하는 원안이자 방향성)/디자인이라는 것은 어떻게 재정의될 수 있을까? 리처드 도킨스식으로 생각하면 사이버네틱한 대응물로서의 디자인-밈에 원본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잘못된 접근 방식이다. 원안을 디자인하는 ‘새로운 원본으로서의 알고리즘’을 지칭하는 이름은 새로 고안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그 개념적 시각장을 먼저 창출하고, 또 실천 양태로서 공유하는 문화권이 스마트 제조업 문화의 승기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문명사적 승기를 잡을 것으로 예상한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임근준(미술·디자인 평론가)  사진 제공 백남준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