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예술을 위한, 예술에 의한
빈센트 반 고흐의 숨결을 느끼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북유럽의 베니스, 암스테르담. 관광객으로 북새통을 이루는 여름을 지나 거리에 인적이 잦아들면, 암스테르담은 즉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준비를 한다. 바로 현대 시각예술의 성지로서 면모를 드러내는 것.

1, 2 레이크스 아카데미 오픈 스튜디오 행사에서 선보인 마테이스 뮈닉(Matthijs Munnik)과 샘 사미(Sam Samiee)의 개별 스튜디오 전경.
3 암스테르담 아트 위크엔드에 참여한 안드리서 에이크 갤러리 외부.
매년 11월 마지막 주말이면 사진과 비디오 매체에 기반을 둔 강력한 실험 미술의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 암스테르담이 예술의 열기로 가득 찬다. 현대 시각예술을 국제적 아트 신과 연결하고 다양한 예술 정보를 공유하는 암스테르담 아트 위크엔드 기간이기 때문. 2012년 첫 개최 이래 암스테르담을 문화적·창조적 도시로 만들면서도 대중의 관심을 끊임없이 현대 시각예술로 이끈 암스테르담 아트 위크 엔드는 매년 4만6000명 이상의 방문객을 맞이한다. 올해는 주말에서 앞뒤 하루씩을 연장, 11월 24일부터 27일까지 총 4일에 걸쳐 개최한다. 이 기간에 암스테르담의 50개가 넘는 미술관, 아티스트 레지던시, 갤러리, 프로젝트 공간은 한마음 한뜻으로 동시에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토크, 스크리닝 등 100개가 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중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은 레이크스 아카데미(Rijksakademie van Beeldende Kunsten)의 오픈 스튜디오 행사다. 1870년 왕 빌럼 3세가 설립한 예술학교로 출발한 레이크스 아카데미는 1980년대에 이르러 현재와 같은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됐다. 2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에 작가들을 초청, 입주 작가들이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작업을 한층 심화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곳이다. 레지던시의 꽃인 오픈 스튜디오 행사가 열리는 11월 25일과 26일, 입주 작가들은 1~2년에 걸쳐 작업한 결과물을 선보이기 위해 각자 스튜디오를 화이트 큐브로 탈바꿈시킨다. 세계 각지에서 온 45명의 작가가 야심차게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는 오픈 스튜디오에 방문한다면, 총 45개의 개인전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올해는 캐나다 출신의 아르보 레오(Arvo Leo), 프랑스 출신의 소니아 카심(Sonia Kacem), 쿠웨이트 출신의 모니라 알 카디리(Monira al Qadiri)의 작업을 주목할 만하다. 사진, 영상, 아카이브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한국 작가 최원준도 입주해 작품을 선보이니, 암스테르담을 방문한다면 잊지 말고 들러볼 것.

4 피에트 몬드리안의 ‘Composition No. IV, with Red, Blue, and Yellow’(1929년). 5 이사 겐즈켄의 ‘Untitled’(2012년).
눈여겨봐야 할 또 다른 참여 공간은 단연 스테델레이크 미술관(Stedelijk Museum)이다. 1874년 크리스티안 피터르 판에이헌(Christiaan Pieter van Eeghen)이 기증한 기금과 소장품을 기반으로 설립한 스테델레이크 미술관은 1920년경부터 사진과 디자인 등 현대 시각예술에 집중한 컬렉션과 알찬 전시로 국제적 명성을 쌓아왔다. 특히 스테델레이크 컨템퍼러리(Stedelijk Contemporary)라는 시리즈로 개최하는 젊은 세대 작가의 개인전은 미술관이 직접 선정한 젊은 작가들과 동반 성장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다. 미국 출신의 포스트 인터넷 아트 작가 조던 울프슨(Jordan Wolfson)과 독일의 실험적 영상 작가 로레타 파렌홀츠(Loretta Fahrenholz) 등이 전시 기회를 얻은 바 있다. 오는 9월 16일부터 내년 1월 7일까지는 다양성을 주제로 작업하는 콜롬비아 출신 영화감독이자 작가 카를로스 모타(Carlos Motta)를, 10월 14일부터 내년 1월 22일까지는 익살맞은 설치미술 작업을 하는 미국 출신 작가 스테펀 체레프닌(Stefan Tcherepnin)을 초대해 각각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런가 하면, 11월 27일까지 네덜란드의 신조형주의 운동인 데스틸에 주목하는 전시를 열어 피에트 몬드리안 등 네덜란드 출신 대가에 대한 관심도 놓치지 않는다.

6 아피찻뽕 위라세타쿤의 2009년 작품 ‘Primitive(Nabua)’. 7 2016년 국제 다큐멘터리 필름페스티벌 암스테르담 현장.
약 4만 편의 영화와 6만 장의 포스터, 70만 장의 사진, 2만 권의 책을 보유한 아카이브 기관이자 영화 박물관인 아이 필름뮤지엄(EYE Filmmuseum)은 2012년 아카데미 감독상에 빛나는 마틴 스코세이지(Martin Scorsese)의 개인전을 9월 3일까지 선보인 후, 9월 16일부터 12월 3일까지는 태국 출신 아피찻뽕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의 전시를 연이어 개최한다. 2014년 양현미술상을 수상해 한국에서도 익숙한 영화감독이자 작가 아피찻뽕 위라세타쿤은 자신이 살아온 지역적 컨텍스트를 유지하면서도 이성을 넘어 꿈, 감각적 경험과 현실이 공존하는 실험적 작업을 선보인다.
이쯤 되면 암스테르담 현대 시각예술의 흐름이 비단 미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늠할 수 있다. 특히 영화와 비디오 아트의 경계가 매우 희미한데, 이를 반영이라도 한 듯 암스테르담 아트 위크엔드가 열리는 11월 25일과 26일에는 세계적으로 명망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제 중 하나인 ‘국제 다큐멘터리 필름페스티벌 암스테르담(IDFA, International Documentary Filmfestival Amsterdam)’을 함께 진행한다. 암스테르담 아트 위크엔드 기간에 열리는 다양한 전시와 필름 페스티벌을 동시에 방문한다면, 미술과 영화의 경계를 오가며 확장 된 시각예술을 경험할 수 있을 것.
행사가 열리는 4일 동안 도시 전체는 축제의 장으로 변한다. 관람객은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한눈에 보며 그 흐름을 파악하고 작품을 직접 감상하면서 경험을 확장할 수 있다. 시각예술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강물처럼 암스테르담의 길가에 넘쳐흐른다. 열띤 대화와 토론을 하고 나면 밤에는 오프닝 파티도 놓치지 말자. 11월 마지막 주말, 암스테르담은 그렇게 예술의, 예술에 의한, 예술을 위한 장소가 된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글 문선아(독립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