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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가 미술을 만났을 때

ARTNOW

무용과 미술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영감을 주고받아왔다. 무용, 그중에서도 ‘클래식한 장르’인 발레에서 미술과의 새로운 접점을 찾았다.


1 Magali Paulin, Variations, 2013   2 Laurent Chéhère, ‘The Great Illusion’ from ‘The Flying Houses’ Series

파리 국립 오페라 발레(Opéra National de Paris)_ 작품의 이미지를 활용한 예술적 상상력 자극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 발레단인 파리 국립 오페라 발레는 공연예술과 시각예술의 관계 맺기를 통해 관객과 창작자의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각 공연별로 동시대 사진작가의 작품 이미지를 선정해 마치 해당 공연의 아이콘처럼 디지털 플랫폼 ‘La 3e Scéne’과 인쇄물 등에 사용하는 것. 대부분의 무용 단체가 공연을 홍보할 때 리허설 장면이나 무용수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과는 차별화한 새로운 방식이다. 작가가 공연의 기획이나 제작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공연과 상관없는 독립된 작품 이미지를 공연과 연계해 사용한다는 점도 색다른 포인트다. 파리 국립 오페라 발레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구체적인 공연 일정이 뜨는데, 작품 이미지를 마치 아이콘이나 섬네일처럼 보여주어 시각적 가독성을 높인다. 공연의 전체를 담아낼 수 없는 스틸 컷을 과감히 포기하고, 작가의 사진 이미지를 통해 공연의 뉘앙스를 직관적이면서 은유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게다가 각 공연과의 매치 역시 절묘해 작품 이미지 선정에 심혈을 기울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례로 다양한 사람의 에피소드를 이어 인간의 성적 탐욕을 풍자한 오페라 <라 롱드(La Ronde)>는 본래 원을 그리며 파트너를 바꿔 추는 오스트리아 춤에서 제목이 유래했는데, 자연의 빛과 반사를 통해 원을 그려내는 뉴질랜드 작가 마틴 힐(Martin Hill)의 작품을 상징 이미지로 선택했다. <발레로 미오와 줄리엣>은 프랑스 사진작가 마갈리 폴랭(Magali Paulin)의 작품을,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는 하늘을나 는 집을 사진으로 그려내는 프랑스 사진작가 로랑 셰에르(Laurent Chéhère)의 작품을 활용했다. 반갑게도 그중에 한국 작가도 있다. 사진작가 안준이 그 주인공. 그의 셀프 포트레이트 시리즈는 안무가 알렉산데르 에크만(Alexander Ekman)이 처음 선보이는 발레 <플레이(Play)>의 이미지로 선정되어 발레와 사진 작품 모두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Jun Ahn, Self-Portrait, 101.6×152.4cm, Photography, HDR Ultra Chrome Archival Pigment Print, 2011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merican Ballet Theater)_ 작가와의 협업으로 풍부한 볼거리 제공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을 선보이는 미국의 대표 발레단이다. ABT가 지난 5월 23일부터 7월 1일까지 선보인 발레 <휘프트 크림(Whipped Cream)>의 성공에는 미술의 역할이 컸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작곡으로 1924년 초연한 <휘프트 크림>은 한동안 공연되지 않다가 안무가 알렉세이 라트만스키(Alexei Ratmansky)의 재발견으로 다시 무대에 올랐는데, 라트만스키는 또 다른 환상적인 세계를 만들어 보여줘야 하는 <휘프트 크림>의 무대 디자이너로 동화적이면서도 잔혹한 초현실주의 회화를 선보이는 마크 라이든(Mark Ryden)을 선택했다. 한 소년이 빈의 과자 가게에서 과자를 탐닉하다 각종 디저트가 살아서 움직이는 상상 속으로 빠지며 전개되는 발레 <휘프트 크림>은 제목처럼 달콤한 디저트가 대거 등장한다. 마크 라이든은 특유의 상상력과 색감이 돋보이는 무대 배경, 소품, 의상 등을 통해 달콤하면서도 약간은 기괴한 느낌의 상반된 감성을 잘 담아냈는데, 다른 공연에선 접하기 힘든 높은 완성도와 디테일, 시각적 풍성함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가 <휘프트 크림>을 위해 작업한 드로잉, 스케치, 회화 등은 발레 공연 기간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내의 갤러리와 첼시의 폴 카스민(Paul Kasmin) 갤러리에서 개인전 형식으로 선보였다. 일반적으로 작가가 디자이너로 공연에 참여할 경우 공연장 밖에선 관련 작품을 보기 힘든데, 이처럼 별도의 개인전을 개최해 발레단과 작가 모두에게 시너지를 안겨주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달콤함이 뚝뚝 떨어지는 시각적 결과물은 전시회와 발레 공연 중 어느 하나를 보든 다른 하나를 보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 이 때문인지 실제로 <휘프트 크림>은 상업적으로도 유례없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ABT가 공연한 <휘프트 크림>의 한 장면

Mark Ryden, Princess Praline and Her Entourage, Oil on Canvas, 38.1×132.1cm, 2017

파리 국립 오페라 발레와 ABT의 사례는 무용을 주축으로 미술을 끌어들여 대중에게 상대적으로 생소한 무용이라는 장르를 보다 친근하게 전달하고자 한 흥미로운 시도다. 국내에서도 최근 무용과 미술 간의 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대부분 미술의 영역으로 무용이 들어간 경우다. 작년에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 올라푸르 엘리아손 전시는 국립발레단, 무용가 김설진 등과 협업해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립현대무용단과의 공동 기획으로 게릴라형 퍼포먼스를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다원예술 프로젝트 ‘예기치 않은’을 진행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무용 단체, 무용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미술을 활용해 그들의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대중에게 전달하는 방안을 모색하길 기대한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방소연(독립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