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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를 누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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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세계에서 유일한 가치의 척도는 바로 ‘좋아요’다. ‘좋아요’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에 ‘좋아요’는 권력이 되었다.

얼마 전 미국의 기술 전문 채널 머더보드는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내놓았다. 바로 러시아에 있는 ‘좋아요’ 자판기에 대한 기사다. 모스크바 시내의 대형 쇼핑센터에 설치한 이 자판기는 50루블(약 1000원)을 내면 인스타그램 ‘좋아요’ 50개를 얻을 수 있다. 실제 50명의 사람이 누르는 건지 ‘좋아요봇’이 만드는 가짜 ‘좋아요’인지는 알 수 없으나 뭐가 중하랴. 진짜 중요한 건 돈을 내는 만큼 정말 ‘좋아요’가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자판기는 100루블을 내면 100명의 팔로워를 확보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 단돈 2000원에 팔로워가 100명이라니! 이런 자판기가 모스크바에 한두 개가 아니라고 한다. 이 정보를 들으니 귀가 솔깃해지는 걸 막을 수 없다. 얼마간의 돈만 투자하면 마른 장작처럼 초라한 SNS 계정이 수백, 수천 개의 ‘좋아요’로 가득 차고, 말로만 듣던 ‘인플루언서’가 되는 것 아닌가. ‘좋아요’가 만들어내는 미래는 그 얼마나 멋진 신세계일까!
‘좋아요’의 고향은 현재 세계 최대 SNS로 성장한 페이스북이다. 애초에 엄지를 세운 ‘좋아요’ 버튼은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해당 게시물의 노출 빈도를 높여주는 알고리즘의 소산이었다. 이를테면 “내가 보기에 좋은 게시물인데 너도 한번 볼래?”라는 간접적 추천 방식이랄까. 그런데 언젠가부터 ‘좋아요’ 수가 SNS상의 인기를 대변하는 척도로 기능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좋아요’를 많이 얻기 위해 자극적인 게시물을 올리는 일은 예사요, 이를 구걸하는 이까지 나타났다. ‘좋아요’가 별로 없는 사람은 SNS상에서 강제된 고립감까지 느끼는 등 ‘좋아요’는 단순한 취향의 표현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으로 변해버렸다. 물론 이런 상황은 페이스북의 태생적 특징이 만들어 낸 면도 없지 않다. 잘 알다시피 페이스북에는 ‘싫어요’ 버튼이 없다. 유저들의 끈질긴 요구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의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페이스북 화면에 ‘싫어요’ 버튼은 없을 거라고 천명했다. 모든 것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동시에 존재해야 그 균형이 맞는 법인데 애초부터 한쪽이 존재하지 않으니 다른 쪽으로 에너지가 어마어마하게 몰리는 건 당연지사. ‘좋아요’는 아무런 천적 없이 페이스북의 왕이 되었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마케팅 기법이 유행하면서 ‘좋아요’는 상업 무대에 진출하게 된다. 페이스북은 웹상의 홈페이지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페이지’에도 ‘좋아요’ 기능을 넣었는데, 일반 게시물과 달리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팔로워가 되어 소식을 받아볼 수 있다. 즉 ‘페이지’의 ‘좋아요’ 수는 팔로워 수와 같고, 이는 마케팅 관점에서 볼 때 열성 팬 혹은 잠재적 소비자로 해석된다. 단순히 웹사이트에 들러 클릭하는 횟수보다 더욱 의미 있는 수치인 것이다. 곧 ‘좋아요’는 디지털 마케팅의 신성이 되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좋아요’를 보유한 페이지는 소비자와 기업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누워서 코 푸는 수익 사업으로 태어났다. 실제 요즘 기업의 마케팅 활동에서 자사 브랜드 페이스북 페이지의 ‘좋아요’ 숫자는 무조건 확보해야 하는 필수 요소로 대우받고 있다. 단기간내에 규모를 끌어올리기 위해 대행사를 이용해 가짜 팔로워를 늘리거나 브랜드와 전혀 상관없는 외국 사람이 팔로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좀비 페이지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인스타그램이라고 별반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인스타그램은 사진이라는 간단하고 강력한 매체 덕분에 ‘좋아요’가 더욱 활성화됐다. 특히 팔로워 수가 막강한 계정은 말 그대로 인플루언서로 변해버렸다. 사진 한 장을 올려 특정 제품을 홍보하는 영향력이 기존의 홍보 매체보다 강력해지자 돈 냄새를 맡은 사람들은 기업과 결탁해 창조 경제를 실현하기 시작했다. 비트(bit)로 구성된 ‘좋아요’가 원자(atom)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를 변화시키는 순간이 온 것이다.
사실 현실에 ‘좋아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엄지손가락을 세운 손 모양은 최고라는 뜻이나 진배 없었기에 어떤 것에 대한 호불호를 가릴 때 매우 유용한 수단이었다. 영화평론가로는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로저 이버트로 대표되는 ‘Two Thumbs Up’이 적절한 예가 아닐까 싶다. ABC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 <앳 더 무비스(At the Movies)>에서 로저 이버트와 동료 진 시스켈은 동시에 엄지손가락을 들거나 한 사람만 들거나, 혹은 모두 내리는 단순한 방식으로 영화에 대한 기대를 표현했다. 로저 이버트의 엄지손가락에 영화의 흥행이 좌우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의 ‘좋아요’는 영화 산업에서 유례없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건 ‘싫어요’가 있을 때 가능한 가치판단의 행동이다. 작금의 SNS ‘좋아요’ 열풍의 문제점은 앞서 말한 ‘싫어요’의 부재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현실 속 ‘좋아요’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현실과 웹이라는 가상 세계를 요리조리 이어주며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을 돕기 위해 탄생한 SNS. 하지만 이제 SNS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를 넘어 현실 세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플랫폼이자, 어쩌면 현실과 대등하게 혹은 현실을 넘어서 자생 가능한 생태계가 되었다. ‘좋아요’는 이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도구라는 측면에서 점점 더 사람들을 잠식해가고 있다. 과연 ‘좋아요’의 권력은 언제까지 갈 것인가. 다른 이의 애정을 갈구하고, 관심을 끌고 싶은 인간의 기본 욕구가 없어지지 않는 한 ‘좋아요’의 위상은 굳건하지 않을까. 우리가 무심결에 누르는 ‘좋아요’ 버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이유다.

 

에디터 전종현(harry.jun@noblesse.com)
사진 Shutterstock